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양 학교
-
당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로서의 개신교. 기독교(基督敎)[개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교훈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로서, 천지만물을 창조한 유일신을 섬기고,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다. 당진 지역에는 1895년 면천 감리교회 창립과 1905년 삼화 감리교회 창립을 시작으로 지역 내에 기독교 대한 감리회 교단 소속 교회...
-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 조선은 1876년 일본과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 조약]를 체결하고 문호를 개방하였다. 당시 조선의 최대 과제는 지배층의 강력한 개혁과 피지배층인 농민층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배층의 개혁은 성리학을 앞세운 전통적 양반층과의 갈등을 통합하지 못하였고, 청과 일본의 침략적 간섭을 배제하지 못하였다. 지배층의 혼돈이 가중되는...
-
충청남도 당진 지역 교육의 발전 과정과 현황. 근대 이전의 당진 교육에 대한 내용은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거의 살필 수가 없다. 다만 관학으로서 향교가 두 곳, 서원이 한 곳[동악 서원]이 있었으며 그 외 서당이 여러 곳에 있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호우 지방[충남 지방]에는 공주와 홍성을 중심으로 향교가 34개 있었는데 그중 당진에는 당진과 면...
-
1876년 개항 이후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진행된 근대적 교육. 개항 이후 근대화 물결의 도래와 함께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도 신학(新學)이 수용되었다. 비록 충청도의 서북단의 벽지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3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크고 작은 포구가 형성되었고 이곳을 통하여 신문물이 전래되었다. 근대 교육의 수용은 여러 형태의 학교를 곳곳에 설립하는 것으로 시작하였...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일어난 3·1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1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침탈당한 주권 회복과 민족 생존권 확보를 위해 항쟁한 우리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다. 또한 3·1 운동은 신분과 직업, 종교의 구별 없이 도시와 농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이 참여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내재적 역량이 결집된 거족적인 민족 운동이었다. 19...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일어난 3·1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1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침탈당한 주권 회복과 민족 생존권 확보를 위해 항쟁한 우리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다. 또한 3·1 운동은 신분과 직업, 종교의 구별 없이 도시와 농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이 참여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내재적 역량이 결집된 거족적인 민족 운동이었다. 19...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소속 교회. 면천감리교회는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지역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면천감리교회는 1895년 6월 18일부터 이듬해 10월 14일까지 1년 4개월간 면천 군수로 재임한 유제(劉濟)에 의하여 재임 기간 중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천감리교회는 2006년...
-
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 충청남도 당진시는 한반도의 중서부, 충남의 서북단에 위치하며 내포(內浦)의 중심 지역이다. 삽교천을 중심으로 펼쳐진 비옥한 예당 평야를 바탕으로 질 좋은 쌀이 생산되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리아스식 해안은 주민들에게 풍부한 수산물을 제공하였다. 이 때문에 당진 지역 사람들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
-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8월 29일 대한 제국의 국권을 강제로 빼앗아 식민지화하고, 민족 말살 정책 및 식민지 수탈 정책을 추진하였다. 충청남도 당진 지역은 충남의 서북단에 위치한 외진 고을이었다. 철도와 도로 확충이 미흡하여 육상 교통이 불편하였고 각종 정보 교류와 물자 보급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