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씨
-
대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는 성씨. 조선 초에 대구는 본부(本府)와 수성현(壽城縣), 하빈현(河濱縣), 해안현(解顔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본군(本郡)의 내성(來姓)이 1이니, 도(都)이다. 수성(壽城)의 내성(來姓)이 7이니, 유(柳)·장(張)·최(崔)·신(申)·유(劉)·고(高)·정(鄭)이요, 해안(解顔)의 내성이 3이니, 제(諸)...
-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속하는 법정동. 상동(上洞)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법정동 26개 중 하나이다. 자연 마을로는 수성들[한들], 찬물샘 등이 있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 있는 상동 주민들의 행정 복지 사무를 맡아 보는 행정기관.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에 속하는 상동 행정복지센터는 법정동인 상동을 관할하는 행정기관이다....
-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경세가 대구의 봉산서원에 제향된 손린의 사호도 장자 뒤에 부쳐 1608년에 쓴 발문. 「서손계진사호도장자(書孫季進四晧圖障子)」의 저자 정경세(鄭經世)[1563~1633]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경임(景任)이고, 호는 우복(愚伏)이다. 유성룡(柳成龍)[1542~1607]의 문인이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 대구 지역 유학자 모당 손처눌의 묘소.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은 1553년(명종 8) 6월 25일 대구 수성 상동에서 출생하여 1634년(인조 12) 6월 15일 평소에 강학하였던 영모당(永慕堂)에서 82세로 사망하였다. 9월 12일 수성구 황금동[황청동] 선영 아래 손좌(巽坐)에 장례하였다. 장례에 모인 사람은 420여 명이었다....
-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이 임진왜란 때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의 공산성을 수비한 손기양의 행실을 기리기 위해 지은 행장. 이익(李瀷)[1681~1763]의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신(子新), 호는 성호(星湖)이다. 이익은 실용적인 학문을 주장하였다. 즉 당색 중심 정치를 타파하고 관료기구의 개편을 주장했다. 또한 양반도 생업에 종사해야 함을 피력했다. 또한 인재 등용도 종래 과...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청호서원의 일제강점기 중건에 대한 이후의 기문. 「청호서당 중건기1(靑湖書堂 重建記1)」의 배경이 되는 청호서원은 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 모당(募堂) 손처눌(孫處訥), 사월(沙月) 유시번(柳時藩),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을 제향하고 있다. 손처눌 생전에 청호서당에서 강학 활동을 펼쳤다. 1694년 유림의 공의로 창건하여 손처눌의 6대조인...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던 자연부락 봉천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황금동의 못안과 봉천」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던 자연부락 봉천(奉天)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지명유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