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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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悰 |
영어음역 | Yi J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병우 |
활동 | 세종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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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김천시 다수동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전의(全義) |
대표 관직 | 정주목사 |
고려 후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할아버지는 밀직부사 이광익(李光翊)이고, 아버지는 고려 두문동 72현의 일인인 이사경(李思敬)이다. 이종은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승려 상부(尙孚)이다.
이종(李悰)은 밀직제학 장원(長源) 김도(金濤)의 문인이었다. 1377년(우왕 3) 십운시(十韻詩)에 1등 3명으로 급제하여 명운을 얻었다. 스승인 김도가 무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문인 10여 명은 형장의 문 밖에서 시신을 보호하였으나, 오직 이종만이 스승의 시신을 안고 시냇물에 들어가 피를 씻기고 자기의 옷을 벗어 입힌 후 상자에 싸고 머리를 망태기에 넣어 달아 메고 두 번 절하고 갔다고 한다. 이러한 행적을 본 사람들은 이종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후 고려의 국운이 쇠약해지고 나라가 어지러울 것을 보고 아버지 이사경을 따라 김산군 미곡면 구신리[현 김천시 다수동]에 은거하여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켰다. 1399년(정종 1) 제생원이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을 인간(印刊)할 때 적극 참여하여 공적을 세웠다. 이러한 사실은 권근(權近)의 『양촌집(陽村集)』에 실려 있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정주목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