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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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안에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가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는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가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1907년 설립한 기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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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1월 대구에서 발생하여 국내외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 경제 주권 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29일 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가 대구광문사 내 문회(文會)를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바꾸는 특별회에서 대구광문사 부사장 서상돈의 제안과 대구광문사 사장 김광제(金光濟)의 즉각 실행이 제의되면서 시작되었다. 대구광문사는 「국채 보상 취지서」를 만들어 주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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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는 성씨. 조선 초에 대구는 본부(本府)와 수성현(壽城縣), 하빈현(河濱縣), 해안현(解顔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본군(本郡)의 내성(來姓)이 1이니, 도(都)이다. 수성(壽城)의 내성(來姓)이 7이니, 유(柳)·장(張)·최(崔)·신(申)·유(劉)·고(高)·정(鄭)이요, 해안(解顔)의 내성이 3이니, 제(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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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 여러 종가에서 대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내림 음식. 대구 지역 종가음식은 종가 구성원의 삶이 담겨 있는 고유한 식문화이다. 종가음식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식재료를 정성스럽게 손질하여 조리하는 향토음식의 보고이자 전통의 맛이 보존된 전통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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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도호부 출신의 열녀. 본관은 월성(月城). 아버지는 최진극(崔鎭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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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도 대구도호부 출신의 효자. 서덕희(徐德禧)의 처 경주(慶州) 최씨(崔氏)는 효성으로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시부모의 명이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반드시 순종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최씨는 장한 며느리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어머니로 자식들을 올바르게 훈육하여, 아들인 서상용(徐相龍)[1858~1927]이 1894년(고종 31)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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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이 기록된 이후 이전의 문서에서 빠진 대구광역시의 성씨. 조선 초에 작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성씨(姓氏)를 토성(土姓), 속성(續姓), 내성(來姓)으로 분류하고 있다. 토성은 그 지역을 본관으로 하거나 그 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한 성씨이며, 속성은 이전의 문서에 빠진 것을 후에 다시 기록한 성씨이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속성은 문서, 즉 장적(帳籍) 등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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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각. 월성최씨 효열각(月城崔氏孝烈閣)은 조선 후기 철종(哲宗) 때 효부이자 열녀였던 월성최씨의 지극한 효행과 정절을 기리고자 개항기인 1864년(고종 1) 11월에 세운 정려각이다. 최씨는 인천이씨(仁川李氏) 이익상(李翼祥)의 아내로서 시어머니가 병상에 있을 때 젖을 짜서 먹여 주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약으로 먹임으로써 시어머니의 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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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서 정월대보름에 동제를 지낼 때 행하는 민속놀이. 월성·월암동 동제 매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수백 년 전부터 최씨, 조씨, 이씨 세 성씨가 모여 살았던 월성·월암동 마을에서 사당에 동제를 지낼 때 행하던 민속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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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정진사전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정진사전(鄭進士傳)」은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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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현존하는 조선시대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온 문중의 큰집. 종가(宗家)의 사전적 의미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이지만, 종가는 전체 부계친족(父系親族) 집단의 맏이 집안을 가리키는 대종가(大宗家)와 대종가에서 갈라져 나와 새로운 종가를 이룬 소종가(小宗家)가 있다. 『예기(禮記)』「대전(大傳)」 편에서 유래한 종법(宗法)에 따르면 부계친족의 맏이는 대대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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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선비.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 최씨 집성촌에 살았던 최경함(崔慶涵)[1633~1699]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군양(君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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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대구에서 결성된 최초의 국채보상운동 여성단체. 대한제국 시기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1,300만 원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는 여성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대구에서는 중구 남일동 109에서 1907년 2월 23일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가 결성되었고, 1907년 6월에는 중구 남산동에서 대구남산국채보상부인회가 결성되었다. 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