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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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학자. 처사(處士) 구지현(具之賢)은 세천리(世川里)에 살면서 여러 해 동안 저축한 돈으로 동쪽에 있는 벌판을 비옥한 농토로 개간하여 매년 수확되는 곡식 100여 가마니를 의고(義庫)에 저축해 놓고서 마을 사람들의 요역(徭役)이나 자질구레한 세금, 빈민 구호 등에 대비하는 한편 청금재(聽琴齋)를 지어 후학을 양성하고 빈객을 접대하는 데 충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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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돌에 새긴 글자들 혹은 새긴 글의 총칭.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 금석문에는 주로 신도비, 유허비, 사적비, 묘석, 선정비, 송덕비, 하마비, 표석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신도비는 죽은 사람의 평생사적을 기록하여 묘 앞에 세운 비이다. 유허비는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길이 후세에 알리거나, 이를 계기로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사적비는 어떤 사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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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도(淸道). 호는 순재(純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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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수성(壽城). 자는 택우(宅于), 호는 매음(梅陰). 고조할아버지는 나경문(羅景文)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영릉 참봉을 역임한 나응두(羅應斗)이다. 증조할아버지 대에 현풍현[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으로 이주하여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집의(執義)로 증직된 나용(羅瑢)이며, 어머니는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과 대구 부사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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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서 낙빈서원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낙빈서원」은 1679년 박팽년(朴彭年)[1417∼1456]·성삼문(成三問)[1418∼1456]·이개(李塏)[1417~1456]·유성원(柳誠源)[?~1456]·하위지(河緯地)[1412∼1456]·유응부(兪應孚)[?∼1456] 등 사육신의 절의를 추모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는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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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대구의 상징 능금. 대구가 사과로 유명하게 된 데에는 온도의 차이가 심한 기후 조건과 자갈과 모래가 많은 충적 분지라는 알맞은 재배 조건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토종 능금이 사라지고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사과가 ‘대구 능금’이 되었다. 능금은 능금이라는 이름 외에도 임금, 빈과, 평과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다. 임금(林檎)은 11세기 고려 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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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부동에 위치한 능천산의 효천과 망곡봉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김종대, 『우리고장 대구(지명유래)』(대구시교육위원회, 영문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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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에 있는 능성구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 굼마 마을은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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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에 있는 능성구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 굼마 마을은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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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주요한 문화유산. 달서구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25건, 사적 1건, 대구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9건, 무형문화재 2건, 민속문화재 1건 등 모두 38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보물 23건과 유형문화재 7건은 계명대학교의 구입소장품으로 순수한 달서구의 문화재로 보기는 어렵다. 지정문화재는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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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에 있는 1864년 건립된 배이인의 정려각. 배이인의 호는 묵옹(黙翁), 본관은 성주이며 어릴 적부터 효행으로 이름이 있었다. 부모의 병환에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올렸으며, 시묘살이 6년 동안에는 호랑이가 곁에서 호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또한 조선 숙종·경종 두 임금의 국상 때에는 단을 쌓아 아침·저녁으로 북쪽을 바라보며 곡을 하였다고 한다.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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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위치한 동화사 경내에 있는 조선 숙종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전. 