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당
-
강릉 12향현, 조선시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충·효·예의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강릉의 대표적인 열두 명의 학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강릉을 빛낸 열두 명의 선비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100분의 선조들을 생각한다. 그 인물들이 노래에 나오는 대로의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 문성사는 율곡 이이의 시호에서 명명되었다. 문성사는 1976년 오죽헌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되었다. 문성사 자리에는 원래 어제각이 있었으나 문성사가 건립된 이후 가장 뒤쪽으로 이전되었다. 문성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콘크리트 구조 건물이다. 봉안된 영정은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렸으며,...
-
영해이씨(寧海李氏) 이성무(李成茂)·이선무(李善茂)·이춘무(李春茂)·이양무(李良茂) 등 4형제와 이당(李堂)·이민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효자각. 영해이씨의 효자각에는 6기의 비가 보존되어 있다. 6기의 비석은 이성무(李成茂)·이선무(李善茂)·이춘무(李春茂)·이양무(李良茂) 등 4명의 형제와 이당(李堂)과 이민 2명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비이다. 4형제는...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영해. 이연(李壖)과 형제 사이로 조선 전기의 효자 이양무(李良茂)의 후손이며, 이당(李堂)의 사촌 동생이다. 성품이 효성스러워 어머니가 병이 나자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흘려 넣어 어머니를 소생시켰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오래 고생하자 의관을 풀지 않고 밤낮으로 간호하기를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영해. 이당(李堂)과 형제로서 조선 전기의 효자 이양무(李良茂)의 후손이다.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한겨울에 꽁꽁 언 얼음을 깨고 목욕재계한 후 밤낮으로 7일 동안 울면서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열흘 남짓 되어 따라 죽었다. 부모를 극진히 섬기는 효심에서 나온 이같은 행위에 대해 모두들 슬퍼하였다고 한다 . 숙종 때 조정...
-
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영해. 자는 성시(聖始), 호는 눌재(訥齋). 아버지는 이장밀(李長密)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 호장(戶長) 최하(崔河)의 딸이다. 강릉 호가리(虎街里)[지금의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서 태어났다. 학문이 높고 효성이 지극하여 고을 사람들이 백원당(百原堂)이라 불렀다. 일찍이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하여 학문이 깊었고 문장도 뛰어났으나 가훈(家訓...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미상. 형은 이후(李垕)이고, 효자로 정려(旌閭)를 받은 이당(李堂)이 아우이다. 형 이후와 함께 문장에 뛰어나 일찍부터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만년에는 음풍농월로 세월을 보냈는데, 일찍이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이 “임영(臨瀛)에서 시율에 능한 사람은 오직 이학 한 사람뿐이다.”라고 하였다....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미상. 효자로 정려(旌閭)를 받은 이당(李堂)과 이학(李壆)의 형이다. 동생 이학과 함께 문장에 뛰어나 일찍부터 세상에 이름이 났다. 또한 과거시험의 폐단을 지적하고 스스로 앞장서서 바로잡을 것을 주장하였다....
-
충신과 효자·효부 그리고 열부·열녀의 총칭. 1. 충신 강릉에는 많은 충신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강릉 출신으로 나라와 향리를 위하여 헌신한 열두 명을 강릉향현사에 모셔놓고 그 뜻을 기리고 공로를 추모하고 있다.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을 비롯하여 눌재(訥齋) 이성무(李成茂), 수헌(睡軒) 최응현(崔應賢), 춘헌(春軒) 최수(崔洙), 괴당(槐堂) 김윤신(金潤身), 사휴당(四休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