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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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제작된 『1872년지방지도』 중 경상도 칠곡도호부의 지도. 『1872년지방지도(1872年地方地圖)』「칠곡지도(㓒谷地圖)」는 1872년(고종 9) 칠곡도호부에서 제작하여 경상감영(慶尙監營)에서 수합한 지도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지방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지방 지도 제작 사업을 추진하면서 「칠곡지도」가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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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2월 28일 개최된 2·28민주운동 1주년 기념식. 2·28민주운동은 대구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여 자발적, 민주적으로 일으킨 민주화운동이다. 1960년 2월 28일 당국은 야당의 선거 유세장에 가지 못하도록 일요일인데도 대구 시내 모든 초중고교생에게 등교를 강요하였다. 대구고등학교와 경북고등학교·경북여자고등학교 등 대구 지역 8개 고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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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2월 대구에서 개최된 2·28민주운동 1주년 기념 학생 예술제.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자유당의 장기 집권과 이승만 독재정권의 불의와 부패에 항거하여 대구 지역 고등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자발적, 민주적으로 일으킨 민주화운동이다.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이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의와 부정을 저지르자 대구 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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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부터 1961년2월까지 있었던 2·28민주운동의 원인인 일요 등교 지시의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진상 조사. 1960년 2월 28일 이승만 정권은 야당의 선거 유세장에 가지 못하도록 일요일인데도 대구 시내 모든 초중고교생에게 등교를 강요하였다. 대구 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은 당국의 부당한 일요 등교 명령에 항거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천하자’, ‘학생들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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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대구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일으킨 파업 투쟁. 2·7구국투쟁(二·七救國鬪爭)[일명 2·7총파업 또는 2·7폭동]은 1948년 1월 8일 유엔조선위원단이 유엔 감시 하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통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하여 서울에 오자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일으킨 파업 투쟁이다. 1948년 2월 5일 군정장관 아서 러취(Archer L. Lerch)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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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조선시대의 학자인 한강 정구와 낙재 서사원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강학소. 이락서당(伊洛書堂)은 조선시대 정조 때 대구, 달성, 칠곡 등 인근 9문중의 선현들이 금호강(琴湖江)과 낙동강(洛東江)의 합수지인 강창(江倉)을 택하여 삼가헌(三可軒) 박성수(朴聖洙)가 1765년(영조 6) 9월에 착공하여 1766년 봄에 준공하였다. 한강(寒岡) 정구(鄭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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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3월 1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개최한 통일 궐기대회. 3·1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는 3·1절 제42주년을 맞아 통일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환기하고 대구 시민의 통일 의식을 고양할 목적으로 민족통일경북도연맹이 개최한 통일 궐기 대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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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일제는 민족 동화 정책을 기초로 해서 한국을 식민 지배하였다. 1910년대 일제는 헌병 경찰 제도를 통한 억압적인 무단 통치를 실시하였다. 또한 일제는 토지 조사 사업과 회사령을 실시하여 조선의 경제와 농민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특히, 토지 조사 사업은 농민의 토지 소유를 폭압적으로 소멸시킴으로써 소작 조건을 악화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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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하리에서 3대에 걸쳐 70여 년 동안 지속해 온 현풍 곰탕의 원조 식당. 현풍 곰탕은 해주 곰탕, 나주 곰탕과 함께 전국의 삼대 곰탕으로 알려져 있다. 현풍 곰탕의 원조집은 1940년대에 조그만 밥집에서 시작하여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와 중국, 미국 등의 해외에도 진출한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점 가운데 하나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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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가 주도한 24시간 시한부 총파업. 1947년에 접어든 후에도 남한의 사회경제 정세는 호전되지 않아 쌀 부족으로 인한 기근과 실업문제 등이 전년도 못지 않게 심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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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대구광역시에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하여 설립된 단체.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과 함께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이라고도 하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 인권탄압 사례로 꼽힌다. 1974년 4월 25일 중앙정보부는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를 조직하고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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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전개된 6·25전쟁. 6·25전쟁(六·二五戰爭)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발발하여 1953년 7월 27일 정전(停戰) 및 정화(停火)에 관한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진행된 전쟁으로 우리 민족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다. 6·25전쟁은 500만 명 이상의 인명 피해와 막대한 물적 피해를 낳은 전쟁이며, 유엔[UN]과 중국 공산군의 개입으로 세계 전쟁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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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화물중계역. 가천역(佳川驛)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경부선과 대구선의 화물 전용 철도역이며, 대구선의 기점이다. 대구선 이설로 인하여 분기역으로 신설되었다. 대구선은 가천역부터 영천역까지 모두 지상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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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간경리 일대에 형성된 평야. 낙동강 좌안(左岸)에 넓게 펼쳐진 충적 평야인 간경들은 달성군 옥포읍 간경리 일대를 크게 곡류하는 낙동강의 범람으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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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의 한 교파.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영국국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신학자이며 사회운동가이다. 영국국교회 목사였던 아버지 새뮤얼 웨슬리의 교구에서 장로교 목사로 안수를 받고 사역한 후 1729년 옥스퍼드로 돌아와 신성회[Holy Club]를 지도하였다. 웨슬리는 아메리카 식민지 조지아로 건너가 2년 동안 선교를 하였지만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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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본사를 두고 설립되었던 주식회사 갑을 중심의 면방·섬유 중심 기업집단. 갑을그룹의 창업자 박재갑은 1951년 봄 대구 서문시장에서 인평직물 20필을 사업 밑천으로 신한상회라는 포목상을 열었다. 4년 동안 포목상을 하면서 자본을 축적한 박재갑은 1956년 부산에 있는 신흥직물이 경영 부실로 공장을 내놓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자카드직조기 12대와 평직기 12대를 구입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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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강신규(姜信圭)[?~?]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상주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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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강영주(姜永周)[?~?]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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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여성운동가. 강향란(姜香蘭)[1900~?]은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여성 최초로 단발을 실시하여 사회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근우회(槿友會) 경성지회 설립에 참여하는 등 여성해방운동과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본명은 강해선(姜海先)이며, 강석자(姜石子)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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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 개신교는 종교개혁 이후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된 기독교 교파를 두루 일컫는 말이다. 서기 1세기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바탕으로 『신약성경』을 저술하였다. 개신교인은 성서를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임과 부활, 승천, 재림, 심판을 믿고, 하나님의 인류 구원에 대하여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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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가톨릭을 구교(舊敎)라고 하는 데 대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를 일컫는 말로, 신교(新敎)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개신교는 1885년(고종 22)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와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 목사에 의해 정식으로 선교 사업이 시작됨으로써 처음으로 전래되었다.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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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 일대에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분리된 복음주의 성향의 기독교 교파들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개신교의 주요 교리는 서기 1세기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이 『신약 성경』을 구성하는 복음서 네 권과 서간[바울과 그 제자들이 각 교회 공동체로 보낸 편지] 속에 기록한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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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가수 김광석. 사람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 남겨진 노래는 길을 만든다. 한 가수의 노래와 모습, 말들을 기리며 만들어진 길에는 해마다 150만 명이 찾는다.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의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가수 김광석(金光石)[1964~1996]을 그리워하는 곳이자, 김광석 팬들의 흔적을 그리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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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토목, 건축 기타 이와 관련된 공사를 시행하는 산업. 대구 지역 근대 건설의 특징은 전통 기술의 개량이나 접목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원의 기술과 자재 및 모양이었다. 대구 최초의 근대 건물은 1901년 대신동 계성초등학교 자리에 세워진 지하 1층, 지상 3층 크기의 선교사 아담스의 주택이다. 공공건축으로서는 1902년 계산성당이 최초이다. 대구에 등장한 최초의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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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전투에서 고려 태조 왕건과 싸워 승리한 후백제의 시조. 견훤은 후백제를 세워 통일신라, 후고구려와 함께 후삼국 시대를 열었던 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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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9월 대구매일신문사 기자가 조직한 민주화운동 단체. 1969년 3선개헌(三選改憲) 이후 장기 집권을 표면화한 박정희 정부가 대중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을 높이면서 민중을 각성시키고 민중 역량을 육성하여 대중운동을 이끌고 나갈 지도부의 건설이 필요하였다. 경락연구회(經絡硏究會)는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이끌어 갈 간부 양성과 지도부의 필요성에 의하여 결성되었다. 한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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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를 거쳐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고속국도. 경부고속도로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을 기점, 서울특별시 서초구 원지동을 종점으로 하는 고속국도 제1호선이다. 1968년 개통된 서울~인천 간 경인고속도로에 이어 한국에서는 두 번째로 건설된 고속도로이며 총연장은 415.42㎞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구간에서는 숙천동과 불로동 사이를 통과하며, 동구 구간의 연장은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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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대구역과 대구역을 경유하여 서울특별시 서울역과 부산광역시 부산역을 잇는 간선철도. 경부선은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를 연결하면서 대구광역시를 경유하는 철도 노선이다. 1904년 12월 27일 전 구간 공사 준공 후 1905년 1월 1일 전 구간을 개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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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대구역을 거쳐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철도.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역을 경유하여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울역이나 강남구의 수서역에서 부산광역시 동구 부산역을 잇는 코레일(KORAIL)의 고속철도 노선이다. 총연장은 423.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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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를 거쳐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철도. 경부선은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를 연결하고 대전광역시, 대구광역시를 경유하는 한국 철도의 중추 간선노선이다. 1899년 개통된 경인선에 이어 한국에서는 두 번째로 건설된 철도로, 총 연장은 441.7㎞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구간에서는 신천동과 효목동 사이를 통과하며, 동구 구간의 연장은 약 3.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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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전통적인 교통로를 대체한 근대 문명의 상징 경부선과 대구역. “차마다 모두 바퀴가 있어 앞차에 화륜이 한 번 구르면 여러 차의 바퀴가 따라서 모두 구르게 되니 우뢰와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과 비처럼 날뛰었다. 한 시간에 삼사백 리를 달린다고 하는데 차체는 안온해 조금도 요동하지 않으며 다만 좌우에 산천, 초목, 가옥, 인물이 보이기는 하나 앞에 번쩍 뒤에 번쩍하므로 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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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2월 18일 대구와 경북의 대중운동 단체 대표들이 대구·경북 지역 노동·농민운동의 확대 방안을 결정한 대회. 1925년 1월 30일 대구에서 대구의 대구노동공제회, 정오회, 용진단 등과 안동의 풍산소작인회와 화성회 등 북풍회와 화요회 계열의 사회운동 단체들이 회합하여 경북노농운동자간친회 개최를 논의하고, 1925년 2월 18일 안동에서 경북노농운동자간친회를 개최하기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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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신 운동을 전개하던 대구의 경북대학교 학생운동권을 민주청년학생총연맹에 연루시켜 긴급조치 제4호 위반으로 구속한 사건. 이른바 경북대학교 민청학련 사건은 1973년 11월 5일과 1974년 3월 21일의 반유신 시위와 관련이 있다. 경북대학교 반유신 시위는 이념 서클 한국풍속연구회와 한국풍속연구회 전신 서클인 정진회 회원 정화영[정치학과 67] 등이 준비하였다. 197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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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2월 22일 경상북도 상주에서 대구·경북의 서울계 사회운동단체들이 사회운동 확대와 세력 확장을 위하여 개최한 대회. 1924년 12월 28일 경상북도 예천(醴泉)에서 영주, 안동, 상주 등지의 사회운동 단체들이 회의를 열고 1925년 2월 22일 경상북도 상주에서 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를 열기로 결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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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대구에서 발족하였던 종합대학 설립 추진 단체. 경북종합대학기성회(慶北綜合大學期成會)는 광복 후 교육 재건의 중요성을 절감한 대구의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와 지역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하여 종합대학을 설립할 목적으로 발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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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반기에 대구의 송두환과 최윤동이 각각 벌인 독립운동 군자금 확보 사건. 경북중대사건은 1923년 11월 최윤동(崔允東)과 이수영(李遂榮)이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일경에게 체포된 것을 계기로 발생한 사건이다. 1920년 송두환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 자금 마련 운동에 덧붙여진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 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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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경상북도 지역 청년단체들의 연합 조직. 경북청년연맹(慶北靑年聯盟)은 1928년 1월 열린 경북기자대회를 활용하여 대구와 경상북도 각 부·군 단위의 청년 동맹들이 연합하여 중앙 집권적 도 단위 단체로 결성한 청년단체였다. 경북청년연맹은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 청년운동의 지도 기관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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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7월 31일 대구은행과 경남은행의 합병을 통하여 설립된 일반은행. 경상합동은행은 경상남북도의 대표적 한국인 은행인 대구은행과 경남은행이 은행의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합병한 일반은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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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2월 4일 대구에 경상감영이 설치된 사건. 조선 전기 경상감영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에 있었다. 경상도는 면적이 넓어 낙동강을 중심으로 좌도(左道)와 우도(右道)로 나누기도 하였는데, 경주는 좌도의 감영이었고 상주는 우도의 감영이었다. 경상감영은 임진왜란이 종결된 후 1601년(선조 34)에 대구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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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 있었던 비은행 금융기관. 1970년대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은행 여신에 접근하지 못한 기업은 필요한 자금을 사채 시장에 의존하면서 사금융의 규모는 크게 증가한 반면 기업의 금리 부담은 가중되었다. 이에 정부는 사금융을 제도권 금융으로 흡수하기 위하여 1972년 8월 3일에 「단기금융업법」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단기금융업법」에 근거하여 1982년 광명투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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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분배·교환·소비와 관련되는 경제 활동 전반과 영역. 대구 달성 지역 경제 및 산업의 발전 과정을 최근까지의 특징적 현상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시대부터 달성 지역 인근에 있는 대구부(大邱府)에는 경상 감영(慶尙監營)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주변 낙동강을 중심으로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상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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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분배, 소비와 관련되는 전반적인 활동. 일반적으로 경제·산업은 인간의 공동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관계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보통 농업·공업·수산업·임업·광업 등이 포함되지만, 넓게는 상업·금융업·서비스업 등 생산과 직접 관계되지 않은 영역까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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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중등 보통 기관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는 중학교 졸업 이후에 진학하게 되는 후기 중등교육기관으로 실업계와 인문계가 있다. 형태는 복선형이지만 인문계, 실업계 모두 대학을 진학할 수 있어 단선형 학제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1974년 평준화가 도입되어 도시의 고등학교는 무시험 전형이지만, 면 단위 지역의 고등학교는 아직도 시험 선발로 입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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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결성된 고려공산청년회의 지역 비밀결사.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약칭 고려공청]는 조선공산당을 결성한 다음 날인 1925년 4월 18일 서울 박헌영의 집에서 비밀리에 조직된 공산주의청년동맹이다. 사회주의사상을 가진 청년에게 사상교양을 하고 선전 훈련을 하는 예비 학교의 성격을 가졌던 고려공산청년회는 모두 4차에 걸쳐 재결성되었다. 일제의 탄압을 받아 해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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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에 고추장, 된장, 야채를 넣어 지져 낸 대구광역시의 향토음식. 대구 지역의 장떡은 밀가루 반죽에 풋고추, 홍고추, 대파, 된장, 고추장을 섞은 반죽을 지지거나 장을 넣지 않고 쪄서 양념장에 버무려 내기도 한다. 다른 지역의 장떡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서민들의 밥 반찬으로 사랑 받는 향토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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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를 이루는 골목 명소. 대구광역시의 면적은 883.56㎢이며 8개 구군을 거느리고 있다. 그 가운데 중구가 7.06㎢로 가장 작다. 하지만 중구는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대구의 최중심지이다 보니 골목마다 켜켜이 쌓인 역사가 보존되어 있으며, 각 시대별 문화가 나이테처럼 아로새겨진 곳이다. 전국 최초로 대중교통 전용지구를 개통하여 사람 중심의 대중교통 체계를 구축한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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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공구골목에 있는 팩토리09에서 만든 몽키스패너, 너트, 볼트 등 공구 모양을 한 빵. 북성로는 대구광역시 중구의 대구역 사거리와 달성공원을 잇는 도로로 대구읍성 북쪽에 있는 길이란 뜻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상점으로 채워져 향촌동과 연결되어 대구 지역 최고의 번화가를 이루다가 1947년 미군부대에서 나온 폐공구를 수집하는 공구상이 하나둘 생겨나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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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학생 독립운동가. 곽수범(郭洙範)[1910~?]은 1928년 10월 서울휘문 고등 보통 학교 3학년 재학 중 동맹 휴학 사건으로 퇴학당했다. 그 뒤 1929년 4월 서울성봉 중등 학교 4학년에 다시 입학했으나 7월 자퇴했다. 1931년 6월 무렵 김일식(金一植)·염필수(廉弼守)·이경석(李璟錫)·김석구(金石九)·한순(韓錞)·이재우(李載雨)·김홍직(金洪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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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에 있는 의병장 곽재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곽재우(郭再祐)[1552~1617]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다. 1592년 5월 하순경 함안군을 완전 점령하고 정암진 도하 작전을 전개한 왜병을 맞아 대승을 거둠으로써, 경상 우도를 보존해 농민들로 하여금 평상시와 다름없이 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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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도 현풍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시호(諡號)는 충익(忠翼)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감(縣監)을 지낸 곽위(郭瑋)이며, 할아버지는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을 지낸 곽지번(郭之蕃)이다. 아버지는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지낸 곽월(郭越), 어머니는 목사(牧使)를 지낸 강응두(姜應斗)의 딸 진주 강씨(晉州姜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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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있는 망우당공원에서 기리고 있는 조선후기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낙동강의 요해처(要害處)[전쟁에서, 자기편에는 꼭 필요하면서도 적에게는 해로운 지점]를 방어함으로써 전쟁 초기 패퇴 일색이던 전세를 반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곽재우는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공훈을 내세워 권세에 영합하거나 출세 영달을 위한 행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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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곽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곽준[1551~1579]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양정(養靜), 호는 존재(存齋)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면(金沔)이 의병을 규합하자 평소에 친히 지내던 교분으로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안음 현감으로 함양 군수 조종도(趙宗道)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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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대구에서 결성되어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을 대표한 항일 독립운동 단체. 광복회(光復會)[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는 무장투장을 전개하여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였던 대표적인 국내 독립운동 단체이다. 광복회는 1915년 초 대구에서 박상진(朴尙鎮)을 중심으로 창립한 재건 달성친목회[조선국권회복단]와 1913년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蔡基中)을 중심으로 창립한 풍기광복단(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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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들이 설립한 교육운동 단체.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는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서울에 거주하는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들이 설립한 교육운동 단체이자 애국 계몽 단체였다. 1개 면에 1개 학교를 설립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설립된 교남교육회는 ‘교남학회’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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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시기 대구광역시 교육의 역사와 현황. 1. 대한제국기[1899~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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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사람이나 화물의 이동에 관련된 수단 및 관련 시설. 교통은 사람이나 재화, 의사(意思)나 정보 등의 장소적 이동을 총칭하나 좁은 의미의 교통은 그중에서도 사람이나 재화 등과 같은 유체물(有體物)의 장소적 이동을 뜻한다. 교통은 공간거리를 단축하고 공간 마찰을 극복하여 인간 생활의 지역적인 확대를 가능하게 한다. 교통수단은 일반적으로 육상 교통, 수상 교통, 항공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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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고려 시대의 역참 제도를 보면 전국에 22개 도(道)가 있었는데 경상도에서는 경주도(慶州道), 금주도(金州道), 상주도(尙州道), 경산부도(京山府道)의 4개 도가 있었다. 그 중 경주도는 대구 동부 지역, 경산, 영천, 경주와 경상북도 동해안 일대를 잇는 도로로 23개의 역이 있었으며, 대구 지방에는 현재 수성구 범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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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에 있었던 백화점. 구 미나카이 백화점[三中井]은 일본 상인들에 의하여 지어진 철근 콘크리트조 5층 건물이다. 잡화상을 운영하던 4명의 일본인[中江五郞平, 中村富次郞, 中村平四郞, 奧井和平]이 1905년 일용품을 공급할 목적으로 건립한 공동출자 회사이다. 1930년 후반 본점을 서울로 옮겨 전국 각지에 지점을 설치하고, 만주까지 상권을 확장하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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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조선은행 대구지점. 구 서울신탁은행 대구지점(舊信託銀行大邱支店)은 1920년 일본인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가 설계하고, 야시로쿠미[屋代組]에서 건축한 지상 2층의 벽돌조 건물이다. 일제는 1920년경 종전의 무단정치를 통한 수탈 방법에서 문화정치로 가장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르는 경제적 호황이 대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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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에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조선신탁회사 대구지점. 구 한일은행 대구지점(舊韓一銀行大邱支店)은 1932년 건립된 르네상스풍의 지상 2층 건물이다. 1920년부터 일제는 종전의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정책을 변경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르는 경제적 호황이 대구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지방은행이나 금융조합이 잇달아 신설되고, 서울에 본점을 두고 은행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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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말과 기억에 의존하여 전승되는 민간 지식의 총칭. 구비전승(口碑傳承)은 설화, 민요, 무가, 판소리, 민속극, 속담, 수수께끼 등 말로 전하여져 오는 언어예술을 말한다. 비석(碑石)에 새긴 것처럼 오래도록 전하여 내려온 말이라는 뜻을 가진 ‘구비(口碑)’에서 알 수 있듯이 구비전승은 오랜 세월 동안 폭넓은 공감대를 지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내려온 것이다. 대구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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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 구상준(具常浚)[1919~2004]은 1919년 9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주로 구상(具常)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였다. 작품은 주로 가톨릭 신앙에 바탕한 것이다. 구상준의 시들은 세계의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구상준은 특히 프랑스 문부성에서 선정한 세계 200대 시인에 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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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서흥 김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는 서흥김씨(瑞興金氏)의 집성촌이다. 서흥인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주향하는 도동 서원(道東書院)이 있는 곳이다. 이 마을에 한훤당의 후손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입향조가 누구인지는 기록에 없지만 예조 참의를 지낸 김굉필의 증조할아버지가 현풍 곽씨(玄風郭氏)와 결혼해 처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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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찬옥(粲玉), 호는 소봉(小峰). 고려 말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명인 구송은(具松隱)의 19세손이다. 조선조 임진왜란 때 창의 수훈한 첨정공 구회신(具懷愼)의 11세손이다. 아버지는 구재서(具在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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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시기 대구에 설치된 군사 기관. 