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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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일제가 한국 금융 지배를 위하여 대구농공은행과 진주농공은행을 합병하여 설립한 은행. 경상농공은행은 1908년 일제가 한국에 대한 금융 지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대구농공은행과 진주농공은행을 합병하여 설립한 은행이다. 1918년 10월 조선식산은행이 설립되면서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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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28일 대구 지역에서 한국인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일반은행. 경일은행은 대구와 경상북도에서 상업금융 시설이 부족하여 금융기관의 설립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1912년의 개정 「은행령」에 따른 고금리 문제에 대처하고, 금융경색을 완화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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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던 도자기 제조회사. 고려요업주식회사(高麗窯業株式會社)는 1919년 9월 이상무(李相武)의 명의로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자본금 20만 원으로 설립된 도자기 제조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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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조선인 자본가들로 결성된 친일 단체. 조선총독부는 민풍(民風)을 개량한다는 명목하에 친일 지주, 지역 유지, 금융 자본가, 부·도·군협의회 회원 등을 구성원으로 하여 교풍회(矯風會)를 설립하였다. 1911년 마산 교풍회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교풍회가 설립되기 시작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더 증가하였다. 대구 교풍회(大邱矯風會)는 19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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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일제가 한국의 농업과 공업을 금융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대구에 설립한 은행. 대구농공은행(大邱農工銀行)은 1906년 일제가 금융 경색 해결과 재정 기초 확립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대한제국의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및 발달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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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의 시가지 계획안을 조사 및 심의하기 위한 식민 통치 기구. 조선총독부는 1934년 6월 20일 「조선시가지계획령」을 공포한 이후 시가지 계획 위원회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935년 11월 4일 ‘조선총독부 시가지계획위원회 규정’에 따라 시가지 계획 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시가지 계획 위원회는 각 도시의 ‘시가지 계획 사업’으로 지정된 계획구역, 가로망,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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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말 대구부가 빈민 구제를 위하여 설립한 관변단체. 1910년대 말 대구부는 대구 지역의 빈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대구빈민구제회를 관민 합동으로 구성하고 기금을 모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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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 이후 대구의 자본가들이 설립한 객주 조직. 대구상무소(大邱商務所)는 국채보상운동 이후 대구의 자본가들이 조선인 자본가의 이익을 구현하는 동시에 대구일본거류민단과 일본인상업회의소에 대응할 목적으로 설립한 객주 조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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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던 대구의 상공업 발전을 위한 경제 단체. 대구상업회의소는 조선총독부가 1915년 공포한 「조선상업회의소령」에 따라 설립된 대구의 경제 단체이다. 기존의 일본인상업회의소에 조선 경제인들을 참여시켜 대구 지역 상공업 발전을 추구하고자 하였으나 대구 일본인 경제인의 이익을 구현하는 매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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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일제가 어음의 유통 저지 목적으로 설치한 금융기관. 일제는 1905년 화폐 정리 사업 직후 금융제도를 은행의 신설보다는 창고 및 어음 지급보증 등 전통적인 금융 기구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추진하였다. 일제는 1905년 9월 「수형조합 조례」 및 「약속수형 조례」를 공포하고, 한국의 전래 어음의 유통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어음조합을 설치하였다. 대구어음조합[이칭 대구수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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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대구에서 설립되어 한국전력공사로 이어진 전기회사. 대구전기회사(大邱電氣會社)는 1911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아 발전소 공사에 착수하였다. 1912년 9월 말 전기 공급을 위한 외선공사를 종료하였고 곧바로 내선 공사에 착수하였다. 1912년 12월 23일 전기를 생산할 발전기 설비를 끝낸 뒤 시험 운전을 거쳐 1913년 1월 송전을 개시하였다. 점차 사업의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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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2회 경상북도물산공진회의 개최를 위하여 대구부 주도로 결성된 관민 협력 단체. 대구협찬회(大邱協贊會)는 1918년 10월 31일부터 11월 19일까지 개최되는 제2회 경상북도물산공진회의 사업을 찬조하고, 관람자의 편의를 도모하여 제2회 경상북도물산공진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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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대구부윤의 행정 자문기관. 일제는 1914년 「부제」[제령 제7호]와「부제시행규칙」[부령 제3호]을 제정한 뒤 경성, 부산, 평양 등 12개 지역에 각 부(府)의 자문기관으로 부협의회를 설치하고, 의장은 부윤이 맡도록 하였다. 부협의회는 부윤 및 협의회 의원으로 조직하고, 부윤이 의장이 되어 부의 조례를 설정 또는 개폐, 세입과 세출의 예산편성 등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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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시인 이상화 집안의 활약상.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시인 이상화는 독립운동가인 형 이상정과 우국지사인 큰아버지 이일우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경주이씨 집안의 풍조를 내면화하고 있는 이상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훌륭한 인재를 키운 가풍을 들여다보면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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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대구전기회사와 함흥전기주식회사가 합병하여 설립된 전기회사. 