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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바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318
한자 -
영어공식명칭 Seon Bawi
이칭/별칭 입암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추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비정 지역 선바위 - 충청남도 당진시 시곡동 지도보기
성격 자연 마을
관련 문헌 당진의 지명 유래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시곡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당진시 시곡동 사기장골 마을 입구에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던 선바위[立岩]가 예전에 서 있어서 선바위 마을, 입암동(立岩洞)이라 불렀다. 선바위는 일종의 거석 기념물이다. 원시 사회에서 자연석으로 성기를 닮은 이런 바위를 마을에 세우는 것은 생식, 생산을 뜻한다. 경계를 표시하면서도 신앙, 의식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반도의 거석문화는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과 입석(立石), 입암(立岩) 등으로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인간들의 인지가 미발달되었던 시대에는 자연의 위력을 빌려서 소원 성취를 빌던가, 촌락의 재해를 막던가, 국가의 안위를 비는 등 토속 신앙이 싹터서 그것이 원시 종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할 때에 신앙의 상징물, 즉 대상물을 무엇으로 하느냐가 문제인데 초기에는 형상이 있는 자연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마을에 선바위[立岩], 선돌[立石], 갓바위[笠岩], 괸돌[支石], 붙인 바위[付岩]가 있거나 남근석(男根石), 여근석(女根石) 등과 같이 성기 바위 등이 있으면 그것에서 유래하여 촌락 지명을 짓는 경우가 있다.

[형성 및 변천]

당진시 시곡동은 원래 당진군 동면 지역으로 감나무가 많아서 감골[시곡]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자은동, 동신촌리, 서신촌리, 상목리, 입암리, 상공리, 하공리를 병합하여 그대로 시곡리라 부르고, 옛 입암리는 강등되어 자연 마을인 입암, 즉 선바위 마을로 남게 되었다. 시곡동 사기장골에 있던 선바위[입암]는 길이가 약 2m, 폭이 약 1m 정도의 화강암 자연암석으로 처음에는 서 있었으나 나중에 길가 옆 도로가에 누워 있었다. 예산~당진 간 국도 32호선의 확포장 시 땅속에 묻혔다고 한다. 입암은 입석이 인공적인 데 비해서, 자연적인 면이 더 강한 것이며, 커다란 자연돌을 마을 입구에 세우거나 혹은 자연적으로 거석이 동구에 있을 때 이름을 붙이는데, 대개 촌락의 입구에 재해 방지, 잡귀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연천군 전곡읍, 태안군 안면읍, 논산시 두마면, 예천군 개포면, 남원시 대강면 등에 ‘입암리’나 ‘입암동’ 촌락 지명이 있다. 남녀의 성기와 흡사하여 남근석, 여근석이라 불린다. 풍요석(豊饒石)은 아낙들의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는 곳인데, 원시 사회에서 성(性)은 생, 생식, 생산을 뜻하는 것으로 풍요 다산(豐饒多産)을 의미한다.

입석은 인공적인 뜻이 강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어떤 한사람의 공적 사항을 기록한 비석, 마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비석, 경계석, 태양 거석문화의 하나로 신앙 의식적으로 세운 비석 등으로 이런 입석이 있으면 마을 지명에 입석 자가 들어가는 사례가 많다. 중원군 가금면 용전리에는 ‘입석’이란 자연 마을 지명이 있다. 특히 용전리 입석 마을에는 국보 제205호인 충주 고구려비가 사십여 년 전에 민가의 빨랫돌로 사용되다가 발견됨으로써 촌락 지명의 역사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기도 했다. 이 밖에 공주시 유구면 등에는 입석동이, 부안군 보안면에는 상·하 입석리 등의 지명이 있다.

입암(笠岩)은 입암(立岩)의 위쪽이 더 크고 퉁퉁하거나 갓(笠) 모양으로 바위를 얹어 놓은 경우를 말하는데, 이 자연석에 불상을 조각하여 종교화한 것이 많다. 대구 근처 팔공산에는 ‘갓바위 부처’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입시철이 되면 기도를 하러 끊임없이 몰려오고 있다.

부암(付岩)은 주술적인 민간 신앙이 깊숙이 들어있는 바위로 남아를 낳는 것을 소원했던 여인이나 가정에서 영검하다고 알려진 큰 바위에 작은 돌멩이를 비벼서 득남할 것을 기도하다가 이 돌멩이가 바위에 붙게 되면 틀림없이 아들을 낳게 된다는 바위이다. 서울 지하문 밖의 부암동(付岩洞)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지석(支石)은 신석기 시대부터 금석 병용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거석 묘석으로 남방식과 북방식이 있다. 당진시 당진동 읍내 안식 교회 뒤와 합덕읍 합덕리 꽃동산에 지석이 있다. 이런 지석이 있는 곳에는 촌락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하여 지석, 지석리, 지석동, 고인석[고인돌의 음훈차] 등이 붙는 경우가 많다. 예산군 금마면 팔괘리에는 괴인돌 마을이, 예산군 응봉면, 서천군 종천리 등에는 지석리가,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에는 고인석(高仁石) 부락 지명이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당진시 시곡동[옛 당진읍 시곡리 사기장골] 남쪽에 있는 옛 당진군 동면 입암리 지역이다. 예전에 선바위가 있어서 ‘입암동’이라고도 하였다. 시곡 주유소 근처 국도 양변에 있는 마을이다. 국도 32호선이 확장되기 전까지 황백색의 선바위가 도로 옆에 누워 있었다.

[관련 기록]

오치 다다시치[越智唯七]의 『신구 대조 조선 전도 부군 면리동 명칭 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1917)에 의하면 '당진군 이배면 시곡리(唐津郡螭背面枾谷里)'는 백은동, 시곡리, 동신촌리, 서신촌리, 상목리, 입석리(立岩里), 상공리, 하공리 등이 통폐합되어 생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8세기 후반 『호구총수(戶口總數)』 당진현 동면 편에 보면, 원당리(元堂里)[현재의 원당동], 입암리(立巖里)[현재의 입암 마을], 율사동(栗寺洞)[현재의 밤절 마을] 등의 지명이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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