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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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조선시대의 학자인 한강 정구와 낙재 서사원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강학소. 이락서당(伊洛書堂)은 조선시대 정조 때 대구, 달성, 칠곡 등 인근 9문중의 선현들이 금호강(琴湖江)과 낙동강(洛東江)의 합수지인 강창(江倉)을 택하여 삼가헌(三可軒) 박성수(朴聖洙)가 1765년(영조 6) 9월에 착공하여 1766년 봄에 준공하였다. 한강(寒岡) 정구(鄭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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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인 전경창이 집안의 기강을 세우기 위하여 지은 강령. 「가령(家令)」의 저자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氏) 송식(宋軾)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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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한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거주지를 옮기고 가묘를 이안하면서 지은 봉안문. 「가묘이안문(家廟移安文)」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이고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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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전경창이 집안 자제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지은 교훈서. 「가령(家令)」의 저자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이고,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氏) 송식(宋軾)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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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각읍지도』에 수록된 경상도 칠곡도호부의 지도. 『각읍지도(各邑地圖)』「칠곡지도(㓒谷地圖)」는 영조 연간에 제작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각읍지도』[한古朝61-14]에 수록되어 있다. 『각읍지도』는 『해동지도(海東地圖)』 계열과 『영남지도(嶺南地圖)』 계열의 군현지도가 섞여 있다. 『각읍지도』는 『해동지도』와 『영남지도』가 제작된 이후 필사 과정에서 일정한 규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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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하며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만든 강회 규칙. 「강법(講法)」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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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 의병장 서사원이 임진왜란 시기 의병장들과 함께 지은 격문. 「격강좌열읍문(檄江左列邑文)」은 풀이하면 ‘강좌의 여러 고을에 보내는 격문’이다. 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徐思遠)[1550~1615]이 경상북도와 대구 지역 의병들의 의분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다수의 의병장들과 함께 지은 격문이다. 저자 서사원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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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훈을 추모하는 인천이씨 공도공파 문중 재실. 경모재(敬慕齋)[연경동(硏經洞)]는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 24세손 이훈(李薰)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훈은 인천이씨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의 후손이다. 이주가 지금의 수성구 파동에서 무태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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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훈을 추모하는 인천이씨 공도공파 문중 재실. 경모재(敬慕齋)[연경동(硏經洞)]는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 24세손 이훈(李薰)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훈은 인천이씨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의 후손이다. 이주가 지금의 수성구 파동에서 무태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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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경 간행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경상도 칠곡도호부의 읍지.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칠곡부읍지(㓒谷府邑誌)」는 1832년(순조 32)경 간행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제9책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도읍지』는 경상감영(慶尙監營)에서 편찬한 도지(道誌)로 개별 읍지의 항목과 서술 방식이 통일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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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후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동집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있는 세거 성씨. 경주최씨(慶州崔氏)는 신라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한국에 있는 최씨의 대종가 경주최씨는 26파가 있다. 관가정공파(觀稼亭公派)·광정공파(匡靖公派)·정랑공파(正郞公派)·사성공파(司成公派)·화숙공파(和淑公派)·충렬공파(忠烈公派) 등 6개 큰 파를 주축으로 세계를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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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후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동집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있는 세거 성씨. 경주최씨(慶州崔氏)는 신라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한국에 있는 최씨의 대종가 경주최씨는 26파가 있다. 관가정공파(觀稼亭公派)·광정공파(匡靖公派)·정랑공파(正郞公派)·사성공파(司成公派)·화숙공파(和淑公派)·충렬공파(忠烈公派) 등 6개 큰 파를 주축으로 세계를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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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이황의 한시에 1591년 대구 출신 의병장이며 학자인 서사원이 차운하여 지은 한시. 「경차퇴계선생화암운(敬次退溪先生畫巖韻)」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이다.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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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조선 전기 학자인 이주가 지은 한시. 「경차퇴계이선생화암운(敬次退溪李先生畫巖韻)」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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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 전경창의 『계동집(溪東集)』에 조선 후기 학자 이휘준이 적은 서문. 「계동선생문집서(溪東先生文集序)」을 쓴 이휘준(李彙濬)[1806~1867]은 본관이 진성(眞城)이며, 자는 심보(深父)이고, 호는 복재(復齋)이다. 아버지는 경술문장(經術文章)으로 당세에 이름난 이가순(李家淳)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 성언집(成彦集)의 딸이다. 이용석(李龍錫)의 문인이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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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위치한 구암서원에 배향된 서사원이 기록한 공부에 대한 짧은 글. 「공부차록(工夫箚錄)」은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위치한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된 의병장이며 학자인 서사원(徐思遠)[1550~1615]이 기록한 공부에 대한 짧은 글과 도설 자료 모음집이다. 서사원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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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홍여하가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소재한 백원서원에 배향된 서시립의 장수를 축하하며 지은 시. 홍여하(洪汝河)[1620~1674]의 본관은 부계(缶溪)로 자는 백원(百源), 호는 목재(木齋) 혹은 산택재(山澤齋)이다. 홍여하는 예문관에 들어가 검열이 되었다가 대교(待敎), 봉교(奉敎) 등을 거쳐 사간원 정언에 올랐다. 정언으로 있을 때 효종에게 시사(時事)를 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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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치정(穉靜), 호는 성재(省齋).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곽승화(郭承華)이고, 할아버지는 사과(司果)를 지낸 곽미(郭𤧞)이다. 아버지는 곽지완(郭之完)이며, 어머니는 진사 정옥견(鄭玉堅)의 딸 팔계 정씨(八溪鄭氏)이다. 부인은 유흥조(柳興祖)의 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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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원석(元錫), 호는 예포(禮圃). 증조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곽종경(郭宗慶), 할아버지는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지낸 곽위국(郭衛國)이다. 아버지는 용양위 부사용(龍驤衛副司勇)을 지낸 곽희천(郭希天), 어머니는 충의위(忠義衛) 정인달(鄭仁達)의 딸 동래 정씨(東萊鄭氏)이며, 부인은 성산 여씨(星山呂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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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현풍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자고(子固), 호는 낙수(洛叟). 증조할아버지는 진사(進士) 곽지정(郭之貞), 할아버지는 함안 군수(咸安郡守)를 지낸 곽황(郭趪)이다.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곽종경(郭宗慶), 어머니는 학유(學諭)를 지낸 여응구(呂應龜)의 딸 성산 여씨(星山呂氏)와 좌랑(佐郞)을 지낸 홍익세(洪翼世)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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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태정(泰靜), 호는 예곡(禮谷). 고조할아버지는 지익산군사였던 곽안방(郭安邦)으로, 청백리로 뽑혔다. 곽안방 대부터 현풍현 대니산 아래의 솔례동으로 복거(卜居)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정 곽승양(郭承陽), 할아버지는 참봉 곽당(郭瑭)이다. 아버지는 참봉 곽지인(郭之仁)이며, 어머니는 현감 조세은(曺世殷)의 딸 창녕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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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익보(益甫), 호는 괴헌(槐軒). 증조할아버지는 현감(縣監)을 지낸 곽위(郭瑋)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을 지낸 곽지번(郭之蕃)이다.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 곽초(郭超)이며, 어머니는 홍양 수(洪陽守) 이완(李琓)의 딸 완산 이씨(完山李氏)이다. 부인은 좌랑(佐郞)을 지낸 이두문(李杜文)의 딸 영양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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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등지에서 왜적에 맞선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겸(郭再謙)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는 팔공산에서 초유사 학봉 김성일과 함께 병사 모집, 군량미 수집, 요충지 방비 등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의병을 이끌고 화왕산성에 가서 망우당 곽재우와 함께 왜적에 맞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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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도 현풍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시호(諡號)는 충익(忠翼)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감(縣監)을 지낸 곽위(郭瑋)이며, 할아버지는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을 지낸 곽지번(郭之蕃)이다. 아버지는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지낸 곽월(郭越), 어머니는 목사(牧使)를 지낸 강응두(姜應斗)의 딸 진주 강씨(晉州姜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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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유정(幼靜), 호는 산미(山眉).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곽승화(郭承華)이고, 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곽위(郭瑋)이다. 아버지는 통선랑(通善郞) 곽지견(郭之堅)이며, 어머니는 부사(府使) 김수돈(金守敦)의 딸 선산 김씨(善山金氏)이다. 부인은 김언학(金彦學)의 딸 서흥 김씨(瑞興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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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무관. 구회신(具懷愼)[1564~1634]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경중(敬仲)이다. 아버지는 종사랑 구대성(具大成)이고, 어머니는 옥천황씨(玉泉黃氏)이다. 부인은 풍천임씨(豐川任氏)이고, 아들은 구인계(具仁繼)이다. 고려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구홍(具鴻)의 8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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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이었으나 서당으로 복원된 건물. 금암서당(琴岩書堂)은 임하(林下) 정사철(鄭師哲)[1530~1593]과 낙애(洛涯) 정광천(鄭光天)[1553~1594]을 배향하는 서원이었다. 정사철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계명(季明), 호는 임하(林下)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570년(선조 3) 생원 진사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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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를 흐르는 국가하천 금호강을 따라 새로이 설정된 10경. 대구광역시에는 조선 전기 대구를 대표하는 문신 중 한 명인 서거정이 노래한 「대구십영」이 전해 온다. 「대구십영」 중 1경은 금호강 주변의 수려한 경치를 노래한 것이다. 뱃길을 따라 빼어난 풍광을 노래한 시와 그림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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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1599년 서사원에게 지어 준 한시. 「기사서낙재행보(寄謝徐樂齋行甫)」를 지은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며, 장현광(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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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 문인 서사원이 1599년 청주의 불굴동에 우거하면서 지은 한시. 「기해원월입춘일 여방류접서원청주불굴지동 완열주부자인설도 유감이득일절(己亥元月立春日, 余方流接西原淸州不屈之洞, 翫閱朱夫子仁說圖, 有感而得一絶)」를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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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문신 김굉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의 신도비. 김굉필(金宏弼)[1454~1504]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簑翁)·한훤당(寒暄堂)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小學)』을 배웠으며, 이를 계기로 스스로를 ‘소학 동자’라 일컬었고, 평생토록 『소학』을 독신(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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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의병 운동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달성군 출신의 선비이자 문인. 1624년 김경조(金慶祖)[1583~1645]가 이민구(李敏求)에게 선물한 「촉석루 연회도(矗石樓宴會圖)」[세전 서화첩, 2012. 5. 24, 민속원]에 김대진(金大振)[1571~1644]도 그려져 있다. 당시 경상도 관찰사에 부임한 이민구가 가을 순시를 하는 중에 진주 촉석루에서 잔치를 열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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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현풍현[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중시(仲時), 호는 응헌(凝軒). 고조할아버지는 문경공(文敬公) 김굉필(金宏弼), 증조할아버지는 부장(部將)을 지낸 김언숙(金彦塾), 할아버지는 호조 정랑(戶曹 正郞)을 지낸 김대(金垈)이다. 아버지는 증(贈) 호조 참판(戶曹參判) 김수열(金壽悅),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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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나응숙(羅應淑)[1556~1647]의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군선(君善), 호는 묵헌(黙軒)이다. 아버지는 부사 나경신(羅敬身)이고, 어머니는 창녕구씨(昌寧仇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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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서 낙빈서원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낙빈서원」은 1679년 박팽년(朴彭年)[1417∼1456]·성삼문(成三問)[1418∼1456]·이개(李塏)[1417~1456]·유성원(柳誠源)[?