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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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권국필(權國弼)[?~?]은 대한광복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일명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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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재열(金在烈)[1884~1948]은 1884년 5월 20일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일명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호는 백농(栢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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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진만(金鎭萬)[1876~1934]은 1876년 8월 2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일명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서화가로도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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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진우(金鎭瑀)[1881~?]는 1881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일명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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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9월 대구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벌인 독립운동. 정운일(鄭雲馹), 김재열(金在烈), 최병규(崔丙圭), 최준명(崔俊明) 등은 1915년 4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대구의 부호 서창규(徐昌圭)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받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15년 11월 무렵 정운일, 최병규, 김진우 등은 대구의 부호 정재학(鄭在學), 이장우(李章雨), 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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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특색을 상업 도시로 각인되게 한 대구의 시장.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시장이 생겨나고, 시장을 배경으로 객주가 등장하였다. 더욱이 대구는 경상감영이 설치된 경상도의 수부였고, 낙동강 물길을 배경으로 바닷가의 해산물과 내륙의 곡물을 교환하는 방식의 어염미두(魚鹽米豆) 무역의 주요 지점이었다. 조선 후기 대구에는 10여 개소의 시장이 열렸으며, 지금도 그 명맥을 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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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의 학생운동과 193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인물 김일식. 김일식(金一植)[1912. 10. 3.~1953]은 1912년 대구의 남산동에서 분성김씨(盆城金氏) 김영우와 이귀갑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일식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형제와 아버지 형제에게서 항일독립운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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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대구에서 경북군정청이 군정청의 진로 및 방침 선전과 행정개혁 협력을 위하여 설치한 행정 고문 기구. 1945년 11월 경북군정청은 미군정청 특사로 파견된 서상일(徐相日)과 최윤동(崔允東)의 추천을 수용하여 에드윈 A. 헨 경북도지사가 발표하는 방식으로 경상북도 행정고문을 선정하였다. 미군정청 경상북도고문은 경북군정청의 협의기관적 성격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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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대구에 파견된 미군정청의 특사. 미군정청은 1945년 11월 3일 서상일(徐相日)[1886~1962]과 최윤동(崔允東)[1897~1965] 두 사람을 대구에 특사로 파견하였다. 미군정청 특사는 1945년 11월 5일 경북군정청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사의 임무에 대하여 밝혔다. 그 내용은 군정 당국의 방침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경북 도민의 요구와 희망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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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1949년 2월 대구에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경상북도 조직. 1948년 8월 5일 국회 제40차 본회의에서 김웅진 의원 등이 ‘반민족행위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 구성안을 긴급동의로 제안하여, 거수표결 끝에 재석 155, 찬성 105, 반대 16표로 가결되었다. 곧바로 28명의 기초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안 기초작업에 착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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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달성군을 포함해 전국에 설치된 친일 반민족 행위 청산 특별 위원회. 제헌 국회에서는 일제 강점기 친일파의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역사적, 법적으로 청산하기 위하여 특별법 제정에 착수하여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1948년 9월 22일에 공포되었다. 이 법에 따라 친일파의 친일 반민족 행위를 조사할 특별 위원회로서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약칭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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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0월 대구에서 발생한 10월항쟁을 수습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관민 연합으로 결성된 사회단체. 비상시국대책위원회(非常時局對策委員會)는 1946년 10월 15일과 10월 16일 이틀에 걸쳐 경상북도청에서 미군정 및 경상북도지사, 경무 총감, 경찰 등의 관계자와 대구·경상북도의 각계 대표 인물 등 약 200명이 참석하여 10월항쟁의 긴급 수습에 관한 대책을 마련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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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시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탑. 우재 이시영 선생 순국기념탑(又齋李始榮先生殉國紀念塔)은 우재 이시영(李始榮)[1882~1919]을 기리기 위하여 1972년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세운 기념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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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경북위원. 이용노(李龍魯)[1899~?]는 1899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 마련에 참여하고 중국 베이징 한국독립군정보원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경북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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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의(全義). 아버지는 이근영(李根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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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임병하(任炳夏)[?~?]는 대한광복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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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1월 15일[음] 대구 안일암에서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 달성친목회는 1909년 정운일·최병규·이근우 등이 친목을 도모하고 실업 및 교육의 발전을 목적으로 결성한 계몽운동 단체였다. 달성친목회는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활동을 펼칠 수 없었다. 이후 달성친목회 회원 윤상태·서상일·이시영 등이 1913년 1 월 15일[음] 대구 안일암에서 시회(詩會)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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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교육운동가이자 정치인. 정운기(鄭雲騎)[?~?]는 일제강점기 교남학원(嶠南學院) 설립에 참여하고 교장을 맡아 교육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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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운일(鄭雲馹)[1884~1956]은 1884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장관동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아버지는 정시원(鄭時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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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상해 임시 정부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서 시작된 이용로, 이봉로 형제의 독립운동은 제2차 유림단 사건으로 확대되었고, 해방 후 친일 반민족 행위를 청산하기 위한 반민 특위 활동을 거쳐 경북 피학살자 유족회 활동으로 이어져 한국 근현대사의 맥을 이루었다. 이용로(李龍魯)[1897~?]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달성군 하빈면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중 도쿄[東京]에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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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병규(崔丙圭)[1881~1931]는 1881년 2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일명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최명숙(崔明淑)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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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준명(崔俊明)[?~?]은 대구 출신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일명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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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결성된 한국민주당의 지부. 한국민주당 대구지부(韓國民主黨 大邱支部)는 대구 지역의 우익 정치세력을 결집할 목적으로 결성된 정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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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운동가. 홍주일(洪宙一)[1875~1927]은 1875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호는 해동(海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