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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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조선시대의 학자인 한강 정구와 낙재 서사원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강학소. 이락서당(伊洛書堂)은 조선시대 정조 때 대구, 달성, 칠곡 등 인근 9문중의 선현들이 금호강(琴湖江)과 낙동강(洛東江)의 합수지인 강창(江倉)을 택하여 삼가헌(三可軒) 박성수(朴聖洙)가 1765년(영조 6) 9월에 착공하여 1766년 봄에 준공하였다. 한강(寒岡) 정구(鄭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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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양관을 추모하는 재실. 거은재(莒隱齋)는 조선 후기의 학자 거은(莒隱) 양관(楊綰)[1618~1680]을 기리기 위하여 청주양씨(淸州楊氏) 팔거 종중에서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양관은 1618년(광해군 10)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달천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팔거(八莒)[현 북구 국우동·동천동 일대]로 이주하여 청주양씨 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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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 의병장 서사원이 임진왜란 시기 의병장들과 함께 지은 격문. 「격강좌열읍문(檄江左列邑文)」은 풀이하면 ‘강좌의 여러 고을에 보내는 격문’이다. 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徐思遠)[1550~1615]이 경상북도와 대구 지역 의병들의 의분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다수의 의병장들과 함께 지은 격문이다. 저자 서사원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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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훈을 추모하는 인천이씨 공도공파 문중 재실. 경모재(敬慕齋)[연경동(硏經洞)]는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 24세손 이훈(李薰)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훈은 인천이씨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의 후손이다. 이주가 지금의 수성구 파동에서 무태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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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훈을 추모하는 인천이씨 공도공파 문중 재실. 경모재(敬慕齋)[연경동(硏經洞)]는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 24세손 이훈(李薰)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훈은 인천이씨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의 후손이다. 이주가 지금의 수성구 파동에서 무태로 이주한 후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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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주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된 재실. 경암재(景巖齋)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의병장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를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주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나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낙재(樂齋)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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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주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된 재실. 경암재(景巖齋)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의병장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를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주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나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낙재(樂齋)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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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이황의 한시에 1591년 대구 출신 의병장이며 학자인 서사원이 차운하여 지은 한시. 「경차퇴계선생화암운(敬次退溪先生畫巖韻)」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이다.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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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조선 전기 학자인 이주가 지은 한시. 「경차퇴계이선생화암운(敬次退溪李先生畫巖韻)」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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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전경창을 기리는 재실. 계동정사(溪東精舍)는 대구 출신의 성리학자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이 1565년(명종 20)에 건립하고, 1566년부터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태암(苔巖) 이주(李輈), 엄약재(儼若齋) 전춘년(全春年)을 교육하던 강학소이다. 1566년에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과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이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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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전경창을 기리는 재실. 계동정사(溪東精舍)는 대구 출신의 성리학자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이 1565년(명종 20)에 건립하고, 1566년부터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태암(苔巖) 이주(李輈), 엄약재(儼若齋) 전춘년(全春年)을 교육하던 강학소이다. 1566년에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과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이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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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전해오는 고문서와 고도서류. 고문헌(古文獻)은 일반적으로 문서와 서책을 통칭하는 것이다. 달성군의 고문헌은 주로 향교와 서원에 집중되어 있으며, 개별 문중으로는 남평 문씨 인수 문고가 대표적인 소장처이다. 현풍 향교와 도동 서원은 필사 성책류가 주류를 이루며, 녹동 서원과 인흥 서원은 고서가 다수 있다. 