~1456]·하위지(河緯地)[1412∼1456]·유응부(兪應孚)[?∼1456] 등 사육신의 절의를 추모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는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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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사원 추모 재실. 낙선재(樂仙齋)는 1860년경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을 추모하기 위하여 묘소가 있는 파산(巴山) 아래에 건립한 재실이다. 서사원은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전경창(全慶昌)[1532~1585]·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장현광(張顯光)·김우옹(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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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사원 추모 재실. 낙선재(樂仙齋)는 1860년경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을 추모하기 위하여 묘소가 있는 파산(巴山) 아래에 건립한 재실이다. 서사원은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전경창(全慶昌)[1532~1585]·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장현광(張顯光)·김우옹(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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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인 전경창이 낙엽을 노래한 부. 「낙엽부(落葉賦)」의 저자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이고,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氏) 송식(宋軾)의 딸이다. 대구부 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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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대구 출신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서사원의 개인 문집.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재(樂齋) 또는 미락재(彌樂齋)이고 시호는 문강(文康)이며,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1529~1584]의 문하에 입문하여 한강(寒岡) 정구(鄭逑) 문하에 출입하며 성리의 학문을 추구하였다. 임진왜란에는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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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대구 출신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기록한 일기문학.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壬辰倭亂期)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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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엽 달성에서 활동한 학자 서사원의 문집. 서사원(徐思遠)은 조선 중엽의 학자로 한강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재(樂齋), 미락재(彌樂齋), 만오당(晩悟堂)이다. 1550년(명종 5)에 출생하여 1615년(광해군 7)에 사망하였다. 선공감 감역(繕工監監役), 청안 현감(淸安縣監) 등을 지냈다. 이후 여러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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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구국 활동을 한 손처눌이 서사원에게 작은 액자를 받고 답례로 지어 준 한시. 「낙형지이일건석척숙오신흥팔자소액 시이사지(樂兄持貽日乾夕惕夙𤕻晨興八字小額 詩以謝之)」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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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손처눌이 임진왜란 후 대구의 연경서원을 중건하고 서사원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난후중창연경서원 차낙형운(亂後重刱硏經書院次樂兄韻)」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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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손처눌이 서사원과 최흥국을 만나 봄의 남산을 노닐며 지은 한시. 「남산조춘여서행보, 최강후계행(南山早春與徐行甫, 崔康侯溪行)」을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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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1리에 있는 광주이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1리 씩실마을은 광주이씨(光州李氏) 집성촌이다. 이 마을은 약 380년 전에 광주이씨, 이난미(李蘭美)라는 선비가 인근에 있는 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는 광산 이씨 한림공파(翰林公派) 후손으로 회령 판관을 지낸 이림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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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에 있는 성주 도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도촌 마을은 성주도씨(星州都氏) 대종파(大宗派) 집성촌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구광역시의 배후 도시로 아파트와 상가가 밀고 들어와 아파트촌으로 변모한 가운데, 도씨들의 집성촌이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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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김굉필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서원. 달성 도동서원(達城道東書院)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후에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를 종향(從享)하였다.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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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 살았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대구부사 김윤안에게 보내는 편지. 「답김대구(答金大丘)」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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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조선 후기 문인 손처눌이 서사원이 보낸 음식와 편지에 쓴 답장. 「답서행보(答徐行甫)」[모당집]을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 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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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조선 후기 문인 서사원과 나눈 문답과 편지. 「답서행보(答徐行甫)」[한강집]를 쓴 정구(鄭逑)[1543~1620]는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에 정통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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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손처눌이 조선 후기 문인 서사원의 편지에 쓴 답장. 「답서낙재행보(答徐樂齋行甫)」를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 서사원(徐思遠), 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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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만년에 강학 활동을 펼쳤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손린에게 보낸 격려 편지. 「답손계진(答孫季進)」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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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손처눌과 나눈 문답과 편지. 「답손기도(答孫幾道)」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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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이윤우와 나눈 문답과 편지. 「답이무백(答李茂伯)」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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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이서와 나눈 문답과 편지. 「답이이직(答李以直)」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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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채몽연과 나눈 문답. 「답채몽연(答蔡夢硯)」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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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구국 활동과 강학 활동을 한 손처눌이 금호강 유람 후 정구에게 받은 편지에 답한 편지. 「답한강선생(答寒岡先生)」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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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한실에 있는 1982년 건립된 정사. 채선근 후손들이 1982년 채선근을 추모하기 위해 생전 채선근이 강학을 했던 강학소에 대곡정사를 세웠다. 채선근의 자는 택중(擇仲), 호는 대곡(大谷)으로 다의당 채귀하의 후손이며, 이조정랑을 지낸 유정(柳亭) 채징(蔡澄)의 손자이다. 정구·장현광 양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형인 금탄 채선길과 함께 의병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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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한실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천채씨 대곡 종중의 재실. 대곡재는 조선 중기 대구의 유학자 대곡(大谷) 채선근(蔡先謹)[1576~1615]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채선근의 자는 택중(擇仲), 호는 대곡으로 다의당 채귀하의 후손이며, 이조정랑을 지낸 유정(柳亭) 채징(蔡澄)의 손자이다. 정구·장현광 양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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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성리학과 성리학자 그리고 유적·유물. 대구광역시 동구는 시내의 중심지인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신암동에서 동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안심지역을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팔공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1563년(명종 18)에 건립된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이 있었다. 그래서 대구광역시 동구는 대구 성리학의 출발점이자 산실이었다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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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부동에 있는 1922년 건립된 문화유씨 문중의 재사. 유시번(柳時藩)[1569~1640]은 연정(蓮亭) 유요신(柳堯臣)의 아들로 대구 해안현 삼태동에서 태어났다. 괴헌 곽재겸·낙재 서사원·한강 정구·모당 손처눌 등에게 수학을 하여 학문으로 이름이 났으며,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의 청호서원에 제향되었다. 유시번은 달성십현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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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숙천동에 있었던 1900년대 건립된 달성서씨 문중의 재실. 대구 숙천동 원모재는 조선 후기 대구의 유학자인 서사선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이다. 달성서씨 인물인 서사선은 조선 후기 대구의 유학자이다. 서사선은 자가 정보(精甫), 호가 동고(東皐)이다. 사촌형인 낙재 서사원과 한강 정구에게 수업을 받았으며,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유일(遺逸)로 예빈시참봉에 올랐다. 서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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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주요한 문화유산. 대구광역시 중구, 남구, 달서구, 서구, 북구, 동구, 수성구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3건, 보물 68건, 사적 8건, 천연기념물 1건, 국가민속문화재 4건, 국가등록문화재 11건, 대구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69건, 무형문화재 15건, 기념물 14건, 민속문화재 2건, 문화재자료 41건 등 모두 236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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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학자이자 의병인 박성의 문집 책판. 대암선생문집책판은 조선 후기 학자인 대암(大庵) 박성(朴惺)[1549~1606]의 문집을 판각한 것으로, 박성이 사망한 후 남은 글을 모아 1679년(숙종 5) 박성의 증손 박세희(朴世熙)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2007년 4월 10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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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최동집의 시문집. 최동집(崔東㠍)[1586~1661]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진중(鎭仲), 호는 대암(臺巖)이다. 아버지는 현령 최계(崔誡)이다.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6년(광해군 8) 병진 증광시(增廣試)에 진사(進士) 3등 51위로 합격하였고, 정묘호란에는 의병을 규합하였다.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참봉에 제수되고 대군의 스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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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도학의 중심지이자, 한국의 서원 건축을 대표하는 도동서원에 관한 이야기. 2019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예정인 도동서원(道東書院)은 동방 오현(五賢)의 으뜸으로써 문묘에 배향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을 향사하는 서원이자, 영남을 대표하는 서원 중 하나이다. 1568년(선조 1) 김굉필의 고향인 현풍에 향중 사림들에 의해 건립한 쌍계 서원(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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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전이갑·전의갑을 추모하는 재실. 도남재(道南齋)는 고려 개국공신 전이갑(全以甲)·전의갑(全義甲)을 기리기 위하여 우헌(寓軒) 전민련(全敏連)[1546~1615]과 아들인 거옹(巨翁) 전사헌(全士憲)[1565~1618]이 건립한 재실이다. 전민련·전사헌 부자는 선대의 고향이었던 강원도 정선을 떠나 팔공산 자락 도남동으로 이거하였다. 이후 지척의 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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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전이갑·전의갑을 추모하는 재실. 도남재(道南齋)는 고려 개국공신 전이갑(全以甲)·전의갑(全義甲)을 기리기 위하여 우헌(寓軒) 전민련(全敏連)[1546~1615]과 아들인 거옹(巨翁) 전사헌(全士憲)[1565~1618]이 건립한 재실이다. 전민련·전사헌 부자는 선대의 고향이었던 강원도 정선을 떠나 팔공산 자락 도남동으로 이거하였다. 이후 지척의 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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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허목이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동화사 주변에 있었던 도산사에 대해 적은 기문. 허목(許穆)[1595~1682]의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찬성 허자(許磁), 할아버지는 별제 허강(許橿), 아버지는 현감 허교(許喬)이며, 어머니는 정랑 임제(林悌)의 딸이다. 부인은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손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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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도석규(都錫珪)[1773~1837]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회언(會彦), 호는 서호(西湖)·금남(錦南)이다. 어릴 때의 이름은 도병규(都秉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도관모(都寬謨)이고, 아버지는 도필채(都必采)이다. 도필동(都必東)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첫 번째 부인은 아산장씨(牙山蔣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인천채씨(仁川蔡氏)이다. 동생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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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정언(廷彦), 호는 양직자(養直子). 고조할아버지는 첨절제사를 역임한 도의문(都義文)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전력부위 도순경(都舜卿)이며, 할아버지는 병마우후 도흠조(都欽祖)이다. 아버지는 병절교위 도원국(都元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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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도신수(都愼修)[1598~1650]는 팔거현[현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 ]에서 태어나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과 한강(寒岡) 정구(鄭逑)에게 수학하였다. 당쟁의 영향으로 주로 외직에 있었지만 백성들의 구휼과 교화 등에 힘써 백성들이 도신수의 공을 기려서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고, 왕명으로 내구마(內廐馬)가 하사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부임한 영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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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명숙(明叔), 호는 휘헌(撝軒). 