국군대구지구방어사령부(國軍大邱地區防禦司令部)는 1950년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Walker Line]을 방어하고자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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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미군정청의 국대안에 반대하기 위하여 결성된 학생운동 단체. 미군정청이 경성대학의 3개 학부와 서울에 있는 9개의 관립 학교를 통폐합하여 종합대학교를 만든다는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약칭 국대안]을 발표하자 국대안 반대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대구에서도 국대안에 반대하는 동맹휴학이 대구사범대학[대구사범학교], 대구농업전문학교[현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대구의학전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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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던 국립극장(國立劇場). 6·25전쟁으로 인하여 서울의 국립극장을 사용할 수 없어 대구의 문화극장을 환수하여 국립극장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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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 있었던 대구 최초의 안경테 제조업체. 한국 안경 제조의 시발점은 고(故) 김재수 회장이다. 1930년대 후반 일본 최대의 안경 생산업 기지인 후쿠이현에서 안경테 제조 기술을 익힌 김재수는 삼형제와 함께 금곡셀룰로이드공업사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안경 공장들이 폐쇄되고 군수품 공장으로 전환되었다. 일본의 패망을 직감한 김재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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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있던 국제적인 인권 기구의 지부.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1961년 영국의 피터 베넨슨 변호사가 창립한 인권운동단체이며, 한국을 포함한 150여 개국에 80여 지부와 110여 이상의 지역 사무실을 두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자국 내 문제 불간섭 원칙에 따라 국제앰네스티가 선정한 외국 정치범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 엽서 보내기, 사형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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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1월 대구에서 발생하여 국내외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 경제 주권 운동.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사(廣文社) 내에 경상북도 각 군의 유지들로 구성되어 있던 문회(文會)는 특별회를 열고 대구광문사의 문회를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변경하였다. 이날 열린 특별회에서 광문사 부장 서상돈(徐相敦)이 국채 1300만 환을 갚아 일제로부터 국권을 보전하자고 제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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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대구에서 박정희 군사정권이 발표한 군정 연장에 반대하며 전개된 운동.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군사정부를 수립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12월 17일 1963년 8월경에 정권을 민정으로 이양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 다음 해인 1963년 2월 18일에는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1963년 3월 15일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군인 8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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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던 기생조합. 권번(券番)은 기녀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예를 학습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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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권중락(權重樂)[1908~?]은 4·19혁명 이후 대구에서 경북피학살자유족회 활동과 이대악법반대운동을 펼친 사회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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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대구 지역 최초로 대한민국연극제에 작품을 출품한 극단. 극단 원각사(劇團 圓覺社)는 1977년 6월 이필동이 설립한 대구 지역의 극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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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연극이나 음악, 무용 따위를 공연하거나 영화를 상영하기 위하여 무대와 객석 등을 설치한 건물이나 시설. 극장(theatre)은 그 어원이 관람석(theatron)인 데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공간 속에 배우와 관객을 연결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극장은 원래 연극을 상연하기 위하여 지은 곳인데 무용·음악·예능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하는 장소가 되었으며, 20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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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개항에서 1945년 광복까지 대구의 역사. 대구는 개항 이후 전통적 조선 사회에서 시민사회에 기초한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하여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또한 대구 사회는 개항 이후 서구 근대가 파급되는 과정에서 전통사회의 질서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이냐는 과제도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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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 역사. 개항기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는 자주적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이었다. 근대 국민국가 수립을 위한 변혁운동은 1910년 한일병합을 계기로 식민지 민족운동으로 전환되었다. 근대 시기 동구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존립하지 않았다.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의 지방행정구역은 많은 변동을 거친다. 즉 달성군에 속하기도 하고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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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 역사. 개항기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는 자주적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이었다. 근대 국민국가 수립을 위한 변혁운동은 1910년 한일병합을 계기로 식민지 민족운동으로 전환되었다. 근대 시기 동구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존립하지 않았다.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의 지방행정구역은 많은 변동을 거친다. 즉 달성군에 속하기도 하고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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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 시인 백기만과 손진태 등이 1923년 창간한 문예 동인지. 1923년 11월 9일 창간호를 발행한 『금성(金星)』은 이상백, 백기만, 이장희, 손진태 등 대구 지역 시인들이 중심이 되어 발행한 시 중심의 문예지이자 동인지였다. 발행인은 일본인 야나미사와 미치코[山口誠子]였고 장정은 안석주(安碩柱)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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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금호동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의 분기점이자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의 종점. 금호분기점(琴湖分岐點)은 경부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의 분기점이자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의 종점이다. 1984년 6월 28일에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 이현분기점[현 서대구IC]~금호분기점 구간 개통과 함께 영업을 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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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과 북구 검단동을 연결하는 다리. 경부고속도로의 금호강 다리이며, 금호라는 명칭은 다리가 통과하는 금호강의 이름을 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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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여대로가 1601년 대구의 금호강에서 벗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지은 시집에 부치어 쓴 서문. 「금호동주시서(琴湖同舟詩序)」의 저자 여대로(呂大老)[1552~1619]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성우(聖遇)이고, 호는 감호(鑑湖)이다. 아버지는 여응구(呂應龜)이고, 어머니는 신일(辛馹)의 딸이다. 서사원(徐思遠)[1550~1615], 장현광(張顯光)[1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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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 금호강의 경치를 노래한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금호범주」를 차운하여 조선 후기 문신 오숙이 지은 한시. 「금호범주(琴湖泛舟)」를 쓴 오숙(吳䎘)[1592~1634]은 본관이 해주(海州)이며, 자는 숙우(肅羽)이고, 호는 천파(天坡)이다. 아버지는 오사겸(吳士謙)이고, 어머니는 이집중(李執中)의 딸이다. 오숙은 문장이 간명(簡明)하며 뛰어났고, 당대의 문장가인 장유(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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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관기 제도가 폐지된 후 대구의 기생들이 만든 조직. 기생조합(妓生組合)은 기생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예를 학습하기 위하여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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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를 지나간 대구선 폐선 자리에 만든 문화공간.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는 동요는 요란한 기차소리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잘 자고, 옥수수가 잘 크는 풍경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시끄러운 기찻길 옆에서 오막살이를 하는 고단함을 애써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기찻길 옆은 언제나 그렇게 분주하고 위험하고 고달픈 것이 근대화의 한 내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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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를 지나간 대구선 폐선 자리에 만든 문화공간.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는 동요는 요란한 기차소리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잘 자고, 옥수수가 잘 크는 풍경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시끄러운 기찻길 옆에서 오막살이를 하는 고단함을 애써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기찻길 옆은 언제나 그렇게 분주하고 위험하고 고달픈 것이 근대화의 한 내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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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형평운동가. 김경삼(金慶三)[?~?]은 1923년 조선형평사(朝鮮衡平社) 경북지사 설립을 주도하고 대구 지역의 형평운동(衡平運動)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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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김관제(金觀濟)[1886~1951]는 1886년 6월 18일 지금의 경산남도 고성군 개천면 명성리에서 태어났다.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민족계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대구에 한약방을 열고 사회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건국동맹에서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조선건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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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다동기생조합과 한남권번에서 활동한 대구 출신의 기생. 김남수(金南壽)[1890~?]는 1890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동편에서 태어났다. 1900년 11세에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려 경상감영 교방 또는 대구부 교방에서 가무를 익혔다. 김남수는 가곡을 비롯하여 정재무, 승무, 경상도 민요 등에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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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김대우(金大羽)[1900~1976]는 1900년 7월 10일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상준(金商俊)은 소유 토지가 1487만 610㎡, 소작인이 80여 명에 달하는 대지주이자, 강동군 군참사(郡參事)와 학교 학무위원, 금융조합 부조합장 등을 역임한 지역 유력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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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영화인. 김도산(金陶山)[1891~1922]은 1891년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초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영근(永根)이다. 김도산은 신파극의 선구자로 불리는 임성구와 함께 1911년 대한민국 최초의 신파 극단 혁신단을 창립하였다. 김도산은 혁신단에서 「불효천벌」, 「육혈포강도」 등을 공연하였다. 특히 김도산이 공연한 「육혈포강도」는 기록상 대구 연극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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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서 벌어진 공산전투에서 전사한 고려개국공신. 김락은 918년(태조 1) 고려가 건국되자 태조 왕건으로부터 2등공신으로 책봉되었다. 그 후 김락은 927년 원보 재충(在忠)과 더불어 대량성(大良城)을 쳐서 장군 추허조(鄒許祖) 등 30여 명을 사로잡고 그 성을 부수고 돌아왔다. 김락은 927년 9월 태조가 견훤의 후백제 군사와 공산(公山)에서 싸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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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무생(金武生)[1898~1971]은 1898년 7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사월동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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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무열(金武烈)[1887~1929]은 188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계산동1가·계산동2가]에서 태어났다. 중국 만주에서 대공단(大公團)을 조직하고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김성열(金聖烈)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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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성악가. 김문보(金文輔)[1900~?]는 1900년 3월 1일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김문보는 일본, 서울, 대구 등지에서 활동한 대한민국 최초의 바리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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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운동가. 김문심(金汶燖)[1912~1987]은 대구에서 교원노조를 결성하여 교육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대악법반대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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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병순(金炳淳)[?~?]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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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월북 역사학자. 김석형(金錫亨)[1915~1996]은 북한 사회의 역사상 정립에 크게 이바지하고 북한 역사학계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킨 대구 출신의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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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의 정치인·경제인·언론인.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성곡(省谷). 아버지 김광도(金光度)와 어머니 김봉옥(金鳳玉)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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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종합 문예지 『여명』을 펴낸 언론인. 김승묵(金昇默)[1903~1933]은 1903년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서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선산이다. 조선일보 대구지국을 1년 동안 경영하다가 1925년에 잡지 『여명(黎明)』을 발행하였다. 『시대공론』을 창간한 영화감독 김유영이 김승묵의 조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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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영서(金永瑞)[1880~1975]는 1880년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감으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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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우(金永祐)[1885~1926]는 1885년 4월 1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출소 후에는 대구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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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 서도원·도예종·송상진·여정남과 함께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으로 희생된 사회운동가. 김용원(金鏞元)[1935~975]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 반대 시위를 잠재우기 위하여 1974년에 조작한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에 연루되어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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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우근(金遇根)[?~?]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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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외교관이자 체육인. 김운용(金雲龍)[1931~2017]은 1931 3월 1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김운용은 태권도 개관의 통합과 행정 업무에 영향을 주었으며,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대회에서 태권도를 시범종목 및 정식종목으로 채택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국익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김운용은 부정부패로 인하여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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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응섭(金應燮)[1878~1957]은 1900년대 초 대구에서 교남교육회, 조선국권회복단 등에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고 중국 동북[만주]에서 의용단, 정의부 간부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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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극작가. 김이식(金二植)[1915~?]은 1915년 12월 8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에 거주하며 극작가로 활동하다가 월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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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종만(金鍾萬)[1901~1926]은 1901년 7월 25일 지금의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이화리에서 태어났다. 동화사(桐華寺) 부속 지방학림의 학승으로 있던 1919년 3월 30일 대구 남문 밖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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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문학가. 김진태(金鎭泰)[1917~?]는 1917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광림사범을 졸업한 뒤 계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2년 『만선일보』에 소설 「이민의 아들」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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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창근(金昌根)[?~?]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1926년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한 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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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여성 국악인. 김초향(金楚香)[1900~1983]은 1900년 5월 17일[음력 4월 15일] 대구 시내에서 20여 리[약 8㎞] 떨어진 중구 성내동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맏딸로 태어났다. 14세 때부터 서울의 광무대와 장안사에서 활동하였다. 김창환(金昌煥)[1855~1937], 송만갑(宋萬甲)[1865~1939], 정정렬(丁貞烈)[1876~1938] 명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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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1월 대구에서 발생하여 국내외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 경제 주권 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29일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가 대구광문사 내 문회(文會)를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바꾸는 특별회에서 대구광문사 부사장 서상돈의 제안과 대구광문사 사장 김광제(金光濟)의 즉각 실행이 제의되면서 시작되었다. 대구광문사는 「국채 보상 취지서」를 만들어 주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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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대구 지역 시조 작가들의 문학 단체. 낙강시조문학회(洛江時調文學會)는 지역에서 탄생한 최초의 시조 문학 단체이다. 당시 대구 지역에는 ‘황토시조동인회’라는 시조 동인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미등단 젊은 작가들[박택종, 김종목, 김정자, 오대순, 류상덕, 김종윤 등]이 시조 창작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작가들의 시조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당시 서울에서 발행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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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등지에서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활동한 조선인민유격대 부사령관. 남도부는 1921년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이 하준수(河準洙)인 남도부는 아버지 하종택과 어머니 이의영 사이에 3남 3녀 중 장남이었다. 아버지 하종택은 오랫동안 면장을 지냈으며 천석꾼 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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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8월 이후부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활동한 좌익정당의 경북조직. 1946년 11월 23일 서울[지금 서울특별시]에서 조선공산당, 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의 합당으로 남조선노동당이 결성되었다. 남조선노동당 경북도당은 1947년 2월 14일 대구[지금 대구광역시]에서 이목·채충식·이선장·백기만·박중조·유지화·백현우·조봉석 등이 결당 준비위원회를 갖추면서 본격화되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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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근대로의 여행 근대골목투어 코스 중 제5코스. 남산 100년 향수길은 반월당-보현사-관덕정 순교기념관-무우관-남산동 인쇄전시관-성유스티노신학교-성모당-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을 잇는 길로서 근대路(近代路)의 여행 근대골목투어 제5코스에 해당한다. 남산, 종교, 인쇄골목을 만날 수 있는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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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의 성당. 남산성당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에 속하여 있으며, 수호성인[주보성인]은 ‘성 요셉’이다. 1926년 5월 30일 대구 본당[현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대구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본당이다. 1920년대에는 서울을 제외하고는 한 개의 도에 두 개의 본당이 있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초대 주임신부는 석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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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인쇄 골목. 남산동인쇄골목(南山洞印刷골목)은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계산오거리에서 남문시장 입구까지 형성된 인쇄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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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에 있었던 남선물산 대구공장에서 민주노조 사수를 위하여 농성한 노동운동. 남선물산은 1967년에 설립된 이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섬유 이외에도 13개 업종 9개 업체를 계열로 거느렸던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섬유업체였다. 그러나 1984년에 부도가 난 후로는 법정관리 상태에 있었다. 당시 회사의 재정 상태는 부채 비율은 300%에 달하였으나 당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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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의 대흥전기주식회사를 중심으로 6개 전기회사가 통합하여 설립된 전기회사. 1911년 설립된 대구전기회사와 함흥전기주식회사가 합병하여 1918년 8월 대흥전기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중일전쟁 이후 조선총독부가 전시체제 강화를 위하여 1937년 3월 대흥전기주식회사, 남조선전기주식회사,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 대전전기주식회사, 목포전등주식회사, 천안전기주식회사 등 6개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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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본리리에 있는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남양금속은 국내 자동차 산업이 부흥하던 1987년 자동차용 특수 소재 제조 전문 기업으로 설립되었으며, 미국의 포드(Ford), 지엠(GM) 및 다임러 크라이슬러(Daimler Chrysler) 등 자동차 Big 3와 유럽의 볼보(Volvo), 피아트(Fiat), 일본의 스즈키(Suzuki), 닛산(Nissan), 마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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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남제의 집에서 밤에 이야기하면서 지은 한시. 「남제장야화(湳濟庄夜話)」의 저자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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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2월 대구광역시 남조선전기 대구지점에서 노동자의 해고를 반대하며 일어난 노동쟁의. 1946년 2월 말부터 남조선전기 대구지점에서 새로운 쟁의가 시작되었다. 남부지방을 시장으로 하는 남조선전기는 서울 및 중부지방의 경전전기, 관서 지방의 서전전기와 함께 유명한 전기회사였다. 남조선전기 사장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장직상이었다. 장직상의 남조선전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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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 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 작가 장정일이 발표한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 봐」는 1996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한국에서는 외설 시비를 일으키며 장정일(蔣正一)[1962. 1. 6~]이 음란 문서 제조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를 선고받게 한 작품이다. 그러나 국내의 이와 같은 상황과는 달리 일본에서 발간되는 등 해외에서 더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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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노원동1가(魯院洞1街)는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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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가업으로 대를 이어 영업하는 점포. 대구광역시의 노포로 알려진 곳은 총 15곳이 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주로 남구, 달서구, 중구에 분포하고 있다. 남구에는 3곳, 달서구 1곳, 중구는 11곳으로 중구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도심지라는 지리적 환경 때문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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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가 추진하여 온 환경 정책의 의미. 대구광역시는 “일류 녹색도시, 숲의 도시 조성”을 목표로 아름답고 쾌적한 도시경관을 창출하려는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을 1996년부터 추진하고 있으며 2016년도까지 3차 사업을 완료하고, 2017년부터 2021년까지 4차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을 다양하게 추진하였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1년간 진행된 제1차 푸른 대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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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의 우현서루에서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푸른 나무 그늘 아래에서 풍경을 읊은 한시. 「녹음(綠陰)」의 저자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04년 서울을 유람하고 세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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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대구의 상징 능금. 대구가 사과로 유명하게 된 데에는 온도의 차이가 심한 기후 조건과 자갈과 모래가 많은 충적 분지라는 알맞은 재배 조건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토종 능금이 사라지고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사과가 ‘대구 능금’이 되었다. 능금은 능금이라는 이름 외에도 임금, 빈과, 평과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다. 임금(林檎)은 11세기 고려 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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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에 있는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의 사당. 단군성전(檀君聖殿)은 단군을 모시고 있는 곳인데, 달성공원에 있던 것을 1966년 수성구의 수성못 유원지 근처 법니산으로 옮겼다. ‘국조단군성전’, ‘천진전’이라고도 한다. 우리 민족의 연원인 국조 단군은 환인의 서자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다. 단군은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조선[고조선]이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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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에서 해마다 10월에 지내는 제사.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에서는 2003년부터 해마다 10월이 되면 조선시대 목민관의 부임 행차를 재현하고 선행을 베풀었던 목민관에 대한 추원제를 지낸다. 달구벌 목민관 추원제는 옛날 대구 지역에서 백성에게 추앙받던 어느 목민관이 순직하자 목민관의 공덕을 기리려고 비산동 원고개에 있는 무덤을 돌보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던 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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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원교리에 있는 사회봉사 단체. 세계 모든 사람들 사이에 ‘너그러운 이해’의 정신을 조성하고, 도덕적인 정부와 시민을 장려하며, 시민·사회·상업·도덕의 번영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촉진하기 위해 구성되었으며, ‘Liberty, Intelligence, Our Nation's Safety’의 머리글자에서 단체의 명칭이 정해졌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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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에 있는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 소속 교회.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은 1954년 5월 1일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 협회로 창립된 신종교 단체로, 약칭 통일 교회로 알려져 있다. 1994년 대한민국에서 세계 평화 가정 연합회를 설립하고 1996년 미국에서 세계 평화 가정 연합을 창설하여 1997년 기존의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 협회를 세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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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군의 지역 특산물인 토마토를 활용하여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체험형 축제.. 달성군에는 논공 지역의 토마토 브랜드 '조은인연'을 비롯해 하빈면과 다사읍 등지에서 220여 농가가 연간 1만2천 톤의 토마토를 생산해 연간 150억 원 이상의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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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에 있는 재향 군인 단체. 