대구 동화사 극락전(極樂殿)은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팔공총림 동화사 금당선원 내에 있는 법당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는 아미타불을 봉안한 법당을 극락전이라 부른다. 대구 동화사 극락전 역시 법당 내부에 아미타삼존불과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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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위치한 파계사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고문서. 파계사는 804년(애장왕 5)에 심지왕사가 창건하였고, 1605년부터 1646년에 걸쳐 임진왜란으로 불탄 절을 계관법사가 중창하였으며, 숙종 연간에 승려 현응이 삼창하였다. 1696년(숙종 22)에는 왕이 손수 지은 축책을 내려주어 파계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았고, 이후 여러 차례 내려진 완문 등이 남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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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위치한 파계사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고문서. 파계사는 804년(애장왕 5)에 심지왕사가 창건하였고, 1605년부터 1646년에 걸쳐 임진왜란으로 불탄 절을 계관법사가 중창하였으며, 숙종 연간에 승려 현응이 삼창하였다. 1696년(숙종 22)에는 왕이 손수 지은 축책을 내려주어 파계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았고, 이후 여러 차례 내려진 완문 등이 남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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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도호부의 지방 행정을 책임지던 종5품 지방관. 조선시대 국왕의 명으로 고을을 다스리는 지방관을 수령(守令)이라고 한다. 농민들은 수령을 안전(案前), 사또[使道], 또는 원님 등으로 일컬었다. 대구판관은 대구사또 또는 대구원님이라 불리기도 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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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명숙(明叔), 호는 휘헌(撝軒). 증조할아버지는 경상좌우후 도흠조(都欽祖)이고, 할아버지는 병절교위 도원국(都元國)이다. 아버지는 양직당(養直堂) 도성유(都聖兪)이며, 어머니는 이심해(李心海)의 딸 광주 이씨(廣州李氏)이다. 친아버지는 무공랑(務功郞) 서재(鋤齋) 도여유(都汝兪)이며, 친어머니는 증판결사 이우겸(李友謙)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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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4년 대구 유생 도신징이 올린 의례 상소문.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정국은 반정을 주도한 서인 세력이 집권한 가운데 남인 세력이 견제하는 형태였다. 정치적으로 열세였던 남인 세력은 서인 정권을 견제하기 위하여 영남 유림의 공론에 의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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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도신행(都愼行)[1609~1677]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과회(寡悔), 호는 명애(明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도흠조(都欽祖)이고, 할아버지는 도원결(都元結)이다. 아버지는 도여유(都汝兪)이며, 어머니는 이우겸(李友謙)의 딸 여주이씨(驪州李氏)이다. 형은 도신수(都愼修)·도신여(都愼與)이고, 동생은 도신의(都愼儀)·도신종(都愼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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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반야월과 안심동의 지명 유래와 관련해 전해오는 이야기 김광순, 『한국구비문학』(국학자료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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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전통 시대 군사 통신 시설. 봉수(烽燧) 또는 봉화(烽火)는 횃불이나 연기를 피워 올려 변방 지역에서 발생한 적의 침입이나 난리를 중앙에 알리던 통신 제도이다. 원래 봉수라는 용어는 밤에 불로서 알리는 봉인 연봉(燃烽)[횃불]과 낮에 연기로서 알리는 번수(燔燧)[연기]를 합친 말이다. 봉수가 행하여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였으나 본격적으로 법제화한 것은 고려 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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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산격1동 주민들의 행정 복지 사무를 맡아 보는 행정기관. 산격1동 행정복지센터는 법정동인 산격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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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는 1145년(인종 23)에 김부식(金富軾) 등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을 기전체(紀傳體)로 기록한 역사서로 조선시대에 5차례 간행되었다.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소장 삼국사기는 2017년 1월 31일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9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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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서명보 효자 정려각(徐明普 孝子 旌閭閣)은 숙종 때 효자인 서명보[1704~1778]의 효행을 기리고자 1802년(순조2)에 건립된 정려각이다. ‘서명보 효자각’이라고도 일컫는다. 서명보는 본관이 달성(達城)이며, 자는 화극(華極)이고 호는 북곽(北郭)이다. 