증조할아버지는 경상좌우후 도흠조(都欽祖)이고, 할아버지는 병절교위 도원국(都元國)이다. 아버지는 양직당(養直堂) 도성유(都聖兪)이며, 어머니는 이심해(李心海)의 딸 광주 이씨(廣州李氏)이다. 친아버지는 무공랑(務功郞) 서재(鋤齋) 도여유(都汝兪)이며, 친어머니는 증판결사 이우겸(李友謙)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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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군 하빈현에서 출생한 학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해중(諧仲), 호는 서재(鋤齋). 고조할아버지는 첨절제사 도의문(都義文)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전력 부위 도순경(都舜卿)이다. 할아버지는 경상 좌우후 도흠조(都欽祖), 아버지는 증 한성부 우윤 도원결(都元結)이다. 어머니는 증 참의 홍제문(洪悌文)의 딸 부림 홍씨(缶林洪氏)이다. 부인은 증 판결사 이우겸(李友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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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의병장이자 학자. 도응유(都應兪)[1574~1639]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해보(諧甫), 호는 취애(翠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도순경(都舜卿)이고, 할아버지는 도흠조(都欽祖)이다. 아버지는 초계군수를 지낸 도원량(都元亮)이고, 어머니는 곽진(郭趁)의 딸 현풍곽씨(玄風郭氏)이다. 부인은 신유경(辛裕慶)의 딸 영산신씨(靈山辛氏)이며, 동생은 도언유(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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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해보(諧甫), 호는 취애(翠厓). 고조할아버지는 첨사 도의문(都義文)이며, 증조할아버지는 부위 도순경(都舜耕)이다. 할아버지는 우후 도흠조(都欽祖), 아버지는 도원량(都元亮)이다. 도원량은 용천(龍川), 청도(淸道), 초계(草溪)의 세 군을 역전(歷典)하였는데, 둘째 아들 도경유(都慶兪)가 영사 원종공신(寧社原從功臣)에 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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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여러 책에서 가려 뽑은 독서에 대한 기록. 「독서첩(讀書帖)」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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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유학자 서사원이 살던 집에 건립한 옛 구암서원.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492-58번지[동산동 229]는 조선 후기 ‘대구 유학(儒學)의 스승’으로 일컫는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이 살던 곳이며 1717년(숙종 44)에 구암서원(龜巖書院)이 건립된 장소이기도 하다. 구암서원은 2003년 북구 산격동으로 이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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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유학자 서사원이 살던 집에 건립한 옛 구암서원.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492-58번지[동산동 229]는 조선 후기 ‘대구 유학(儒學)의 스승’으로 일컫는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이 살던 곳이며 1717년(숙종 44)에 구암서원(龜巖書院)이 건립된 장소이기도 하다. 구암서원은 2003년 북구 산격동으로 이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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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구암서원에 배향된 서사원이 1603년 9월 경상북도 동남쪽을 유람하면서 기록한 일기. 「동유일록(東遊日錄)」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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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에 은거한 학자 이서의 시문집. 이서[1566~1651]의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이직(以直), 호는 동호(東湖)이다. 아버지는 진천 현감 이홍우(李弘宇)이며,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로 동부참봉 강개(姜漑)의 딸이다.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했으나, 광해군 때 정구가 권신의 배척을 받아 향리로 돌아가자 벼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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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서 발원하여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과 서변동에서 금호강과 합류하는 지방하천. 동화천(桐華川)은 대구광역시 북구를 흐르는 지방하천으로 금호강(琴湖江)의 제1지류, 낙동강(洛東江)의 제2지류이다. 동화천은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동학사 일대에서 발원하여 북구 동변동 및 서변동의 금호제1교 부근에서 금호강과 합류한다. 능성천(能城川), 용수천(龍水川), 지묘천(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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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학자인 채병달이 대구광역시 화암산에 올라 연경서원의 유허지를 바라보고 지은 한시. 「등연경화암(登硏經畫巖)」의 저자 채병달(蔡炳達)[1879~1957]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중삼(仲三)이고, 호는 우당(愚堂)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美垈洞) 출신이며, 곽종석(郭鍾錫)[1846~1919]의 문인이다.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광역시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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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문인 학자인 이익룡이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화암에 올라 연경서원을 바라보고 지은 한시. 「등화암(登畫巖)」의 저자 이익룡(李翼龍)[1732~1794]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이오(而五)이고, 호는 요산당(樂山堂)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대암리(臺巖里)에서 태어났다. 이익룡은 만년에 요산당(樂山堂)을 지어 학문 연마에 매진하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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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곽재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시. 「만곽괴헌익보(輓郭槐軒益甫)」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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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손처눌이 대구 지역 출신인 전경창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만사」[손처눌]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대구부(大丘府) 수성리(壽城里) 황청동(黃靑洞)[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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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학자이며 의병장인 이주가 대구 출신 문신 전경창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만사」[이주] 저자 이주(李輈)[1556~160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이고, 호는 태암(苔巖)이다. 이주는 1556년(명종 11)에 대구부 수성현 파잠리(巴岑里)[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났고, 후에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로 옮겨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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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학자이자 의병장인 정광천이 대구 출신 문신 전경창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만사」[정광천] 저자 정광천(鄭光天)[1553~1594]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자회(子晦), 호는 낙애(洛涯)·송파(松坡)이다. 아버지는 정사철(鄭師哲)[1530~1593],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호연(李浩然)의 딸이다. 대구부 하빈현 동곡리[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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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구국 활동과 강학 활동을 한 손처눌이 서사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지은 만시. 「만서낙재행보(輓徐樂齋行甫)」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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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구암서원에 제향된 조선 후기 문신 서성이 정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만장(輓章)」을 쓴 서성(徐渻)[1558~1631]의 본관은 대구(大丘)이고, 자는 현기(玄紀), 호는 약봉(藥峯)이다. 아버지는 서해(徐嶰)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 이고(李股)의 딸이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이이(李珥)[1536~1584]의 문인이다. 암행어사, 형조판서, 병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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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이광정이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손처눌의 문집인 『모당집』에 부쳐 쓴 서문. 「모당집서(慕堂集序)」의 저자 이광정(李光靖)[1714~1789]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휴문(休文)이고, 호는 소산(小山)이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1711~1781]의 동생이다. 경술(經術)에 뛰어나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천거되었다. 「모당집서」는 이광정이 동몽교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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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청호서원에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손처눌의 문집. 『모당선생문집』의 저자는 손처눌(孫處訥)[1553~1634]이다. 손처눌의 자(字)는 기도(幾道), 호(號)는 모당(慕堂), 본관은 일직(一直)이다.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서 태어났다.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과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연경서원(硏經書院)과 영모당(永慕堂)에서 강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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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에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구금된 상태에서 이봉의 시에 차운한 한시. 「무술십일월재금옥 차이괴장봉운(戊戌十一月在禁獄, 次李槐丈逢韻)」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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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만들어진 문학 전체.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한 작품을 말한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도 일찍부터 신화, 전설, 민담을 비롯하여 민중들이 삶의 현장에서 부르던 다양한 민요, 수수께끼와 속담 등 구비문학이 풍부하게 전승되어 왔다. 고려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는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일어난 공산전투와 관련이 깊은 작품이다. 조선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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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손처눌이 여러 벗과 스승 정구와 함께 낙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지은 한시. 「문한강선생장유포산연포지유 여서행보급제우등선지무계진 피주유음(聞寒岡先生將有苞山蓮浦之遊 與徐行甫及諸友登船至武溪津 被酒有吟)」을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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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박경신(朴慶新)[1560~1626]의 본관은 죽산(竹山)이며, 자는 중길(仲吉), 호는 한천(寒泉) 또는 삼곡(三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겸문(朴兼文)이고, 할아버지는 박환(朴煥)이다. 아버지는 장령과 군수를 지낸 박사공(朴思恭)이고, 어머니는 윤징(尹澄)의 딸 남원윤씨(南原尹氏)이다. 부인은 심우선(沈友善)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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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연경서원과 이강서원의 원장을 역임한 학자. 박경협(朴慶協)[1732~1811]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군만(君萬), 호는 예계(禮溪)이다. 아버지는 박윤조(朴胤祖)이고,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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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도 현풍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응(德凝), 호는 대암(大庵). 증조할아버지는 서부 주부(西部主簿)를 지낸 박성림(朴成林)이며, 할아버지는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박순(朴純)이다. 아버지는 생원(生員) 박사눌(朴思訥), 어머니는 관찰사(觀察使)를 지낸 김연(金緣)의 딸 광산 김씨(光山金氏)이다. 부인은 승지(承旨)를 지낸 이광진(李光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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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성의 묘비. 박성(朴惺)[1549~1606]은 조선 중엽의 학자·의사(義士)로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응(德凝), 호는 대암(大庵)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배신(裵紳)[1520~1573]에게 사사하였으며, 과거 시험에의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정진, 최영경(崔永慶)·김면(金沔)·장현광(張顯光) 등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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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의병장. 박수춘(朴壽春)[1572~1652]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경로(景老), 호는 국담(菊潭) 또는 숭정처사(崇禎處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언계(朴彦桂)이고, 할아버지는 박대성(朴大成)이다. 아버지는 동몽교관 박신(朴愼)이고,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형은 박장춘(朴長春)이고, 동생은 박득춘(朴得春)이다. 부인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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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군석(君錫), 호는 도곡(陶谷)·하빈조수(河濱釣叟). 증조할아버지는 증사복시 정(贈司僕寺正) 박일산(朴一珊)이고, 증조할머니는 참판(參判)을 지낸 김백형(金伯亨)의 딸 증숙인(贈淑人) 고령 김씨(高靈金氏)이다. 할아버지는 소격서 참봉(昭格署參奉)을 지낸 박계창(朴繼昌)이며, 할머니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이건(李謇)의 딸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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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손처눌이 1614년 대구부사 김윤안과 팔공산을 유람하면서 서시립의 산거를 방문하고 지은 한시. 「배김통판이정 유팔공산 역방서입지 산거 공차계정운이증(陪金通判而靜 遊八公山 歷訪徐立之 山居 共次溪亭韻以贈)」를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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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경여(景餘), 호는 낙천(洛川). 증조할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 배중현(裵仲賢)이고, 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배환(裵紈)이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배사종(裵嗣宗)이며, 어머니는 박동선(朴東善)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부인은 밀양 손씨(密陽孫氏)이다. 배신의 5대조인 중랑장 배용신(裵用臣)이 현풍현에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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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대구 출신 학자인 손처눌이 이시발, 조홍립과 함께 대구의 화암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 「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陪李方伯養久 曺通判克遠 弘立 遊畫巖)」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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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있던 연경서원에 정구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1622년 학자 장현광이 지은 고유문. 「봉안한강연경시 고퇴계선생문(奉安寒岡硏經時 告退溪先生文)」을 쓴 장현광(張顯光)[1554~1637]은 본관이 인동(仁同)이며, 자는 덕회(德晦)이고, 호는 여헌(旅軒)이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아버지는 장열(張烈)이고, 어머니는 경산이씨(京山李氏) 이팽석(李彭錫)의 딸이다. 여러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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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포란형 명당에 자리잡고 있는 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동화사. 