이외에 서적 간행을 확인할 수 있는 책판도 도동 서원,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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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위치한 구암서원에 배향된 서사원이 기록한 공부에 대한 짧은 글. 「공부차록(工夫箚錄)」은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위치한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된 의병장이며 학자인 서사원(徐思遠)[1550~1615]이 기록한 공부에 대한 짧은 글과 도설 자료 모음집이다. 서사원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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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홍여하가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소재한 백원서원에 배향된 서시립의 장수를 축하하며 지은 시. 홍여하(洪汝河)[1620~1674]의 본관은 부계(缶溪)로 자는 백원(百源), 호는 목재(木齋) 혹은 산택재(山澤齋)이다. 홍여하는 예문관에 들어가 검열이 되었다가 대교(待敎), 봉교(奉敎) 등을 거쳐 사간원 정언에 올랐다. 정언으로 있을 때 효종에게 시사(時事)를 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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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원정(元靜), 호는 죽재(竹齋).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곽승화(郭承華)이고, 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곽위(郭瑋)이다. 아버지는 통선랑(通善郞) 곽지견(郭之堅)이며, 어머니는 부사를 지낸 김수돈(金守敦)의 딸 상주 김씨(尙州金氏)이다. 부인은 감찰(監察)을 지낸 박순(朴純)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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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익보(益甫), 호는 괴헌(槐軒). 증조할아버지는 현감(縣監)을 지낸 곽위(郭瑋)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을 지낸 곽지번(郭之蕃)이다.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 곽초(郭超)이며, 어머니는 홍양 수(洪陽守) 이완(李琓)의 딸 완산 이씨(完山李氏)이다. 부인은 좌랑(佐郞)을 지낸 이두문(李杜文)의 딸 영양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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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인 곽재겸의 문집. 곽재겸(郭再謙)[1547~1615]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익보(益甫), 호는 괴헌(槐軒)이다. 임진왜란 때 서사원(徐思遠)과 협력하여 의병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정유재란 때는 사촌 동생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화왕산성(火旺山城) 전투에 참전하여 왜적을 물리친 공으로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이후 향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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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서원. 구암서원은 세종대왕 때 달성(達城)[현재 달성공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보상을 받는 대신 고을 백성들의 환곡을 감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던 서침(徐沈)을 추모하던 숭현사(崇賢祠)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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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서원. 구암서원은 세종대왕 때 달성(達城)[현재 달성공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보상을 받는 대신 고을 백성들의 환곡을 감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던 서침(徐沈)을 추모하던 숭현사(崇賢祠)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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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무관. 구회신(具懷愼)[1564~1634]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경중(敬仲)이다. 아버지는 종사랑 구대성(具大成)이고, 어머니는 옥천황씨(玉泉黃氏)이다. 부인은 풍천임씨(豐川任氏)이고, 아들은 구인계(具仁繼)이다. 고려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구홍(具鴻)의 8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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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문관. 권문해(權文海)[1534~1591]의 본관은 예천(醴泉)이며, 자는 호원(灝元), 호는 초간(草澗)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선(權善)이고, 할아버지는 권오상(權五常)이다. 아버지는 권지(權祉)이고, 어머니는 정찬종(鄭纘宗)의 딸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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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이었으나 서당으로 복원된 건물. 금암서당(琴岩書堂)은 임하(林下) 정사철(鄭師哲)[1530~1593]과 낙애(洛涯) 정광천(鄭光天)[1553~1594]을 배향하는 서원이었다. 정사철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계명(季明), 호는 임하(林下)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570년(선조 3) 생원 진사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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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를 흐르는 국가하천 금호강을 따라 새로이 설정된 10경. 대구광역시에는 조선 전기 대구를 대표하는 문신 중 한 명인 서거정이 노래한 「대구십영」이 전해 온다. 「대구십영」 중 1경은 금호강 주변의 수려한 경치를 노래한 것이다. 뱃길을 따라 빼어난 풍광을 노래한 시와 그림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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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여대로가 1601년 대구의 금호강에서 벗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지은 시집에 부치어 쓴 서문. 「금호동주시서(琴湖同舟詩序)」의 저자 여대로(呂大老)[1552~1619]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성우(聖遇)이고, 호는 감호(鑑湖)이다. 아버지는 여응구(呂應龜)이고, 어머니는 신일(辛馹)의 딸이다. 서사원(徐思遠)[1550~1615], 장현광(張顯光)[1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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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1599년 서사원에게 지어 준 한시. 「기사서낙재행보(寄謝徐樂齋行甫)」를 지은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며, 장현광(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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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 문인 서사원이 1599년 청주의 불굴동에 우거하면서 지은 한시. 