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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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浚喆 |
영어음역 | Yu Juncheol |
이칭/별칭 | 선명(善明),금서(錦西)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유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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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857년 |
몰년 | 1918년 |
본관 | 고흥 |
[정의]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개설]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선명(善明), 호는 금서(錦西)이다. 1857년(철종 8)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에서 태어났다. 석탄(石灘) 유운(柳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동리(東里) 유지기(柳志冀)이다.
[활동사항]
유준철(柳浚喆)은 1869년(고종 6)인 13세 때 감시(監試)에 응시하여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그 뒤 연상(蓮上) 안중섭(安重燮)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도 출입하였다. 이후 서울에 올라가 담녕(澹寧) 이건창(李建昌) 등과 교유하였다. 주위에서 과거에 응시할 것을 권했으나 사양하고 평생 경학을 연구하여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진사 김영철·정인철, 문중의 유영규·유장규 등과 교유하면서 후진 강학에 열중, 많은 문도를 길렀다. 회산(晦山) 유면규(柳冕圭) 역시 유준철의 문하생이다. 1918년 6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묘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금서유고(錦西遺稿)』가 있다. 1950년 한지석인본 6권 3책으로 발간된 『금서유고』에는 1949년 족질(族姪) 유영선(柳永善)이 쓴 서문과 1950년 조카 유윤선(柳潤善)이 쓴 발문이 실려 있다. 내용은 부(賦)와 작품 「군자왈덕(君子曰德)」 및 거울·담뱃대·화로·바둑·붓 등의 사물을 읊은 시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록에는 그의 행장(行狀) 등이 실려 있다. 유준철은 스승 안중섭의 시문집인 『연상집(蓮上集)』의 발문을 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