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정
-
1905년 달성 도동서원에서 경주 옥산 서원으로 보낸 연락문. 경주 양동 마을에서 발생한 손씨 가문과 이씨 가문 사이의 학문 연원 시비와 관련하여 경주 옥산 서원 측에서 사건의 전말과 손씨 측의 행위를 비난하는 통문을 도동서원에 보내오자 1905년 5월 15일 그에 대한 도동서원 측의 의견을 적어서 옥산 서원으로 보낸 것이다....
-
대구광역시 중구에 형성된 한약재 특화거리. 조선시대였던 1658년(효종 9)부터 이어져 온 약재시장이 있다. 약전골목은 입구부터 풍기는 각종 약재의 향기들로 가득하다. 대구 약령시에 들어서면 약재를 파는 곳과 한의원, 한약방, 한약제탕소 등 200여 곳이 밀집하여 있다. 가게마다 쌓여 있는 약재들 사이로 작고 낡은 팻말이 이름을 밝히고 있어 골목이 지닌 세월을 확인할 수 있고, 신...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3대 100년에 걸쳐 완성된 국내 최대의 문중 문고. 인수문고(仁壽文庫)는 약 200여 년 전부터 인흥 마을에 세거지를 형성한 남평 문씨 가문이 3대 100년에 걸쳐 고서를 모아 만든 국내 최고의 문중 문고이다. 현재의 인수문고는 인산재(仁山齋) 문경호(文敬鎬)[1812~1874 ]의 손자와 증손자인 후은(後隱) 문봉성(文鳳成)[1854∼19...
-
개항기 학자인 이종기가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 세거하고 있는 단양우씨 집안에 기증한 한시. 이종기(李種杞)[1837~1902]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자는 기여(器汝), 호는 만구(晩求) 혹은 다원거사(茶園居士)이다. 이종기는 영남학맥(嶺南學派)의 맥을 잇는 성리학자로, 이황 이후 성리설(理氣說)의 이론을 심화시켰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가학(家學)을 통해 학문을 심화했으며,...
-
조선 후기 학자인 이상정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 은거하고 있던 최흥원을 방문하여 함께 팔공산을 유람하고 그 과정을 기록한 유록.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739년 연...
-
조선 후기 학자인 이상정이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에 있는 농연서당을 대상으로 하여 지은 기문(記文).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739년 연원찰방(連原察訪)에 임명되었으나, 1...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예술인. 1800년대 후반 대구는 경상감영이 있기는 하였지만 남북 1㎞를 약간 넘는 작은 사각형 모양의 읍성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가톨릭교의 계산성당, 기독교의 대구제일교회, 그리고 제중원 등의 건립으로 새로운 개화 지식인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개화 지식인들은 자녀들을 성당 혹은 교회를 다니게 하고, 이어...
-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시인 이상화 집안의 활약상.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시인 이상화는 독립운동가인 형 이상정과 우국지사인 큰아버지 이일우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경주이씨 집안의 풍조를 내면화하고 있는 이상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훌륭한 인재를 키운 가풍을 들여다보면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
조선 후기 학자인 이상정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의 옻골마을 입향조인 최동집을 기리기 위해 지은 묘갈명.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상정은 이황(李滉) 이후 기호학파에 비해...
-
1786년 학자 안정복이 대구의 오천서원에 제향된 양희지의 『대봉집』에 부쳐 집필한 서문. 「대봉집서(大峯集序)」의 저자 안정복(安鼎福)[1712~1791]의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자는 백순(百順)이며, 호는 순암(順庵)이다. 아버지는 안극(安極)[1696~1754]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이익령(李益齡)의 딸이다. 이익(李瀷)[1681~1763]의 문인이다. 경학(...
-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안명하가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에서 아버지 여상제 산소에서 극진히 시묘살이했던 여대익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시. 안명하(安命夏)[1682~1752]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자는 국화(國華)이고, 호는 송와(松窩)이다.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는 성리학과 예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이상정(李象靖)·정만양(鄭萬陽)·정채양(鄭蔡陽...
-
1784년 이광정이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손처눌의 문집인 『모당집』에 부쳐 쓴 서문. 「모당집서(慕堂集序)」의 저자 이광정(李光靖)[1714~1789]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휴문(休文)이고, 호는 소산(小山)이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1711~1781]의 동생이다. 경술(經術)에 뛰어나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천거되었다. 「모당집서」는 이광정이 동몽교관으...
-
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조카 이상정을 걱정하면서 지은 한시. 「문금릉병사억질상정(聞金陵兵事憶姪相定)」를 지은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04년(고종 41) 한성을 유람...