대흥전기주식회사(大興電氣株式會社)는 1911년 설립된 자본금 10만 원의 대구전기회사와 자본금 4만 5000원의 함흥전기주식회사가 합병하여 자본금 50만 원으로 설립되었다. 형식적으로는 두 회사의 합병이나 실제는 대구전기회사가 함흥전기주식회사를 인수합병한 것이었다. 합병 당시의 대표이사는 오쿠라 다케노스케[小倉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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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대구 지역에 설치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지점.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법」[법률 제22호]에 의거하여 설립되었다. 표면적 목적은 농사 개량과 농업기술 향상이었지만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에게 정착 지역의 저렴한 토지와 편의 등을 제공하기 위하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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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병태(朴炳兌)[?~?]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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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일본인 자본가 중심의 민간 은행. 1910년 8월 29일에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후 경제적 침투 거점을 구축하기 위한 첫 단계로 1911년에 「조선은행법」을 공포하고 1912년에는 은행 조례를 폐지하고 「은행령」을 공포하면서 일반 은행의 설립이 본격화되었다. 당시 대구는 대시장[어채시장과 약령시]을 배경으로 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구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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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병학(李柄學)[1862~1942]은 1862년 10월 17일에 태어났다. 대구에서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대구교풍회(大邱矯風會)·자제단(自制團)에 참여하고 중추원 참의를 지내는 등 친일반민족 행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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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계몽운동가이자 일제강점기 친일 자본가. 이일우(李一雨)[1870~1936]는 1870년 10월 27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광학회(大邱廣學會) 설립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는 등 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자제단 설립에 참여하는 등 친일 행보를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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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 이장희(李章熙)[1900~1929]는 1900년 지금의 대구광역시의 부호 이병학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이양희(李樑熙), 아호는 고월(古月)이다. 『금성』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였으며, 대구 지역에서 현진건, 이상화, 백기만 등과 교유하며 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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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3·1운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대구에서 조직된 친일 관변단체. 자제단(自制團)은 조선총독부가 3·1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1919년 4월 조직한 단체이다. 친일파를 앞세워 조직된 자제단은 특히 남한 지방에 집중적으로 조직되었는데 ‘자성회(自省會)’, ‘자제회(自制會)’라고도 하였다. 대구에서는 1919년 3·8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계기로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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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경제인이자 일제강점기 친일 금융인. 정재학(鄭在學)[1858~1940]은 1858년 6월 대구에서 태어났다. 개항기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고 민족자본 형성에 기여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를 지내는 등의 친일 행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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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설치된 조선식산은행의 지점.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10월 조선총독부의 금융정책에 따라 대구 지역에 설립된 금융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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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관료 출신의 자본가. 최만달(崔萬達)[?~?]은 대구사범학교와 대구농공은행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대한협회(大韓協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최만순(崔萬淳)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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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후 민족 동화를 조선 통치의 최고 방침으로 설정하고, 민족 동화의 완성을 위하여 조선인 협력자, 곧 친일파를 양성하였다. 친일파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자발적 친일파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일제의 친일파 양성 정책과 자발적 친일파의 특성은 시기마다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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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 자본가. 한익동(韓翼東)[1888~?]은 1888년 4월 대구부 경정(京町)[현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1가·종로2가]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식민통치 자문기구와 관변단체에서 활동하며 일제에 협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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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해안면에서 결성된 소작인 농민 운동 단체. 해안소작조합은 1923년 내지 1924년에 결성되어 1925년 지세 반환 운동과 지세 불납 운동을 벌이고 1925년 낙작인회 투쟁을 통해 농민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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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일대에서 결성된 해안면 소작인조합이 전개한 농민운동. 대구광역시 동구의 옛 지역인 달성군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었다. 해안면[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일대]의 경우 해안면 일대 넓은 농토로 인해 달성군 관내에서 현풍과 같이 일본인이 가장 집중된 곳이었다. 또한 조선인 지주 경영이 가장 활발한 곳이기도 했다.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토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