재향군인회의 회원 상호 간의 상부상조를 통한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의 복지 증진 및 권익 신장은 물론 유사시 향토 방위의 협조 및 지원, 국제 재향군인회와의 친선 유지 및 유대 강화, 호국 정신 함양 및 고취 활동 등을 끊임없이 수행하여 왔으며 이들에 대한 포괄적 의미의 견인차 역할과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는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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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생활 정보 포털 사이트. 달성사랑은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취업, 부동산, 맛집, 문화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정보지로서 코리아 사랑에서 운영하고 있다. 코리아 사랑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경인로53길 90[구로동 615-1]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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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에서 달성판관의 명판결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달성판관의 명판결」은 대구광역시 중구에서 달성판관(達城判官)의 명판결(名判決)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지혜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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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대구 24부대의 학병들이 일제의 전쟁동원 정책에 반대하며 일으킨 전시체제 거부 운동. 대구 24부대의 정확한 명칭은 ‘경북방위군 제24부대’로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연합군의 한반도 상륙 대비 군사작전 수행을 위하여 보병80연대를 개편한 부대였다. 일제는 1938년 지원병 형태로 조선 청년을 전쟁에 동원한 이래 1943년에 ‘조선인 학도 육군 특별지원병’제도를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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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북위원회가 개최한 정부수립 촉진대회. 대구 7·27인민대회를 개최한 민주주의민족전선은 인민 대회의 의미에 대하여 ‘조국 흥망의 결정적 사명을 가지는 것’이라고 중요하게 판단하였다. 민주주의민족전선은 모스크바삼상회의가 갖는 역사적 의의에 대하여 첫째, 조국 재건의 유일한 옳은 노선, 둘째, 조선의 자주독립은 민주주의적 제 과업의 완전한 실천을 통하여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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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거리의 미관과 국민 보건 따위를 위하여 길을 따라 줄지어 심은 나무. 가로수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녹지로서 국토 녹화, 경관 조성, 공해 방지 등을 위하여 시가지, 전원, 산간, 해안, 강변 지역의 도로와 길가에 조화 있게 심는 나무이다. 법적으로는 「도로법」 제10조에 따른 도로[고속국도 제외]와 보행자전용도로 및 자전거전용도로 등 대통령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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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중일전쟁 당시 소방, 방공, 치안 확보를 위하여 대구 지역에 조직되었던 단체. 경방단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경방단 규칙」[1939. 7. 3.]에 의하여 조직된 단체이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개시 후 방공(防空)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치안을 강화하기 위하여 기존의 방호단(防護團), 소방조(消防組), 수방단(水防團)을 전시체제로 재편성하여 1939년 경방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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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서 발행되는 인터넷 신문. 대구경북매일은 대구 및 경북 지역의 사회·문화·교육 전반과 관련한 소식들과 유익한 정보를 지역민들에게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창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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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미식축구 체육단체. 대구경북 미식축구협회는 미식축구가 생소하던 당시, 부산 다음으로 두 번째로 대구에 설립되었다. 부산에 속해 있던 대구권의 대학교들을 분리하여 대구·경북권 미식축구협회를 구성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 경북대학교 박경규 교수가 대학 미식축구의 수준을 향상하고 더욱 선진화된 훈련 시스템을 도입·보급하고자 설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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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고등검찰청. 대구고등검찰청(大邱高等檢察廳)은 항소 사건의 소송 유지와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을 처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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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제2심 법원. 고등법원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수원 등 6곳에 설치되어 있고 재판 당사자의 사법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춘천, 청주, 창원, 전주, 제주, 인천에 원외 재판부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구고등법원(大邱高等法院)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전역을 관할하는 제2심 법원이며 고등법원장과 대법원규칙이 정한 수의 판사로 구성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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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공립 방송통신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부설방송통신고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유능한 직업인 양성. 고교 교육 기회 제공. 국민 교육 수준 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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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갈산동에 있는 공장 설립에 관한 경제 지원 기관. 한국산업관리공단은 「산업직접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제7조의 2에 근거하여 2009년 대구공장설립지원센터를 개소하였다. 대구공장설립지원센터는 대구 지역의 공장 설립 희망자에게 공장 설립에 관한 제반 업무를 무료로 대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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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문화시설. 대구공회당(大邱公會堂)은 대구부민에게 문화예술을 제공할 문화의 전당으로 건립하였다. 대구부[현 대구광역시]에서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즉위식을 기념하는 사업의 하나로 대구역 앞[현 중구 태평로2가 1-1]에 건립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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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설립된 계몽운동 단체. 대구 광문사(大邱 廣文社)는 1906년 1월 대구에서 거대 상인, 지주층, 전직 관료, 개명 유교 지식인 등 지역의 유지들이 설립한 계몽운동 단체이다. 대구 광문사에 가입하기 위하여서는 엽전 100냥을 출연하였다. 대구 광문사는 사장에 김광제(金光濟)[1866~1920], 부사장에 서상돈(徐相墩)[1851~1913]을 선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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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2월 대구에서 조선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난 외교 분쟁. 교안(敎案)의 문자적 의미는 종교와 관련된 분쟁 및 사건, 혹은 재판 안건이라는 뜻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중국이나 한국에서의 서양 종교에 대한 반대 투쟁을 지칭한다. 한국에서는 1886년부터 1908년 사이에 적게는 141건, 많게는 305건의 교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교안(大邱敎案)은 1891년 2월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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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저동에 위치하는 국제공항. 대구국제공항은 1936년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 의해 대구시 동구 지저동, 도동, 입석동, 방촌동 일원에 활주로가 건설되었고 1950~1953년 한국전쟁 당시 군용기지로 사용되었던 공항에 1961년 4월 부산비행장 대구출장소가 설치되면서 대구와 서울 간 민항기 국내선 취항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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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저동에 위치하는 국제공항. 대구국제공항은 1936년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 의해 대구시 동구 지저동, 도동, 입석동, 방촌동 일원에 활주로가 건설되었고 1950~1953년 한국전쟁 당시 군용기지로 사용되었던 공항에 1961년 4월 부산비행장 대구출장소가 설치되면서 대구와 서울 간 민항기 국내선 취항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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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 대구국제공항 활성화를 위하여 추진하는 정책. 대구광역시는 대구국제공항 활성화를 위하여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 공항 브랜드 홍보, 국제선 개설 확대, 국내선 추가 개설과 저비용항공사의 대구 취항, 야간 운항 통제 시간 3시간 단축, 중국 관광객 무비자 환승 공항 지정 등 정책으로 대구국제공항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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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일제가 한국의 농업과 공업을 금융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대구에 설립한 은행. 대구농공은행(大邱農工銀行)은 1906년 일제가 금융 경색 해결과 재정 기초 확립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대한제국의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및 발달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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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설립되었던 고등교육기관. 대구농업전문학교는 관립으로 1944년 4월 개교하였다. 개교 당시 대구공립농림학교[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의 교사 일부를 빌려 사용하였다. 학생은 농학과 50명, 농예화학과 50명이었으며, 학생 비율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1:4였다. 교직원은 교장 1명, 교수 3명, 생도주사(生徒主事) 1명, 조교수 1명 등이었으며, 한국인 교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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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었던 사립대학. 대구대학은 민족문화의 선구자이자 인류 문화의 기수인 국가 진량(陳樑)을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아울러 심오한 학문을 연마하며, 치밀한 기술을 궁구함으로써 세계에 비견할 학자를 배출하며, 대정치가·기술가·사업인 양성을 목적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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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도시와 농촌 간의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자 진행되는 도시농업 박람회. 대구도시농업박람회는 대구광역시가 주최하고 엑스코가 주관하여 열리는 도시농업 박람회로, 2014년 처음 시작되어 2021년 9회 행사가 열렸다. 도농 교류 및 도시농업에 대한 인식 제고 등을 목적으로 하며, 초보 농부부터 농업경영인, 농업 전문 기업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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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율암동에 있는 연료산업단지. 1970년 한국연료조합연합회[연료연합회]는 중소 연탄업계의 사업 효율을 증가시키고 제품의 품질 향상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를 위해 예산 12억원을 확보해 1971년부터 1976년까지 연차적인 대단위 연탄단지를 조성하는 「기업합병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 첫번째 사업이 1971년 대구광역시 시내 연탄공장을 모아 시범단지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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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부동에 있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무덤과 시대 미상 돌덧널무덤이 있는 고분 유적. 대구 둔산동 유적은 경부고속도로 동대구 I.C에서 서울 방향으로 약 1㎞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현재 고속도로에 포함되어 있다. 대구 둔산동 유적은 국도 4호선 동촌역에서 반야월 쪽으로 약 2㎞ 떨어져 옻골마을로 가는 길로 꺽어서 따라 가면 경부고속도로와 교차하게 되는 지점에 이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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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를 배경으로 탄생한 문학작품과 대표 문학관. 대구광역시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 등에 뛰어난 문학가를 여럿 배출하였으며, 20세기 후반까지도 중견·신예 문학가들을 상당수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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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 역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골목. 대구광역시는 과거와 현재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거리, 3·1만세운동길, 인쇄 골목 등 대구의 다양한 면모가 드러나는 골목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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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대구 지역에서 전개된 경제 자립 운동.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조선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났다. 조선물산장려운동은 일제 식민지 경제구조 아래에서 민족경제가 크게 위축되어 조선인의 경제생활에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조선 민족의 경제자립을 위하여 일어난 운동으로, 192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1923년 1월 9일에는 서울에서 조선물산장려회 발기준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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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7월 개통되어 대구광역시 동구의 동촌 일대와 대구광역시를 이은 대중교통. 대구광역시에 대중교통수단으로서 버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9년 7월이었다. 이때는 대구 특유의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버스 운영은 대구부[지금 대구광역시]가 직접 운영하는 형태의 부영버스였다. 대구부영버스 개통을 위한 움직임은 1928년 3월 무렵 대구부가 차장(車掌) 또는 ‘뻐스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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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북 지역의 역사 학회인 대구사학회의 정기 학술논문집. 광복 이후 서울에서 여러 학회가 만들어지는 것에 자극을 받아 대구 지역의 역사학자들이 경북사학회[혹은 대구역사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1962년 전국역사학대회가 지방 최초로 대구에서 개최된 후 춘추학회와 한국사학연구회 등이 통합되어 대구사학회가 결성되었다. 『대구사학』은 대구사학회의 정기간행물로 1969년 창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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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대구·경북 지역 선교 목적의 선교 지회. 대구선교지회는 대구·경북 지역 선교를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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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소년 운동의 통합 조직. 대구소년동맹(大邱少年同盟)은 1927년 7월 17일 대구 지역의 소년 운동 단체인 대구혁영회[이칭 대구소년혁영회], 대구소년개조단, 대구노동소년회 등 3개 단체가 통합한 소년 운동 단체이다. 1927년을 전후하여 전국의 소년 운동은 서울을 중심으로 소년의 실력 양성에서 소년 해방운동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데, 대구 지역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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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조성된 쇼핑을 위한 골목. 대구광역시에는 특정 분야의 상품을 파는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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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를 주 무대로 활동 중인 프로 스포츠 구단과 시민들의 열띤 응원 형태. 경상도 사람들이 무뚝뚝하다는 인식은 스포츠 구장에서 확연히 사라진다. 승패와 상관없이 지역 연고팀을 응원하는 뚝심 있는 애정과 경기장에서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모습은 대구광역시 시민들의 연대의식으로도 작용한다. 대구 시민들의 건강한 스포츠 응원 문화는 프로 선수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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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대구십영」과 대구팔경에 나타난 금호강 풍경을 찬미한 글들. 「대구십영(大邱十詠)」과 대구팔경(大邱八景)에 나타난 금호강 풍경을 묘사하려면, 먼저 대구광역시를 관통하며 흐르는 금호강(琴湖江)에 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금호강은 대구광역시 동구를 비롯하여 북구와 서구, 달서구 권역에 걸쳐 흐르는 강이다. 금호강은 낙동강의 지류이지만, 대구시내를 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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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었던 여성 및 아동 보호를 위한 경찰기관. 1946년 5월 15일 대한민국 최초로 여경찰관을 모집하였다. 간부 15명과 여경찰관 1기생 64명이 국립경찰학교에서 2개월간의 훈련을 이수한 뒤, 7월 16일에 배출되어 전원 중앙에 배치되었다. 1947년 1월에는 여경찰관의 정원이 500명으로 책정되어 각 도의 일선 경찰서에 여경찰관이 배치되었고, 7월 1일을 시작으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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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기독교 여성단체. 대구여자기독교절제회(大邱女子基督敎節制會)는 1952년 조직되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기독교 여성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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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연초전매지국에 조직된 혁명적 노동조합. 대구연초전매지국 내 적색노조(大邱煙草專賣支局內赤色勞組)가 조직된 것은 대구의 공업에서 연초 제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29%를 차지할 만큼 매우 높았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대구 연초공업은 전국 연초 생산에서 33%를 차지하여 서울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대구연초전매지국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규모가 대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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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제조업. 1910년 대구 지역에는 탁지부 사세국 산하 연초시작장(煙草試作場)과 양조시험소가 설치되었다. 이때 전국 최초로 대전과 함께 대구에 대구연초시작장(大邱煙草試作場)이 설치되었다. 대구연초시작장은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에 적합한 연초 품종을 개발 및 생산하고, 연초 제반 업무를 관할하였다. 1912년 3월 사세국에 전매과가 신설되면서 대구에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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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예술인. 1800년대 후반 대구는 경상감영이 있기는 하였지만 남북 1㎞를 약간 넘는 작은 사각형 모양의 읍성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가톨릭교의 계산성당, 기독교의 대구제일교회, 그리고 제중원 등의 건립으로 새로운 개화 지식인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개화 지식인들은 자녀들을 성당 혹은 교회를 다니게 하고,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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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울에서 거주하던 대구 출신 유학생들의 친목 단체. 대구유학생구락부(大邱留學生俱樂部)는 일제강점기 서울에 유학 와서 공부 중이던 대구 출신 유학생들이 1921년에 결성한 친목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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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인쇄 직공들이 설립한 노동단체. 대구인쇄직공조합(大邱印刷職工組合)은 기술 연구, 지식 계발, 근검절약, 회원 실업자에게 직업 소개, 경조문(慶弔問) 상호부조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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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있었던 양잠 재배 교육을 위한 교육기관. 경상도는 조선시대부터 잠업을 하고 있었으며, 대표적 지역은 함창·상주·문경이다. 경상도는 양잠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첫째, 양잠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서리·습기 피해가 거의 없었다. 둘째, 낙동강 연안 수백 리에 걸쳐 있는 황무지는 뽕나무를 키우기에 적합하였다. 마지막으로, 공기가 건조하여 누에똥을 제거하는 횟수가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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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있었던 세무와 재무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행정기관. 1908년 조선의 전체 인구는 978만 1671명, 호수(戶數)는 233만 3087호, 면적은 1만 4000리, 조세 수입은 1034만 604원이었다. 경상도의 인구는 233만 3249명, 호수는 55만 8155호, 면적은 2,104리, 조세 수입은 260만 3447원이었다. 경상도의 인구는 조선 전체 인구에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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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시민들이 대흥전기주식회사를 상대로 전기료 인하를 위하여 만든 시민 단체. 1920년대 대구에 전기를 공급하는 대흥전기주식회사의 전기 요금이 다른 도시에 비해 높은 것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자 대흥전기주식회사도 전기 요금을 인하할 계획으로 당국에 인가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지역 사회에서는 대흥전기주식회사의 전기 요금 인하율보다 더 큰 폭의 인하를 위하여 기성동맹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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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전기통신 업무를 관장한 전신 사무국. 대구전보국(大邱電報局)은 대구 지역의 전기통신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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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0일 대구에서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하여 실시된 최초의 근대 선거. 한반도의 완전한 독립, 통일 근대 국민 국가의 건설을 이루기 위한 국제적 절차로서 모스크바삼상회의에 따른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한반도 문제가 미국에 의하여 유엔[UN]으로 이관된 뒤 단독선거[단선]에 의한 단독정부[단정] 수립이 가시화되었다. 유엔은 1947년 11월 14일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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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의 청년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하여 설치한 군사훈련기관. 육군특별지원병 제도가 시행된 이래 대구에서 지원병이 최초로 입영한 것은 1938년 12월이었다. 서울의 지원병훈련소 제1회 수료생 201명 중 대구 출신의 24명은 1938년 12월 9일 기차로 대구에서 도착하여 달성군수와 대구경찰서 서장 등의 관민 유지의 환영을 받고 대구신사에 참배한 뒤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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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동4가에 있는 천부교회. 대구천부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체험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실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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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 최초의 의료 선교사인 존슨을 통하여 전개된 의료선교 활동. 대구 지역의 최초의 의사는 존슨(Dr. Woodbridge O. Johnson)[장인차] 의료 선교사이다. 존슨은 미국 북장로회의 해외 선교부 소속 의료 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1897년 12월 25일 성탄절에 대구에 도착하였다. 존슨은 조랑말을 타고, 부인 에디스 파커는 장정 네 명이 메는 가마를 타고 짐꾼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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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택시기사들이 사납금 인하, 부제 완화, 노조 결성 허용 등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 대구 지역 택시기사 파업은 불안정한 수입과 열악한 근로조건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통금이 해제되면서 사납금 인상으로 새벽 4시까지 운행해야 하고, 일정한 급료나 상여금 없이 사납금을 채운 나머지 돈으로 생계를 해결하므로 택시기사들은 생활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또한 제5공화국 출범으로 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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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약령시의 진흥을 위하여 설립된 경제단체. 대구 한약업자 조합(大邱漢藥業者組合)은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 내 한약종상(漢藥種商)들이 대구 약령시(藥令市)의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대구 한약업자 조합은 대구한약상조합, 대구한약업조합, 대구한약자조합, 대구한약조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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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신설된 군대 조직. 대구헌병분대(大邱憲兵分隊)는 1905년 9월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러·일 간에 맺은 강화조약인 포츠머스조약을 계기로 편성된 주둔군 헌병대에서 비롯되었다. 주둔군 헌병대는 대구를 비롯한 서울·부산·인천·평양 등 12개 지역에 헌병대 분대를 설치하고, 그 밑에 56개의 헌병분견소를 두었다. 1906년 3월 주둔군 헌병대는 통달(通達) ‘제한 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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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대구형무소 수감자들이 단독 정부 수립 반대를 위해 일으킨 단식 투쟁. 1946년 10월 항쟁 이후 미군정이 추진한 대한 정책의 핵심은 중도파에 대한 파괴 분열 공작이었다. 중도파 분열 공작은 좌우합작위원회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구성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설치 과정에서 나타났다. 또 1947년 초반 미국은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정안을 사실상 폐기하고 단독 정부 수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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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기독교 기관. 대구YWCA는 젊은 여성들에게 인류는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자기 삶에 실천함으로써 정의·평화·창조 질서의 보전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건설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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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기독교 기관. 대구YWCA는 젊은 여성들에게 인류는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자기 삶에 실천함으로써 정의·평화·창조 질서의 보전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건설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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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대구 지역 여성 판소리 명창에 대한 이야기. 대구광역시는 오랫동안 판소리 불모지로 알려져 왔는데 과연 사실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임진왜란을 겪은 후 대구 지역이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되면서 1601년(선조 34)에 경상감영이 안동시에서 대구광역시로 옮겨 왔다. 이로부터 대구광역시는 경상도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고, 경상도의 문화와 예술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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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신앙의 뿌리를 내린 종교인과 동반성장한 종교 단체들. 대구광역시의 여러 종교 기관들이 지닌 인적·물적 기반들은 지역 사회의 연대를 위한 밑거름으로 작용하였다. 대구에 뿌리내린 종교 기관들이 대구 지역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는 바는 앞으로도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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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운영 중인 대구광역시 산하의 사무소. 대구광역시 서울본부는 중앙행정기관과의 협조를 받아 대구광역시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대구광역시청 산하에 설치된 사업소이다. 서울본부장은 지방 서기관, 또는 일반 임기제 공무원으로 임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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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부가 발주하여 작성한 도시계획 용역 결과 보고서. 「대구부도시계획 개요(大邱府都市計劃 槪要)」는 1922년 8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토목부원 우에다 마사요시[上田政義], 오쿠이 료타로[奧井亮太郞] 등이 대구부의 용역을 받고 제출한 도시계획 보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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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근로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생활상. 대구광역시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달서구는 성서산업단지,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등의 영향으로 외국인근로자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며, 종교 기관을 중심으로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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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문총구국대와 각 군별 종군작가단이 활동하면서 피란 문인과 지역 문인이 어우러져 전쟁 문단이 형성된 대구. 대구는 6·25전쟁 발발 직후 대전에서 결성된 문총구국대와 1·4후퇴 이후 각 군별로 결성된 종군작가단이 활동하면서 피란 문인과 지역 문인이 어우러져 전쟁 문단이 형성된 곳이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문총]는 전쟁 발발 다음 날인 1950년 6월 26일에 비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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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다양한 이념과 폭넓은 운동 노선의 독립운동이 펼쳐지는 배경이 된 1919년 대구의 3·1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전민족적 항일운동의 서막이 올랐다. 한국인의 의식에 농축된 자주와 독립에 대한 열망이 민족자결이 고조되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맞물려 폭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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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전개된 민주·민족운동. 대구광역시의 4·19혁명은 2·28민주운동에서 시작되어 3·15부정선거 시위를 거쳐 4·19로 이어지면서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민족운동이 싹트게 하였다. 4·19혁명 시기 대구광역시에서 다양한 민주·민족운동이 봇물 터지듯 표출되어 한국의 민주·민족운동을 선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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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발행된 문예 작품집이자 동인지. 대구의 근대 문예 동인지(近代文藝同人誌)는 한국 문학의 형성기인 1920년대부터 광복 전후 시기까지 ‘대구’라는 지역적 공간을 배경으로 활동한 동인들이 기획·집필·편집·발행한 동인지와 학생 문단에서 발행한 교우지, 그리고 대구 지역을 기반으로 발행된 문예지를 포함한 문학잡지를 통틀어 일컫는다. 대구의 근대 문예 동인지는 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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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시인 이상화 집안의 활약상.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시인 이상화는 독립운동가인 형 이상정과 우국지사인 큰아버지 이일우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경주이씨 집안의 풍조를 내면화하고 있는 이상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훌륭한 인재를 키운 가풍을 들여다보면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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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활동한 동인들이 기획·집필·편집·발행까지 한 동인지와 대구 지역을 기반으로 발행된 문예지를 포함한 문학 잡지. 대구의 문예동인지는 발행 주체에 따라서 교우지, 동인지, 문예잡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구광역시 근대문학 문예지는 교우지에서 출발하여 수많은 동인지와 문예지의 발간으로 이어지며 지역 문단이 확장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대구 계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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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특색을 상업 도시로 각인되게 한 대구의 시장.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시장이 생겨나고, 시장을 배경으로 객주가 등장하였다. 더욱이 대구는 경상감영이 설치된 경상도의 수부였고, 낙동강 물길을 배경으로 바닷가의 해산물과 내륙의 곡물을 교환하는 방식의 어염미두(魚鹽米豆) 무역의 주요 지점이었다. 조선 후기 대구에는 10여 개소의 시장이 열렸으며, 지금도 그 명맥을 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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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출신으로 한국영화를 이끈 영화인. 