동화사(桐華寺)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봉황형 터는 대단히 상서로운 길지로 봉황이 날아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동화사에는 봉황을 이곳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 풍수적 조치로 여러 가지 비보(裨補)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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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포란형 명당에 자리잡고 있는 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동화사. 동화사(桐華寺)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봉황형 터는 대단히 상서로운 길지로 봉황이 날아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동화사에는 봉황을 이곳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 풍수적 조치로 여러 가지 비보(裨補)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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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신무동, 용수동 일대에서 백불암 최흥원이 실시한 동약. 북송의 남전여씨(藍田呂氏)에 의해 창안된 향약은 남송대 주자의 수정·보완을 거치면서 성리학적 향촌사회의 운영원리로 『소학』교육과 함께 각광받게 되었다. 여말선초 성리학의 수용과 함께 유입된 주자향약은 1515년(중종 10)을 전후하여 사림 세력에 의해 실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는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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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4월에 대구에서 강학 활동에 힘쓴 학자 손처눌이 정인홍의 상소에 대항하여 유생들의 공의를 얻고자 지은 통문. 「부정척사통문(扶正斥邪通文)」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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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주요한 문화유산. 북구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7건, 사적 1건, 대구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1건, 무형문화재 1건, 기념물 2건, 문화재자료 2건 등 모두 14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이 중 보물 7건은 경북대학교의 소장품으로 북구 지역의 문화재로 보기는 어렵다. 비지정문화재는 신석기~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의 유적이 발굴 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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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사수동(泗水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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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 정구의 마지막 강학소. 사양정사(泗陽精舍)의 전신인 사양서당(泗陽書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사후 30년인 1651년(효종 2)에 중건되어 정구를 추모하고 강학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이후 1964년(숙종 20)에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로 이건하고 사양서원(泗陽書院)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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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달성서씨 세거지. 서씨(徐氏)는 고조선 때 여수기(余守己)가 서씨 성을 하사받은 것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이후 신라 말 고려 초에 서신일(徐神逸)로 이어졌다. 대구에 정착한 것은 고려시대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 등을 역임한 서진(徐晉)이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고 달성 지역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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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구국 활동을 한 손처눌이 송사의 사정을 정구에게 알리기 위하여 보낸 편지. 「상한강선생(上寒岡先生)」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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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사우 정구에게 보낸 편지. 「상한강정선생(上寒岡鄭先生)」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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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사립 교육기관. 서당은 향촌 사회에 생활 근거를 둔 사족(士族)과 백성이 주체가 되어 마을 기본단위로 설립한 초중등 단계의 사설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사족이 사는 마을이면 대부분 서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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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하던 손처눌이 서원에서 소회를 읊은 한시. 「서당진예 신기서추 음시제학자(書堂塵穢 晨起鋤箒 吟示諸學者)」를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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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1607년 도동서원 액판을 현액하면서 지은 글. 「서도동서원액판하(書道東書院額板下)」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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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서사선은 예빈시 직장 서필(徐弼)의 증손으로, 조부는 서응기(徐應期)이고, 아버지는 남간(南澗) 서식(徐湜)[1530~1593]이다.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 박란(朴鸞)의 딸이다. 부인은 진산진씨(珍山陳氏) 진문효(陳文孝)의 딸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 종형 서사건(徐思建)의 아들로 가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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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재(樂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빈시직장 서필(徐弼)이고, 할아버지는 서응기(徐應期)이다. 아버지는 전교 서흡(徐洽)이고, 어머니는 이익조(李益祖)의 딸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큰아버지 서형(徐浻)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부인은 박배(朴培)의 딸 죽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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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대구 지역 유학자 낙재 서사원의 묘소.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은 1550년(명종 5) 6월 4일 출생하여 1615년(광해군 7) 4월 9일 66세로 사망하였다. 대구부사 김윤안(金允安)은 소렴(小殮)과 대렴(大殮) 때 두 차례 조문을 하였고, 관찰사 심돈(沈惇)은 부의(賻儀)를 보내 왔다. 9월 4일 대구 하빈현(河濱縣) 파산(巴山) 중턱 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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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재(樂齋). 증조할아버지는 예빈시 직장(禮賓寺直長)을 지낸 서필(徐弼)이고, 증조할머니는 숙부인(淑夫人) 대구 배씨(大邱裵氏)이다. 할아버지는 서응기(徐應基)이며, 할머니는 찰방(察訪)을 지낸 박사림(朴士林)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아버지는 전교(典敎)를 지낸 서흡(徐洽)이고,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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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결성하여 왜적에 맞서 싸운 임진왜란 의병장. 서사원은 임진왜란 때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 결성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또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모당 손처눌과 함께 지역의 유생을 모아 선사재와 연경서원에서 강학하여 대구의 문풍을 진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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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경세가 대구의 봉산서원에 제향된 손린의 사호도 장자 뒤에 부쳐 1608년에 쓴 발문. 「서손계진사호도장자(書孫季進四晧圖障子)」의 저자 정경세(鄭經世)[1563~1633]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경임(景任)이고, 호는 우복(愚伏)이다. 유성룡(柳成龍)[1542~1607]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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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 도호부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입지(立之), 호는 전귀당(全歸堂). 증조할아버지는 교관(校官)을 지낸 서우(徐遇), 할아버지는 주부(主簿)를 지낸 서언겸(徐彦謙)이다.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서행원(徐行遠), 어머니는 신천 강씨(信川康氏)이다. 서시립의 부인은 민충보(閔忠輔)의 딸 여흥 민씨(驪興閔氏)와 호군(護軍) 김희신(金希信)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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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효자. 서시립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입지(立之), 호는 전귀당(全歸堂)이다. 고려 때 판도판서를 지냈으며 달성군에 봉해진 서진(徐晉)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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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후에 선현에게 제사 드리고 학문을 강론하던 대구 지역의 사립 교육기관. 우리나라에 최초로 건립된 서원(書院)은 1543년(중종 38)에 경상도 순흥(順興)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주세붕은 백운동서원에 지역 출신 선현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지역 유생들에게 유학을 강학하였는데, 이후에 선현에 대한 제향(祭享)과 유생들의 학문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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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과 동구 지묘동 사이에 있었던 연경서원을 퇴계 이황이 읊은 한시. 「서원십영 화암서원 대구(書院十詠 畫巖書院 大丘)」를 쓴 이황(李滉)[1501~1570]은 본관이 진성(眞城)이며,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이다. 시호(諡號)는 문순(文純)이다. 우리나라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서원십영 화암서원 대구」의 배경이 되는 연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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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전개한 서사원이 선사정사를 만들고 정한 규칙. 「선사정사학규(仙査精舍學規)」를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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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대구 출신 학자 손처눌이 공자 사당을 훼손한 아전의 처벌을 촉구하기 위하여 지은 통문. 「성묘대량통문(聖廟大樑通文)」을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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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에 있는 채선수를 추모하는 재실. 성산재(城山齋)는 조선 후기 학자이자 의병장 채선수(蔡先修)[1568~1633]를 기리기 위하여 인천채씨(利川蔡氏) 문중에서 건립한 묘소 재실이다. ‘성산재’란 고산토성 아래에 지은 집이란 의미로 붙인 당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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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에 있는 채선수를 추모하는 재실. 성산재(城山齋)는 조선 후기 학자이자 의병장 채선수(蔡先修)[1568~1633]를 기리기 위하여 인천채씨(利川蔡氏) 문중에서 건립한 묘소 재실이다. ‘성산재’란 고산토성 아래에 지은 집이란 의미로 붙인 당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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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인천채씨 성재 문중 서당. 성재서당은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의 인천채씨 성재 문중의 현조인 양전헌(兩傳軒) 채선견(蔡先見)[1574~1644]이 최초로 건립했다. 채선견은 이곳 성재정(盛才亭)에서 당시 대구의 대표적 유학자인 손처눌·도신수·정극준·최동집 등과 교유하였다. 채선견의 호인 양전헌은 정구와 조호익의 양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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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왜적에 맞서 싸운 문신. 손기양(孫起陽)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징(景徵), 호는 오한(聱漢)·송간(松磵)이다. 아버지는 생원 손겸제(孫兼濟), 어머니는 영산신씨(靈山辛氏)로, 신취(辛鷲)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야로송씨(冶罏宋氏)로, 처사 송근(宋瑾)의 딸인데 후사가 없었다. 둘째 부인은 우계이씨(羽溪李氏)로, 첨지중추부사 이후린(李厚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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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손기업(孫起業)[1565~1606]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흥언(興彦), 호는 은암(隱庵)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신교위 손맹(孫孟)이고, 할아버지는 기자전참봉 손응(孫凝)이다. 아버지는 울산부사를 지낸 손영제(孫英濟)이고, 어머니는 서시중(徐時重)의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부인은 지평 전경창(全慶昌)의 딸 옥산전씨(玉山全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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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달성군에서 활약한 의병장.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흥언(興彦), 호는 은암(隱庵). 증조할아버지는 손맹(孫孟)으로 현신교위(顯信校尉)를 지냈으며, 할아버지는 장사랑 손응(孫凝)으로 기자전 참봉(箕子殿參奉)을 지냈다. 아버지는 손영제(孫英濟)로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손영제는 1561년 식년 문과 병과로 급제하였고, 도산 서원 건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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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손린(孫遴)[1566~1628]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계진(季進), 호는 문탄(聞灘)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손순무(孫荀茂)이고, 할아버지는 손세경(孫世經)이다. 아버지는 손덕운(孫德雲)이고, 어머니는 박세연(朴世椽)의 딸 춘천박씨(春川朴氏)이다. 부인은 유흥국(柳興國)의 딸 약목유씨(若木柳氏)이며, 아들은 손처각(孫處恪)·손처신(孫處愼)·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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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참봉 손세경(孫世經)이고, 할아버지는 현감 손치운(孫致雲)이다. 아버지는 선무랑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충의위 이탄(李坦)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광주이씨(廣州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하성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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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참봉 손세경(孫世經)이고, 할아버지는 현감 손치운(孫致雲)이다. 아버지는 선무랑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충의위 이탄(李坦)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광주이씨(廣州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하성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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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정호인이 지은 손처눌의 묘갈명. 「손처눌 묘갈명(孫處訥 墓碣銘)」의 저자 정호인(鄭好仁)[1597~1655]의 본관은 영일(迎日)이며, 자는 자견(子見), 호는 양계(暘溪)이다. 어린 시절 손처눌(孫處訥)[1553~1634]에게 수학하였고, 장현광(張顯光)[1554~1637]을 스승으로 모셨다. 병자호란(丙子胡亂)[1636] 때 의병을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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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 대구 지역 유학자 모당 손처눌의 묘소.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은 1553년(명종 8) 6월 25일 대구 수성 상동에서 출생하여 1634년(인조 12) 6월 15일 평소에 강학하였던 영모당(永慕堂)에서 82세로 사망하였다. 9월 12일 수성구 황금동[황청동] 선영 아래 손좌(巽坐)에 장례하였다. 장례에 모인 사람은 420여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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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의 대표적인 유학자 손처눌이 지은 전경창의 행장. 「손처눌 행장」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서사원(徐思遠)[155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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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 도호부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일직(一直).