항목 ID | GC02800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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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箕豊 |
영어음역 | Gim Gipung |
이칭/별칭 | 경삼(敬三),죽강(竹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훈 |
[정의]
조선 후기와 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경삼(敬三), 호는 죽강(竹岡)이다. 1835년(헌종 1)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양간공(良簡公) 김연(金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태윤(金泰潤)이다. 1854년 청도김씨와 결혼하였으며, 큰아들이 김재헌이다.
[활동사항]
김기풍(金箕豊)은 5세 때부터 글을 배웠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읽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집안 형편이 점차 나아진 후에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나가 성리학의 깊은 뜻을 배우며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1876년(고종 13)과 1877년(고종 14)에 큰 흉년이 계속되자 가난한 일가와 친구들에게 곡식을 나누고, 집안에서 술과 고기를 금하였다.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더욱 몸가짐을 삼갔으며, 유민석과 기우만(奇宇萬)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는 “동방에 사람이 없다는 비난을 면했다.”고 말하였다. 1901년(고종 38) 봄 영취정(永翠亭) 중건을 시작하였다. 1907년(순종 1) 온 가족이 돌림병에 전염되어 한 달 동안 모두 신음하자 집안일을 건사하다 결국 자리에 눕게 되었고, 4월 1일 향년 73세로 죽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죽강유고(竹岡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