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0월 대구에서 노동자와 학생, 시민이 미군정의 실정 개선을 요구하며 일으킨 항쟁. 10월항쟁은 1946년 대구에서 9월총파업의 와중에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이 미군정의 실정 개선을 요구하며 일으킨 광복 후 최초 항쟁이다.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과제로 안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1961년 2월 28일 개최된 2·28민주운동 1주년 기념식. 2·28민주운동은 대구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여 자발적, 민주적으로 일으킨 민주화운동이다. 1960년 2월 28일 당국은 야당의 선거 유세장에 가지 못하도록 일요일인데도 대구 시내 모든 초중고교생에게 등교를 강요하였다. 대구고등학교와 경북고등학교·경북여자고등학교 등 대구 지역 8개 고등학...
1948년 대구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일으킨 파업 투쟁. 2·7구국투쟁(二·七救國鬪爭)[일명 2·7총파업 또는 2·7폭동]은 1948년 1월 8일 유엔조선위원단이 유엔 감시 하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통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하여 서울에 오자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일으킨 파업 투쟁이다. 1948년 2월 5일 군정장관 아서 러취(Archer L. Lerch)가...
1947년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북위원회가 개최한 정부수립 촉진대회. 대구 7·27인민대회를 개최한 민주주의민족전선은 인민 대회의 의미에 대하여 ‘조국 흥망의 결정적 사명을 가지는 것’이라고 중요하게 판단하였다. 민주주의민족전선은 모스크바삼상회의가 갖는 역사적 의의에 대하여 첫째, 조국 재건의 유일한 옳은 노선, 둘째, 조선의 자주독립은 민주주의적 제 과업의 완전한 실천을 통하여 실현...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영남체육회 산하의 야구 단체. 대구야구연맹은 해방 이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모임과 회합이 가능하여지자 본격적으로 스포츠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구성하게 되었다. 스포츠 열풍으로 학교마다 창단된 야구부가 주를 이루었으며, 남전·금련·조방·조운·전매국 등 5개의 직장 팀도 소속되었다....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 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이 1946년부터 1954년까지 일기 형식으로 쓴 회고록. 『술회(述懷)』는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 관료 박중양(朴重陽)[1874~1959]이 1954년부터 1954년까지 일기 형식으로 쓴 회고록이다. 박중양은 경기도 양주 출신이며, 1906년 경북관찰사 서리 겸 대구군수로 임명되어 대구에서 생활하기 시작하였다. 박중양은 대구읍성(大...
광복 후 대구에서 결성된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의 경북 지부. 전국농민조합경북도연맹은 광복 후 대구에서 농민의 이익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대구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 조직. 주한 미군(駐韓 美軍)은 해방 직후 군정기부터 오랫동안 한국에 주둔하여 왔다. 모스크바삼상회의의 결과로 남한 군정을 실시하고, 6·25전쟁에는 유엔의 이름으로 공산군을 격퇴하기 위하여 주둔하였다. 정전협정 이후부터 현재까지 주한 미군은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남한에 주둔하고 있다. 그리하여 미국은 해외 파견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