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 증조할어버지는 참봉(參奉) 손세경(孫世經), 할아버지는 현감 손치운(孫致雲)이다.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을 지낸 손수(孫邃),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처는 광주 이씨(廣州李氏) 이원경(李遠慶)의 딸과 창녕 조씨(昌寧曺氏)[하성 조씨(夏城曺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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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활약한 공산의진군 의병장. 손처눌의 본관은 일직(一直),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고려 공민왕 때 좌리공신을 지낸 손홍량(孫洪亮)의 11대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손세경(孫世經), 할아버지는 손치운(孫致雲), 아버지는 손수(孫遂),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로 이탄(李坦)의 딸이다. 첫번째 부인은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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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손처약(孫處約)[1556~?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희로(希魯), 호는 오매정(五梅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참봉 손세경(孫世經)이고, 할아버지는 현감 손치운(孫致雲)이다. 아버지는 선무랑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충의위 이탄(李坦)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아들은 손설(孫渫)이고, 손자는 손시주(孫是冑)이다. 형은 손처눌(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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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 송담서원(松潭書院)은 1694년(숙종 20) 대암(大庵) 박성(朴惺)[1549∼1606]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이다. 박성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응(德凝)이다. 박성은 1549년(명종 4) 현풍(玄風) 솔례촌(率禮村)[현 달성군 현풍읍 대리]에서 태어났다. 낙천(洛川) 배신(裵紳)에게 수학하고, 한강(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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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에 정착한 학자. 송원기(宋遠器)[1548~1615]의 본관은 야로(冶爐)이며, 자는 학무(學懋), 호는 후촌(後村) 또는 아헌(啞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방현(宋邦賢)이고, 할아버지는 송응규(宋應奎)이다. 아버지는 송사호(宋師顥)이고, 어머니는 성주도씨(星州都氏)이다. 부인은 이윤(李潤)의 딸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형은 송원도(宋遠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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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송이석(宋履錫)[1698~1782]의 본관은 야로(冶爐)이며, 자는 백수(伯綏), 호는 남촌(南村)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세은(宋世殷)이고, 할아버지는 송희(宋熙)이다. 아버지는 송명기(宋命基)이고, 어머니는 이달신(李達新)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부인은 정치운(鄭致雲)의 딸 청주정씨(淸州鄭氏)이며,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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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학자인 대구 출신 전경창이 주청사를 송별하면서 지은 한시. 「송주청사(送奏請使)」의 저자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이고, 호는 계동(溪東) 또는 만오(晩悟)라고도 한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氏) 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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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에 있는 조선후기 숭정처사 대암 최동집[1586~1661] 선생의 유허비. 최동집[1586~1661]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진중(鎭仲), 호는 대암(臺巖)이다. 아버지는 현령 최계(崔誡)이며 한강(寒岡)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6년(광해군 8)에 병진 증광시(增廣試)에 진사 3등 51위로 합격하고, 참봉에 제수되어 대군의 스승이 되었다. 정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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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의병장 서사원이 1597년 순찰사에게 군량 조달을 부탁 받고 지은 군량미 요청 글. 「승차걸속문(承差乞粟文)」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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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구국 활동을 하던 서사원이 1597년 체찰사의 명을 받고 남하하는 도중 유생을 만나 지어 준 한시. 「승체찰사분부령병남하, 유유생수업자휴주출전, 인증근체(承體察使分付領兵南下, 有儒生受業者携酒出餞, 因贈近軆)」를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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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당. 승호서당(承湖書堂)은 이난미(李蘭美)[1592~1661]를 추모하고 후손들의 교육을 위해 건립되었다. 이난미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유형(幼馨), 호는 양촌(陽村)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70세가 되어 우로(優老)의 법에 따라 행통정대부(行通政大夫) 용양위(龍驤衛) 부호군(副護軍)을 제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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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정사 학도들의 배움을 독려하기 위하여 지은 글. 「시정사학도(示精舍學徒)」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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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년에 조선 전기 학자이며 의병장인 이주가 손처눌, 유요신과 함께 대구의 화암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 「신묘맹추 여손기도 유성유 유화암(辛卯孟秋與孫幾道柳聖兪遊畫巖)」의 저자 이주(李輈)[1556~160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이주는 1556년(명종 11)에 대구부 수성현 파잠리(巴岑里)[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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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채영걸이 방문하고 이황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알연경서원 용퇴계선생화암운(謁硏經書院 用退溪先生畵巖韻)」를 쓴 채영걸(蔡瀛傑)[1611~1649]은 본관이 인천(仁川)이고, 자는 백등(伯登)이며, 호는 시산(是山)이다. 아버지는 채무(蔡楙), 어머니는 안동김씨 김경건(金慶建)의 딸이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1632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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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의 왕옥산 언덕에 있었던 정자인 압로정과 소유정 아래 금호강에서 이루어진 조선 후기의 선유 문화. 압로정(狎鷺亭)과 소유정(小有亭)은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1529~1584]이 금호강 강변에 있는 왕옥산 언덕에 지었던 정자이다. 왕옥산은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에 있는 금호강 강변의 낮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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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주희의 「무이구곡가」 운자를 활용하여 지은 10수의 한시. 「앙화주부자무이구곡시운 십수(仰和朱夫子武夷九曲詩韻 十首)」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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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 양씨달성 지역 입향조.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백원(百源), 호는 남재(南齋). 증조할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양순달(楊順達)이고, 증조할머니는 판관(判官)을 지낸 조휘기(曺彙基)의 딸 숙부인 남평 조씨(南平曺氏)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양세광(楊世光)이며, 할머니는 유번(柳蕃)의 딸 의인(宜人) 진주 유씨(晉州柳氏)와 임대성(林大成)의 딸 의인 평택 임씨(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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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도성유의 시문집. 도성유(都聖兪)[1571~1649]는 성리학자로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정언(廷彦), 호는 양직당(養直堂)이다. 도여유와 함께 달성 십현(達城十賢)으로 꼽히고 있다. 할아버지는 경상좌상좌우후 도흠조(都欽祖)이며, 아버지는 한성부 윤 도원결(都元結)이다. 도성유는 어릴 때 권응인(權應仁)에게 배우고 정구(鄭逑)와 서사원(徐思遠)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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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호연지기를 기르는 위하여 지은 글. 「양호첩(養浩帖)」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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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손린에게 보낸 편지. 「여손계진(與孫季進)」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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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의병장이며 학자인 서사원이 손처눌에게 보내는 편지. 「여손처눌(與孫處訥)」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를 중심으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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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년 대구 지역의 금호강에서 손처눌이 서사원, 장현광 등과 함께 뱃놀이를 하고 부강정에서 묵으며 지은 한시. 「여낙여양형급육칠관동범선사 박삼파진 투숙부강정」를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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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도성유에게 보낸 편지. 「여도정언(與都廷彦)」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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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서사원에게 보낸 편지. 「여서행보(與徐行甫)」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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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있었던 조선 전기에 건립된 사액서원이자 대구지역 최초 서원. 연경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과 매암(梅巖) 이숙량(李淑樑)[1519~1592]을 제향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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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를 조선 후기 학자 송명기가 차운하여 지은 한시. 「연경서원 경차퇴계선생운(硏經書院 敬次退溪先生韻)」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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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었던 대구 최초의 서원. 연경서원은 1563년에 건립되었으며 1세대, 2세대, 3세대 유학자를 양성하여 대구를 교육과 문화, 학술의 고장으로 만든 대구교육의 원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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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 정구가 연경서원에 이황의 위판을 봉안하면서 쓴 글. 「연경서원봉안퇴계이선생문(硏經書院奉安退溪李先生文)」을 쓴 정구(鄭逑)[1543~1620]은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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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를 1621년 조선 후기 학자 김지남이 차운하여 지은 한시. 「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硏經書院 次退溪記後 絶句韻 示諸生)」을 쓴 김지남(金止男)[1559~1631]은 본관이 광산(光山)이며, 호는 용계(龍溪)이고 자는 자정(子定)이다. 1591년 별시(別試) 대과(大科)에 합격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호남으로 내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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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조선 후기 학자 도성유가 참배하고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연원첨배후 경차노선생화암운(硏院瞻拜後 敬次老先生畵巖韻)」를 쓴 도성유(都聖兪)[1571~1649]는 본관이 성주(星州)이고, 자는 정언(廷彦)이며, 호는 양직자(養直子)이다.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과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이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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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16세기 이래 영남을 이끌어 간 재지사족 세력. 조선 초기 경상도에서는 학문적 계보가 김안국을 매개로 손소·손중돈 계열에서 이언적이, 권벌·이우·이현보의 기반 위에서 이황이, 정여창·김굉필·김일손의 학문 전통 위에서 조식이 나온 것으로 인식하였다. 영남학파는 사림파로부터 자기 자신의 인격 수양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기초가 되는 『소학(小學)』 교육과 『주자가례(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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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영남도』에 수록된 경상도 칠곡도호부의 지도. 『영남도(嶺南圖)』「칠곡지도(㓒谷地圖)」는 영조 연간에 제작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영남도』[K2-4564] 좌도상(左道上)에 수록되어 있다. 『영남도』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영남지도』가 제작된 이후 필사 과정에서 모든 군현이 동일한 규격으로 편찬되었다. 『영남도』는 일부 군현지도의 뒷면에 비변사 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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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간행된 『영남읍지』에 수록된 경상도 칠곡도호부의 읍지. 『영남읍지』「칠곡부읍지(㓒谷府邑誌)」는 1871년(고종 8) 간행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영남읍지(嶺南邑誌)』 제3책에 수록되어 있다. 『영남읍지』는 1871년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경상도 각 읍에서 편찬하여 상송한 경상도의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칠곡부읍지」는 칠곡도호부에서 제작한 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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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간행된 『영남읍지』에 수록된 경상도 칠곡도호부의 읍지. 『영남읍지』「칠곡부읍지(㓒谷府邑誌)」는 1895년(고종 32) 간행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영남읍지(嶺南邑誌)』 제3책에 수록되어 있다. 『영남읍지』는 1895년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경상도 각 읍에서 편찬하여 상송한 경상도의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읍지 대부분이 ‘의정부(議政府)’라고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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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영남지도』에 수록된 경상도 칠곡도호부의 지도. 『영남지도(嶺南地圖)』「칠곡지도(㓒谷地圖)」는 영조 연간에 제작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영남지도』[奎12154] 제2책에 수록되어 있다. 『영남지도』는 경주·남해·창원·하양 등 일부 군현지도 뒷면에 비변사 도장이 찍혀 있기 때문에 비변사에서 관리하던 지도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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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손처눌이 1600년 영모당을 새로 짓고 읊은 한시. 「영영모당신성(詠永慕堂新成)」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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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 영천 출신 평장사 이문한을 시조로 하고 석병 이휴운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에 세거한 성씨.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영천이씨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이영, 이동간, 이사경, 이익룡, 이항춘, 이형천, 이휴운, 이언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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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오선생예설분류』 뒤에 붙여 쓴 발문. 「오선생예설분류발(五先生禮說分類跋)」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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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학자인 신성섭이 대구 와룡산 아홉 계곡을 주제로 읊은 한시. 