대구에서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던 1930년대부터 활동하였던 감독 중에는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이들이 많다. 대구를 대표하는 영화인으로는 민경식, 이규환, 조긍하, 봉준호, 배용균, 이창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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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의 학생운동과 193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인물 김일식. 김일식(金一植)[1912. 10. 3.~1953]은 1912년 대구의 남산동에서 분성김씨(盆城金氏) 김영우와 이귀갑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일식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형제와 아버지 형제에게서 항일독립운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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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대구와 경북의 각급학교 교사들이 교원의 이익 옹호와 학원의 민주화를 위하여 만든 교원 노동조합. 4·19혁명을 계기로 대구와 경북의 각 학급 교사들이 ‘정치적 중립’, ‘학원의 자유’를 내세우며 대구지구중등학교교원노동조합, 대구지구초등학교교원노동조합, 경북지구중등학교교원노동조합을 설립하여 교원의 지위 향상 및 신분 보장, 교원노조의 합법화 투쟁, 학원 부정부패 척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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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연료 에너지인 연탄과 가스를 제조·판매한 회사. 대성산업은 1947년 5월 10일 대성산업공사로 출범하였다. 대성산업은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서 연탄공장을 시작하여 석유, 도시가스, 해외 유전 개발 등 한국의 에너지 산업을 주도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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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과 서구 원대동에 있었던 견 및 인견을 생산한 섬유회사. 대원직물공업의 창립자 최익성(崔翼成)은 일본의 수탈로부터 벗어나려면 직물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믿고,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일신공업학교 섬유공학과를 1935년에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36년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에 대원직물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당시 달성동과 비산동에 직물공장이 많이 생겨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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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한일회담반대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대구에서 결성된 단체. 1964년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기 위하여 한일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대일 협상 진행 과정을 비밀에 부쳐 온 박정희 정부는 1964년 3월 한일회담의 타결, 조인, 비준을 5월까지 마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정희 정부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관한 문제를 한일회담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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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주요 활동을 남긴 대한민국 대통령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상당수가 대구에서 삶의 변혁기 또는 정치적 전환기를 맞았다.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은 특히 대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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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3가에 있던 기업체. 대하통상 창업자 채병하는 1990년대 대구 지역을 주도하였던 기업인 중 한 명이다. 채병하는 영남대학교 상학과[현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원사를 판매하다 1973년 대하섬유를 설립하였고, 대하통상은 대하섬유의 후신으로 1977년 1월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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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대구에서 결성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대구 지역 조직. 1946년 2월 8일 대한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탁치반대조선국민총동원위원회가 결합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결성된 것을 계기로 대구에서도 1946년 3월에 조선독립경북촉진회와 탁치반대조선국민총동원위원회 경북본부가 합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상북도지부가 발족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아 대구에서도 1946년 5월 17일에 대한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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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대구에서 결성된 학도의용군.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학생들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켜 내기 위하여 ‘책 대신 수류탄과 총을 달라’면서 자원입대하였다. 자원입대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징집 연령 18세에 미달하는 14세~17세에 불과하여 학도병 또는 학도의용군이라고 불렀다. 학도의용군들은 책 대신 수류탄 몇 개와 총 한 자루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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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대구 달성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계몽 운동 단체. 대한협회 대구지회는 1907년 국채 보상 운동 이후 대구, 달성 지역의 계몽 운동 세력이 설립한 계몽 운동 단체로서 대구 광문사와 대구 광학회를 역사적으로 계승하면서 지역에서 교육 운동과 실업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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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엑스코에서 매년 3월에 개최하는 섬유 생산 관련 기계 박람회. 대한민국 국제섬유기계전은 1976년부터 28년간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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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길림 주재 군정사의 독립운동 자금 마련 운동. 일제의 한 일 병합 이후 독립 전쟁론에 입각한 독립군 기지 건설 운동이 중국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를 위한 독립운동 자금을 국내에서 조달하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대한민국 길림 주재 군정사는 1918년 4월 무렵 김영순이 중국 길림성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유동열(柳東說)을 만나 조선 독립을 위해 청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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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에 있는 최치상을 추모하는 개항기 재사. 도남정사는 조선 후기 제선공가감역(除繕工假監役)을 지낸 성균진사(成均進士) 최치상(崔致翔)[1831~1886]을 추모하기 위하여 1899년(고종 39)에 지은 재사이다. 별칭으로 ‘추원재(追遠齋)’라고도 불리는 도남정사는 최치상의 손자인 최해윤(崔海潤)이 지었다. 최해윤은 1924년 5월 김창숙(金昌淑)의 독립운동 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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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조선시대에 사람이나 탈것 등이 다니도록 땅 위에 만들어 놓은 도로와, 짐을 옮기는 데 쓰이는 교통수단. 조선시대는 서울[한양, 한성]이 나라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전국의 도로망은 서울을 중심으로 9개의 간선도로를 설정하였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뻗은 도로는 그 멀고 가까움에 따라 등급을 대로·중로·소로로 나누었다. 영남로의 경우 죽산 분행역(分行驛)[후기에는 광주 낙생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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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이 도시적으로 변화하는 현상. 도시화는 인구의 도시집중과 이에 따른 지역적·사회적 변화 양상을 포함하여 도시가 되는 과정이며, 도시적 생활양식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공간적 의미에서 도시화는 인구수가 증가하고 인구밀도가 높아지며, 비농업적 산업 비율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도시 수의 증가와 도시권의 확대가 나타나는 현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 도시화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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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도정호(都正浩)[?~?]는 대한제국의 외획 제도로 운영된 경남봉쇄원에서 활동하였으며,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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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 독립운동을 전개한 사람. 대구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한국 침략에 저항하며 국권을 수호하고,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한 인사들이다. 대구의 독립운동은 조선과 대한제국 시기의 의병항쟁과 계몽운동, 식민지시기 대중운동, 문화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외 항일운동, 학생운동, 광복군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노선에 의하여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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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5월 대구에서 우익 진영에서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이후 개최한 정치 집회. 독립전취경북국민대회는 1946년 2월부터 진행된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이후 5월 12일 서울에서 열린 독립전취국민대회에 영향을 받아 대구의 우익 진영이 개최한 정치 집회였다. 서울의 독립전취국민대회에서는 자주적 정부 수립이 주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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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전개된 만세독립운동 일제는 조선을 강제 병합한 뒤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민족동화정책을 기조로 한 식민지배정책을 폭압적으로 실행하였다.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기 이전부터 헌병경제찰제도를 도입하여 무단통치를 시행하였다. 경제적으로는 토지조사사업은 농민의 토지소유를 폭압적으로 소멸시키고 소작조건을 악화시킴으로써 조선인 자소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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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에 있었던 종합철물시장. 동국철물시장(東國鐵物市場)은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에 있었던 종합철물시장이다. 1969년 2월 1일 전국 처음으로 종합철물시장으로 개장되었다. 78개 점포가 각종 기계 부속품, 건축용 철물 자재, 농기구 각종 철재 등 공구 등을 판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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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에 있는 경부선 및 경부고속선 철도역. 동대구역은 대구시의 현대화 도시계획에 따라 1969년 6월 역사를 준공하여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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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 있는 버스터미널 및 복합환승센터. 2010년 12월 3일 국가시범사업으로 선정되었으며 2012년 8월 10일 개발계획 승인과 함께 (주)신세계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사업시행자로 지정되었다. 2013년 12월 2일 실시계획 승인·고시를 거쳐 2014년 2월 7일 건축공사에 착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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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안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전통시장. 동산상가(童山商街)는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안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광역 상권형 중대형 전통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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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청라언덕에 조성된 초기 외국인 선교사들의 묘지 동산의료원 은혜의 정원은 대구·경북 지방에 기독교를 전하러 왔다가 순교한 선교사들과 그들의 자녀가 묻혀 있는 외국인 묘지이다. 1997년 흩어져 있던 선교사들의 묘를 동산병원 의료선교박물관 경내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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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 있는 클럽, 주점 등 젊은 소비층을 대상으로 한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골목. 동성로 로데오골목은 대구광역시의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의 동편 끝자락에 위치하여 있으며, 각종 소규모 의류 매장과 맛집, 술집, 카페, 클럽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젊음의 거리이다. 특히 클럽 밀집가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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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발행되고 있는 전국 단위의 동시 전문 잡지. 『동시발전소(童詩發電所)』는 대구 지역 동시인을 중심으로 발행되는 동시 전문 잡지이다. 기획위원으로 백우선, 강기원[이상 서울], 박예분[전라북도], 권영욱[대구] 등이며, 편집위원은 곽해룡[서울], 김성민, 김종헌, 김현숙[이상 대구], 남은우[울산], 김자미[부산] 등이다. 2019년 3월 창간 당시 발행인은 박승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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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에 있는 백화점 동아백화점 수성점은 부도심권인 지산·범물 지역의 상권을 겨냥하여 1996년 1월 27일 개장한 백화점이다. 150여 개의 패션 브랜드를 비롯하여 킴스클럽, 모던하우스 등이 입점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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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에 제작된 복합 군현도이자, 역사 지도로서 달성군 구역에 포함된 대구·현풍·하빈·화원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도. 동여비고(東輿備考)는 32종의 지도를 60면으로 나누어 한 책에 수록한 지도책이다. 이 지도책의 앞부분은 역사 지도이고, 그 뒤에 도성도(都城圖) 등의 특수 지역도가 있고 그리고 대부분은 도별도와 군현도로 되어 있다. 도별 총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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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동 일대에 건설된 비행장. 1931년 대구부의 도시계획에 따라 현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동 일대를 대구부[지금 대구광역시]에 편입해 비행장 건설을 계획하였고, 1930년대 초 대구에도 국제 항공로의 비행장이 설치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대구비행장 설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수년 동안 아무런 활동 없이 지내다가 1933년 8월 8일 대구공회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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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부터 2018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일대에 건설된 비행장으로, 현재 군사비행장과 대구국제공항이 병행 운영되고 있는 비행장. 1937년 1월 31일에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일대에 대구비행장이 개장함으로써 대구광역시도 항공시대를 열게 되었다. 대구비행장 설치 움직임은 1930년에 최초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대구[대구광역시]에도 국제 항공로의 비행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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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있는 동촌유원지를 배경으로 그린 이중섭의 그림.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 동촌유원지(東村遊園地)는 화가 이중섭(李仲燮)[1916~1956]이 남긴 대구를 배경으로 한 유일한 작품, 「동촌유원지」의 배경이기도 하다. 6·25전쟁 당시 많은 문인, 예술가들이 대구[대구광역시]로 피난하면서 자연스레 대구는 문화 예술의 거점도시가 되었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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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중국 산해관에 올라 만리장성을 보며 읊은 한시. 「등산해관관만리장성(登山海關觀萬里長城)」의 저자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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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중국을 유람하면서 황학루에 올라 지은 한시. 「등황학루(登黃鶴樓)」의 저자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04년 서울을 유람하고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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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방영된 대구광역시를 배경으로 1979년 당시 소녀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는 문학평론가 김용희의 첫 번째 동명의 장편소설을 각색하여 제작한 8부작 월화 드라마이다. 2017년 9월 11일부터 2017년 10월 3일까지 KBS 2TV에서 방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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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상인 지점. 롯데백화점 상인점은 2004년 2월 20일 인구 60만 명의 달서구 지역 주민들을 주 대상으로 달서구 상인동에 개점한 대형 백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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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에 있던 음악감상실. 르네상스는 1951년 박용찬이 레코드 4,000장을 싣고 와서 만든 감상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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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1가에 있던 극장. 1920년 12월 21일에 조선관이 화재로 소실되자, 1922년 6월 조선인 유지 14명과 일본인 1명이 조선관 터에 이오극장(二五劇場)을 지으려고 하였다. 1922년 8월에 관명을 만경관(萬鏡舘)으로 바꾸었으며, 1923년 3월 7일에 개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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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한 한시. 「만음(謾吟)」의 저자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04년 서울을 유람하고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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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대구에서 일어난 한일회담반대운동. 1964년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기 위하여 한일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대일 협상의 진행 과정을 비밀에 부쳐 온 박정희 정부는 1964년 3월 한일회담의 타결, 조인, 비준을 5월까지 마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정희 정부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관한 문제를 한일회담의 부차적인 내용으로 간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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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있는 매일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지역 종합 일간지. 『매일신문』은 대구광역시에서 발행되는 지방 종합 일간지로 조간 신문이다. 1946년 창간되었으며, 천주교 대구대교구유지재단에서 운영하지만 종교색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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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매천동(梅川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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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서식하는 맹꽁잇과에 속하는 양서류. 우리나라, 중국의 만주 지역 등지에 분포하는 맹꽁잇과의 양서류로, 우리나라에서는 전국 주요 습지에서 서식한다. ‘맹꽁이’라는 이름은 울음소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별칭으로는 쟁기발개구리, 맹꾕이, 맹꼬이, 멩마구리, 밍메기 등이 있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천동 816번지에 있는 대명유수지에서 2013년 8만 7650마리의 맹꽁이가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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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아픈 몸을 이끌고 여러 친구들과 동호를 유람하고서 지은 한시. 「모춘여제익부병유동호(暮春與諸益扶病遊東湖)」의 저자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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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국주의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킬 즈음인 1940년에 대구 사범 학교에서 조직된 항일 비밀 결사. 무우원(無憂園)은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민족의 낙원을 건설하고, 폭력적인 투쟁이 아닌 문화·경제적인 힘을 길러 독립을 달성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무우원이라는 이름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근심 걱정 없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자는 뜻이자, 유태인처럼 경제의 힘을 길러 적을 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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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달성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남평(南平). 본명은 문봉각(文鳳珏)이다. 충선공 문익점(文益漸)의 20세손이며, 11대조 문세근(文世根)이 처음 달성으로 옮겨와 살았다. 9대조 문영남(文榮南)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동, 선략 장군 훈련 봉사(宣略將軍訓練奉事)의 직을 받았다. 아버지는 문하규(文夏奎)이고, 어머니는 경주 이씨(慶州李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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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발행된 문학잡지. 『문원』은 대구 문원사에서 신삼수(申三洙)[발행인]가 발행한 문예 전문잡지로, 인쇄는 선일인쇄소, 발행은 대구 동성동2가 9[일제강점기 당시 주소]의 대구 문원사에서 발행하였다. 1937년 4월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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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범학교와 대구교대 출신의 문인 중심으로 활동한 문학 동인. 문학·경부선 동인은 1975년 5월 30일 발족된 동인이다. 창간호에 나오는 “꿈이 부풀었던 유년의 열두 해를 한 집안 한 뜨락에서 커나온 형제와 자매들이 경부선 곳곳에서 자리하여”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보면, 박곤걸을 중심으로 서울, 대구, 부산 등 ‘경부선 곳곳에서’ 활동하는 대구사범학교 출신 문인들로 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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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문한우(文漢雨)[1921~2000]는 1921년 1월 22일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에서 태어났다. 1944년 강제 징집되어 대구 제24부대[경북방위군 제24부대]에 배치되었으나, 동지들과 함께 부대를 탈출하여 일제에 저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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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의 문학, 영상 공연, 전통, 음악 등 예술 및 문화 활동 전반을 아우르는 활동. 문화예술(文化藝術)이란 문학, 영상 공연, 전통, 음악 등 예술 및 문화 활동 전반을 아우르는 활동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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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이루어지는 문화, 예술과 관련된 모든 활동. 대구광역시에서 문화예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대개 1910년대 전후 시기였다. 우선 문학에서는 『계성학보』의 발간과 동인지 발간이 시작되며, 순수문학으로 후퇴했다가 다시 항일과 저항의 문학 동인지가 등장하게 된다. 광복 후에는 『죽순』이라는 시 동인지가 발간되어 전국적인 호응을 받았으나 6·25전쟁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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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7월 27일 대구의 달성공원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대구시위원회가 미소공동위원회 속개를 축하하고 임시정부 수립을 촉진하기 위하여 개최한 시민대회. 1946년 2월 서울의 덕수궁에서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안에 따른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으나 미소공동위원회 참가 자격 문제로 인하여 휴회하였다. 이후 1947년 5월 미소공동위원회가 속개되었다.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는 1946년 6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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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예술세계를 꽃피운 화가들과 대표 미술관. 대구에서 한 해에 배출되는 미술대학 전공자들은 1,000여 명에 이른다. 대구의 미술대학 전공자들은 어떤 미술관을 드나들며 어느 미술관에 작품을 내걸까. 수준 높은 미술 전시를 1,000원의 행복으로 가능케 한 대구미술관, ‘봉리단길’이라 불리며 문화거리를 선도하는 봉산문화회관, 매달 대구 미술 전시 매거진을 발행하는 대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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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대구·경상북도 지역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하기 위하여 결성된 단체.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공헌한 재야인사들은 민주주의 실현과 민족 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재야 민주 통일운동 단체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하고 1984년 10월 16일 민주통일국민회의(民主統一國民會議)[약칭 국민회의]를 창립하였다. 민주통일국민회의는 장기표, 백기완, 김병걸, 계훈제, 김태홍, 이호철 등 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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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이자 서예가. 박기돈(朴基墩)[1873~1947]은 18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고, 서예가이자 경제인으로서 활동하며 교육운동·사회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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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국악인. 박기홍(朴基洪)[1848~1925]은 1848년에 전라남도 나주의 전통 예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함양이다. 이날치, 김창환과 이종 간이다. 아버지 박재형(朴在亨)은 정춘풍의 수행고수였다고 한다. 당시 조선 소리를 끝막다시피 한 동편제의 종장(宗匠)이었으며, 미리 ‘소리 값’을 정하고 소리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다. 박기홍은 ‘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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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만규(朴晩閨)[?~?]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1926년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한 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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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명줄(朴明茁)[1903~1963]은 1903년 10월 1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대구에서 청년운동과 신간회(新幹會)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경상북도 의성에서 적색농민조합운동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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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몽득(朴夢得)[1915~1989]은 1915년 1월 31일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금전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대구부 남산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으로 이주하여 농촌 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항일 비밀결사 대구노동자협의회에도 관여하였다. 박영옥(朴英鈺)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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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병옥(朴炳鋈)[?~?]은 교남교육회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대구 지역 교육 진흥에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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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성의 묘비. 박성(朴惺)[1549~1606]은 조선 중엽의 학자·의사(義士)로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응(德凝), 호는 대암(大庵)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배신(裵紳)[1520~1573]에게 사사하였으며, 과거 시험에의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정진, 최영경(崔永慶)·김면(金沔)·장현광(張顯光) 등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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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승동(朴承東)[?~?]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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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6·10 만세 운동을 주도한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달성군에서 태어난 박용규(朴龍圭)는 서울의 중앙 고등 보통 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6년 순종의 인산일(因山日)을 기해 일어난 6·10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박용규를 포함한 중앙 고등 보통 학교와 중동 학교 학생인 곽대형(郭戴炯)·김재문(金載文)·황정환(黃廷煥)·이동환(李東煥) 등은 순종의 승하 소식을 듣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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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정동(朴晶東)[?~?]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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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살림집. 박정희 대통령 살림집은 ‘박근혜 대통령 생가터’로도 불린다. 박정희는 1950년 12월 12일 육영수와 결혼 후 중구 삼덕동에 살림집을 차렸다. 전 대통령 박근혜도 삼덕동에서 태어났으며, 유년 시절을 박정희 대통령 살림집에서 보내다가 1960년 서울로 올라갔다. 박정희 대통령 살림집은 철거되어 가게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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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작곡가. 박태원(朴泰元)[1897~1921]은 198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제일교회에서 운영한 대남학교를 거쳐, 1911년에는 계성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15년 계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1916년에 평양 숭실대학교 문학부에 진학하였으나, 곧장 거처를 서울로 옮긴 뒤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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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법조인이자 정치인. 박해극(朴海克)[1882~?]은 1882년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관련 사건들을 변호하였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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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1949년 2월 대구에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경상북도 조직. 1948년 8월 5일 국회 제40차 본회의에서 김웅진 의원 등이 ‘반민족행위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 구성안을 긴급동의로 제안하여, 거수표결 끝에 재석 155, 찬성 105, 반대 16표로 가결되었다. 곧바로 28명의 기초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안 기초작업에 착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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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는 대구제3산업단지의 토종 산업과 미래산업. 대구광역시의 제3산업단지는 북대구IC, 신천대로, 도시철도 3호선 등 뛰어난 교통 여건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하중도와 신천 그리고 금호강 등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곳으로 대구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경공업 집적 단지로서 지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제3산업단지가 출범 40여 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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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출신 감독 이규환이 1933년 제작한 영화. 이규환(李圭煥)[1904~1982]은 1932년 「임자 없는 나룻배」를 발표하고 이어서 1933년 「밝아가는 인생」의 감독을 맡았다. 