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유서 깊은 마을 위촌리에 여러 가지 민담과 전설이 없을 리가 없다. 민담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추리 호랑이”다. 옛날에 아전이 한 사람 있었는데, 글을 잘했다. 고을 원님이 그 사실을 알고 “저녁 때 글을 좀 짓다가 가라.”고 지시했다. 아전이 저녁에 남아 글을 짓다가, 한 부분을 완성하고 보니 글의 기상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밤이 늦어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나섰는데 그...
위촌리의 문화유적으로는 앞서 민담에서 보았던 효자정문(孝子旌門)을 먼저 꼽을 수 있다. ‘효자학생이동규지려(孝子學生李東奎之閭)’라는 것이 정식 명칭인데, 위촌 1리 산 115번지 길가에 있는 효자각으로 이동규(성주이씨)가 아버지의 원한을 씻은 다음 나라에서 효자 정려를 내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독살당한 후 17년 동안 원한을 풀기 위해 노력하면서 상복을 입고 지낸 이동규...
조선시대의 효자. 이동규의 아버지 이선빈(李善彬)이 남의 묘터를 잡아준 일이 있었는데 이 묘터가 상가집 종인 개산(介山)의 아버지 묘와 가까워 개산(介山)이 이선빈에게 원한을 품고 독살하였다. 이동규는 급히 장사를 지내고 관가에 이 사실을 알려 살인 사건으로 재판을 하기에 이르렀다. 개산(介山)이 끝내 자기가 지은 죄를 부인하자 방백(方伯)과 수령(守令)들도 명확한 사실...
이동규(李東奎)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효자각. 이동규의 아버지 이선빈(李善彬)은 풍수에 조예가 매우 깊었다. 어느 해 한 상가(喪家)의 묘자리를 잡아 주었는데, 그 묘자리가 공교롭게도 그 상가의 종인 개산(介山)의 아버지 묘자리와 가까웠다. 그러자 개산(介山)은 이선빈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으며 이후 개산(介山)은 남몰래 이선빈을 독살하였다. 이동규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