「와룡산구곡시(臥龍山九曲詩)」의 저자 신성섭(申聖燮)[1882~1959]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명숙(明淑)이고, 호는 학암(鶴菴)이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927]의 후손이다.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1869~1943]의 문하에서 학업을 익혔다. 저서로 『학암집(鶴菴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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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문신이자 학자인 우성규가 금호강을 아홉 굽이로 나누어 경치를 읊은 한시. 「용무이도가운부운림구곡(用武夷棹歌韻賦雲林九曲)」의 저자 우성규(禹成圭)[1830~1905]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자는 성석(聖錫), 호는 경재(景齋)·경도(景陶)이다. 현풍현감(玄風縣監), 영덕현감(盈德縣令), 예안현감(禮安縣監), 단양군수(丹陽郡守) 등을 역임하였고, 사직 후 고향으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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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위치한 폭포. 용문폭포(龍門瀑布)는 화원 자연 휴양림을 지나 용문사 입구 오른쪽 골짜기에 있다. 성주 출신 고려 말 충신 이숭인(李崇仁), 조선 시대 성리학자 정구(鄭逑),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인흥 마을 출신 문영박(文永撲) 등이 즐겨 찾던 유서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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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 용호서원(龍湖書院)은 도성유(都聖兪)[1571~1649], 도여유(都汝兪)[?~?], 도신수(都信修)[1598~1650]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처음에는 도성유와 도여유만 배향하다가 1708년(숙종 34) 도신수를 추향하였다. 도성유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정언(廷彦), 호는 양직(養直)이다. 한강(寒岡) 정구(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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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구국 활동을 한 손처눌이 우연히 드는 생각을 읊은 한시. 「우음(偶吟)」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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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지은 도동서원의 규범. 「원규 위도동작(院規爲道東作)」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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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지역에서 공자의 사상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우리나라의 유교 도입은 1289년(충렬왕 15)에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1243~1306]이 충렬왕(忠烈王)[1236~1308]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주자(朱子)의 『사서 집주(四書集注)』를 가지고 와 태학(太學)에서 본격적으로 강론하면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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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유교와 유학자, 대표적인 유적.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유교는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중년에 팔공산 자락에 있는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으로 이거(移居)하였다. 그가 이곳으로 이거한 것은 그의 외가로 인한 것이었다. 그 이전인 문종 때에 문과에 합격하여 좌찬성을 역임한 정수충(鄭守忠)이 있었으나 그는 오랫동안 한양에 기거하였으며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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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한 손처눌이 최흥국 등 여러 벗들과 동학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 「유동학산 음증최강후제군(遊動鶴山吟贈崔康侯諸君)」은 손처눌이 최흥국 등 여러 벗들과 동학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이다. 「유동학산 음증최강후제군」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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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 문인 학자. 유사온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수보(粹甫), 호는 구정(龜亭)이다. 고려 말 때 삼중대광을 지낸 유익정(柳益貞)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저은(柳渚隱), 아버지는 유순간(柳純諫),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로 우희적(禹熙績)의 딸이다.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이정설(李正枻)의 딸이다. 자식은 4남 2녀를 두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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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문인 학자. 유시번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위중(衞仲), 호는 사월당(沙月堂)이다. 고려 말 때 삼중대광을 지낸 유익정(柳益貞)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연양(柳延陽), 아버지는 유요신(柳堯臣)이며, 어머니는 곡성신씨(谷城申氏)로, 탐(琛)의 딸이다.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이색(李穡)의 딸이며, 아들 3명을 두었는데 유종언(柳宗彦)·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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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으로 소모종사관으로 왜를 물리친 문인 학자. 유요신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字)는 성유(聖兪), 호(號)는 연정(蓮亭)이다. 유요신의 집안은 고려 때, 곤산부원군(崑山府院君)을 지낸 유익정(柳益貞)이 중시조(中始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건공장군(建功將軍)을 지낸 유세영(柳世榮),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유보(柳葆), 아버지는 침랑(寢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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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학자인 최흥립이 윤광안의 「차퇴도선생연경서원운」에 화답하여 지은 한시. 「윤방백 광안 차퇴도선생연경서원운 여급추 화(尹方伯光顔次退陶先生硏經書院韻余及追和)」의 저자 최흥립(崔興岦)[1736~1809]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흥교(興敎), 자는 산보(山甫), 호는 천옹(喘翁)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출신이다.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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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윤훤(尹喧)[1573~1627]의 본관은 해평(海平)이며, 자는 차야(次野), 호는 백사(白沙)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윤희림(尹希琳)이고, 할아버지는 윤변(尹忭)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이며, 어머니는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 창원황씨(昌原黃氏)이다. 부인은 대사헌 심의겸(沈義謙)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며, 아들은 윤순지(尹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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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서식하는 은행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 달성군의 마을 입구, 향교나 서원의 사적지, 길가 등에 분포하는 은행나무는 풍치목 또는 정자목으로 많이 심는다. 장수목으로 토양 조건에 관계없이 잘 자라며 가을에 노란 단풍과 함께 약용하는 열매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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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서식하는 은행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 달성군의 마을 입구, 향교나 서원의 사적지, 길가 등에 분포하는 은행나무는 풍치목 또는 정자목으로 많이 심는다. 장수목으로 토양 조건에 관계없이 잘 자라며 가을에 노란 단풍과 함께 약용하는 열매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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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한 문인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연경서원의 퇴계 이황 봉안문을 의작하여 지은 글. 「의연경서원퇴계선생봉안문(擬硏經書院退溪先生奉安文)」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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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 이강서원(伊江書院)은 낙재(樂齋)서사원(徐思遠)[1550~1615]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서사원의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행보(行甫)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선조 때 학행으로 감역(監役), 찰방(察訪), 청안 현감(淸安縣監) 등을 지냈다. 1597년(선조 30) 옥과 현감(玉果縣監) 등 여러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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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이난미(李蘭美)[1592~1661]는 오늘날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 일대에서 거주하였던 인물이다. 고탄리 일대는 현풍현과 낙동강을 경계로 마주 보는 지역으로 이난미의 활동 역시 고령, 성주, 현풍 일대에서 있었다. 또한 이난미의 후손들도 성산면 일대에 분거하면서 현풍현을 생활 및 통혼권으로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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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당. 이락서당(伊洛書堂)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을 추모하고 그 학풍을 잇기 위하여 만든 서당이다. 서당 건립에는 모두 아홉 문중이 참여하였는데, 성주도씨, 광주이씨, 함안조씨, 밀양박씨, 전의이씨, 일직손씨, 순천박씨, 달성서씨, 광주이씨(廣州李氏)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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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조선 후기 칠곡 출신 유학자 이동급이 지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 이락서당의 기문. 「이락서당기(伊洛書堂記)」의 저자 이동급(李東汲)[1738~1811]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진여(進如)이고, 호는 만각재(晩覺齋)이다. 백불암(百弗菴) 최흥원(崔興遠)[1705~1786]의 사숙인(私淑人)을 자처하였다. 저서로는 1866년 후손들이 이동급의 시가와 산문을 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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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이직(以直), 호는 동호(東湖). 증조할아버지는 부사과 이한손(李漢孫)이며, 할아버지는 봉사 이수(李壽)이다. 아버지는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이다. 이홍우는 큰형인 용재(容齋) 이홍기(李弘器), 작은 형인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과 함께 학행으로 당세에 유명하였다. 이홍우는 유일로 천거되어 관직이 진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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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인 전경창이 이원경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이송암원경만 병사(李松巖遠慶輓 幷詞)」의 저자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이고,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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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이오(而五), 호는 요산당(樂山堂)·야옹(野翁). 고조할아버지는 석병(石屛) 이휴운(李休運)으로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었으며, 유일로 천거되어 성균관 사예를 역임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명호(明湖) 이언직(李言直)으로 숭정 절의로 장릉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구원정(九元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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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의병장. 이주(李輈)[1556~160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희증(李希曾)이고, 할아버지는 이고(李翶)이다. 아버지는 이문성(李文星)이고,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黃氏)이다. 부인은 영양최씨(英陽崔氏)이며, 아들은 이승휘(李承輝)·이정휘(李挺輝)·이동휘(李東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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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공산의진에 참여한 의병장. 이주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태종 때 대제학과 좌참찬을 지낸 오천(烏川) 이문화(李文和)의 8대손으로, 아버지는 소재(疏齋) 이문성(李文星), 어머니는 황씨(黃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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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이실(而實), 호는 다포(茶圃)·부강거사(浮江居士). 고조할아버지는 형조 정랑 이광원(李光元), 증조할아버지는 예산 현감을 역임한 이필(李佖)이다. 이필에 이르러 하빈(河濱)에 거주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병절교위 이경두(李慶斗)로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한 공적으로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증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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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에 거주한 문인 학자. 이휴운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가회(嘉會), 호는 석병(石屛)이다. 고려 말 군기시소윤을 역임한 낙은(洛隱) 이헌(李軒)의 후손으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현손[증손자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이영승(李令承), 아버지는 이사경(李士慶),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氏)로, 서언겸(徐彦謙)의 딸이다. 부인은 영양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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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1612년 용천사를 방문하고 지은 한시. 「입용천사 감구유음(入湧泉寺 感舊有吟)」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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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구국 활동을 한 손처눌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 지은 만시. 「자만(自輓)」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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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손처눌이 금호강을 따라 배를 타다가 해 질 녘에 부강정에 올라 지은 한시. 「자이천승혼등부강정(自伊川乘昏登浮江亭)」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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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연경서원에서 곽재겸을 기다리면서 지은 한시. 「재연원 사인요곽익보(在硏院 使人邀郭益甫)」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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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 조선 전기 학자인 전경창의 외손이 지은 전경창의 묘표. 「전경창 묘표(全慶昌 墓表)」의 묘 주인 전경창(全慶昌)[1532~1585]은 본관이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이고,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氏) 송식(宋軾)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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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김굉필 묘역 주변에 투장이 발생하여 1618년 경상감사에게 산송을 제기한 글. 「정감사문(呈監司文)」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김굉필(金宏弼)[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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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의병장.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회(子晦), 호는 낙애(洛厓). 증조할아버지는 호군(護軍)을 지낸 정예운(鄭禮耘), 할아버지는 정세검(鄭世儉)이다. 아버지는 생원(生員) 정사철(鄭師哲), 어머니는 참봉(參奉)을 지낸 이호연(李浩然)의 딸 성주 이씨(星州李氏)이다. 부인은 이안인(李安仁)의 딸 성주 이씨(星州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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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의 공산의진군에 참여하여 하빈현 남면장의 역할을 수행한 문인 학자. 정광천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회(子晦), 호는 낙애(洛涯)·송파(松坡)이다. 