「밝아가는 인생」의 출연자는 서월영, 노강, 심영섭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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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방한상(方漢相)[1900~1970]은 1900년 8월 2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호는 만취(晩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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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대구에서 결성된 우익 청년 단체. 1947년 2월 16일 대구공회당[북구 칠성동]에서 우익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배달청년단(倍達靑年團)은 대구 지역 우익 진영의 강화를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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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배상연(裵相淵)[1889~?]은 1889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서 태어났다. 재건 달성친목회와 관계를 맺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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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백남채(白南埰)[1888~1950]는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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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대천동에 있는 의자 및 오피스 시스템의 생산 전문 기업체. 베스툴은 1994년 4월 의자 부품과 의자 완성품을 생산하는 부호실업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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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일본 군대. 보병80연대(步兵八十聯隊)는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합한 뒤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2개 사단과 함께 대구에 배치된 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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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정월 초에 행하던 민속놀이.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는 해마다 정월이 되면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풍물을 치면서 집집마다 방문하여 땅을 다스리는 신령인 지신을 달래면서 한 해 동안 집안이 무탈하고 평안하기를 기원하였다. 이를 봉산동 지신밟기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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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전통 시대 군사 통신 시설. 봉수(烽燧) 또는 봉화(烽火)는 횃불이나 연기를 피워 올려 변방 지역에서 발생한 적의 침입이나 난리를 중앙에 알리던 통신 제도이다. 원래 봉수라는 용어는 밤에 불로서 알리는 봉인 연봉(燃烽)[횃불]과 낮에 연기로서 알리는 번수(燔燧)[연기]를 합친 말이다. 봉수가 행하여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였으나 본격적으로 법제화한 것은 고려 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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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에 위치한 산. 봉화산(烽火山)은 산의 정상에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지면서 유래된 것이다. 봉수대의 명칭은 1872년 제작된 조선 후기 지방 지도에 북봉대(北烽臺)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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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비슬산을 중심으로 전개된 불교 문화유산. 비슬산은 대구광역시의 달성군 가창면·옥포읍·유가읍과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에 걸쳐 있다. 비슬산의 최고봉은 천왕봉(天王峰)[1,088m]이며, 그 다음이 대견봉(大見峰)[1,059m]이다. 비슬산의 최고봉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으나, 2014년 8월 8일부터 천왕봉을 최고봉으로 공식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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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출생하여 활동한 서양화가 이인성이 1942년에 사과나무를 소재로 그린 유화. 「사과나무」는 대구 출신의 서양화가 이인성(李仁星)[1912~1950]이 그린 유화이다. 그림을 완성한 1942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1동에 있는 대구명덕초등학교에 기증되었다가, 1972년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에 기탁되었다. 2012년에는 ‘이인성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구시교육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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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의병운동을 펼친 사명대사 유정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딱지본 고소설.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병장(僧兵將) 사명대사(四溟大師) 유정(惟政)을 주인공으로 한 딱지본 고소설은 작자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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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활동한 조선시대 승려 사명대사의 영웅담.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 의승군(義僧軍)을 일으켜 왜적을 크게 물리치는 공을 세우고, 일본에 통신사로 건너가 지혜와 불력(佛力)으로 왜왕을 제압하고 포로 3천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임진왜란 후 민중들은 전쟁 때 입은 상처를 사명대사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통해 정신적으로나마 극복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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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6월 대구에서 결성된 사회대중당의 경북 조직. 사회대중당경북도당(社會大衆黨慶北道黨)은 1960년 6월 15일 대구 구 국립극장에서 박기출·이동화와 대의원 825명 중 565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대중당경북도당 결성 대회’를 개최하였다. 결성 대회에서 이동화는 사회대중당을 “민주사회주의의 당이며, 노동자·농민·인텔리·중소 상공업자 등 광범위한 근로대중의 권익을 위하여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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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영천에서 조직되어 대구·현풍 등 영남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의병 부대. 산남 의진(山南義陣)[현풍]은 중추원 의관(議官) 정환직(鄭煥直)[1844~1907]이 의병을 일으켜 국권 회복을 도모하라는 고종의 밀명을 직접 받고 일으킨 의병 부대이다. 을사조약 이후 고종은 비밀리에 측근들에게 의병을 일으킬 것을 당부하는 밀조를 내렸다. 이강년(李康秊)·고광순(高光洵)·노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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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1가에 있는 음식점.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찜갈비골목에 있는 산호찜갈비는 1979년부터 2대째 대를 이어 내려온 갈비찜 전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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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전민족적 항일운동으로 일어난 만세독립운동. 1910년 8월 29일 조선을 강제 병합한 뒤 일제는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민족동화정책을 기조로 한 식민지배정책을 폭압적으로 실행하였다.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기 이전부터 헌병경찰제도를 도입하여 무단통치를 시행하였다. 경제적으로는 토지조사사업은 농민의 토지 소유를 폭압적으로 소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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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한 소년이 삼정승의 딸과 결혼한 일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옛날에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고 상좌(上佐)들을 부려 먹기만 하는 욕심 많은 중이 있었는데, 죽어서 구렁이가 되었다. 중이 구렁이로 태어난 것을 알아챈 상좌가 구렁이에게 머리를 바위에 세 번 박게 하자 머리가 갈라지면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나왔다. 파랑새는 죽은 중의 혼이었다. 중의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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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었던 대한민국 최초의 예술 전문 기관. 상고예술학원(尙古藝術學院)은 이상화(李相和)[1901~1943]와 이장희(李章熙)[1900~1929]의 유고집이 나온 것을 계기로 세워진 예술전문기관이다. 학원의 이름은 이상화의 호인 ‘상화(尙火)’의 상(尙)과 이장희의 호인 ‘고월(古月)’의 고(古)를 따서 지었다. 이상화와 이장희는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저항시인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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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에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 1914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뒤 반월산에서 지역 출신 정운해(鄭雲海)·최윤동(崔胤東)·최혁(崔赫)·엄주동(嚴柱東) 등의 청년들과 비밀리에 독립을 위한 새배달모듬(新倍達會)을 조직하였다. 새배달모듬 조직의 목적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고, 민족 사상을 고취하여 단결된 민족의 힘을 통하여 조국의 광복을 이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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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최해태가 발행한 아동 문예잡지. 『새싹』은 1946년 1월에 대구에서 최해태가 처음 발행하였다. 아동 문예잡지 『새싹』은 17호까지 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제14호[1949. 12. 5.]이다. 당시 참여한 필진으로는 최해태, 김진태[필명 김신일(金信一)] 등을 비롯하여 박영종[박목월], 이응창, 이종기, 여영택, 김요섭, 윤근필[필명 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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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고딕풍의 성당.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성당은 1927년 초대 대구교구장 드망즈(Demange)[한국명 안세화] 주교가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코미넷관의 우측 아케이드에 붙여 안쪽으로 증축한 건물이다. 드망즈 주교는 한국식 작은 집으로 주교관을 삼고, 주교관, 성당, 신학교 등의 건립 등 많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녀들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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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대구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의 수녀원.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은 1915년 드망즈(Florian Demange)[한국명 안세화] 주교가 계산성당 로베르(Achille Paul Robert)[한국명 김보록] 신부의 도움을 받아 건립한 수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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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대구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의 수녀원.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은 1915년 드망즈(Florian Demange)[한국명 안세화] 주교가 계산성당 로베르(Achille Paul Robert)[한국명 김보록] 신부의 도움을 받아 건립한 수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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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십영(大丘十詠)」을 지은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字)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 증조할아버지는 전객사(典客事)를 지낸 서익진(徐益進)이고, 할아버지는 호조 전서를 지낸 서의(徐義)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를 지낸 서미성(徐彌性)이며, 어머니는 문충공 권근(權近)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군사(郡事) 김여회(金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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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이 15세기 대구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10수로 지은 연작시. 서거정[1420~1488년]의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四佳) 또는 정정정(亭亭亭),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대구(大丘)이다. 아버지인 안주목사 서미성과 세도가 문충공 권근의 딸인 어머니 안동권씨 사이에서 2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나 25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른 이후 69세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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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에 조성된 가로 공원. 서구청가로공원(西區廳街路公園)은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 서구청의 담장을 허물고 조성한 가로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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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3가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 서대구고속버스터미널은 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3가에 있으며, 1982년 10월에 개장하였다. 북구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터미널 개장 당시 경부고속도로의 구 서대구나들목이 터미널 인근 팔달교 북단에 위치하여서 명칭은 ‘서대구고속버스터미널’로 칭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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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미술가. 서동진(徐東辰)[1900~1970]은 1900년 1월 1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에서 태어났다. 호는 소허(小虛)이다. 지역 미술가들과 함께 대구 최초의 한국인 서양화 모임인 영과회를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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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 있는 건어물 전문 전통시장. 서문시장 건어물상가(西門市場乾海産物商街)는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 있으며, 건어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광역권형 소형 전통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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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직물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전통시장. 서문시장 제1지구(1층) 직물시장[西門市場第1地區(一層)織物市場]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제1지구에서 직물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광역권형 중형 전통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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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포목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전통시장. 서문시장 제1지구(2층) 포목시장[西門市場第1地區(二層)布木市場]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제1지구에서 포목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광역 상권형 중형 전통시장이다. 서문시장은 1922년 9월 28일 공설시장 개설 허가를 받았으며, 정기 시장으로 매월 2일, 7일에 장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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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 있는 전통시장. 서문시장 제5지구(西門市場第五地區)는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내에 있는 광역 상권형 전통시장이다. 서문시장은 1922년 9월 28일 공설시장 개설 허가를 받았으며, 정기 시장으로 매월 2일, 7일에 장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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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 있는 전통시장. 서문시장 제5지구(西門市場第五地區)는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내에 있는 광역 상권형 전통시장이다. 서문시장은 1922년 9월 28일 공설시장 개설 허가를 받았으며, 정기 시장으로 매월 2일, 7일에 장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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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서병규(徐炳奎)[?~?]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였으며,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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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서병조(徐丙朝)[1886~1952]는 1886년 대구에서 서상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창씨명은 대봉병조(大峰丙朝)이다. 일제강점기 중추원 부의장을 지내고 지방 공로자로서 일제로부터 표창을 받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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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애국계몽운동가. 서상거(徐相巨)[1885~?]는 1885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08년 교남교육회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교남교육회는 서울에 거주하는 영남 출신 인사들이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1908년 3월 15일에 설립한 교육 계몽 단체였다. 교남교육회가 경상북도 각 지역에 지회를 설립할 때 서상거는 강영주(姜永周)·김광제(金光濟)·김우근(金遇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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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서상일(徐相日)[1886~1962]은 개항기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계몽운동, 비밀결사, 언론활동, 경제활동, 자치운동, 한국민주당 활동, 제헌국회 의원, 야당통합운동, 진보당과 사회대중당 및 혁신정당 활동 등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다양한 행적을 남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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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상태(徐相台)[1924~2012]는 1924년 2월 1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에서 태어났다.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 도바타시[戶畑市]에서 조선인 차별 대우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독립 의지를 고취하고자 항일 비밀결사 흥맹회(興氓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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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창립한 대구 지역 여성 시인 동인. 서설 동인은 대구 지역 여성 시인의 모임으로, 1989년 1월 20일에 창립된 동인이다. 지역적 차별에 맞서 한국 시단의 발전을 모색하기 위하여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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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인식(徐寅植)[1906~?]은 1906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중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서 활동하였고, 대구에서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과 반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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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시인. 서정희(徐貞喜)[1924~1967]는 1924년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혹은 양주군]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수학하였으나 한국전쟁 중 대구로 피난 와서 시작 활동을 하였다. 유치환은 서정희의 시집 『배암』의 서문에 “뜨거운 몸부림과 그 몸부림을 스스로 가눌 줄 아는 이지(理知)의 비약이 잔잔히 숨 쉬고 흐른다.”라고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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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학이(徐學伊)[1900~1955]는 1900년 6월 15일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대황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흑파(黑波)라는 별칭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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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동2가에 있는 건설 전문 기업체. 서한은 1971년 대구 주택공사로 창립한 후 전국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주택 건설회사이다. 서한은 주택 건설뿐만 아니라 토목 사업, 기전 사업, SOC 사업, 그리고 에너지 환경 사업 분야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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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서흥균(徐興均)[?~?]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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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에 일본인이 세운 염색 업체. 1890년부터 1910년에 이르는 20여 년은 개항장을 중심으로 한 대외무역이 발전한 반면 국내 가내수공업은 몰락하여 갔다. 이 시기는 새로운 근대적 공장제공업이 생성 발전하는 조선 공업의 여명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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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 군민들이 자치 단체장, 지방 의회 의원, 지역 국회 의원, 대통령 등을 투표 등의 방법으로 선출하는 행위. 선거란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고 정치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요 선거는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대통령 선거, 국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국회 의원 선거, 「지방 자치법」에 따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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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완전주의적 입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개신교 교파. 성결교는 그리스도와 그 사도들의 전통에서 시작되었다. 사도들의 전도와 선교는 요한 웨슬리의 성결 운동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성결교의 완전주의적 입장이란 내적인 죄와 외적인 죄에서 모두 자유로울 수 있어야 완전하게 성결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회심을 중요하게 여기며, 근본주의적 신앙 형태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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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최종한이 『성남세고』에 부친 서문. 「성남세고 서문(城南世稿 序文)」을 쓴 최종한(崔宗澣)[?~?]은 일제강점기에 대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유학자이다. 경상북도 영천 출신이다. 『성남세고(城南世稿)』를 1차 편집하고 서문을 지었다. 이칭으로 「성남세고서(城南世稿序)」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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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천주교, 성공회, 정교회 등에서 각종 의례 집전을 위하여 지은 종교 건축물.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회·천주교회 건물 및 정교회 건물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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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섬유 산업의 역사와 전망. 1918~1920년대의 대구는 명주로 먼저 유명해진다. 명주란 원래는 명(明)나라에서 생산한 견직물(絹織物)을 가리킨 것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주로 견사(絹絲)를 사용하여 짠 직물을 말한다. 일본의 양잠업은 상주 등 경북 각처의 풍부한 원료를 이용하여 명주실 공장을 세워 일본으로 대량 운반하였다. 이때 하급품이 국내로 흘러들었으며 보부상에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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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조카 이상정을 걱정하며 지은 한시. 일제강점기 이일우가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군에게 무장투쟁하고 있는 조카 이상정을 걱정하며 지은 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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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대구광역시에서 고려서적주식회사에 의하여 발행된 아동문학 잡지. 피난지이던 대구광역시 지역에서 1952년 7월 『소년세계』[1952년 7월~1956년 9월]는 창간호를 내며 발행된 아동 잡지이다. 『소년세계』 창간호는 50면으로 구성되었으며, 월간지로 기획하여 발행되었다. 당시 대구 북성로의 고려서적주식회사에서 제작하였으며, 1954년 1월 서울로 사옥을 이전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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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인식(孫仁植)[1894~1975]은 1894년 5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현 광주광역시]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고, 이후 신간회 대구지회에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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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에서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지내는 제사. 사직단은 조선시대에 토지를 주관하는 신인 사(社)와 곡식을 주관하는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냈던 제단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를 ‘종묘사직(宗廟社稷)’이라고도 일컬었는데, 그만큼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인 종묘와 더불어 사직을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시하였다. 사직제는 주로 봄가을에 사직단에서 지내는 제사인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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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수성못을 배경으로 제작하여 2018년 개봉한 영화. 「수성못」은 한 대구광역시 출신인 유지영이 감독하여 제작한 영화이다. 수성못은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위치한 못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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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만년에 친구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지은 한시. 「수우인(酬友人)」의 저자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04년 서울을 유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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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젊은 시절의 벗 윤지암을 우연히 만나 지어 준 한시. 「수윤지암(酬尹止巖)」은 이일우(李一雨)[1870~1936]가 젊은 시절의 벗 윤지암을 우연히 만나 지어 준 한시이다. 저자 이일우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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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월 대한제국 순종황제가 대구, 부산, 마산을 방문하는 순행 중 대구를 방문한 사실.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남순(南巡)은 1909년 1월 신년 하례식 자리에서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제안에 따라 이루어졌다. 황제의 순행은 민심 안정, 지방 순시를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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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서사민요. 「시골 여자 이혼가」는 집을 떠나 소식이 없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담아낸 일종의 신세 한탄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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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에서 효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시아버지 장가들인 효부」는 홀로 지내는 시아버지가 이웃집 할머니와 다정하게 지내는 것을 알아챈 며느리가 혼인을 시켜 주었다는 효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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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주로 활동한 시인과 시작품 세계. 시인 기형도가 대구를 가리켜 ‘시인들만 우글거리는 신비한 도시’라고 표현했듯이, 대구광역시는 유독 시문학이 발달하여 왔으며 시인들의 주요 거처가 되고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근대 시인으로 이상화와 이육사, 이장희, 박목월, 조지훈, 이호우, 김춘수를 들 수 있으며, 현대 시인으로 이성복, 장정일, 이하석, 이태수, 박남철,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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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신문 기사 속에 등장하는 대구의 모습. 대구광역시는 서울, 부산, 대전과 함께 대한민국 5대 도시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한 도시이다. 그중에서도 근현대기 대표 언론인 신문에 나타난 사건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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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대구에서 결성된 서울계의 사상단체. 1920년대부터 형성된 공산주의자들의 파벌은 크게 화요계[박헌영·이승엽·김찬·조봉암 등], 서울계[이영·정백·이정윤·최익환], ML계[마르크스·레닌계, 권태석·하필원·최창익], 콤그룹계[이관술·이현상·김삼룡·정태식] 등이 있었다. 1925년 2월 10일 대구노동공제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한 신사상회(新思想會)는 대구 지역에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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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 중심 하천으로 대구광역시 영역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신천의 물줄기. 대구분지는 여러 하천이 발달하여 생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고문헌과 관련 자료에 따르면 신천(新川)은 예로부터 대구분지의 다른 하천들에 비하여 대구부(大丘府) 주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신천이 대구부 주민들에게 친숙하게 여겨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천은 지리적으로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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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신현욱(申鉉旭)[?~?]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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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썬뉴스사에서 발행하는 인터넷 신문. 썬뉴스는 국민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고, 부당한 권력과 국가행정 및 잘못된 경제구조를 견제 및 비판함으로써 국민의 편에서 부패한 국가와 사회를 정화하고, 참다운 자유민주국가로 성장하는 데 일조하고자 창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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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대구 지역에서 설립된 조선아동회가 창간한 아동문학 잡지. 『아동(兒童)』은 조선아동회(朝鮮兒童會) 출판국에서 편집을 담당하였고, 대구시 동본정(東本町)에 있는 태평출판사에서 인쇄한 아동문학 잡지이다. 조선아동회의 기관지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재철이 1989년에 쓴 『세계아동문학사전』에 따르면, 1946년 4월에 창간되고 1949년에 폐간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로서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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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대구 지역 조선아동회 출판국에서 발행한 아동 그림 잡지. 1945년 12월 30일 대구 지역에서 조선아동회(朝鮮兒童會)가 발기되었다. 회장은 이영식(李永植), 회원은 이원식(李元植), 김진태(金鎭泰)였다. 『아동회그림책』은 해방 직후 조선아동회(朝鮮兒童會)의 아동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1946년 2월에 발행된 월간 아동 그림 잡지이다. 『아동』 제3호에 실린 내지 광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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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전국 최초의 지방은행으로 대구에 설립된 금융기관. 1967년 1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지역적 자본을 집대성하여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내자(內資) 동원의 극대화를 위하여 지방은행의 설치를 검토·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일주일 후인 1월 23일 대구상공회의소를 주축으로 대구 지역 경제인 43명이 만났다. 이후 대구 지역 경제인들은 ‘대구은행설립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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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안경 및 안경테를 제조, 판매하는 산업군. 안경산업은 다공정 조립 형태의 생산 체제를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중소기업 업종이므로 한곳에 집적되어 있는 것이 유리하다. 