「기해원월입춘일 여방류접서원청주불굴지동 완열주부자인설도 유감이득일절(己亥元月立春日, 余方流接西原淸州不屈之洞, 翫閱朱夫子仁說圖, 有感而得一絶)」를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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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김지남(金止男)[1559~1631]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자정(子定), 호는 용계(龍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하(金碬)이고, 할아버지는 김세덕(金世德)이다. 아버지는 영동현감을 지낸 김표(金彪)이고, 어머니는 감찰 김자위(金自渭)의 딸 순천김씨(順天金氏)이다. 큰아버지인 현감 김양(金讓)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첫 번째 부인은 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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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나응숙(羅應淑)[1556~1647]의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군선(君善), 호는 묵헌(黙軒)이다. 아버지는 부사 나경신(羅敬身)이고, 어머니는 창녕구씨(昌寧仇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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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사원 추모 재실. 낙선재(樂仙齋)는 1860년경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을 추모하기 위하여 묘소가 있는 파산(巴山) 아래에 건립한 재실이다. 서사원은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전경창(全慶昌)[1532~1585]·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장현광(張顯光)·김우옹(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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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사원 추모 재실. 낙선재(樂仙齋)는 1860년경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을 추모하기 위하여 묘소가 있는 파산(巴山) 아래에 건립한 재실이다. 서사원은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전경창(全慶昌)[1532~1585]·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장현광(張顯光)·김우옹(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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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대구 출신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서사원의 개인 문집.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재(樂齋) 또는 미락재(彌樂齋)이고 시호는 문강(文康)이며,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1529~1584]의 문하에 입문하여 한강(寒岡) 정구(鄭逑) 문하에 출입하며 성리의 학문을 추구하였다. 임진왜란에는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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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대구 출신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기록한 일기문학.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壬辰倭亂期)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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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엽 달성에서 활동한 학자 서사원의 문집. 서사원(徐思遠)은 조선 중엽의 학자로 한강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재(樂齋), 미락재(彌樂齋), 만오당(晩悟堂)이다. 1550년(명종 5)에 출생하여 1615년(광해군 7)에 사망하였다. 선공감 감역(繕工監監役), 청안 현감(淸安縣監) 등을 지냈다. 이후 여러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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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구국 활동을 한 손처눌이 서사원에게 작은 액자를 받고 답례로 지어 준 한시. 「낙형지이일건석척숙오신흥팔자소액 시이사지(樂兄持貽日乾夕惕夙𤕻晨興八字小額 詩以謝之)」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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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손처눌이 임진왜란 후 대구의 연경서원을 중건하고 서사원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난후중창연경서원 차낙형운(亂後重刱硏經書院次樂兄韻)」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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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손처눌이 서사원과 최흥국을 만나 봄의 남산을 노닐며 지은 한시. 「남산조춘여서행보, 최강후계행(南山早春與徐行甫, 崔康侯溪行)」을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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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에 있는 성주 도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도촌 마을은 성주도씨(星州都氏) 대종파(大宗派) 집성촌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구광역시의 배후 도시로 아파트와 상가가 밀고 들어와 아파트촌으로 변모한 가운데, 도씨들의 집성촌이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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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이현동에 있는 조선 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17인의 숭모비. 달성유현 숭모비(達城儒賢 崇慕碑)는 조선 전기 명종 때부터 조선 후기 인조 때에 이르는 기간에 지금의 대구광역시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열일곱 명을 기리는 비석이다. 이 열일곱 명은 달성유현숭모회(達城儒賢崇慕會)가 인천채씨 집안에 전하여 오는 「덕행록(德行錄)」과 오졸재(五拙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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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 살았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대구부사 김윤안에게 보내는 편지. 「답김대구(答金大丘)」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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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조선 후기 문인 손처눌이 서사원이 보낸 음식와 편지에 쓴 답장. 「답서행보(答徐行甫)」[모당집]을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 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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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조선 후기 문인 서사원과 나눈 문답과 편지. 