고려 때 좌복야를 지낸 정목(鄭穆)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적개공신으로 동평군(東平君)에 봉해진 정종(鄭種)이고, 할아버지는 정세검(鄭世儉), 아버지는 정사철(鄭師哲), 어머니는 성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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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에 이주하여 강학한 학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철산군수 정윤증(鄭胤曾)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정응상(鄭應祥)이다. 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 부사맹 정사중(鄭思中)이고, 어머니는 이환(李煥)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부인은 이수(李樹)의 딸 광산이씨(光山李氏)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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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정기(鄭錡)[1574~1642]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청보(淸甫), 호는 금재(琴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어모장군 정세검(鄭世儉)이고, 할아버지는 정사철(鄭師哲)이다. 아버지는 정광천(鄭光天)이고, 어머니는 참봉 이안인(李安仁)의 딸 벽진이씨(碧珍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허선술(許善述)의 딸 하양허씨(河陽許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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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정보(靖甫), 호는 금재(琴齋). 증조할아버지는 어모장군(御侮將軍)[정삼품] 정세검(鄭世儉)이고, 할아버지는 임하(林下) 정사철(鄭師哲)이고, 아버지는 낙애(洛涯) 정광천(鄭光天)[1553~159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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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만든 정사의 규범. 「정사약속(精舍約束)」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광역시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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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1617년에 상소하기 위하여 지은 소문. 「정사의상소(丁巳擬上疏)」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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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계명(季明), 호는 임하(林下). 증조할아버지는 적개공신(敵愾功臣)에 책봉된 동평군(東平君) 정종(鄭種)[1417∼1476]이다. 할아버지는 호군(護軍)을 지낸 정예운(鄭禮耘)이고, 할머니는 사직(司直)을 지낸 이지맹(李之孟)의 딸 옹진 이씨(瓮津李氏)이다. 아버지는 정세검(鄭世儉)이며, 어머니는 진가모(陳嘉謨)의 딸 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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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의 공산의진군 초대 의병장에 추대된 문인 학자. 정사철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계명(季明), 호는 임하(林下)이다. 고려 때 좌복야를 지낸 정목(鄭穆)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적개공신으로 동평군(東平君)에 봉해진 정종(鄭種)이고, 할아버지는 정예운(鄭禮耘), 아버지는 정세검(鄭世儉), 어머니는 진산진씨(珍山陳氏)로, 진가모(陳嘉謨)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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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정수(鄭錘)[1573~1612]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평보(平甫), 호는 양졸재(養拙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세온(鄭世溫)이고, 할아버지는 정사주(鄭師周)이다. 아버지는 정여강(鄭汝康)이고, 어머니는 현감 류예원(柳禮源)의 손녀 서산류씨(瑞山柳氏)이다. 부인은 이승(李承)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형은 정용(鄭鏞)이고, 동생은 정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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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의병장. 정여강(鄭汝康)[1541~1593]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치상(致祥), 호는 행정(杏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종(鄭種)이고, 할아버지는 정세온(鄭世溫)이다. 아버지는 정사주(鄭師周)이고, 어머니는 광주김씨(廣州金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수성나씨(壽城羅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서산류씨(瑞山柳氏)이다. 아들은 정용(鄭鏞)·정수(鄭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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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정천주(鄭天澍)[1596~1661]는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백화(伯和), 호는 경한재(景寒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사주(鄭師周)이고, 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달성군 하빈에서 의병을 일으켜 충의위(忠義衛)에 제수되고 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증직된 정여강(鄭汝康)이다. 아버지는 동래정씨(東萊鄭氏) 칠곡(漆谷) 입향조(入鄕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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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조선 후기 학자 정구가 거처를 옮기면서 산신에게 올린 제문. 「제사수주산문 칠곡(祭泗水主山文 漆谷)」을 쓴 정구(鄭逑)[1543~1620]는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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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의병 활동과 강학 활동을 한 손처눌이 서거정의 「대구십영」을 읽고 감상을 적은 한시. 「제서사가 거정 달성십영후(題徐四佳 居正 達城十詠後)」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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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1617년 서사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 「제서행보 사원 문(祭徐行甫 思遠 文)」를 쓴 정구(鄭逑)[1543~1620]는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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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1616년 송원기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 「제송학무 원기 문(祭宋學懋 遠器 文)」을 쓴 정구(鄭逑)[1543~1620]는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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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달성 지역의 역사. 건국 초 고려의 행정 체계를 답습하던 조선은 태종 연간에 전면적인 지방 제도 개편이 이루어짐에 따라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국을 팔도로 구분하고 각 도에 감사(監司)[종2품]를 두어 도정(道政)을 총괄하게 하였다. 그리고 각 도의 감사 아래 해당 읍을 통치하는 수령이 파견되었다. 조선은 전국 약 330개의 모든 고을에 왕권(王權)의 대행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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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판관을 역임한 문관. 조정(趙靖)[1555~1636]은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안중(安仲), 호는 검간(黔澗)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윤영(趙允寧)이고, 할아버지는 조희(趙禧)이다. 아버지는 조광헌(趙光憲)이고, 어머니는 홍윤최(洪胤崔)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부인은 부사 김극일(金克一)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이다. 동생은 조익(趙翊)·조굉(趙竤)·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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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조진규(趙鎭奎)[1748~?]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숙장(叔章), 호는 창돈(蒼墩)이다. 할아버지는 조헌익(趙憲益)이고, 아버지는 조춘경(趙春慶)이다. 형은 조택규(趙宅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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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조택규(趙宅奎)[1745~1820]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사정(士貞), 호는 근암(芹庵)이다. 할아버지는 조헌익(趙憲益)이고, 아버지는 조춘경(趙春慶)이다. 동생은 조진규(趙鎭奎)이다. 생육신 조려(趙旅)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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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무관. 조형도(趙亨道)[1567~1637]는 임진왜란 당시 김성일(金誠一)과 곽재우(郭再祐)의 창의(倡義)에 가담하여 대구 경북 지역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조형도(趙亨道)가 대구에서 맺은 인연에 의하여 조형도의 아들 조함장(趙咸章)[1597~1648]이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에 입향하여 함안조씨 대구 원대 입향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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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인간은 출생·죽음·우연·미래와 같은 한계 상황에 직면하면 초월적 존재나 원리를 통하여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과하며, 더 나아가 그 힘을 빌려 그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초기에는 세계내(世界內) 존재에 정령을 부과하는 토테미즘(Totemism)이나 애니미즘(Animism)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후 세계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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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에서 의병 활동과 강학 활동을 한 손처눌이 조카 정호신에게 지어 준 한시. 「증정질호신(贈鄭姪好信)」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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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용호 서원에 배향된 학자 도신수의 시문집. 도신수(都愼修)[1598~1651]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영숙(永叔), 호는 지암(止巖)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학자로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도여유(都汝兪)이고, 어머니는 여흥 이씨로 증판결사 이우겸(李友謙)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7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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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1599년에 묵정밭을 바라보며 감회를 읊은 한시. 「진전음(陳田吟)」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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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인 전경창이 손처눌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3수. 「차 손수재 처눌운(次孫秀才處訥韻)」의 저자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이고,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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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인 전경창이 손처눌이 보낸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차기손수재안하(次寄孫秀才案下)」의 저자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氏)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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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손처눌이 지은 영모당을 읊은 서사원의 시에 손처눌이 차운하여 지은 한시. 「차낙옹기제영모당운(次樂翁寄題永慕堂韻)」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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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학문적 동지인 서사원에게 지어 준 차운시. 「차낙옹안자운(次樂翁顔字韻)」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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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학자인 손처눌이 문병 온 서사원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차미락재낙매운(次彌樂齋落梅韻)」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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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대구 출신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억울하게 구금된 상황에서 지은 한시. 「차신자(次臣字)」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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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이 임진왜란 때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의 공산성을 수비한 손기양의 행실을 기리기 위해 지은 행장. 이익(李瀷)[1681~1763]의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신(子新), 호는 성호(星湖)이다. 이익은 실용적인 학문을 주장하였다. 즉 당색 중심 정치를 타파하고 관료기구의 개편을 주장했다. 또한 양반도 생업에 종사해야 함을 피력했다. 또한 인재 등용도 종래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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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이자 의병장 구회신을 추모하는 재실. 창포재(菖蒲齋)는 능성구씨(綾城具氏)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 구회신(具懷愼)[1564~1634]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구회신의 자는 경중(敬中)이고, 호는 계암(溪巖)이다. 아버지는 종사랑 구대성(具大成)이고, 어머니는 옥천황씨(玉泉黃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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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의진군 수성북면장을 지낸 문인 학자. 채몽연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정응(靜應), 호는 투암(投巖)이다. 고려 말에 호조전서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절의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한 채귀하(蔡貴河)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채면(蔡沔), 아버지는 채정국(蔡定國)이다. 부인은 죽산박씨(竹山朴氏)로, 박배(朴培)의 딸이고, 채무(蔡楙),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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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문인 학자. 채범곤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기언(箕彦), 호는 미은(渼隱)이다. 고려 중엽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蔡先茂)의 후손으로, 5대조는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인 양전헌(兩傳軒) 채선견(蔡先見)이며, 할아버지는 채윤복(蔡允復), 아버지는 채영국(蔡榮國), 어머니는 경주최씨(慶州崔氏)로, 최진구(崔鎭九)의 딸이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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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출신 문인학자, 교육자. 채상겸의 성씨는 인천(仁川)에서 나왔으며 고려 동지사(同知事) 채선무(蔡先茂)가 시조이다. 자(字)는 중유(仲游)이며 호(號)는 우공당(友恭堂)이다.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역임한 채귀하(蔡貴河)는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으며 시호는 정의(貞義)이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소감(少監) 벼슬을 지낸 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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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의 문인 학자. 채선견은 지산 조호익과 한강 정구 양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익혔고, 영남유생들과 함께 이이첨의 주참(誅斬)을 청하는 소를 직접 작성하여 올렸으며, 이괄(李适)의 난 때는 의병을 일으켰으나 난이 평정되어 모은 군량을 나라에 헌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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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의 문인 학자. 채선견은 지산 조호익과 한강 정구 양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익혔고, 영남유생들과 함께 이이첨의 주참(誅斬)을 청하는 소를 직접 작성하여 올렸으며, 이괄(李适)의 난 때는 의병을 일으켰으나 난이 평정되어 모은 군량을 나라에 헌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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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으로 공산의진군에 참여한 문인 학자. 채선길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길중(吉仲), 호는 금탄(琴灘)이다. 