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동
-
1948년 대구에서 발생한 5·10선거 반대 시위. 1948년 3월 3일에 행정명령 제13호에 의하여 선거위원회의 권한을 부여받는 국회선거위원회가 조직되고, 3월 13일에 남녀평등의 보통선거제를 기본 골격으로 하는 선거공보 제1호가 공포되었다. 대구는 3개의 선거구로 편성되었고, 대구와 경북 선거를 총괄할 선거 사무국은 경찰청 내에 설치되었으며, 선거 사무국 국장은 도공보실장이 맡...
-
일제강점기 조선인 자본가들이 대구에 설립한 회사. 1936년 대구 지역 조선인 자본가들은 대구의 주택난이 점점 심화되자 경북상공주식회사(慶北商工株式會社)의 설립을 준비하였다. 1937년 6월 28일 10여 명의 자본가들이 중구 대신동에 마련한 임시 사무소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경북상공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
1920년대 전반기에 대구의 송두환과 최윤동이 각각 벌인 독립운동 군자금 확보 사건. 경북중대사건은 1923년 11월 최윤동(崔允東)과 이수영(李遂榮)이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일경에게 체포된 것을 계기로 발생한 사건이다. 1920년 송두환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 자금 마련 운동에 덧붙여진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 운동이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응섭(金應燮)[1878~1957]은 1900년대 초 대구에서 교남교육회, 조선국권회복단 등에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고 중국 동북[만주]에서 의용단, 정의부 간부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자. 김의균(金宜均)[1884~1947]은 지금의 대구광역시의 교육가이자 법조계·종교계·교육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
1948년 5월 10일 대구에서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하여 실시된 최초의 근대 선거. 한반도의 완전한 독립, 통일 근대 국민 국가의 건설을 이루기 위한 국제적 절차로서 모스크바삼상회의에 따른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한반도 문제가 미국에 의하여 유엔[UN]으로 이관된 뒤 단독선거[단선]에 의한 단독정부[단정] 수립이 가시화되었다. 유엔은 1947년 11월 14일 총...
-
1945년 11월 대구에서 경북군정청이 군정청의 진로 및 방침 선전과 행정개혁 협력을 위하여 설치한 행정 고문 기구. 1945년 11월 경북군정청은 미군정청 특사로 파견된 서상일(徐相日)과 최윤동(崔允東)의 추천을 수용하여 에드윈 A. 헨 경북도지사가 발표하는 방식으로 경상북도 행정고문을 선정하였다. 미군정청 경상북도고문은 경북군정청의 협의기관적 성격을 가졌다....
-
1945년 11월 대구에서 경상북도군정청이 군정청의 진로 및 방침 선전과 행정개혁 협력을 위하여 설치한 대구부 행정고문 기구. 1945년 11월 경상북도군정청은 미군정청 특사로 파견된 서상일(徐相日)과 최윤동(崔允東)의 추천을 수용하여 에드윈 A. 헨 경북도지사가 발표하는 방식으로 대구부 행정고문을 선정하였다. 미군정청 대구부고문은 경북군정청의 협의기관적 성격을 가졌다....
-
1945년 11월 대구에 파견된 미군정청의 특사. 미군정청은 1945년 11월 3일 서상일(徐相日)[1886~1962]과 최윤동(崔允東)[1897~1965] 두 사람을 대구에 특사로 파견하였다. 미군정청 특사는 1945년 11월 5일 경북군정청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사의 임무에 대하여 밝혔다. 그 내용은 군정 당국의 방침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경북 도민의 요구와 희망 사항...
-
1914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에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 1914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뒤 반월산에서 지역 출신 정운해(鄭雲海)·최윤동(崔胤東)·최혁(崔赫)·엄주동(嚴柱東) 등의 청년들과 비밀리에 독립을 위한 새배달모듬(新倍達會)을 조직하였다. 새배달모듬 조직의 목적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고, 민족 사상을 고취하여 단결된 민족의 힘을 통하여 조국의 광복을 이룩한...
-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예산(禮山). 호는 심연(心蓮). 송주석(宋柱錫)과 장수 황씨(長水黃氏) 사이 외아들로 태어났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신간회의 지회. 신간회는 민족적·정치적·경제적 예속의 탈피,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의 쟁취, 청소년·여성의 형평운동 지원, 파벌주의·족보주의의 배격, 동양척식회사 반대, 근검절약 운동 전개 등을 활동 목표로 내걸고 전국에 지회(支會)와 분회(分會)를 조직하였다....
-
1948년 5월 10일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시행된 제헌국회의원를 선출하는 선거. 5.10총선거는 1947년 11월 14일 유엔에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한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해방 후 한반도에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절차는 1945년 12월에 열린 모스크바삼상회의의 결정에 따른 미소공동위원회였다. 그러...
-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5년 대구 사립 협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만주와 국내에서 조선노동공제회, 신간회 운동 등 비타협적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 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도(李相度)[1897~1944]는 1897년 2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중국에 머물며 베이징조선유학생회·상하이청년동맹·베이징한인청년회에서 활동하였다. 호는 보천(普天)이고, 이상도(李相道)·이상응(李相應)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이인(李仁)[1896~1979]은 1896년 9월 2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사일동에서 태어났다. 변호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가에 대한 무료 변호 및 민족 소송의 변론을 맡았고, 전시체제기에 조선어학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에는 법무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
1920년 12월 8일 김종철(金鍾喆)이 일본 경찰 가이[甲斐]를 살해하고 탈출한 사건. 일제 강점기 국외에서는 독립 전쟁론에 입각한 무장 항일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를 적절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독립운동 자금과 독립운동가의 확보가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에 따라 독립운동 자금 마련 운동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
개항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신암동에서 태어난 정동석(鄭東錫)[1885~1968]은 1919년 9월 무렵 대구를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을 추진하고 있던 송두환(宋斗煥)으로부터 권총 2정과 실탄 10여 발을 받아 보관하고 있었다. 1920년 11월 대구 신암동(新巖洞) 구장(區長)으로 있으면서 다시 권총 3정과 실탄 300여 발을 받아 보관하였다. 그러던...
-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동석(鄭東錫)[1885~1968]은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신암[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출신이다. 1919년 9월에 대구부[현 대구광역시]에서 군자금 모집을 하려고 하던 송두환으로부터 권총 2정, 실탄 10여발을 받아 보관하였다. 1920년 11월에는 대구부 신암동 구장으로 있으면서 다시 권총 3정과 실탄 300여발을 받아 보관하고...
-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최윤동(崔允東)은 1897년 7월 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서 최명조(崔明祚)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중국과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최진(崔震)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
대구에서 결성된 한국민주당의 지부. 한국민주당 대구지부(韓國民主黨 大邱支部)는 대구 지역의 우익 정치세력을 결집할 목적으로 결성된 정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