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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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英求 |
영어음역 | Gang Yeongg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철 |
출생 | 192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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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 1950년 |
활동 | 1960년 |
특기 사항 | 1970년 |
몰년 | 1990년 |
추모 | 2007년 |
학교|수학지 |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 3-12 |
성격 | 의사 |
성별 | 남 |
본관 | 진주(晉州) |
대표 경력 | 김천시 체육회장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의사.
[가계]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강석준이고 형은 강중구(姜重求)이다. 특히 근현대 시기 진주 강씨 집안은 김천 지역에서 의사 집안으로 유명하다. 아버지와 형, 그리고 강영구(姜英求) 모두 의사로, 이들은 김천 지역에서 인술을 베푸는 집안으로 평판이 나 있었다. 형 강중구는 김천문화원장과 한국문화원연합회장을 지내면서 김천 문화의 장을 연 인물이다. 또한 현재 김천시 평화동에 있는 강외과의원은 강영구의 장남인 강승모가 개원, 시술하고 있으므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삼대가 김천에서 의술을 베풀고 있는 셈이다.
[활동 사항]
강영구는 1927년에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제29회로 김천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난 해 서울대학교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군의관[소령]으로 예편하였다. 1960년 김천에서 강외과를 개원하였다. 병원을 열어 환자들을 돌보는 것에도 성심성의를 다 했을 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이에 그의 형 강중구와 뜻을 같이하여 김천시 체육회장을 맡았다.
강영구는 당시 김천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체육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공설 운동장 건립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았다. 일제 강점기 때 김천 지역에는 주민들이 함께 체육 대회를 개최할 공간이 없었다. 일시적으로 남산공원에서 시민 체육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으며 1925년부터 김천시 모암동 일대에 유휴지, 잡종지를 운동장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950년 모암초등학교가 그 자리에 들어서자 운동장이 없는 시(市)가 되고 말았다. 이로써 각종 체육 행사는 시내 각 학교 운동장을 전전하면서 열 수밖에 없었으니, 공설 운동장 건립은 김천 지역의 숙원 사업이 되고 말았다. 그 뒤 구 가축시장 자리, 김천시 신음동 지금의 김천시청 앞 언덕 자리 등을 부지로 선정하여 공설 운동장 설립을 계획했지만 모두 실현을 보지 못하였다.
이런 실정에서 김천시 체육회장을 맡은 강영구와 김천시장을 비롯한 관계자와 『대구매일신문』 주재 기자 강석옥 등 여러 사람들의 협력으로 지금의 삼락벌 김천종합스포츠타운 자리에 잔디를 깐 운동장이 마련되었다. 또한 강영구는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을 맡아 송설학원의 위상을 높였으며, 김천로타리클럽 회장, 경상북도 교육위원회 교육의원 등을 지내면서 김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상훈과 추모]
1970년 체육 부문에서 김천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2007년 김천초등학교에서는 개교 60주년을 맞아 교정에 모교 사랑을 발휘한 강영구를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