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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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한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는 다양하지만, 조선시대에 주(州)·군(郡)·현(縣)으로 구별된 행정지역에 세거한 성씨는 향안(鄕案)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일정한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향교의 운영에 인원과 재정 등을 부담하고 있다. 또한 서원·사당·서당·정자 등 문중 단위의 유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읍지(邑誌)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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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양달화(楊達和)[1694~1756]의 본관은 중화(中和)이며, 자는 태삼(泰三), 호는 지촌(池村)이다. 아버지는 양시진(楊時震)이고, 어머니는 현풍곽씨(玄風郭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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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양달화를 추모하는 재실. 영모재(永慕齋)[중화양씨]는 조선 영조(英祖) 때의 학자인 양달화(楊達和)[1694~1756]를 추모하기 위하여 1913년에 건립되었다. ‘영모재’는 길이 흠모하는 집이라는 의미이며, 영모재에서 북쪽 방향으로 멀지 않은 곳에 양달화의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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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포를 시조로 하고 양희지를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중화양씨(中和楊氏)의 시조는 고려 고종(高宗) 때 정승을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당악군(唐岳君)에 책봉된 양포(楊浦)이다. ‘당악’은 중화의 옛 이름으로, 이후 후손들이 중화를 본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었다. 이후 양포의 6세손인 양백지(楊百枝)가 고려 말에 서경천호(西京千戶)를 지내며 평양에 자리 잡은 이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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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양달화의 학덕을 추모하여 건립한 서당형 건물. 학산재(鶴山齋)는 지촌(池村) 양달화(楊達和)[1694~1756]의 학덕을 추모하여 건립한 서당형 정자이다. 양달화의 본관은 중화(中和)이며, 자는 태삼(泰三), 호는 지촌(池村)이다, 문장과 덕행으로 향리에서 명망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