서명보는 아버지 서익지(徐翊祉)의 병이 깊어 24년간 간병하였는데,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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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서명보 효자 정려각(徐明普 孝子 旌閭閣)은 숙종 때 효자인 서명보[1704~1778]의 효행을 기리고자 1802년(순조2)에 건립된 정려각이다. ‘서명보 효자각’이라고도 일컫는다. 서명보는 본관이 달성(達城)이며, 자는 화극(華極)이고 호는 북곽(北郭)이다. 서명보는 아버지 서익지(徐翊祉)의 병이 깊어 24년간 간병하였는데,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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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후에 선현에게 제사 드리고 학문을 강론하던 대구 지역의 사립 교육기관. 우리나라에 최초로 건립된 서원(書院)은 1543년(중종 38)에 경상도 순흥(順興)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주세붕은 백운동서원에 지역 출신 선현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지역 유생들에게 유학을 강학하였는데, 이후에 선현에 대한 제향(祭享)과 유생들의 학문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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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의 왕과 왕비 등이 쓴 한글 편지를 1802년에 엮어 만든 편지첩. 신한첩(宸翰帖) 곤(坤)은 효종, 현종, 숙종, 장렬왕후, 인선왕후, 명성왕후, 인현왕후 등이 효종의 넷째 딸인 숙휘공주[1642~1696]에게 쓴 한글 편지 32편과와 부마 정제현에게 쓴 한글 편지 1편, 인선왕후에게 쓴 한글 편지 2편 등 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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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 있는 파계사를 중수한 고승. 영원의 본관은 옥산(玉山)으로, 어렸을 때 출가하여 20살 때 실명하였다. 이후 동운대사(東雲大師)에게 법을 전수받고 선(禪)의 근원을 탐구하였다. 승려 영원과 관련된 영조(英祖)의 출생 전설이 전한다. 1693년(숙종 19) 10월 5일에 숙종이 밤에 고박산승(古朴山僧)이 대전으로 들어와 3일간 상서로운 빛을 밝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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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있는 파계사(把溪寺)에 탄생이야기를 갖고 있는 왕. 영조의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금(李昑), 자는 광숙(光叔),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다. 부친은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肅宗)이며, 모친은 화경 숙빈(和敬淑嬪) 최씨(崔氏)이다. 비는 서종제(徐宗悌)의 딸 정성 왕후(貞聖王后)이고, 계비는 김한구(金漢耉)의 딸 정순 왕후(貞純王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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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위치한 파계사 경내 원통전 내 건칠관음보살좌상에서 발견된 조선후기 영조대왕의 도포. 「영종대왕원당사적」에 의하면 숙종이 현응대사를 수락산으로 보내 왕자의 탄생을 위한 백일기도를 드리게 하였는데 그 후 숙빈 최씨가 왕자[영조]를 낳았다. 이로써 숙종은 파계사를 왕실의 원찰로 삼고 내탕금 3천냥으로 칠성전을 짓게 하고 왕자[영조]의 복을 빌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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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신. 이상진(李尙眞)[1614~1690]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천득(天得), 호는 만암(晩庵)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윤 이정란(李廷鸞)이고, 할아버지는 이준길(李遵吉)이다. 아버지는 사직서참봉을 지낸 이영선(李榮先)이고, 어머니는 공조참판 민여임(閔汝任)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부인은 현령 김적(金迪)의 딸 연안김씨(延安金氏)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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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대구광역시에 전하여오는 공동체의 내력이나 자연물의 유래, 이상한 체험 등의 이야기. 설화(說話)는 신화, 전설, 민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설(傳說)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전승자가 증거물을 근거로 진실되다고 믿고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야기이다. 둘째, “조선조 숙종 시절에 대구 대명동에…”와 같이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을 제시하여 진실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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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문관. 정온(鄭蘊)[1569~1641)의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 또는 고고자(鼓鼓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별제 정옥견(鄭玉堅)이고, 할아버지는 정숙(鄭淑)이다. 아버지는 정유명(鄭惟明)이고, 어머니는 장사랑(將仕郎) 강근우(姜謹友)의 딸이다. 형은 정위(鄭緯)이고, 동생은 정백(鄭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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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있는 영조 원당이 설립되면서 왕실의 원찰이 된 파계사. 숙종이 현응대사에게 왕자 탄신 기도를 부탁하여 숙빈 최씨가 영조를 낳자 파계사에 선대왕의 어필과 위패를 봉안하는 원당을 설립하고 왕실 원찰로 정하였다. 영조의 친필 현판이 현재 성전암 법당에 걸려있고, 영조 어의 또한 파계사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시대 왕실 원당의 설립은 왕실과 사찰간의 필요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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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 소장되어 있는 1650년 간행 한자 학습서. 