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이 시조이고 최기선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경주최씨(慶州崔씨)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매곡리 탄우 마을에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당진 입향조는 최치원의 24세손 최기선(崔己宣)[?~?]이다. 최기선은 18세기 초에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에 거주하다가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입향하였다. 그 후 25세손 최차봉(崔次奉)이 송산면 매곡리에...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개되었던 항일 운동. 당진의 독립운동은 대한 제국의 국권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상실되어 가던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내내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던 당진 사람들의 항일 투쟁을 지칭한다. 당진 사람들은 을사늑약을 계기로 우리의 외교권이 피탈됨을 국권 상실로 인식하고 본격적인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의병...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서 봉기한 구한말 항일 의병. 대한 제국 시기 충청남도 면천군에서 일제 침략에 항쟁하는 의병이 크게 일어났다. 이들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계기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이 피탈된 데 항의하여 거병하였다. 또한 1907년 대한 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더욱 치열하게 항쟁하였다. 대표적인 면천 의병장으로는 최구현(崔九鉉)·이만식(李晩植)·도중삼...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를 근거지로 1906년에서 1908년 사이에 활동한 항일 의병. 의병 항쟁은 1895년 명성 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의 공포로 시작되었고,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면서 다시 재연되었다. 그리고 1907년 광무 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 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면서 의병 전쟁으로 격화되었다. 당진시 석문면에 있는 소난지도는 당진 지역 의병...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렸던 시장. 『만기요람(萬機要覽)』 각전 조(各廛條)에 “행상이 모여서 교역하고는 물러가는 것을 장(場)이라고 이른다.”라고 하였는데, 이 장(場)이 바로 장시(場市)다. 장시는 15세기 말 전라도 지역에서 나타난 이래, 조선 후기에 들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즉, 1830년대 시장을 정리하고 있는 『임원경...
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항일 의병장. 최구현(崔九鉉)[1866~1906]은 1887년 무과에 급제하고 군부 참서관을 역임하던 중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하였다. 그는 당진시 송악면 기지시리에 창의도소를 설치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의병을 이끌고 면천읍성을 공격하였고, 석문면 소난지도를 근거지로 활발한 항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화력의...
1905년부터1910년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발발하거나 활동한 항일 의병. 한말 항일 의병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에 우리의 국권을 지키기 위해 무력 항쟁한 민족 운동을 말한다. 갑오년[1894] 일본군의 경복궁 무력 점령에서 비롯된 항일 의병은 을미년[1895] 명성 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의 실시를 계기로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의병은 양반 유생들이 주도하였고, 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