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호(金容鎬)[1853~1924]는 1853년 8월 28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호는 일암(一菴)이며, 김용우(金容又)·김용순(金容淳)·김용문(金容文)으로도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순호(朴純鎬)[1873~1934]는 1873년 1월 8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호는 덕암(德巖)이며, 박왕호(朴汪鎬)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재근(朴再根)[1881~1950]은 1881년 4월 1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호는 후암(後菴)이며, 박재근(朴在根)으로도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건수(徐健洙)[1874~1953]는 1874년 1월 1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호는 성암(性菴)이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경동(禹涇東)[1876~1960]은 1876년 9월 2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우경동(禹經東)으로도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성동(禹成東)[1861~1920]은 1861년 1월 1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승기(禹升基)[1875~1948]는 1875년 4월 8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찬기(禹瓚基)[1861~1921]는 1861년 9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호는 성암(誠菴)이다....
1919년 대구 지역 출신 유림 13명이 참여한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 일제는 1919년 2월 이완용을 정당 대표로, 김윤식과 이용직을 유림 대표로 하여 일왕에게 한국 유림은 독립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합방 절대 지지 한일 불리 청원서(合邦絶對支持韓日不離請願書)’[일명 ‘독립불원서’] 를 보냈다. 독립불원서는 일제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며, 김윤식과 이용직은 일본이 자진 철...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달성군 출신의 유림들이 참여한 유림단의 독립 청원 운동. 1919년 3·1 운동의 독립 선언서 서명에 참여하지 못했던 유림계는 국제 활동의 사명은 유림에서 맡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1919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 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여 국제 여론을 조성하고 한국의 독립을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영남 지역의 유림을 대표하는 곽종석...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석하(曺錫河)[1883~1955]는 1883년 2월 2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호는 학단(學丹)이다....
1919년 유림단의 파리 만국 평화 회의에 보낸 독립 청원 운동. 3·1 운동의 전국적 확산과 1919년 2월 친일 세력과 경성의 일부 친일 유림이 야합하여 합방 절대 지지 한일 불리 청원서(合邦絶對支持韓日不離請願書)를 일왕에게 보내려던 음모가 폭로되면서 유림의 독립 청원 운동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달성군에서도 파리 만국 평화 회의에 제출한 독립 청원 운동이 독자적으로 진행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