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코발트 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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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8월부터 1961년 5월까지 진행된 경북피학살자유족회의 6·25전쟁 전후 대구 지역 피학살자 유해 발굴 사업. 경북피학살자유족회(慶北被虐殺者遺族會)는 6·25전쟁 전후 대구 지역에서 국가 권력에 의하여 희생된 피학살자의 유해 발굴을 주요 사업으로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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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6월 대구 지역에서 국민 보도 연맹 사건과 한국 전쟁 전후 양민 학살 사건의 경상북도 희생자 유가족들이 결성한 단체. 경북피학살자유족회는 4·19 혁명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6·25 전쟁 전후 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의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 회복, 유가족에 대한 배보상 등을 목표로 결성되었다. 긴급한 주요 사업으로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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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전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신동고개의 달성1구 광산에서 벌어진 집단학살 사건. 6·25전쟁 전후 달성군 가창면 신동고개[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달성1구 광산에서 우익 반공 단체와 국가권력에 의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 달성1구 광산학살 사건(達城一區鑛山虐殺事件)은 4·19혁명 직후인 1960년 구성된 양민학살 국회특별조사반 경북반의 실지 조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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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발생한 양민 학살 사건. 한국 전쟁 중 남한 지역에서 진행된 양민 학살은 국군 및 미군, 인민군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남한에 의한 양민 학살은 인민군이 점령하였던 지역, 빨치산 근거지 일대, 전쟁 직후 비점령 지역 등에서 최소한의 법적인 심리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 1949년 6월 5일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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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전후 달성군에서 자행된 양민 학살 현장에 대해 조사·발굴한 사건. 한국 전쟁 전후 달성군에서 자행된 양민 학살은 사형 선고라는 법적인 근거 없이 국가 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에 따라 양민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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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전후 대구형무소 수감자들이 국가 권력에 의하여 학살당한 사건. 6·25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6월 당시 대구형무소 수감자 규모는 8,026명 정도였다. 당시 대구형무소 수감자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구형무소 수감자의 3분의 2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상범들이었다. 대구형무소의 사상범은 10월 항쟁, 대구 6연대 사건, 국민보도연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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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전후 대구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과 1960년 6월 결성된 경북피학살자유족회의 활동. 6·25전쟁 중 남한 지역에서 진행된 민간인 학살은 국군 및 미군, 인민군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남한 지역 민간인 학살은 인민군 점령 지역, 빨치산 근거지 일원, 전쟁 직후 인민군 미점령 지역 등지에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대구는 인민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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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구성된 6·25전쟁 전후 대구·경상북도 지역 양민 집단학살 사건 조사를 위한 국회 특별 조사반. 대구·경상북도 지역에서의 양민 집단학살 사건은 6·25전쟁 이전에는 우익 반공 단체인 호림부대에 의하여 달성1구 광산학살 사건이 자행되었다. 6·25전쟁 직후에는 달성1구와 가창 그리고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국가권력에 의하여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기결수와 미결수 등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