「답서행보(答徐行甫)」[한강집]를 쓴 정구(鄭逑)[1543~1620]는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에 정통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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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손처눌이 조선 후기 문인 서사원의 편지에 쓴 답장. 「답서낙재행보(答徐樂齋行甫)」를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 서사원(徐思遠), 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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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손처눌과 나눈 문답과 편지. 「답손기도(答孫幾道)」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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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구국 활동과 강학 활동을 한 손처눌이 금호강 유람 후 정구에게 받은 편지에 답한 편지. 「답한강선생(答寒岡先生)」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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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성리학과 성리학자 그리고 유적·유물. 대구광역시 동구는 시내의 중심지인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신암동에서 동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안심지역을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팔공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1563년(명종 18)에 건립된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이 있었다. 그래서 대구광역시 동구는 대구 성리학의 출발점이자 산실이었다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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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부동에 있는 1922년 건립된 문화유씨 문중의 재사. 유시번(柳時藩)[1569~1640]은 연정(蓮亭) 유요신(柳堯臣)의 아들로 대구 해안현 삼태동에서 태어났다. 괴헌 곽재겸·낙재 서사원·한강 정구·모당 손처눌 등에게 수학을 하여 학문으로 이름이 났으며,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의 청호서원에 제향되었다. 유시번은 달성십현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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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숙천동에 있었던 1900년대 건립된 달성서씨 문중의 재실. 대구 숙천동 원모재는 조선 후기 대구의 유학자인 서사선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이다. 달성서씨 인물인 서사선은 조선 후기 대구의 유학자이다. 서사선은 자가 정보(精甫), 호가 동고(東皐)이다. 사촌형인 낙재 서사원과 한강 정구에게 수업을 받았으며,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유일(遺逸)로 예빈시참봉에 올랐다. 서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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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유림들이 연경서원과 선사재에서 강학한 내용을 기록한 책. 『대구유현 통강록』은 연경서원의 유사(有司)가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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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 조선 후기 유학자의 장갈문을 국역하여 발행한 책. 『대구유현록(大邱儒賢錄)』은 조선 후기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의 장갈문(狀碣文)을 모아 번역하고 원문과 함께 수록한 책이다. 『대구유현록』의 장갈문은 문집과 실기에 수록되어 있는 행장(行狀), 행록(行錄), 묘갈명(墓碣銘), 묘표(墓表) 중에서 한 편을 선정하여 수록하였다. 『대구유현록』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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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최동집의 시문집. 최동집(崔東㠍)[1586~1661]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진중(鎭仲), 호는 대암(臺巖)이다. 아버지는 현령 최계(崔誡)이다.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6년(광해군 8) 병진 증광시(增廣試)에 진사(進士) 3등 51위로 합격하였고, 정묘호란에는 의병을 규합하였다.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참봉에 제수되고 대군의 스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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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도석규(都錫珪)[1773~1837]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회언(會彦), 호는 서호(西湖)·금남(錦南)이다. 어릴 때의 이름은 도병규(都秉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도관모(都寬謨)이고, 아버지는 도필채(都必采)이다. 도필동(都必東)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첫 번째 부인은 아산장씨(牙山蔣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인천채씨(仁川蔡氏)이다. 동생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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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정언(廷彦), 호는 양직자(養直子). 고조할아버지는 첨절제사를 역임한 도의문(都義文)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전력부위 도순경(都舜卿)이며, 할아버지는 병마우후 도흠조(都欽祖)이다. 아버지는 병절교위 도원국(都元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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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도신수(都愼修)[1598~1650]는 팔거현[현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 ]에서 태어나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과 한강(寒岡) 정구(鄭逑)에게 수학하였다. 당쟁의 영향으로 주로 외직에 있었지만 백성들의 구휼과 교화 등에 힘써 백성들이 도신수의 공을 기려서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고, 왕명으로 내구마(內廐馬)가 하사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부임한 영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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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명숙(明叔), 호는 휘헌(撝軒). 증조할아버지는 경상좌우후 도흠조(都欽祖)이고, 할아버지는 병절교위 도원국(都元國)이다. 아버지는 양직당(養直堂) 도성유(都聖兪)이며, 어머니는 이심해(李心海)의 딸 광주 이씨(廣州李氏)이다. 