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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품천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789
한자 知品川縣
영어음역 Jipumcheon-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757년연표보기
시행 삼국 시대
제정 삼국 시대
관할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정의]

삼국 시대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제57권 지 제11 지리 2 상주목 경산부(京山府)조에는 “지례현(知禮縣)은 원래 신라의 지품천현(知品川縣)인데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개령군의 관할 현으로 만들었다. 현종 9년에 본 부에 소속시켰으며 공양왕 2년에 감무를 두었는바 구성(龜城)이라고도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상주목 지례현조에는 “지품천현인데,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개령군의 영현을 삼았고, 현종 9년 무오에 경산부 임내(任內)에 붙였으며, 공양왕 2년 경오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본조에서 그대로 따랐다가, 태종 13년 계사에 예(例)를 따라 현감(縣監)으로 고쳤다. 별호(別號)는 구성이고, 월이곡(月伊谷)두의곡(頭衣谷) 2개의 부곡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 지례현에 “동쪽으로 성주(星州)의 경계까지 13리, 서쪽으로 전라도 무주현의 경계까지 38리, 남쪽으로 거창군(居昌郡)의 경계까지 46리, 북쪽으로 김산군(金山郡)의 경계까지 15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624리이다. 본래 신라의 지품천현이었는데, 경덕왕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개령군에 소속시켰다. 고려 현종 때에 경산부에 소속되었고, 공양왕 때에 감무를 두었으며 본조 태종 때에 현감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신라 시대에는 지품천현이라 불렸다. 757년(경덕왕 16) 지례현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어모현, 무풍현(茂豊縣), 김산현(金山縣)과 함께 개령군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경산부로 이속되었다. 1390년(공양왕 2)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하였고, 1413년(태종 13) 현감을 파견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 제도 개편[칙령 제98호 지방 제도 개정건]에 따라 지례군으로 승격하면서 대구부의 관할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성주군 증산면이 지례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지례군개령군과 함께 김산군에 편입되면서 김천군(金泉郡)이 되었다. 지례군 관할의 하현면·상현면·외중산면이 지례면으로, 외남면·상남면·하남면이 대덕면으로, 상서면·하서면이 부항면으로, 상북면·하북면이 석현면으로, 내증산면이 증산면으로 바뀌어 통합되면서 김천군 관할이 되었다. 1934년 석현면은 과곡면과 합해져 구성면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 7월 4일 법률 제32호 「지방자치법」에 의해 김천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시의 여타 지역인 금릉군에 속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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