대구는 한반도 동남부 교통 요충지로 일찍부터 섬유, 우산·양산 제조, 염색공업, 도금업 등 경공업이 발달한 곳이며, 6·25전쟁을 전후해 안경 관련 업체가 하나둘 몰려들어 안경 제조 관련 산업의 입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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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종식(安鍾植)[1913~1945]은 1913년 10월 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북내동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중 항일 비밀결사 죽마계(竹馬契) 결성에 참여하고 경성지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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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야외에서 민중들의 삶을 노래한 한시. 「야음(野吟)」의 저자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04년 서울을 유람하고 세상의 정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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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양한위(梁漢緯)[1883~1949]는 1883년 4월 12일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산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고,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배포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양한체(梁漢締)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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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알리고 주장을 전달하기 위하여 여론을 형성하거나 인쇄물을 제작·복제하여 판매하거나 배포하는 활동의 총칭. 언론은 신문이나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 SNS 등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나 사안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말하며, 출판은 저작물의 배포나 판매를 위하여 문서·회화·사진 등을 복제·공표하는 제작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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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언론·출판의 역사 1. 대한제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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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 가운데 현풍현을 그린 지도. 『여지도(輿地圖)』는 조선 후기[1736~1767]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현풍현 지도가 포함된 지도첩이다. 채색 지도와 주기 사항을 통해 현풍현 각 건물과 산천, 지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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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 있는 신종교 단체. 여호와의증인은 여호와[Jehovah]를 신앙 대상으로 하는데 1872년 미국의 찰스 테이즈 러셀(C.T. Russell)을 중심으로 창립한 성서 연구 그룹에서 비롯되었다. 1916년 이를 승계한 러더퍼드(J. F. Rutherford)가 탁월한 조직력과 현대적인 선전술을 발휘하여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세계 본부는 뉴욕 브루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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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출간된 대구고등보통학교 출신 역사학자인 김성칠의 산문집. 『역사 앞에서』는 역사학자 김성칠(金聖七)[1913~1951]이 1945년 12월 1일부터 1951년 4월 8일까지 쓴 일기문을 엮은 산문집이다. 1993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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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 역사와 문화. 1. 신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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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지역에 있었던 연경서원을 1774~1775년에 이건할 때 기록된 임원록. 연경서원(硏經書院)은 1563년(명종 18) 가을에 건립을 시작하여 1564년 3월에 상량을 하고 1565년 10월에 완공된 대구 지역 최초의 서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1602년에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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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대표 음식 중 연근을 주재료로 한 요리.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이라는 표현이 있듯 연은 청정함의 비유로 오래 인식되어 왔다. 물 바깥으로 드러나 있는 연꽃이 아름다움[미(美)]을 담당한다면, 물 아래에서 싱싱히 뻗어 나가는 연근은 맛[미(味)]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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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산. 연암산(燕岩山)은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산이다. 연암산의 해발 고도는 135.4m이다. 옛 경상북도청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현재 대구광역시청 별관의 뒷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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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전국 최초의 수필 문학 동인회. 영남수필문학회(嶺南隨筆文學會)는 회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기 위하여 창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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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9월 서울에 거주하는 대구 등 영남 인사들이 결성한 친목 단체. 영남친목회(嶺南親睦會)는 1927년 9월 4일 서울의 국일관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대구 출신을 비롯한 영남 인사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결성한 단체였다. 영남친목회는 신간회운동이 발흥하는 상황에서 결성되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신간회는 1927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의 대립을 막고 항일 투쟁에서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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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작된 『영남지도』 가운데 대구부를 그린 지도. 『영남지도(嶺南地圖)』는 경상도 지역 71개 군현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 지도첩으로, 채색 필사본이다. 제작 시기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지도 내용을 통해 유추해 볼 때 영조 연간인 1745~176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남지도』는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4책의 뒷부분에는 1871년에 제작된 함경북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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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조재호가 1751년 6월 2일부터 1752년 8월 1일까지 작성한 경상감사 업무 일지. 『영영일기(嶺營日記)』는 조재호(趙載浩)[1702~1762]가 1751년(영조 27) 경상감사로 제수되어 한양을 출발하여 부임하는 과정과 대구 경상감영에서의 업무 및 지역별 순력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업무 일지이다. 『경상도선생안』에 의하면 조재호는 예조판서였다가 17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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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조재호가 1751년 6월부터 1752년 3월까지 경상감영에서 올린 장계를 모아 엮은 책. 『영영장계등록(嶺營狀啓謄錄)』은 조재호(趙載浩)[1702~1762]가 경상감사로 재임하였던 시기에 중앙 정부에 올린 장계를 모아 엮은 책이다. 1751년 6월 15일 중군 조위진이 하인 대동을 청하는 장계부터 1752년 3월 19일 사직을 청하는 장계까지 9개월 동안의 장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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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경상도 지역의 시조창. 시조창은 조선시대에 확립된 시조를 가사로 하여 부르는 노래이다. 여러 가지 가곡의 영향을 받아 많은 시조 곡조가 파생되었고, 시조창이 각 지역으로 널리 보급됨에 따라 그 지역의 기호에 맞는 지역적 특징이 발생하게 되었다. 지역에 따른 가락[창법]의 차이에 따라 서울 중심의 경제와 지방의 향제로 구분한다. 향제는 충청도 지역의 내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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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의 자매결연을 통한 영호남 상생 방안.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의 교류 협력 체결로서, 대구광역시의 옛이름 달구벌과 광주광역시의 옛이름 빛고을의 앞 글자를 따서 ‘달빛동맹’이라 칭한다. 교류 협력 체결에 따라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 간의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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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용산동·신당동, 달성군 다사읍, 서구 상리동에 걸쳐 있는 산. 와룡산(臥龍山)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용산동·신당동, 달성군 다사읍, 서구 상리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와룡산의 해발 고도는 262.5m이며, 좌표는 35°52′48.33″, 128°30′17.25″이다. 북서쪽에 용의 머리인 용두봉(龍頭峰), 정상부에 용의 몸통인 와룡산, 북동쪽에 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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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에 있는 산. 와룡산(臥龍山)이란 지명은 산의 형태가 마치 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한 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몸을 남쪽으로 굽혀 북서쪽에 용의 머리인 용두봉(龍頭峰)[262.5m], 정상부에 용의 몸통인 와룡산, 북동쪽에 꼬리인 용미봉(龍尾峰)[255m]으로 나뉜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대구 읍지』에 "와룡산은 부의 서쪽 약 10리쯤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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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반송리 용연사 경내에 있는 조선 후기 및 일제 강점기의 비석군. 용연사 경내에는 비슬산 용연사 중수비(琵瑟山龍淵寺重修碑)[1722], 사바 교주 석가여래 부도비(娑婆敎主釋迦如來浮圖碑)[1676], 석가여래 사리탑 중수비(釋迦如來舍利塔重修碑)[1934], 동운 대사 비(東雲大師碑)[1644], 송파 대사 비(松坡大師碑)[1676] 등 5기의 비가 유존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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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대구 지역 청년들이 창립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 단체. 용진단(勇進團)은 대구 지역의 용맹한 신흥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단원 간 단결, 부조, 옹호, 친목 등을 목적으로 1925년 1월 발기회를 열었고, 사상 연구를 통한 민중의 교양기관을 지향하며 1월 5일 창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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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 대학 출신 문화운동 그룹들이 결성하였던 민중문화 연구 단체. 우리문화연구회[약칭 우문연]는 1983년 창간한 대구 지역 무크지 『일꾼의 땅』에 참여한 회원들을 주축으로 지역 사회단체와의 연대를 통하여 연희, 민요, 문학, 미술, 영화, 학술 부문의 문화 활동을 벌이면서 민주화운동에 기여하고자 1985년 결성된 단체이다. 1980년대 초중반, 학원 자율화 시점에 대구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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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달성 출신의 관료이자 학자.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석(聖錫), 호는 경재(景齋)·경도(景陶). 단양 우씨 판서공파 파조 우홍명의 손자인 우전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우진권(禹鎭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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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이견(利見), 호는 백산(白山). 역동(易東) 우탁(禹卓)의 21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우홍철(禹弘哲), 할아버지는 우병도(禹秉圖)이다. 아버지는 우방희(禹邦熙), 어머니는 진양 강씨 강치용(姜致龍)의 딸이다. 아버지는 우방희(禹邦熙)는 무과에 합격하여 사과(司果)를 지냈다. 우리견(禹利見)·우경옥(禹景玉)·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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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유희요. 주로 서울, 경기도, 충청도, 경상북도 등지에서 전승되는 「원가요」는 미혼인 화자가 시집이나 장가를 보내 주기를 기원하는 내용의 유희요이다.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서 채록된 「원가요」[남구]는 총각이 화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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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시집보내 주기를 기원하는 유희요. 「원가요(願嫁謠)」는 오라비보다 먼저 시집보내 주기를 희망하는 유희요이다. 이를 「결혼 노래」, 「결혼을 원하는 노래」라고도 한다. 「원가요」는 서울을 비롯하여 경기도 지방은 물론 경상북도 지방에서도 널리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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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가 지닌 음악도시로서의 면모와 주요 공연 무대. 대구광역시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UNESCO Creative Network]’ 음악 분야의 창의도시로 선정되었다. 문화예술의 도시를 추구하는 대구는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 각국의 선진 창의도시와 교류하고 소통함으로써 문화적 지식을 공유하면서 동반성장을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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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가 지닌 음악도시로서의 면모와 주요 공연 무대. 대구광역시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UNESCO Creative Network]’ 음악 분야의 창의도시로 선정되었다. 문화예술의 도시를 추구하는 대구는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 각국의 선진 창의도시와 교류하고 소통함으로써 문화적 지식을 공유하면서 동반성장을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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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대구 지역 출신 유림 13명이 참여한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 일제는 1919년 2월 이완용을 정당 대표로, 김윤식과 이용직을 유림 대표로 하여 일왕에게 한국 유림은 독립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합방 절대 지지 한일 불리 청원서(合邦絶對支持韓日不離請願書)’[일명 ‘독립불원서’] 를 보냈다. 독립불원서는 일제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며, 김윤식과 이용직은 일본이 자진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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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인수(柳仁洙)[1917~1965]는 1917년 3월 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동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반제동맹에 가입하고 전교오르그위원회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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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5월 26일 대구에서 결성된 육군 산하의 문인 단체. 육군종군작가단(陸軍從軍作家團)은 6·25전쟁 발발 후 서울 수복과 후퇴를 반복하는 가운데 육군본부 정훈감실의 주선으로 대구에서 결성되었다. 단장은 최상덕, 부단장은 김송, 상임위원은 최태응·박영준·이덕진 등이었고 그밖에 장덕조, 조영암, 정비석, 김진수, 정운삼, 성기원, 박인환, 방기환 등이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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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 9일 이후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회담이 체결되기 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전개된 전쟁 양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의 체결까지 진행된 전쟁이었다. 북한군은 전쟁 개시 4일 만에 서울[서울특별시]을 점령하고, 계속 남진하였다. 그 사이 유엔에서는 6·25전쟁 참전을 결정하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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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사회운동가. 윤식(尹埴)[1939~?]은 1939년 4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에 신진회(新進會)에 입회하고 간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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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우열(尹又烈)[1904~1927]은 1904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윤필오(尹弼五)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고려공산동맹과 조선청년총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대구에서는 대구제4청년회·철성단·신사상회·경북사회운동자동맹 등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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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소설가. 윤장근(尹章根)[1933~2015]은 1933년 10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났다. 실제 생년은 1932년이나 호적에는 1933년으로 등재되어 있다. 초등학교 때 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 서울숭문중학교를 다니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1·4후퇴 때 대구로 피난하여 향촌동 일대에서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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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언론가이자 사회활동가. 윤홍렬(尹洪烈)[1893~1947]은 189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활발한 시회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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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개신교를 전도하였던 선교사. 의료선교사들의 의료 활동은 그 자체가 선교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접근 방법으로 시작한 활동은 복음 전파가 아니라 한국이 요구하는 교육과 의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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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대구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병. 대구 지역은 경상감영이 설치된 경상도의 중심 도시여서 대구를 기반으로 의병 부대가 만들어지거나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대구 출신 의병들은 주로 다른 지방의 의병 부대에 소속되어 항일 의병전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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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하여 달성군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병. 한말의 의병(義兵)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맞아 한국의 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봉기한 민병(民兵)이었다. 민병이라고 해도 관군을 지원하는 등의 단순한 민병이나 관군의 위치를 초월한 민족의 군대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관군과 함께 또는 관군의 보조적 위치에서 작전을 수행한 조선 시대의 의병과 다른 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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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갑성(李甲成)[1886~1981]은 1886년 10월 23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연합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3·1운동을 주도하였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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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이오전쟁 이후 한국정부가 대구광역시 동구에 후방지역 방위를 목적으로 설치했던 2작전사령부. 제2작전사령부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지역 즉 대한민국 후방지역을 방위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흔히들 2군사령부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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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근영(李根泳)[?~?]은 1908년 교남교육회(嶠南敎育學會)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교남교육회는 서울에 거주하는 영남 출신 인사들이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1908년 3월 15일에 설립한 교육 계몽 단체였다. 교남교육회는 학교 설립과 교육 진흥을 목적으로 대구와 안동을 비롯한 경상북도 각 지역에 지방조직인 지회를 설립하고 권유위원을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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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근중(李根重)[?~?]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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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이난미(李蘭美)[1592~1661]는 오늘날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 일대에서 거주하였던 인물이다. 고탄리 일대는 현풍현과 낙동강을 경계로 마주 보는 지역으로 이난미의 활동 역시 고령, 성주, 현풍 일대에서 있었다. 또한 이난미의 후손들도 성산면 일대에 분거하면서 현풍현을 생활 및 통혼권으로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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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두석(李斗錫)[1912~1938]은 1912년 5월 19일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서 태어났다. 고향 왜관에서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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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의(全義). 아버지는 이근영(李根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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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정(李相定)[1896~1947]은 1896년 6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 2가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계성학교 교사와 용진단(勇進團)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25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군 장성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연호(李然晧)·이연호(李然浩)·이직(李直)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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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상조(李相朝)[1904~?]는 1904년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와 대구연초전매지국 적색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인철(李仁喆)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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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철(李相徹)[1897~1935]은 1897년 1월 8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금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8월 상하이 임시 정부 특파원, 경상북도 교통 사무국 책임자로 국내에 파견된 이현수(李賢壽)로부터 달성군 교통 사무 지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현수와 함께 경고문, 최급 경고문(最急警告文), 『자유 신보(自由申報)』, 물품 불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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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이자 정치인. 이석준(李錫俊)[1926~1973]은 1926년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북면 탑정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혁신계 정당과 사회단체 간부로 활동하며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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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 이선장(李善長)[1903~1985]는 1903년 10월 12일 지금이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에서 태어났다. 신간회 대구지회에 가입하고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조선건국동맹 경북지부 결성에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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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국악인. 이소향(李素香)[1905~1989]은 1905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세습무 집안의 아버지 이하중[화랑이]과 어머니 이씨 무녀 사이 2남 3녀 중 셋째[장녀]로 태어났다. 어릴 때 경주기생조합에서 강태홍 명인에게 가야금산조 및 병창을 배웠다. 함흥의 반룡권번에 가서 여러 해 동안 박경원, 정용운, 김계선 등으로부터 가야금산조 및 병창, 단소 등 가무악 전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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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시영(李始榮)[1882~1919]은 1882년 1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조선국권회복단] 결성에 참여하여 교통부장을 맡았고, 서울에서 3·1운동에 참가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흥업단(興業團) 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시영(李時榮)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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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에서 이여송과 김덕령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여송과 김덕령」은 오성 대감(鰲城大監)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61~1613]이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1549 ~ 1598]을 지혜로 설득하여 조선을 구원할 수 있었다는 인물담이자 지략담이다. 또한 이여송의 나쁜 행실과 간신의 모함으로 죽게 되었을 때 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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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극작가. 이영규(李英圭)[1948~2006]는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어 극작가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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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이인(李仁)[1896~1979]은 1896년 9월 2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사일동에서 태어났다. 변호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가에 대한 무료 변호 및 민족 소송의 변론을 맡았고, 전시체제기에 조선어학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에는 법무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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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출신 변호사, 독립운동가, 정치인. 이인(李仁)[1896~1979]은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출신으로 호는 애산(愛山), 달동의숙과 경북실업보습학교를 졸업하였다. 1914년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법과 야간부에 입학 후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법과로 편입했다. 그 후 대학원과정인 니혼대학 고등전공과(高等專攻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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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를 위하여 박승조가 지은 행장. 「이일우 행장(李一雨 行狀)」의 저자 박승조(朴承祚)[1876~1954]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본적은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나호동이다. 국내 항일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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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배(景培), 호는 월파(月坡). 고조할아버지는 월성 부원군(月城府院君) 문효공(文孝公) 국당(菊堂) 이천(李篟)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계림 부원군(鷄林府院君) 제정(齊亭) 문정공(文靖公) 이달충(李達衷)이다. 아버지는 공의공(恭懿公) 이승적(李升啇)으로 1382년(우왕 8) 훗날 조선 제3대 왕으로 즉위한 태종(太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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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대구교육대학교에 재직한 아동문학 연구자이자 아동문학 평론가. 이재철(李在澈)[1931~2011]은 1931년 10월 31일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다. 1960년 김광섭의 추천으로 『자유문학』[2월 호]에 시 「산맥에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대구교육대학교 교수를 거쳐 단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아동문학 평론과 연구를 통하여 아동문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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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동시인. 이종기(李鍾基)[1929~1996]는 1929년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다. 1936년 7세 때 작은아버지 이석도의 양자로 이적되어 경주공립중학교[현 경주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경북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수학하고 해방 직후는 청도국민학교[현 청도초등학교], 경산국민학교[현 경산초등학교] 등에서 교사를 거쳐 대구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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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 의열단원 이종암이 독립자금을 확보하다가 체포된 사건. 이종암(李鍾巖)[1896~1930]은 1896년 경상북도 대구군 해북촌면 백안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에서 태어났다. 1912년 대구부 서상정으로 이사하였다. 이종암은 대구공립보통학교[현 대구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농림학교, 부산상업학교에 연이어 입학하였으나 학비를 제대로 내지 못하여 매번 중퇴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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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동촌유원지의 풍경을 그린 한국 근대 미술의 대표 화가. 한국 근대 미술의 선구자인 대향(大鄕) 이중섭[1916~1956]은 짧은 생을 살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질곡의 한국사를 거쳤다. 계속되는 민족의 역경과 시련 속에 이중섭에게도 참담한 생활고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빠졌고 아내는 결핵에 걸렸다. 1952년 여름, 이중섭의 아내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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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할동한 독립운동가. 이치용(李致瑢)[1894~1950]은 1894년 4월 4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성동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와 경주에서 항일 비밀결사 조직을 결성하고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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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태학(李泰鶴)[1890~1962]은 1890년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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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이헌국을 호성공신 3등에 책록한 교서. 이헌국(李憲國)[1525~1602]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흠재(欽哉), 호는 유곡(柳谷)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조판서로서 세자인 광해군을 호종·보필하였으며, 정유재란 때는 좌참찬을 역임하면서 토적복수군(討敵復讐軍)을 모집하여 활약하였다. 1604년(선조 37) 6월 25일 선조는 서울부터 의주(義州)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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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이현주(李玄澍)[?~?]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고,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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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 있는 오토바이 골목. 인교동 오토바이골목은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과 시장북로, 동산동에 조성된 오토바이 골목이다. 구 서문치안센터~달성로에 걸쳐 약 500m 거리에 조성되어 있는 명물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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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거주하는 사람의 수 또는 집단의 수. 대구광역시의 2018년 말 현재 총인구는 248만 9802명이다. 이 중에서 남자 인구는 123만 4848명이며, 여자 인구는 125만 4954명으로 여자 인구가 2만 106명 더 많아서 성비는 98.4이다. 총인구 중에서 한국인은 246만 1769명이고 외국인은 2만 8033명으로 대구광역시 전체 인구의 98.9%는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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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지역에 분포하는 인문지리적 요소. 