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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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濟南 |
영어음역 | Go Jenam |
이칭/별칭 | 복경(復京),인산(仁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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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 |
성별 | 남 |
생년 | 1887년 3월 1일 |
몰년 | 1909년 6월 30일 |
본관 | 장흥 |
[정의]
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개설]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복경(復京), 호는 인산(仁山)이다. 1887년 3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고제남은 족숙(族叔)인 고석진(高石鎭)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남달리 지용(智勇)이 뛰어났다고 한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7년 당시 19세의 나이로 김영백(金永伯) 부대의 좌익장(左翼將)으로 활동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동지 김화서(金和瑞)·노남회(魯南會) 등과 의병 200명을 이끌고 활동하였다. 당시 전라도의 여수·순천·담양·장성 등지를 행군하면서 각 지역에 「창의포고문(倡義布告文)」을 살포하고, 정읍에서 일본 헌병과 교전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1908년에는 흥덕(興德)과 소노령(小蘆嶺) 등지에서 일본군 병참소를 공격하여 장총 3정, 군도 5정, 탄환 등을 노획하였다. 1909년 6월 김영백·변순호(邊順浩)·이화일(李花日) 등 동지 7명과 함께 정읍군 소성면 두암방[현 정읍시 소성면 문당리]에서 일본군을 공격할 작전을 모의하던 중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 장성군 북이면의 헌병 분견소에서 총살당했다. 당시 나이 23세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6월 성내면 옥제리 입구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1980년 건국포장 애국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