친아버지는 무공랑(務功郞) 서재(鋤齋) 도여유(都汝兪)이며, 친어머니는 증판결사 이우겸(李友謙)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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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군 하빈현에서 출생한 학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해중(諧仲), 호는 서재(鋤齋). 고조할아버지는 첨절제사 도의문(都義文)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전력 부위 도순경(都舜卿)이다. 할아버지는 경상 좌우후 도흠조(都欽祖), 아버지는 증 한성부 우윤 도원결(都元結)이다. 어머니는 증 참의 홍제문(洪悌文)의 딸 부림 홍씨(缶林洪氏)이다. 부인은 증 판결사 이우겸(李友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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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의병장이자 학자. 도응유(都應兪)[1574~1639]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해보(諧甫), 호는 취애(翠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도순경(都舜卿)이고, 할아버지는 도흠조(都欽祖)이다. 아버지는 초계군수를 지낸 도원량(都元亮)이고, 어머니는 곽진(郭趁)의 딸 현풍곽씨(玄風郭氏)이다. 부인은 신유경(辛裕慶)의 딸 영산신씨(靈山辛氏)이며, 동생은 도언유(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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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해보(諧甫), 호는 취애(翠厓). 고조할아버지는 첨사 도의문(都義文)이며, 증조할아버지는 부위 도순경(都舜耕)이다. 할아버지는 우후 도흠조(都欽祖), 아버지는 도원량(都元亮)이다. 도원량은 용천(龍川), 청도(淸道), 초계(草溪)의 세 군을 역전(歷典)하였는데, 둘째 아들 도경유(都慶兪)가 영사 원종공신(寧社原從功臣)에 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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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를 기반으로 해 만들어진 문학 작품들. 대구광역시 동구에는 영산(靈山) 팔공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아름다운 금호강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어 빼어난 풍광이 한두 곳이 아니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은 그 승경을 감상하며 흥취를 시문으로 남겼다. 팔공산은 역사적 현장으로서도 중요한 곳이다. 예종이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벌인 동수전투[공산전투]와 관련하여 지은 「도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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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를 기반으로 해 만들어진 문학 작품들. 대구광역시 동구에는 영산(靈山) 팔공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아름다운 금호강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어 빼어난 풍광이 한두 곳이 아니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은 그 승경을 감상하며 흥취를 시문으로 남겼다. 팔공산은 역사적 현장으로서도 중요한 곳이다. 예종이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벌인 동수전투[공산전투]와 관련하여 지은 「도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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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유학자 서사원이 살던 집에 건립한 옛 구암서원.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492-58번지[동산동 229]는 조선 후기 ‘대구 유학(儒學)의 스승’으로 일컫는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이 살던 곳이며 1717년(숙종 44)에 구암서원(龜巖書院)이 건립된 장소이기도 하다. 구암서원은 2003년 북구 산격동으로 이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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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유학자 서사원이 살던 집에 건립한 옛 구암서원.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492-58번지[동산동 229]는 조선 후기 ‘대구 유학(儒學)의 스승’으로 일컫는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이 살던 곳이며 1717년(숙종 44)에 구암서원(龜巖書院)이 건립된 장소이기도 하다. 구암서원은 2003년 북구 산격동으로 이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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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구암서원에 배향된 서사원이 1603년 9월 경상북도 동남쪽을 유람하면서 기록한 일기. 「동유일록(東遊日錄)」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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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서 발원하여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과 서변동에서 금호강과 합류하는 지방하천. 동화천(桐華川)은 대구광역시 북구를 흐르는 지방하천으로 금호강(琴湖江)의 제1지류, 낙동강(洛東江)의 제2지류이다. 동화천은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동학사 일대에서 발원하여 북구 동변동 및 서변동의 금호제1교 부근에서 금호강과 합류한다. 능성천(能城川), 용수천(龍水川), 지묘천(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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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류영순(柳永詢)[1552~1630]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순지(詢之), 호는 졸암(拙庵) 또는 북천(北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류헌(柳軒)이고, 할아버지는 류세구(柳世龜)이다. 아버지는 백천군수를 지낸 류연(柳埏)이고, 어머니는 신효손(申孝孫)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형은 류영겸(柳永謙)·류영근(柳永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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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과 하빈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 마천산(馬川山)[274.4m]의 한자 해석은 '목 마른 말이 하천의 물을 마시는 모양의 산'이라는 갈마음수형국(渴馬飮水形局)에서 유래된 것이다. 마천산이 기록된 역사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제26권「대구 도호부 산천조」에는 “하빈면에서 남으로 1리에 있는데, 일명 금성산(錦城山)이다.”라고 적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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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곽재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시. 