대구광역시는 한반도의 동남부 내륙에 있다. 북쪽으로는 팔공산, 남쪽으로는 대덕산과 비슬산이 있고 동서로는 완만한 구릉지로 둘러싸인 분지형 도시이다. 대구광역시의 도심에는 신천이 남북 방향으로 가로질러 흐르고 북쪽에는 국가하천인 금호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면서 낙동강과 합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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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대구광역시 동구는 20개의 행정동, 45개의 법정동, 436개의 통, 2,436개의 반을 가진다. 동구의 행정동은 신암1동, 신암2동, 신암3동, 신암4동, 신암5동, 신천1·2동, 신천3동, 신천4동, 효목1동, 효목2동, 도평동, 불로봉무동, 지저동, 동촌동, 방촌동, 해안동, 안심1동, 안심2동, 안심3·4동, 공산동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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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1가에 있는 도장포. 인문당은 1978년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에 자리 잡았다. 인문당의 대표는 어린시절부터 도토리, 측백나무 등에 도장을 새겼다고 한다. 고향 사람의 도장을 만들어 주게 되면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서울의 도장골목인 창신동과 서울역 인근에서 도장 새기는 일을 20년 동안 배우고 대구로 내려와 지금의 인문당을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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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인물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인물 설화는 대부분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인물의 유형에 따라 이인, 영웅, 장수, 명인, 고승, 열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인물 설화는 특정한 지역이나 사물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민중들 사이에서 친숙하면서도 널리 이야기되면서 역사적이고 교훈적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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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등장한 극장들과 극장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 우리나라의 전통연희는 옥외에서 이루어지므로 극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극장의 역사는 개항과 함께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1876년 부산이 개항되고 이어 원산[1879년], 인천[1883년] 등이 차례로 개항되면서 몰려든 일본인들에게는 가부키[歌舞伎], 노[能], 분라쿠[文樂], 교겐[狂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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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대구에서 전개된 대중운동. 일제강점기 대중운동이란 대중 자신들의 평범하고도 민주적인 일상생활의 이익을 지키고,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독립을 쟁취하고자 한 투쟁을 말한다. 일제강점기의 대중운동은 청년, 노동자와 농민, 여성, 형평 등의 부문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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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경규(林慶奎)[?~?]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태어났다. 1926년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한 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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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임봉선(林鳳善)[1897~1923]은 1897년 10월 10일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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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판소리 여성 국악인이자 명무. 임소향(林素香)[1918~1978]은 1918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달성권번에서 소리 수업을 받았고, 1930년대에 정정렬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임소향의 소리는 통성으로 하는 남성적인 소리여서 꿋꿋하며 거뜬거뜬하고 시원시원하다는 평을 받았다. 박지홍과 한성준에게 춤을 배웠는데, 특히 승무에 뛰어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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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상영된 대구 출신 이규환 감독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 나루터에서 촬영한 무성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의 감독인 이규환(李圭煥)[1904~1982]은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일본과 중국에서 연출 수업을 받았다. 이규환은 1932년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 나루터에서 나운규, 문예봉과 함께 「임자 없는 나룻배」를 촬영하였다. 「임자 없는 나룻배」는 당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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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달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일본의 전국 시대(戰國時代)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국내의 통일과 안전을 도모하고 신흥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대륙 침략을 구상하였다. 이에 조선에 명(明)을 정벌하기 위한 길을 빌려달라는 이른바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요구하였다. 조선이 이를 거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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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시작된 동아시아 3국의 7년 전쟁. 전국시대(戰國時代)라는 100년이 넘는 내전을 이기고 통일한 일본은 조선 건국 이후 200년 동안의 조선왕조 평화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든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켰다.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의 전력은 매우 막강하여 한 달도 되지 않아 서울을 함락하고 이어 함경도 일대뿐만 아니라 평양까지 함락하였다. 이렇게 되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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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익반죽한 찹쌀가루에 소를 넣고 대추채를 묻혀 찐 떡. 잡과편은 익반죽한 찹쌀가루에 밤이나 팥을 소로 넣어 빚어 밤이나 대추채를 묻혀 낸 후 쪄낸 떡이다. 잡과고라고도 한다. 잡과편은 대추나 밤과 같은 햇과실과 곡식이 풍성한 가을철에 많이 만들어 먹던 음식으로 대구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의 대표적인 떡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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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대구에서 활동한 신문기자이자 소설가. 장덕조(張德祚)[1914~2003]는 1914년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필명은 춘금여사(春琴女史), 일파(一波), 노노자(怒怒子), 일본식 이름은 마고나가 히가시[孫長東]이다. 대구여자공립보통학교[현 대구서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북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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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장진홍(張鎭弘)[1895~1930]은 1895년 6월 6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문림리[현 구미시 옥계동]에서 태어났다.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독립투쟁을 전개하다가 1926년 국내로 들어와 대구의 대표적인 식민지배기구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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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에 대구 지역에서 있던 출판사. 재전당서포(在田堂書鋪)는 1907년 무렵부터 1930년대 초까지 대구 지역에서 목판 방각본(坊刻本) 및 납활자 서적을 출간하였던 출판사이다. 재전당서포의 발행인은 김기홍(金璂鴻)이었고, 인쇄인은 김기홍의 아들인 김경발과 이재수, 신효연 등이 있었다. 재전당서포는 대구 동상면 후동[현재 중구 포정동]에 있던 출판사이며 대구 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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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덕동2가에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특별사법경찰대 소속의 특별지방행정기관. 저작권특별사법경찰대는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저작권침해 행위에 대한 특별사법경찰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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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덕동2가에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특별사법경찰대 소속의 특별지방행정기관. 저작권특별사법경찰대는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저작권침해 행위에 대한 특별사법경찰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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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전극태(全克泰)[1640~1696]의 본관은 옥천(沃川)이며, 자는 형숙(亨叔), 호는 퇴헌(退軒)이다. 할아버지는 전시헌(全時憲)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 전유장(全有章)이고, 어머니는 이휴운(李休運)의 딸 영양이씨(永陽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최위남(崔衛南)의 딸 월성최씨(月城崔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윤기룡(尹起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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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동에 있는 전북은행 산하의 지역 지점. 2018년 6월 1일에 호남권 최초로 자동차 할부금융을 담당하는 전북은행 영남오토금융센터가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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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노동 운동가. 전태일(全泰壹)[1948~1970]은 1948년 8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전상수(全相洙)와 이소선(李小仙) 사이에서 2남 2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전태일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1950년 3월에는 부산, 1954년 8월에는 서울에 정착하여 천막촌에서 살았다. 가난으로 인하여 거의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1956년 3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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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사회적·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조성되고, 상호 신뢰에 기초하여 상품이나 용역의 거래가 전통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장소. 전통시장(傳統市場)은 대구광역시에서 사회적·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조성되고, 상호 신뢰에 기초하여 상품이나 용역의 거래가 전통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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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국악인. 정권진(鄭權鎭)[1927~1986]은 1927년 10월 15일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세습 예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정권진은 판소리 명창 정재근(鄭在根)의 종손이자, 판소리 명창 정응민(鄭應珉)[1896~1963]의 아들이다. 1970년 7월 22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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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민영(鄭敏英)[1899~1932]은 1899년 10월 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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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경제인. 정운용(鄭雲用)[1904~1963]은 1904년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아버지 정응원(鄭應源)[1885~1933]과 어머니 김인아(金仁俄) 사이 맏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정재학(鄭在學)[1858~1940]이다. 일제강점기 대구의 자본가로서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경상합동은행의 대표이사 겸 회장을 역임하였다. 소화식산주식회사, 대구약조양조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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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운일(鄭雲馹)[1884~1956]은 1884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장관동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아버지는 정시원(鄭時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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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운해(鄭雲海)[1893~1945]는 1893년 9월 1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2가에서 정만원(鄭萬源)의 이들로 태어났다. 중국에서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하였고, 대구에서 사회주의 계열 단체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경진(李景珍)·이봉화(李奉華)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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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 정칠성(丁七星)[1897~1958]은 189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하였고,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근우회(槿友會)·신간회(新幹會)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과 여성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에는 사회주의운동을 펼치다가 월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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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정해진(鄭海鎭)[?~?]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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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대구의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가 참가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 회장단 회의. 대구의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 총학생회 대표는 1980년 5월 16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전국 55개 대학의 총학생회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에 참석하였다.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는 1980년 5월 14일 전국 27개 총학생회 회장단이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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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부터 1926년까지 대구를 비롯한 영남 일대에서 유림 대표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일으킨 독립운동. 김창숙(金昌淑)은 1925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이회영(李會榮)을 만나 독립운동의 방략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김창숙과 이회영은 즉각적인 독립전쟁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장기적인 독립전쟁 전략을 구상하기로 하였다. 김창숙은 새로운 독립운동 기지를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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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대구광역시에서 개최된 전국체육대회. 제43회 전국체육대회는 1962년 대구광역시 북구의 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5·16군사정변이 발생한 지 1년 후, 대구광역시 체육회는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풀이 무성한 종합운동장을 완공하기 위하여 전국체육대회를 유치하였고, 대회 하루 전날인 1962년 10월 23일에 드디어 완공된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제43회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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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서울특별시에서 개최되었으며 대구·경북이 1위를 차지한 전국체육대회. 제49회 전국체육대회는 대구·경북이 경상북도로 참가하여 1위를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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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서울특별시에서 개최되었으며, 대구·경북이 1위를 차지한 전국체육대회. 제51회 전국체육대회는 1970년에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국내 대회 중에서는 최대 규모인 전국체육대회를 통하여 국민들은 체력과 단결력을 기르고, 더 나아가 매회 신기록을 수립하여 세계를 무대로 국위를 선양하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매년 개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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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대구광역시 북구에서 개최된 전국체육대회. 제56회 전국체육대회는 1975년 대구에서 개최되었다. 1970년도만 하더라도 지방의 낮은 인원 수용력 때문에 서울에서 개최되던 국내 주요 대회들이 본격적으로 지방에서 개최되면서 전국체육대회도 비로소 국내 순회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에 대구에서도 경기장이나 숙소 등 체육 및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고 도시를 홍보하고자 제56회 전국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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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1992년에 개최된 전국체육대회. 제73회 전국체육대회는 1992년에 개최되었다. 그동안 체육인들의 축제라는 인식이 강하였던 전국체육대회에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아시안게임 축구 예선을 유치한 바 있는 대도시 대구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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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한 이일우 사후 제각 설치 시 장시원의 상량문. 「제각 상량문(祭閣 上樑文)」은 일제강점기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에 우현서루를 설립한 이일우가 죽은 후 가족묘에 안장하면서 제각을 설치하고 지은 상량문이다. 저자 장시원(張始遠)[1874~?]의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본적은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각산동이다. 종사랑(從仕郞)과 성균관박사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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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한 이일우 사후 제각 설치 시 장시원의 상량문. 「제각 상량문(祭閣 上樑文)」은 일제강점기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에 우현서루를 설립한 이일우가 죽은 후 가족묘에 안장하면서 제각을 설치하고 지은 상량문이다. 저자 장시원(張始遠)[1874~?]의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본적은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각산동이다. 종사랑(從仕郞)과 성균관박사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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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집을 떠나 있는 가족을 떠올리며 지은 한시. 「제석겸입춘(除夕兼立春)」의 저자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04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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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재료에 기계적·화학적 작용을 가하여 투입된 원재료를 성질이 다른 제품으로 전환하는 산업 활동. 우리나라 광공업의 역사는 삼국 시대나, 통일 신라 시대 때에 창작된 금속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7세기 첨성대(瞻星臺)를 만든 공법 및 토기나 청동기, 청와, 백자 등을 만든 뛰어난 기술, 세계 최고의 인쇄술, 그리고 거북선을 만들어 낸 선조들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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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대구의 아미산 아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고 지은 한시. 「제차은장(題此隱庄)」의 저자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04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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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문신이자 학자인 우성규가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 있는 첨백당을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 우성규(禹成圭)[1830~1905]의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석(聖錫), 호는 경재(景齋) 또는 경도(景陶)이다. 우성규는 달성(達城)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지금 서울특별시]에 올라가 명류(名流)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고종 때 북부령·사직령, 임천·단양의 군수 등을 역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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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대구에서 결성된 기독교계 종교 단체. 조선건국경북기독교협회는 조선 건국의 대업을 위하여 총력을 결합하고, 치안유지와 국민 생활 향상을 도모하며 기독교 정신에 합치되는 민주주의 정부 수립에 협력할 것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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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말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건국동맹의 경북 조직. 조선건국동맹 경북지부는 1944년 여운형(呂運亨)·안재홍(安在鴻) 등 조선의 민족운동 세력이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건국을 준비하기 위하여 결성한 조선건국동맹의 경북 조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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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대구 지방 평의회. 조선노동조합대구평의회(全國勞動組合大邱評議會)는 1945년 12월 10일 노동조합대구협의회를 발전적으로 해산하고 경북 일원을 대상으로 결성되었다. 노동조합대구협의회는 1945년 10월 24일 대구를 대상으로 조직된 노동운동 단체였다. 노동조합대구협의회는 1945년 11월 5일, 6일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 ‘조선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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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7일 대구 지역에서 발족한 우익 중심의 정치단체. 조선독립경북촉진회는 1945년 11월 7일 대구향교에서 여섯 개 정당 대표들이 모여 결성한 우익 중심의 정치단체이다. 1945년 10월 17일에 미군정이 건국준비 경북치안유지회를 해산시키면서부터 결성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때 우익은 1945년 10월 30일에 국민통일회로 집결되었다가 이튿날 11월 1일에 다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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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 조선독립후원의용단(朝鮮獨立後援義勇團)은 독립운동 자금과 독립운동 활동가를 모집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지원할 목적으로 1920년 9월 비밀리에 조직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산하기관이었던 서로군정서는 1919년 만주 지역에서 조직된 무장 독립운동 단체이다. 서로군정서는 독립군 간부 양성, 식민 통치기관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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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6월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민족혁명당의 경북 지부. 조선민족혁명당은 1935년 7월 조선의열단, 한국독립당, 신한독립당, 조선혁명당, 대한인독립당이 연합하여 결성한 대한민국임시정부 내의 좌익정당이었다. 조선민족혁명당은 1945년 10월 10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제9차 전당대회를 개최한 뒤 1945년 12월 김규식과 김원봉 등이 중앙 대표단 명의로 환국하고 중앙당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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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제가 방공 사상 및 국방 사상을 강화하기 위하여 대구에 조직한 전시체제기 친일 단체.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여 국가총동원 체제로 개편한 일제는 공산주의 사상을 단속하고 ‘일본 정신’을 앙양하며, 일상에서의 선전 감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1938년 8월 15일 조선방공협회를 조직하였다. 조선방공협회 조직 이후 각 지역 단위 조직이 빠른 속도로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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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대구 도호부와 현풍현의 도로. 도로는 물자의 이동, 행정 사무의 전달, 군사의 이동 등에 있어 중앙과 지방을 긴밀하고 신속하게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중앙 집권을 지향한 조선에 있어 도로의 역할은 극히 중요하였으며 국초(國初)부터 전국의 도로망을 서울을 중심으로 개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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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 초기에 대구[지금 대구광역시]는 현이었다. 조선시대에 지방행정단위를 읍의 규모와 군사적 지휘체계를 고려하여 부·목·군·현이라 나눈 것 가운데 제일 낮은 격이었다. 1403년(태조 3) 3월에 감무(監務)가 있었던 수성현(壽城縣)[지금 대구광역시 수성구]과 해안현(解顔縣)[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봉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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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30일 대구에서 결성된 아동문화 단체. 이영식, 김상신, 이원식 등이 대구에서 결성한 조선아동회(朝鮮兒童會)는 지역에서 결성된 최초의 아동문화 단체였다. 이영식이 회장을 맡고 박영종[박목월의 본명]을 비롯하여 이원식, 황윤섭, 김홍섭, 김진태 등이 활동하였으며 김상신이 사업 기획을 전담하였다. 조선아동회는 월간지 『아동회그림책』과 『아동』을 발행하며 연중행사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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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대구 출신 작가들과 대구에서 활동한 작가 박목월, 최태응 등이 김동리, 조지훈 등과 함께 발족한 문인 단체. 조선청년문학가협회(朝鮮靑年文學家協會)는 1946년 4월 4일 박목월과 김동리 등이 발족한 문인 단체이다. 창립 회원으로 참여한 대구 출신 작가로는 이설주와 이윤수 등이 있었고 대구에서 활동한 작가로는 박목월과 최태응 등이 있었다. 조선청년문학가협회는 정치와 문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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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백정들이 신분 해방을 위하여 결성한 형평운동 단체. 조선형평사 경북지사(朝鮮衡平社 慶北支社)는 백정들의 자유와 평등, 신분 해방, 사회적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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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선(趙龍善)[1894~1981]은 1894년 2월 1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수원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고, 조선민족대동단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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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2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내에 건립된 조지훈의 시비. 조지훈 시비는 대구광역시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103년 전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하기 위하여 1999년 12월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조성하면서 조지훈의 시 「봉황수」를 새겨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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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있던 선교사 존슨이 살았던 집. 존슨(Woodbridge O. Johnson) 주택은 1898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서양 의술로 선교활동을 한 미국 북장로교 의사 존슨의 주택이다. 존슨 주택에 사용한 목재는 대구로부터 25마일[약 40㎞] 떨어진 지방에서 벌목하여 낙동강의 수운으로 대구 근교까지 운반한 다음 인부들이 공사장까지 운반하였고, 문은 미국 시카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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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라는 말은 원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불교어였다. 그런데 종교라는 말이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 시대에 독일어 ‘religion’의 번역어로 쓰이게 되면서 일반화된 것이다. 현재 ‘religion’의 번역어로서 ‘종교’는 불교 · 기독교 · 이슬람교 · 유교 등 개별 종교들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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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창단된 6·25전쟁 당시 종군한 미술가들 조직. 종군화가단은 1·4후퇴를 전후하여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 창단되었다. 특히 대구는 6.25전쟁 시기에 종군화가단을 결성한 최초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종군화가단 창설에 대하여 1951년 2월 국방부 정훈국장 이선근과 장발, 이마동 등을 중심으로 대구에서 국방부 정훈국 산하 종군화가단을 창설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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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법정동. 종로1가(鐘路一街)는 대구광역시 중구 법정동 57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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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법정동. 종로2가(鐘路二街)는 대구광역시 중구 법정동 57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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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전국종합무술연합회. 종합무술연합회는 흐트러져 있던 대구 무도 단체들을 하나의 생활체육으로 통합한 단체이며, 국내 무술의 장점만 모아 무술로 승화하고 생활체육으로서 종합무술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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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 조직. 주한 미군(駐韓 美軍)은 해방 직후 군정기부터 오랫동안 한국에 주둔하여 왔다. 모스크바삼상회의의 결과로 남한 군정을 실시하고, 6·25전쟁에는 유엔의 이름으로 공산군을 격퇴하기 위하여 주둔하였다. 정전협정 이후부터 현재까지 주한 미군은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남한에 주둔하고 있다. 그리하여 미국은 해외 파견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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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문신인 곽간의 시문집. 곽간(郭趕)[1529~1593]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원정(元靜), 호는 죽재(竹齋)이다. 아버지는 곽지견(郭之堅)이며, 어머니는 부사 김수돈(金守敦)의 딸 상산 김씨(商山金氏)이다. 1546년(명종 1)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한 후 1550년(명종 5) 형조 좌랑에 임명되었다. 1552년(명종 7) 대동찰방 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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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에서 길쌈을 하며 부르는 노동요. 줌치는 주머니의 방언으로, 「줌치노래」는 부녀자들이 길쌈 노동 중에서도 삼을 삼을 때 주로 부르는 방적 노동요이자 유희요이다. 이를 「주머니 노래」, 「바느질 노래」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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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와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환취구 사이에 맺은 우호협력 결연. 중구-중국 산동성 웨이하이시 환취구 우호협력 결연(中區-中國東省威海市環翠區友好協力結緣)은 1997년 11월 3일 대구광역시 중구와 중국 산둥성[山東省] 웨이하이시[威海市] 환추이구[環翠區] 사이에 맺은 우호협력 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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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중국은행의 대구 지점. 중국은행 대구지점은 2006년 10월 12일 개설하였다. 중국 최대의 외환은행인 중국은행이 서울과 경기도 안산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대구에 진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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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중등교육기관. 1. 대한제국기[1899~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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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푸우쑹[撫松縣]에서 조직된 지린성 군정서 부속 기관인 흥업단의 군자금 모집 사건. 흥업단은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즈음 중국 푸쑹[撫松]에서 조직된 지린성 군정서 부속 기관이었다. 흥업사에 전라남도 장성 출신의 이만준(李萬俊)이 가입하여 회계 서기로 활동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이후 5월 말까지 경상북도 달성군 무태 출신 이시영(李始榮), 전라북도 익산 출신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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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부터 1992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서 대구광역시 및 경상북도 지역 민주화를 위해 창립된 학술운동 단체. 