-
대구광역시에서의 문학, 영상 공연, 전통, 음악 등 예술 및 문화 활동 전반을 아우르는 활동. 문화예술(文化藝術)이란 문학, 영상 공연, 전통, 음악 등 예술 및 문화 활동 전반을 아우르는 활동을 이른다....
-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이루어지는 문화, 예술과 관련된 모든 활동. 대구광역시에서 문화예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대개 1910년대 전후 시기였다. 우선 문학에서는 『계성학보』의 발간과 동인지 발간이 시작되며, 순수문학으로 후퇴했다가 다시 항일과 저항의 문학 동인지가 등장하게 된다. 광복 후에는 『죽순』이라는 시 동인지가 발간되어 전국적인 호응을 받았으나 6·25전쟁으로 인해...
-
대구광역시에서 예술세계를 꽃피운 화가들과 대표 미술관. 대구에서 한 해에 배출되는 미술대학 전공자들은 1,000여 명에 이른다. 대구의 미술대학 전공자들은 어떤 미술관을 드나들며 어느 미술관에 작품을 내걸까. 수준 높은 미술 전시를 1,000원의 행복으로 가능케 한 대구미술관, ‘봉리단길’이라 불리며 문화거리를 선도하는 봉산문화회관, 매달 대구 미술 전시 매거진을 발행하는 대구문화...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있는 1753년 건립된 경주최씨 칠계파 재실. 보본당은 경주최씨 칠계파 둔산동 입향조인 대암(臺巖) 최동집의 불천위 제사를 모시기 위한 건물이다. 보본당이라는 명칭은 선조를 추모하고 근본에 보답한다는 의미이다....
-
조선 후기 학자인 이상정이 지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 있는 보본당 별묘에 대해 적은 기문.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상정은 이황(李滉) 이후 기호학파에 비해 상...
-
조선 후기 학자인 이상정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최항진을 전별하며 지은 한시.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경상북도 안동 출신이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1735년(영조 11)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상정은 이황(李滉) 이후 기호학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된 영남학...
-
조선 후기 학자인 이상정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입향조인 최동집이 대군 사부로 심양으로 떠날 때 서사선이 써준 시 뒤에 쓴 발문.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상정...
-
조선 후기의 학자 최흥벽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집안 형님인 최흥원을 위해 지은 언행 총록. 최흥원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태초(太初)·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이다. 최흥원은 대대로 달성의 칠계[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살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최흥원은 1739년(영조 15) 「남전향약(藍田鄕約)」에 의거해 「부인동규...
-
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조카 이상정을 걱정하며 지은 한시. 일제강점기 이일우가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군에게 무장투쟁하고 있는 조카 이상정을 걱정하며 지은 한시이다....
-
조선 후기 학자 최흥벽이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거처한 채선길·채선견형제의 문집에 부친 서문. 최흥벽(崔興璧)[1739~1812]은 조선 후기 때 학자로 자는 사교(士敎), 호는 두와(蠹窩), 본관은 경주이다. 최흥벽은 최흥원(崔興遠)과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으로, 이광정(李光靖)과 정종로(鄭宗魯) 등과 교유하였다....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송이석(宋履錫)[1698~1782]의 본관은 야로(冶爐)이며, 자는 백수(伯綏), 호는 남촌(南村)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세은(宋世殷)이고, 할아버지는 송희(宋熙)이다. 아버지는 송명기(宋命基)이고, 어머니는 이달신(李達新)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부인은 정치운(鄭致雲)의 딸 청주정씨(淸州鄭氏)이며,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다....
-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안명하가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 아버지 여상제의 산소에서 극진히 시묘살이 했던 여대익에게 보낸 서간문. 안명하(安命夏)[1682~1752]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자는 국화(國華)이고, 호는 송와(松窩)이다.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는 성리학과 예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이상정(李象靖)·정만양(鄭萬陽)·정채양(鄭蔡陽) 등과 교유...
-
조선 후기 학자인 이상정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에 은거하고 있던 최흥원에게 부친 서간문.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상정은 이황(李滉) 이후 기호학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소재 경주최씨 백불암파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 ‘백불암’은 최흥원[1705-1786]의 호이다. 1778년(정조 2)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교관(敎官)이 되었고, 1782년 장악원주부·공조좌랑을 거쳐 1784년 세자익위사좌익찬(世子翊衛司左翊贊)이 되었다. 평생을 거의 대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그의 학덕을...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소재 경주최씨 백불암파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 ‘백불암’은 최흥원[1705-1786]의 호이다. 1778년(정조 2)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교관(敎官)이 되었고, 1782년 장악원주부·공조좌랑을 거쳐 1784년 세자익위사좌익찬(世子翊衛司左翊贊)이 되었다. 평생을 거의 대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그의 학덕을...
