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
충청남도 당진시 삽교천을 비롯한 서쪽 내포 지역에 발달한 문화. ‘내포(內浦)’라는 용어는 『고려사』, 『조선 왕조 실록』, 일제 강점기 관변 자료에 폭넓게 나타난다. 사전적 의미로 '안개'로 많이 해석되고 있는데, 그보다는 삽교천이 해면 간척되기 이전에 에스트리[나팔상 삼각강]로 육지 안쪽으로 만처럼 크게 들어와 위치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추측된다. ‘내포’는 강원도 강...
-
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로에 있는, 낙농업을 업으로 하는 조합원들이 출자하고 경영에 참여하는 협동조합. 당진 낙농축산업협동조합은 낙농업을 경영하는 조합원에게 필요한 기술, 자금, 자재 및 정보 등을 제공하고, 조합원이 생산한 축산물의 판로 확대 및 유통 원활화를 도모하여 조합원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당진 낙농축...
-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 초창기의 방언 연구에서는 충청도 지역어를 경기 방언권으로 예속시켰으나 지금은 충청도 지역을 차령산맥을 경계로 하여 세 개의 방언권으로 선정한다. 제1방언권은 아산·천안 지역이며, 제2방언권은 서산·당진·홍성·예산 지역이다. 제3방언권은 서천·보령·부여·청양·공주·연기·논산·대덕·금산 지역이다. 당진 지역은 제2방언권에 속한다....
-
충청남도의 최북서부에 위치한 21세기 문화 복지 도시. 당진시는 명품 자족 도시 건설을 위한 시민 헌장을 2012년에 제정하여 실천하고 있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 기름진 땅, 하늘이 내리고 조상이 물려주신 우리 당진은 오랜 역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모든 문물이 들어오고 나간 큰 나루로 이름이 높았고 내포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해안 시대의 주역으로서...
-
충청남도 당진시 전역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와 볼 만한 장소. 충청남도 당진시는 내포 지역에 속해 있다. 내포 자연환경의 가장 큰 특색은 비산비야(非山非野)이다. 산다운 산이 없고 들만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뜻이다. 당진시는 삼면이 바다였으며 특히 리아스식 해안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삽교천 방조제와 대호 방조제, 석문 방조제가 축조되고 송산...
-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어업 활동을 하거나 상업적인 교역 활동을 하는 곳과 배가 대안 지역으로 건너다니는 일정한 곳. 근대 교통 기관이 도입되기 전에는 육로보다는 수로를 더 많이 이용했다, 이러한 내륙 수로에는 나루가 있어서 강 양쪽 지역을 연결시켜 준다. 나루는 하천가나 좁은 바다 목의 배가 다니는 일정한 곳을 말한다. 나루는 도진(渡津), 진도(津渡), 진두(津頭), 도...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개되었던 항일 운동. 당진의 독립운동은 대한 제국의 국권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상실되어 가던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내내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던 당진 사람들의 항일 투쟁을 지칭한다. 당진 사람들은 을사늑약을 계기로 우리의 외교권이 피탈됨을 국권 상실로 인식하고 본격적인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의병...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서 봉기한 구한말 항일 의병. 대한 제국 시기 충청남도 면천군에서 일제 침략에 항쟁하는 의병이 크게 일어났다. 이들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계기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이 피탈된 데 항의하여 거병하였다. 또한 1907년 대한 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더욱 치열하게 항쟁하였다. 대표적인 면천 의병장으로는 최구현(崔九鉉)·이만식(李晩植)·도중삼...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복운리에서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내기리를 연결하는 서해안 고속 도로의 다리. 서해대교는 2001년 12월 21일 개통한 서해안 고속 도로[고속 국도 제15호] 구간 중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복운리에서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내기리 구간을 연결한 해상 대교(大橋)이다. 서해대교는 서해안 고속 도로에 건설된 827개의 다리 중에서 가장...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복운리에서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내기리를 연결하는 서해안 고속 도로의 다리. 서해대교는 2001년 12월 21일 개통한 서해안 고속 도로[고속 국도 제15호] 구간 중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복운리에서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내기리 구간을 연결한 해상 대교(大橋)이다. 서해대교는 서해안 고속 도로에 건설된 827개의 다리 중에서 가장...
-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중심으로 생각이나 느낌을 말 또는 글로 전달하는 수단이나 체계. 충청남도 방언에 대해 일제 강점기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와 고노 로쿠로[河野六郞] 등은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경기 혹은 중선 방언(中鮮方言)의 하위 방언으로만 설정했다. 하지만 1963년과 1965년에 도수희와 1972년에 김형규는 충청도 방언이 독자...
-
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 충청남도 당진시는 한반도의 중서부, 충남의 서북단에 위치하며 내포(內浦)의 중심 지역이다. 삽교천을 중심으로 펼쳐진 비옥한 예당 평야를 바탕으로 질 좋은 쌀이 생산되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리아스식 해안은 주민들에게 풍부한 수산물을 제공하였다. 이 때문에 당진 지역 사람들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
-
충청남도 당진시 출신의 항일의병장. 정주원(鄭周源)[1870~1925]은 1907년 군대 해산 후 일제 침략에 항쟁한 항일 의병장이다. 충청도와 경기도를 통합하는 13진도 총대장에 올랐고, 수백 명에 달하는 의병을 지휘하였다. 정주원은 치열한 항쟁 중이던 1908년 대호지면 적서리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복역 후 송악면 가학리에서 살다가 1925년에 사망...
-
충청남도 당진시 출신의 항일의병장. 정주원(鄭周源)[1870~1925]은 1907년 군대 해산 후 일제 침략에 항쟁한 항일 의병장이다. 충청도와 경기도를 통합하는 13진도 총대장에 올랐고, 수백 명에 달하는 의병을 지휘하였다. 정주원은 치열한 항쟁 중이던 1908년 대호지면 적서리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복역 후 송악면 가학리에서 살다가 1925년에 사망...
-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철기 문화. 청동기의 전래에 뒤이어 우리나라에 철기 문화가 전래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였다. 특히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업이 발달하여 경제 기반이 확대되었다. 철제 무기와 철제 연모를 씀에 따라 그때까지 사용해 오던 청동기는 의식용 도구로 변하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청동기 문화도 더욱 발달하여 한반도 안에서 독자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청동기...
-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배가 드나드는 해안이나 하천의 어귀. 당진시는 북쪽으로는 아산만을, 동쪽으로는 삽교천을, 서쪽으로는 대호만을 접하고 있다. 아산만은 내륙 깊숙이 만입(灣入)되어 있으며 삽교천과 안성천이 만나는 하류에 위치하여, 하천에 의한 수로(水路)와 바다를 이용한 해로(海路) 모두 편리한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또 충적 평야 지대 한가운데를 삽교천...
-
1905년부터1910년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발발하거나 활동한 항일 의병. 한말 항일 의병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에 우리의 국권을 지키기 위해 무력 항쟁한 민족 운동을 말한다. 갑오년[1894] 일본군의 경복궁 무력 점령에서 비롯된 항일 의병은 을미년[1895] 명성 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의 실시를 계기로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의병은 양반 유생들이 주도하였고, 농...
-
1900~1906년경 충청남도 당진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중의 무장 투쟁. 조선 후기 이래 농민층이 분화되면서 많은 몰락 농민이 토지로부터 이탈되었고, 그중 일부는 화적 집단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1900년경 충청도 내포 지방인 당진 지역에도 다수 출몰하면서 활빈당(活貧黨)을 자칭하였다. 이들은 양반과 부호를 협박하였고 5일장과 관아를 습격하면서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종종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