지방사회연구회는 대구지역 인문사회과학자들이 학술과 친목을 겸하는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이 모임에 참여한 교수 및 연구자들은 지역 사회 및 민족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지역사회와 국가사회에 놓여 있는 여러 사회적, 민족적 모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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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 전국 최초로 지방분권 단체 설립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지방분권 선도도시’의 길을 걷고 있는 대구광역시가 추진하는 사업. 분권이란 한자를 보면 나눌 분(分), 권세 권(權)으로, 권한을 나눈다는 뜻이다. 지방분권은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지방정부와 나누고, 나눈 권한으로 지방정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지방분권의 수준은 매우 미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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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달성에 살았던 진주하씨의 무덤에서 발견된 편지들. 진주하씨 묘 출토 간찰은 1989년 4월 경상북도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석문산성에 있는 진주하씨(晉州 河氏)[1580~1652(?)]의 묘를 이장하던 중 출토된 한글 필사 자료이다. 주인공인 진주하씨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곽재우(郭再祐)의 사촌 조카인 곽주(郭澍)[1569~1617]의 둘째 부인이다. 친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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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찹쌀가루로 만든 새알심을 미역국에 넣어 끓여 만든 음식. 찹쌀수제비는 들깨미역국에 찹쌀가루로 만든 새알심을 넣어 끓여 낸 음식이다. 찹쌀수제비는 찰진 찹쌀로 식감을 더하고 찹쌀가루가 국물에 진하게 우러나 미역국에 부족한 탄수화물을 보충한 음식이며, 국수와 마찬가지로 한 그릇으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할 수 있다. 영양가가 높고 간편한 식사가 가능하여 대구 지역의 서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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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판소리나 판소리의 형식을 빌려 만든 한국 고유의 음악극. 창극(唱劇)은 여러 명의 소리꾼이 배역을 맡아 창(唱)을 중심으로 극을 전개하는 가극(歌劇)이다. 1900년대 초 협률사에서 판소리를 무대화하고 판소리에 등장하는 인물을 배역을 나누어 소리와 연기를 한 것을 계기로 발달하였다. 1920년대에는 가극, 1930년대에는 창극,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국극(國劇)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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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문인학자. 채귀해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낙응(洛應), 호는 치헌(痴軒)이다. 조선 중기의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채수곤(蔡壽坤), 아버지는 채석범(蔡錫範),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택승(宅承)의 딸이다. 부인은 인천이씨(仁川李氏)로, 석유(錫裕)의 딸이다. 3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채규식(蔡奎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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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채두석(蔡斗錫)은 유학(幼學)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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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 원접사 정사룡의 일기. 천사일로일기(天使一路日記)는 명나라의 사신 공용경(龔用卿), 오희맹(吳希孟) 등이 조선으로 올 때 의주(義州)에서 맞이하여 서울까지 동행하였던 원접사(遠接使) 정사룡(鄭士龍)이 명나라 사신단이 1537년(중종 32) 2월 20일 압록강을 넘어오는 때부터 4월 8일 압록강을 건너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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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활동하는 가톨릭교회. 천주교는 가톨릭교회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다. 가톨릭이란 보편적 교회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교이다. 교황을 수장으로 두고 있으며 바티칸 교황청을 중심으로 나라별, 지역별로 교구라는 조직을 두고 있다. 중심인 바티칸 교황청이 로마교구여서 ‘로마가톨릭교회’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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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부터 현대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 보급된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그리스도교파의 하나. 천주교는 유일신인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하는 종교이다. 천주교는 교황을 종교수장으로 두고 있으며 바티칸 교황청을 그 중심지에 두고 있다. ‘가톨릭’이라고도 부르며 개신교와 대응하여 ‘구교’라고 불리기도 한다. 천주교의 교리를 살펴보면, 하느님은 인간을 포함한 천지의 창조주인데,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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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부터 현대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 보급된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그리스도교파의 하나. 천주교는 유일신인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하는 종교이다. 천주교는 교황을 종교수장으로 두고 있으며 바티칸 교황청을 그 중심지에 두고 있다. ‘가톨릭’이라고도 부르며 개신교와 대응하여 ‘구교’라고 불리기도 한다. 천주교의 교리를 살펴보면, 하느님은 인간을 포함한 천지의 창조주인데,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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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여객 또는 화물을 운송하는 데 필요한 철도시설과 차량 및 운송시스템. 철도는 여객 또는 화물을 운송하는 데 필요한 철도시설과 철도차량, 그리고 관련된 운영, 지원체계로 구성된 운송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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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청구도』에 수록된 대구도호부와 현풍현 일대의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남북 29층, 동서 22판으로 구획하여 그린 전국 지도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청구도』는 건(乾)·곤(坤) 두 책으로 구성된 채색필사본 지도인데, 「대구부·현풍현지도」는 건 21층 8-10판, 곤 20층 8-9판에 수록되어 있다. 『청구도』는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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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는 농촌계몽운동과 소비조합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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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신체를 단련하고 온전한 운동 능력을 기르기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 경기 및 활동. 체육이란 육체를 단련하여 건강을 유지하고 체력 향상을 도모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대구광역시에서는 대구 시민의 건강한 심신 단련을 위하여 공교육에서부터 체육에 힘써 왔다. 1910년대에 대구 시민들은 친목 도모의 일환으로 체육 활동을 활성화하였고, 선교의 중심지였던 대구광역시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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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서 행하는 신체적 활동으로, 근육을 단련하고 완성된 인격을 기르는 모든 활동. 우리나라는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비로소 서양의 체육을 접하게 되었다. 때마침 설립된 한성사범학교 교사였던 헛치슨(Hutchison)의 지도에 따라 1896년에 치른 화류회(花柳會), 그리고 각 관립소학교의 운동회 등이 그것이다. 대구광역시의 경우는 1906년에 미국 기독교 북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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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초등교육 기관. 대구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초등교육이 실시된 시기는 1899년 근대 교육기관이 설치되면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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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고(崔杲)[1924~1988]는 1924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의 부유한 집안에서 최해윤의 4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이며, 아호는 추운(追雲)이다. 일제강점기 흑백당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해방 후 대구에서 소설가 및 교사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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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고(崔杲)[1924~1988]는 1924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의 부유한 집안에서 최해윤의 4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이며, 아호는 추운(追雲)이다. 일제강점기 흑백당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해방 후 대구에서 소설가 및 교사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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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최대림(崔大林)[?~?]은 대구광학회(大邱廣學會)·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대한협회(大韓協會) 대구지회에서 활동하며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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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 최문식(崔文植)[1905~?]은 1905년에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대구노동자협의회 결성에 참여하고 조선건국동맹 경북지부에서 활동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경북지부에서 활동하고 10월항쟁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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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소복(崔小福)[1911~?]은 1911년 7월 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서울로 유학하여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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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최시교(崔時敎)는 1908년 대구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에 가입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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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사회주의운동가. 최원택(崔元澤)[1895~1973]은 1895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수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대구청년회 활동을 시작으로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 및 조선노농총동맹 조사부 담당 상무집행위원 등을 지냈다. 이후 중국 만주로 건너가 활동하였으며, 광복 후 남조선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석초(石樵)·서상필(徐相弼)·김성덕(金聲德)이라는 이름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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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최윤동(崔允東)은 1897년 7월 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서 최명조(崔明祚)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중국과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최진(崔震)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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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이칠(崔利七)[1913~?] 1913년 2월 25일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다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사회과학연구그룹을 결성하고 활동하였다. 오철수(吳喆洙)·송노헌(宋魯憲)·김무길(全武吉)·김무철(金武喆)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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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대구에서 공군종군문인단에 참가한 여성 작가. 최정희(崔貞熙)[1906~1990]는 1906년 12월 3일 함경북도 성진군[현 함경북도 김책시]에서 태어났다. 호는 담인(淡人)이다. 『삼천리』 기자로 근무하면서 『삼천리』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1941년~1942년에는 조선문인협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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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활동한 소설가. 최태응(崔泰應)[1917~1998]은 1917년 황해도 장연군에서 태어났다. 호는 백결(百結)이다. 1940년 『문장』으로 등단하였으며 해방 직후 대구에 정착하여 소설을 창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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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추병환(秋秉桓)[?~?]은 1925년 10월 25일 경상북도 군위청년회의 혁신 총회에 참석하고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7년 9월 10일 영남친목회(嶺南親睦會)를 반대하는 영남친목회 반대자 명의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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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후 민족 동화를 조선 통치의 최고 방침으로 설정하고, 민족 동화의 완성을 위하여 조선인 협력자, 곧 친일파를 양성하였다. 친일파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자발적 친일파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일제의 친일파 양성 정책과 자발적 친일파의 특성은 시기마다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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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커피를 가공·유통·판매하는 업체. 해방 직후 향촌동 골목에 다방 백마, 호수, 백록, 그리고 음악감상실 녹향, 르네상스 등이 생겼다. 이중섭이 담배 은종이에 그림을 그렸던 곳이 백록다방이다. 시인 구상이 시집 『초토의 시』 발표회가 있었던 곳이 꽃자리다방이다. 현인의 빅히트 곡인 「굳세어라 금순아」를 작곡한 곳이 중구 화전동 자유극장 바로 옆 남선악기점 2층 오리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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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2가에 있던 극장. 키네마구락부는 1938년 8월 21일 조선영화흥업주식회사에서 대구부[현 대구광역시] 동성정(東城町) 2의 88번지, 지금의 CGV대구한일 자리인 중구 동성로2가 88에 개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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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월 2일 대구 지역에서 열린 신탁통치 반대 집회. 1945년 12월 열린 모스크바삼상회에서는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안 등을 포함한 모스크바협정이 체결되었다.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삼상회의 신탁통치안 결정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1945년 12월 31일 서울에서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고 이후로 전국 곳곳에서 집회가 열렸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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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 있는 미싱상회. 태창미싱상회는 현 영업자가 창업 후 65년 이상 영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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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법정동. 태평로1가(太平路1街)는 대구광역시 중구 법정동 57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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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법정동. 태평로2가(太平路2街)는 대구광역시 중구 법정동 57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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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법정동. 태평로3가(太平路3街)는 대구광역시 중구 법정동 57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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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 염수재에서 간행한 전극태의 일기. 전극태(全克泰)[1640~1696]의 본관은 옥천(沃川), 호는 퇴헌(退軒), 자는 형숙(亨叔)이다. 대구 남면 수성리에서 태어났다. 고조할아버지는 진사(進士) 전응삼(全應參), 증조할아버지는 성참군(城參君) 전해(全海)이며, 할아버지는 전시헌(全時憲)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 전유장(全有章)[1612~1675]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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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기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전개된 공산 비정규군[유격대 활동, 빨치산]. 빨치산은 유격대원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파르티잔(partisan)에서 온 것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은 좌익의 무장 유격 부대 활동의 주요 근거지였다. 6.25전쟁 이전에는 초기적 형태의 좌익 무장 유격대인 야산대 활동이 전개되었다. 1949년 6월 조선노동당의 창당 직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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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용수동, 신무동, 미곡동 일대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미나리. 팔공산청정미나리는 대구시농업기술센터가 지난 2004년부터 시범 재배 한 후 꾸준히 재배하여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2015년에는 팔공산청정미나리가 지리적 표시를 획득하여, 포장박스 디자인과 마케팅의 다변화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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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를 연결하는 고개. 팔조령(八助嶺)은 18세기 중반 『해동 지도(海東地圖)』 대구부(大丘府), 18세기 후반 『경주 도회 좌통 지도(慶州都會左通地圖)』 대구부, 19세기 전반 『광여도(廣與圖)』 대구부, 19세 전반 『지승(地乘)』 대구부, 19세기 중반 『팔도 분도 영남도(八道分圖嶺南圖)』, 19세기 후반 『청구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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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갈산동에 있는 아웃도어 전문 생산 기업체. 평화발렌키는 1986년 남성 의류 전문 생산 기업인 평화산업으로 설립한 후 골프웨어와 아웃도어 제품을 주요 상품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등산화와 고글 아이웨어 등으로 제품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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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성악가이자 작곡가. 하대응(河大應)[1914~1983]은 1914년 6월 27일 지금의 강원도 홍천군에서 태어났다. 1930년 서울 휘문중학교를 졸업한 뒤 1934년 일본 도쿄음악학교[현 도쿄예술대학] 성악과에 입학하여 곧장 촉망받는 성악가로 부상하였다. 일본에서 1937년에 오페라 「이프게니」와 「마탄의 사수」에 출연하였으며 1938년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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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하은수(河銀水)[1903~?]는 1903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철성단(鐵聲團)에 가입하여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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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동에 있는 음악감상실. 하이마트의 초기 창업자는 클래식 음반을 사 모으던 음악애호가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트럭에 음반을 모조리 싣고 대구로 피난을 왔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애써 모은 음반이 깨질까 봐 서울로 되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1957년 음악감상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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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부터 대구 지역의 대학에서 전개된 교련 교육 강화 반대 운동. 학원병영화반대 교련철폐투쟁(學院兵營化反對敎鍊撤廢鬪爭)은 반공을 빌미로 대학을 병영화하여 학원 자율화를 억압하려는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기 위하여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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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대구의 계몽운동을 이끈 이일우가 집에서 한가한 정취를 읊은 한시. 「한가롭게 읊음[閒吟二首]」을 쓴 이일우(李一雨)[1870~1936]는 본관이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이일우는 1904년 서울을 유람하고 세상의 정세를 통찰하고는 옛 전통에만 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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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정구의 학맥을 계승한 사족 집단. 낙동강 중류 지역은 지금까지 퇴계학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안동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상류 지역과, 남명학의 온상이었던 낙동강 하류 지역의 ‘경계’나 ‘사이’에 있다. 낙동강 중류 지역의 유학자들은 이러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퇴계학과 남명학의 영향 속에서 이 둘을 융합 및 회통하려는 한편 다양한 학문을 수용하는 데에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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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에 있는 한국 국토 정보 공사 대구 경북 지역 본부 산하의 달성 지역 지사. 한국국토정보공사는 국가로 부터 토지에 관한 측량을 위임받아 지적 측량 업무를 수행하는 특수 법인이며 전국에 12개의 지역 본부[서울, 부산 울산, 인천, 경기, 강원, 대전 충남, 충북, 전북, 광주 전남, 대구 경북, 경남, 제주]를 두고 있다. 대구 경북 지역 본부는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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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산업 기술 개발에 대한 기획, 평가, 관리 등의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산업 기술의 혁신을 통한 산업 경쟁력과 국가혁신역량 제고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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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소재의 한국수필문학관 소개. 한국수필문학관(韓國文學館)은 장르별 문학관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문학관이다. 각 지역에는 지역명을 따거나 그곳에 기거하였던 문인의 이름을 붙인 문학관이 많다. 지역이 아닌 국가명인 ‘한국’과 문학 장르 중 하나인 ‘수필’의 결합을 통하여 문학관을 명명한 것은 시작부터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하였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한국수필문학관은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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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지역 본부.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법률 제11240호, 2012년 1월 26일] 제43조에 의거하여 장애인이 직업생활을 통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업주의 장애인 고용을 전문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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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대구 지역에서 한일회담 개최 및 비준을 반대하기 위하여 전개한 민주화운동. 1964년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기 위하여 한일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대일 협상의 진행 과정을 비밀에 부쳐 온 박정희 정부는 1964년 3월 한일회담의 타결, 조인, 비준을 5월까지 마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정희 정부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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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 1리에서 행하는 김굉필 선생의 불천위 제사. 한훤당(寒暄堂)김굉필(金宏弼)[1454∼1504] 선생 불천위(不遷位) 제사는 매년 음력 10월 1일에 현풍읍 지 1리 못골 종택 광제헌(光霽軒)에서 지내는 추모 제사이다. 기제사는 보통 4대조까지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그런데 4대 봉사가 끝난 뒤에도 신위를 없애지 않고 계속 기제사를 지내는 의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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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할머니와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는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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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출신의 시인 이상화의 문학과 저항정신. 우리 민족 역사에서 일제강점기는 치욕과 수난의 시대였다. 우리의 주권이 상실되었고, 외세에 억압된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 치욕과 수난을 극복하기 위한 독립운동이 치열하게 일어났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을 중심으로 근대적 가치의 확산과 함께 민족주의의 고양을 식민지 시대 극복의 핵심 가치로 본 사회 문화 운동도 펼쳐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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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대구에 군정 실시를 위하여 미군이 주둔한 사건.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국이 승리하고 패망한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하여 1945년 9월 8일에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여 총독부 대표로부터 공식 항복을 받고, 9월 9일에 38선 이남에 군정을 실시한다는 미군 사령부의 명령 제1호를 발표하였다. 그 후 미군은 대구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주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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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국극사를 설립한 국가무형문화재 박록주가 여성국악동호회에서 1949년에 제작하여 서울 시공관 등에서 공연한 창극. 「햇님과 달님」은 국가무형문화재 박록주(朴綠珠)[1905~1979]와 여성 국악인들이 결성한 여성국악동호회(女性國樂同好會)에서 제작한 창극이다. 1949년 2월 11일부터 17일까지 시공관에서 상연한 후 1949년 5월 19일 서울의 중앙극장, 194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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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윤우열이 조직한 무력 투쟁 독립운동 단체. 윤우열(尹又烈)[1904~1927]은 대구교풍회 회장, 대구자제단 발기인, 국민협회 대구지부 지부장 등 친일 단체에서 간부로 활동한 윤필오의 아들이다. 윤우열은 일본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 속성과를 다닌 유학파였다. 유학 후 서울계의 사회주의 진영에 가담하여 활동한 윤우열은 서울과 대구에서 청년운동을 중심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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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전개된 혁신당과 사회대중당과의 통합 기구. 혁신당·사회대중당통합준비위원회 경북위원회는 혁신당과 사회대중당 당의 통합 교섭을 추진할 목적으로 만든 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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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대구의 역사. 대구는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자주적 근대 국민국가 수립의 과제를 실현하여 나갔다. 어느 독립운동가의 집에서는 광복을 ‘세계 제일의 기쁨’으로 간주하며 즐거워하였다. 일제가 패망하자마자 좌우 연합으로 치안을 유지하며 완전한 독립을 준비하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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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광복부터 2018년 현재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의 역사와 문화. 1945년 8월 15일 광복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 개항 이후 근대의 역사적 과제였던 완전한 독립, 곧 자주적 국민국가의 수립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었다. 새로운 국가 건설 과정과 육이오전쟁 시기에 동구는 격정의 한가운데 서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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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현정건(玄鼎健)[1887~1932]은 1887년 6월 29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현경운(玄炅運)이고, 소설가 현진건(玄鎭健)이 동생이다. 부인은 윤덕경(尹德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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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진주 하씨 묘에서 발견된 진주 하씨의 남편 곽주가 쓴 한글 편지. 1989년 4월 4일 달성군 현풍면[현 현풍읍] 대리에 거주하는 곽병규가 구지면 도동리 석문산성에 있는 12대 할머니 진주 하씨 부인[곽주의 재실]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묘를 열었다. 그 묘의 관 속에서 고인은 미라(mirra)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고 관 속에 넣었던 의복과 문헌[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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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 1리에 있는 서흥김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1리 못골마을은 서흥김씨(瑞興金氏) 집성촌이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11세손이자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정제(金鼎濟)가 지금의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서 살다가 1778년(정조 2)에 입향한 이래 서흥김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지금도 2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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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계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 혜성단(彗星團)은 김수길, 이종식 등이 대구 지역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이다. 대구 3·1운동의 지속과 확대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으며, 국외의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계를 모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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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건설 업체. 화성산업(和成産業)은 1958년에 설립된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장수 건설 업체이다. 초기에 토목 사업과 건축 사업을 시작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주택 건설 업체로 성장하였으며, 사업의 다각화로 인하여 조경 사업, 신재생 에너지 사업 등으로도 진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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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의 유학자인 채귀해가 늦봄에 대구의 연경서원 유허지를 둘러보고 지은 한시. 「화암모춘(畵巖暮春)」의 저자 채귀해(蔡龜海)[1850~1905]의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낙응(洛應)이며, 호는 치헌(痴軒)이다. 아버지는 채석범(蔡錫範)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조택승(曺宅承)의 딸이다. 집안이 대대로 대구부 해북촌면(海北村面) 미대리(美岱里)[현 대구광역시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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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대구 화원 초등학교 내에 있는 청소년·학부모 대상 과학 발명 교육 센터. 대구광역시 교육청은 발명에 대한 인식 전환과 발명의 생활화를 위하여 1998년 대명 발명 교실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화원발명교육센터를 포함하여 7곳을 운영하고 있다. 화원발명교육센터는 발명 교육을 통한 창의력 배양을 위하여 건립되었다. 화원발명교육센터건립 목적은 크게 네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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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차은장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화답한 한시. 「화차은장야화(和此隱庄夜話)」의 저자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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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대구 2·28기념중앙공원 앞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잊을 수도, 죽을 수도 없다고 말씀하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여전히 맨발의 소녀상처럼 차가운 현실을 딛고 있다.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홈페이지 http://museum.1945815.or.kr는 박물관을 의미하는 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