-
1925년 대구 지역 청년들이 창립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 단체. 용진단(勇進團)은 대구 지역의 용맹한 신흥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단원 간 단결, 부조, 옹호, 친목 등을 목적으로 1925년 1월 발기회를 열었고, 사상 연구를 통한 민중의 교양기관을 지향하며 1월 5일 창립하였다....
-
개항기 대구 지역에 세워진 근대 교육기관이자 도서관. 우현서루(友弦書樓)는 1904년 대구 지역의 부자인 금남(錦南) 이동진(李東珍)이 개인 재산을 투자하여 설립한 근대 교육기관이자 도서관이다....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문인 학자. 유란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관(景觀)이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6대손이며, 졸재(拙齋) 유원지(柳元之)의 현손[증손자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유후항(柳後沆), 아버지는 유성복(柳聖復), 어머니는 월성최씨(月城崔氏)로, 최정석(崔鼎錫)의 딸이자, 백불암(百弗菴) 최흥원(崔興遠)의 여동생이다. 부인은 재령이씨(載...
-
대구광역시 출신의 학자이자 체육인. 이상백(李相佰)[1904~1966]은 1904년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다.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한국사회학회 초대회장, 한국체육회장, 한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두루 역임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정(李相定)[1896~1947]은 1896년 6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 2가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계성학교 교사와 용진단(勇進團)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25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군 장성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연호(李然晧)·이연호(李然浩)·이직(李直)으로도 알려졌다....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정의 생가. 이상정(李相定)[1897~1947]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아호(雅號)는 청남(晴南), 산은(汕隱), 연호(然晧)이다. 이상정은 1921년부터 1923년까지 평안도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상정 생가(李相定生家)는 ‘이상정 고택’...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상화(李相和)[1901~1943]는 1901년 5월 2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고, 신간회 대구지회와 ㄱ당에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의 작품을 발표한 대표적인 민족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
조선 후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이오(而五), 호는 요산당(樂山堂)·야옹(野翁). 고조할아버지는 석병(石屛) 이휴운(李休運)으로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었으며, 유일로 천거되어 성균관 사예를 역임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명호(明湖) 이언직(李言直)으로 숭정 절의로 장릉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구원정(九元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남평 문씨 가문의 서고. 남평 문씨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인흥 마을에 본격적으로 세거지를 형성한 것은 인산재(仁山齋) 문경호(文敬鎬)[1812~1874]때였다. 현재의 인수문고는 문경호의 손자와 증손자인 후은(後隱) 문봉성(文鳳成)[1854-1923]과 수봉(壽峯) 문영박(文永樸)[1880~1930] 부자가 세운 광거당(廣居堂)에...
-
1822년 달성의 향교와 서원이 연명하여 안동의 향교와 서원에 보낸 연락문. 임오년 현풍 교원 통문(壬午年玄風校院通文)은 진주 촉석루의 삼장사(三壯士) 시(詩)와 관련한 것이다. 진주 삼장사 시는 1632년(인조 10) 관찰사 천파 오숙(吳䎘), 합천 군수 유진(柳袗)[유성룡의 셋째 아들], 진주 판관 조경숙 등이 게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삼장사 시를 지은이와 삼장사로...
-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정수(鄭錘)[1573~1612]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평보(平甫), 호는 양졸재(養拙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세온(鄭世溫)이고, 할아버지는 정사주(鄭師周)이다. 아버지는 정여강(鄭汝康)이고, 어머니는 현감 류예원(柳禮源)의 손녀 서산류씨(瑞山柳氏)이다. 부인은 이승(李承)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형은 정용(鄭鏞)이고, 동생은 정횡(...
-
조선 후기 성리학자 안명하가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에 여대익의 효성에 감복해 지은 한시. 안명하(安命夏)[1682~1752]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자는 국화(國華)이고, 호는 송와(松窩)이다. 안명하는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는 성리학과 예학을 깊이 연구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이상정(李象靖)·정만양(鄭萬陽)·정채양(鄭蔡陽) 등과 교유하였다....