천자문은 석봉(石峰) 한호(韓濩)[1543~1605]가 쓴 글씨로 제작한 신축본(1601) 『천자문』을 1650년(효종 1)에 다시 펴낸 목활자본이다. 음(音)과 훈(訓), 성조(聲調)가 덧붙여 있다. 한호의 『천자문』은 선조 때 처음 간행되었고 효종, 숙종, 순조 때에 중간된 바 있는데 대구광역시 남구 소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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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염수재에 소장된 1685년부터 1686년 사이에 전극태가 쓴 사환 일기. 『퇴헌일기(退軒日記)』는 조선 후기 대구부 출신인 전극태(全克泰)[1640~1696]가 쓴 1685년(숙종 11) 10월 25일부터 1686년 9월 11일까지의 사환 일기(仕宦日記)이다. 전극태가 한성부의 사산감역관(四山監役官) 중 서도감역(西道監役) 장무관(掌務官)으로 임명된 뒤 부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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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있는 통일신라시대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퇴경당전서(退耕堂全書)』 및 『팔공산파계사사적비(把溪寺事蹟碑)』에 의하면, 파계사는 통일신라시대 804년(애장왕 5)에 심지왕사가 창건하였다. 사찰 명칭은 사찰 좌우에 9개 계곡이 있다. 이를 구룡(九龍)이라 하며 이들 아홉 마리 용이 한꺼번에 나와 사회를 혼란시키지 못하도록 잡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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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위치한 파계사에 있는 1696년 건립된 불전. 파계사기영각(把溪寺 祈永閣)은 영조 임금을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를 지닌 전각이다. 예전에 파계사기영각에 덕종[세조의 첫째 아들이며 성종의 아버지], 선조, 숙종, 영조 조선의 네 임금의 위패를 봉안한 내력이 있다. 이로인해 파계사는 조선 왕실의 원찰이 되었다. 또한 파계사기영각은 다른 말로 ‘어필각(御筆閣)’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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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파계사에 있는 조선후기 숙종대에 건립된 하마비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는 1693년(숙종 19)경 숙종이 현응대사에게 부탁하여 왕자[후일의 영조]를 얻는 데 대한 보답이다. 파계사 대소인개하마비는 궁궐과 지체 높은 이의 사당, 향교, 관아, 왕릉, 귀족의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이다. 파계사에 대소인개하마비가 세워진 유래는 경내에 제왕과 왕실의 안녕을 비는 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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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위치한 파계사 원통전에 있는 1707년 제작된 불화. 파계사 영산회상도를 그린 사람은 화승(畵僧)[불화를 그리는 사람] 의균, 성익, 체환, 석민, 회징, 삼학 6명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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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효자 하광신의 정려각. 하효자정려각은 고려 때 이부시랑을 지낸 하광신(夏光臣)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세운 비(碑)와 각(閣)이다. 정려비의 비문은 숙종(肅宗) 때 이조판서 겸 홍문관 대제학이던 황경원(黃景源)이 지었고, 비문의 글씨는 통훈대부 사헌부지평 이약채(李若菜)가 썼다. 하광신은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는데, 매서운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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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효자 하광신의 정려각. 하효자정려각은 고려 때 이부시랑을 지낸 하광신(夏光臣)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세운 비(碑)와 각(閣)이다. 정려비의 비문은 숙종(肅宗) 때 이조판서 겸 홍문관 대제학이던 황경원(黃景源)이 지었고, 비문의 글씨는 통훈대부 사헌부지평 이약채(李若菜)가 썼다. 하광신은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는데, 매서운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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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속하는 법정동. 조선 숙종 때 동래정씨(東來鄭氏)가 이 지역에 정착하였다. 그 이후 동래정씨의 11대손인 정종악이 학문이 뛰어나 진사시(進士試)에서 장원 급제할 뿐만 아니라 이웃과도 화목하게 지내자 숙종이 정종악의 호인 효목을 마을 이름으로 정하라고 하여 그때부터 효목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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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의 지명 유래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동래정씨가 임진왜란 당시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정착한 후 8대조 정종악(鄭宗岳)이 학문에 뛰어나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서 마을 사람들이 그를 기리는 정려각(旌閭閣)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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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인 도신여의 시문집. 도신여(都愼與)[1605~1675]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명숙(明叔), 호는 휘헌(撝軒)이다. 대구 하빈현 도촌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도여유(都汝兪)이며, 어머니는 여흥 이씨(驪興李氏) 이우겸(李友謙)의 딸이다. 아버지의 사촌 형제인 도성유(都聖兪)의 양자가 되었다. 정구(鄭逑), 서사원(徐思遠)의 문인이다. 163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