고려 중엽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蔡先茂)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채홍(蔡泓), 아버지는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신관(申寬)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연안김씨(延安金氏)로, 김희복(金希福)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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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채선수(蔡先修)[1568~163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중(敬仲), 호는 달서재(達西齋)이다. 할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채징(蔡澄)이고, 아버지는 채응원(蔡應黿)이다. 어머니는 권사공(權士恭)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채선수는 삼촌 채응룡(蔡應龍)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아들은 채모(蔡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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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싸운 문인 학자. 채선수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경중(敬仲), 호는 달서재(達西齋)이며, 고려 때 금성백(錦城伯)에 봉해진 채보문(蔡寶文)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채윤주(蔡胤周), 할아버지는 채징찰(蔡澄察), 아버지는 채응원(蔡應黿),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훈도(訓導)를 지낸 권사공(權士恭)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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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를 시조로 하고, 양득효를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양기(楊起)를 시조로 하는 청주양씨는 양득효(楊得孝)[1572~1645]가 대구광역시 달성군으로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달성군 다사읍 달천리 달래 마을과 하빈면 하산리 너울티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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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인 전경창이 승려 보우를 참하여야 한다고 올린 상소문. 「청참보우소(請斬普雨疏)」의 저자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이고,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氏) 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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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청호서원 중건에 대한 유도승의 기문. 「청호서당 중건기2(靑湖書堂 重建記2)」의 배경이 되는 청호서원은 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 모당(募堂) 손처눌(孫處訥), 사월(沙月) 유시번(柳時藩),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을 제향하고 있다. 손처눌 생전에 청호서당에서 강학 활동을 펼쳤다. 1694년 유림의 공의로 창건하여 손처눌의 6대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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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청호서원(靑湖書院)은 조선 후기 연경서원(硏經書院)과 영모당(永慕堂)에서 강학한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1553~1634]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손처눌은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과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755년(영조 31)에 문인인 사월당(沙月堂) 류시번(柳時藩)을, 1775년(영조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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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임진왜란 때 지방 병사를 불러 모으기 위하여 지은 통문. 「초집향병통문(招集鄕兵通文)」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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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문신. 최경식(崔慶湜)[1660~1717]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선여(善餘)인데 규장각본 『국조방목』에는 여선(汝善)으로, 국립중앙도서관본 『국조방목』에는 덕여(悳餘)로 표기되어 있으며, 호는 명곡(明谷)이다. 최경식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10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 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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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출신 문인. 최동률(崔東嵂)[1585~1622]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진백(鎭伯), 호는 다천(茶川)이다. 최동률은 어릴 때부터 효성과 우애가 있었고 성품은 단정하고 깨끗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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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에서 활동한 학자. 최동집(崔東㠍)[1586~1661]은 현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 마을 경주 최씨(慶州崔氏) 입향조이다. 이 마을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달성군에 편입된 지역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대구와 현풍, 성주, 영천 지역 인사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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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 문인 학자. 최동집은 한강 정구의 문인으로 전란으로 소실된 연경서원(硏經書院) 신축을 주도했으며, 효종이 대군으로서 심양(瀋陽)에 인질로 갈 때 사부(師傅)로 선발되었으나 함께하지 못하였고, 또 명나라가 멸망하자 대구 팔공산(八公山) 부인동(夫仁洞)에 은거하여 평생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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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손처눌이 금호강에서 이시발을 전송하며 지은 한시. 「추송벽오상공어금호주차 경정봉별(追送碧梧相公於琴湖舟次更呈奉別)」을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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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간행된 경상북도 칠곡군의 읍지. 『칠곡부읍지(㓒谷府邑誌)』는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1899년(광무 3) 1책으로 간행된 칠곡군의 읍지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선생안에는 1898년에 이종표(李鍾杓)가 도임한 기록은 있지만 체임된 내용은 없기 때문에 이종표 재임 당시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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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통강의 재개를 알리기 위하여 1615년에 지은 안내문. 「통독회문(通讀回文)」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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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결성되어 조선을 지킨 의병들. 1598년(선조 31)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죽으면서 1592년(선조 25)부터 시작된 7년 동안 한반도를 고통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매우 참혹하였다. 기근·전염병·포로 등으로 인구가 급속히 줄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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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현풍현에서 편찬된 사찬 읍지. 『포산지(苞山誌)』의 편찬자 및 간행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8세기 중반 『여지도서(輿地圖書)』의 내용과 전결, 호구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으며, 학규(學規), 향약(鄕約), 제영(題詠), 인물 등의 수록 내용이 17세기를 하한으로 하고 있다. 편목의 기본 구성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따르고 있지만, 현풍현의 문화와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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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던 조선 후기 정사. 하남정사(河南精舍)는 투암(投巖) 채몽연(蔡夢硯)[1561~1638]이 세운 정사이다. 채몽연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정응(靜應)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팔공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서사원(徐思遠)·손처눌(孫處訥)과 더불어 왜적을 물리쳤으며, 화왕산 전투에서 곽재우를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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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범에 관하여 쓴 글. 「학교모범(學校模範)」은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범에 대하여 쓴 글이다.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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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구국 활동을 한 손처눌이 정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한시. 「한강선생만사(寒岡先生輓詞)」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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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허목이 1680년 대구에서 말년을 보낸 정구의 문집에 쓴 서문. 「한강선생문집서(寒岡先生文集序)」의 저자 허목(許穆)[1595~1682]의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이고, 호는 미수(眉叟)이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남인(南人) 중 청남(淸南)의 영수이다. 허목은 조선 후기 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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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정구, 손처눌과 함께 금호강을 따라 하류로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 「한강선생 자낙강승주 풍우중향이천 여촉손기도작시 인차언(寒岡先生自洛江乘舟風雨中向伊川余屬孫幾道作詩因次焉)」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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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정구의 학맥을 계승한 사족 집단. 낙동강 중류 지역은 지금까지 퇴계학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안동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상류 지역과, 남명학의 온상이었던 낙동강 하류 지역의 ‘경계’나 ‘사이’에 있다. 낙동강 중류 지역의 유학자들은 이러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퇴계학과 남명학의 영향 속에서 이 둘을 융합 및 회통하려는 한편 다양한 학문을 수용하는 데에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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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을 배경으로 하여 한자로 창작된 시. 대구광역시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한시는 대부분이 근체시(近體詩)의 형식을 띤다. 사언고시(四言古詩) 형식과 잡체시(雜體詩)도 간혹 발견되나 근체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구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한시의 차별성은 지역적 색채에 있다.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한 한시의 연작 양상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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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위치한 유교 유산.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편찬자로 알려진 추적(秋適)의 활동지이자, 동방 오현 중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배출한 곳으로 유교 전통이 깊은 곳이다. 이러한 까닭에 조선 초 현풍 향교(玄風鄕校)를 비롯하여 1479년(성종 10) 달성 태고정(達城太古亭), 1568년(선조 1) 달성 도동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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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1592년 의병을 모집하면서 만든 의병 규칙서. 「향병입약(鄕兵立約)」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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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 1리에 있는 서흥김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1리 못골마을은 서흥김씨(瑞興金氏) 집성촌이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11세손이자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정제(金鼎濟)가 지금의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서 살다가 1778년(정조 2)에 입향한 이래 서흥김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지금도 2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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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화산리에 있는 현대에 건립한 서원. 화산서원(花山書院)은 규현(揆軒) 곽승화(郭承華)[?~?], 죽재(竹齋) 곽간(郭趕) [1529~1593], 예곡(禮谷) 곽율(郭𧺝)[1531~1593],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1547~1615]을 배향하고 있다. 곽승화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자실(子實)로 달성군 현풍읍 대리에 있는 이양 서원(尼陽書院)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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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학자인 구연간이 대구의 연경서원과 화암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화암(畵巖)」의 저자 구연간(具然侃)[1844~1917]의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는 성강(聖剛)이며, 호는 근와이다. 아버지는 구택조(具宅祖)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缶林洪氏) 홍익대(洪益大)의 딸이다. 친모는 단양우씨(丹陽禹氏) 우형간(禹衡幹)의 딸이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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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대구 출신의 학자인 채성원이 연경서원과 화암을 노래한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화암경차노선생운(畵巖敬次老先生韻)」은 연경서원과 화암을 노래한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이다. 저자 채성원(蔡星源)[1870~1932]의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사규(士奎), 호는 공산(公山)이다. 아버지는 채세동(蔡世東)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缶林洪氏) 홍우찬(洪禹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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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유학자인 우하구가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의 화암과 연경서원을 둘러보고 지은 한시. 「화암 경차퇴도선생운(畫巖 敬次退陶先生韻)」의 저자 우하구(禹夏九)[1871~1948]의 본관은 단양(丹陽)이고, 자는 영서(永敍)이며, 호는 백괴(百愧)이다. 대구부 월배면 상인리(上仁里)[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우동(禹友東)이고,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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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의 유학자인 채귀해가 늦봄에 대구의 연경서원 유허지를 둘러보고 지은 한시. 「화암모춘(畵巖暮春)」의 저자 채귀해(蔡龜海)[1850~1905]의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낙응(洛應)이며, 호는 치헌(痴軒)이다. 아버지는 채석범(蔡錫範)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조택승(曺宅承)의 딸이다. 집안이 대대로 대구부 해북촌면(海北村面) 미대리(美岱里)[현 대구광역시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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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달성 서씨 현감공파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인물화. 효종어전희우시회인물도(孝宗御前喜雨詩會人物圖)는 1653년(효종 4)의 시회에서 장원을 한 달성 사람 용계(龍溪) 서변(徐忭)[1605~1656]에게 함께 내려진 시회 인물도이다. 가뭄이 오래 계속되자 효종이 친히 기우제를 지내 마침내 단비가 내렸다. 이에 효종은 1653년 3월 17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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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인 도신여의 시문집. 도신여(都愼與)[1605~1675]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명숙(明叔), 호는 휘헌(撝軒)이다. 대구 하빈현 도촌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도여유(都汝兪)이며, 어머니는 여흥 이씨(驪興李氏) 이우겸(李友謙)의 딸이다. 아버지의 사촌 형제인 도성유(都聖兪)의 양자가 되었다. 정구(鄭逑), 서사원(徐思遠)의 문인이다. 163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