-
조선 후기 달성 용호 서원에 배향된 학자 도신수의 시문집. 도신수(都愼修)[1598~1651]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영숙(永叔), 호는 지암(止巖)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학자로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도여유(都汝兪)이고, 어머니는 여흥 이씨로 증판결사 이우겸(李友謙)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7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
조선 후기 학자인 이상정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최주진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지은 제문.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1735년(영조 11) 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상정은 이황(李滉) 이후 기호학파에 비해...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선비. 최상진(崔尙鎭)[1729~1755]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이안(以安), 호는 정와(靜窩)이다.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고, 마음가짐이 바르며 뜻 세움이 돈독하였다....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선비. 최식(崔湜)[1762~1807]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초명은 식(㵓), 자는 청언(淸彦), 호는 근재(近齋)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영특하고 민첩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경주최씨 집안의 학자. 최우진(崔宇鎭)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초명은 광진(光鎭), 자는 의중(毅仲), 호는 석간(石澗)이다. 최우진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최수학(崔壽學)이고, 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최정석(崔...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선비. 최주진(崔周鎭)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공보(公普), 호는 동계(東溪)이다. 최주진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 최수학(崔壽學)은 광양현감(光陽縣監)을 지냈고, 할아버지 최정석(崔鼎錫)은 통덕랑(通德郞)이며, 아버지 최흥원(崔興遠)은 호가...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학자. 최화진(崔華鎭)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사구(士久), 호는 칠실(漆室)이다. 최화진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최수학(崔壽學)이고, 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최정석(崔鼎錫)이며,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최흥건...
-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치선(穉善), 호는 지헌(止軒). 할아버지는 동계(東溪) 최주진(崔周鎭)으로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이었으며, 아버지는 최식(崔湜)으로 갈천(葛川) 김희주(金熙周)와 면재(俛齋) 이병운(李秉運)과 함께 영하 삼걸(嶺下三傑)로 불렸다. 어머니는 입재 정정로의 딸 진주 정씨(晉州鄭氏)이다. 부인은 이동급(李東汲)의 딸...
-
조선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학자. 경(敬)을 근본으로 하여 독실하게 실천 궁리(實踐窮理)한 선비로, 경상감사, 암행어사 등의 천거를 받아서 돈녕부 도정(都正)에 올랐다....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문인. 최흥건(崔興建)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입부(立夫), 호는 육와(陸窩)이다. 최흥건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郎)을 지낸 최경함(崔慶涵)이고, 할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최수학(崔壽學)이며,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최정석...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 학자. 최흥벽(崔興璧)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초명은 흥학(興學), 자는 사교(士敎), 호는 두와(蠹窩), 별호는 국옹(菊翁)이다. 최흥벽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으로, 봉사(奉事) 최동준(崔東峻)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경원(崔慶源)이고, 할아버지는 최수강(...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배향된 학자이며 효자. 도덕과 학문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부모에게 지극한 효를 행하여 조정에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대구 칠계(漆溪)에 살았으므로 세상에서 칠계 선생(漆溪先生)이라 하였다....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있는 최흥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789년 건립된 정려각. 최흥원정려각은 1789년(정조 13년) 최흥원 선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최흥원정려각 홍패에는 ‘효자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겸 경연참찬관 행어모장군 세자익위사익찬 최흥원지려’라고 적혀 있다. 최흥원[1705~1786]의 호는 백불암이다. 1778년(정조 2) 학행으로 천거되어 장릉 참...
-
조선 후기 유학자인 이광정이 지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 살았던 백불암 최흥원의 행장. 이광정(李光靖)[1714~1789]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휴문(休文), 호는 소산(小山)이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동생으로 밀암(密庵) 이재(李栽)에게 수학하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부친이 의병을 일으키자, 15세 나이로 종군하였다. 이황의 학문을...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학자. 최흥점(崔興漸)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진숙(進叔), 호는 초려(草廬)이다. 최흥점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郎)을 지낸 최경함(崔慶涵)이고, 할아버지는 광양 현감(光陽縣監)을 지낸 최수학(崔壽學)이며, 아버지는 통덕랑 최정...
-
조선 후기 학자인 최흥원이 평소에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서 문인과 제자들과 강설한 내용을 집안 족제인 최흥벽이 모아 편집한 글. 최흥원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태초(太初)·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이다. 최흥원은 대대로 달성의 칠계[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살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최흥원은 1739년(영조 15) 「남전향...
-
대구광역시 출신의 시인 이상화의 문학과 저항정신. 우리 민족 역사에서 일제강점기는 치욕과 수난의 시대였다. 우리의 주권이 상실되었고, 외세에 억압된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 치욕과 수난을 극복하기 위한 독립운동이 치열하게 일어났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을 중심으로 근대적 가치의 확산과 함께 민족주의의 고양을 식민지 시대 극복의 핵심 가치로 본 사회 문화 운동도 펼쳐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