「만곽괴헌익보(輓郭槐軒益甫)」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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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손처눌이 대구 지역 출신인 전경창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만사」[손처눌]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대구부(大丘府) 수성리(壽城里) 황청동(黃靑洞)[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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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학자이며 의병장인 이주가 대구 출신 문신 전경창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만사」[이주] 저자 이주(李輈)[1556~160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이고, 호는 태암(苔巖)이다. 이주는 1556년(명종 11)에 대구부 수성현 파잠리(巴岑里)[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났고, 후에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로 옮겨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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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학자이자 의병장인 정광천이 대구 출신 문신 전경창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만사」[정광천] 저자 정광천(鄭光天)[1553~1594]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자회(子晦), 호는 낙애(洛涯)·송파(松坡)이다. 아버지는 정사철(鄭師哲)[1530~1593],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호연(李浩然)의 딸이다. 대구부 하빈현 동곡리[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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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학자이자 생원인 주신언이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출신인 전경창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만사」[주신언] 저자 주신언(朱愼言)[1539~?]의 본관은 웅천(熊川)이며, 자는 인지(訒之)이다. 아버지는 주송수(朱松壽)이다. 달성유현숭모비(達成遺賢崇慕碑) 비문(碑文)에 따르면 ‘달성십칠현(達城十七賢)’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서사원(徐思遠)[155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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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구국 활동과 강학 활동을 한 손처눌이 서사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지은 만시. 「만서낙재행보(輓徐樂齋行甫)」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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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있는 근린공원. 대구광역시 동구는 쾌적한 시민휴식공간을 확충하기 위해 공원·유원지 개발·재정비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2016년 현재 동구에는 140개의 공원·유원지[근린·어린이·소·체육·문화·수변공원, 유원지·자연공원] 조성계획이 있으며 그중 73개가 조성되었다. 망우당공원은 조성된 24개의 근린공원 중 1개이다. 공원은 현재 호국충절 명소, 시민들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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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이광정이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손처눌의 문집인 『모당집』에 부쳐 쓴 서문. 「모당집서(慕堂集序)」의 저자 이광정(李光靖)[1714~1789]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휴문(休文)이고, 호는 소산(小山)이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1711~1781]의 동생이다. 경술(經術)에 뛰어나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천거되었다. 「모당집서」는 이광정이 동몽교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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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에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구금된 상태에서 이봉의 시에 차운한 한시. 「무술십일월재금옥 차이괴장봉운(戊戌十一月在禁獄, 次李槐丈逢韻)」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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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만들어진 문학 전체.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한 작품을 말한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도 일찍부터 신화, 전설, 민담을 비롯하여 민중들이 삶의 현장에서 부르던 다양한 민요, 수수께끼와 속담 등 구비문학이 풍부하게 전승되어 왔다. 고려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는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일어난 공산전투와 관련이 깊은 작품이다. 조선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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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손처눌이 여러 벗과 스승 정구와 함께 낙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지은 한시. 「문한강선생장유포산연포지유 여서행보급제우등선지무계진 피주유음(聞寒岡先生將有苞山蓮浦之遊 與徐行甫及諸友登船至武溪津 被酒有吟)」을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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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연경서원과 이강서원의 원장을 역임한 학자. 박경협(朴慶協)[1732~1811]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군만(君萬), 호는 예계(禮溪)이다. 아버지는 박윤조(朴胤祖)이고,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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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군석(君錫), 호는 도곡(陶谷)·하빈조수(河濱釣叟). 증조할아버지는 증사복시 정(贈司僕寺正) 박일산(朴一珊)이고, 증조할머니는 참판(參判)을 지낸 김백형(金伯亨)의 딸 증숙인(贈淑人) 고령 김씨(高靈金氏)이다. 할아버지는 소격서 참봉(昭格署參奉)을 지낸 박계창(朴繼昌)이며, 할머니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이건(李謇)의 딸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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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언술(彦述). 고조할아버지는 사육신(死六臣) 중 한 명인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진사(進士) 박순(朴珣), 증조할머니는 군수(郡守)를 지낸 이철근(李鐵根)의 딸 성주 이씨(星州李氏)이다. 할아버지는 증(贈)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司僕寺) 정(正) 박일산(朴一珊), 할머니는 참판(參判)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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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배극념의 자는 염지(念之), 호는 우옹(愚翁),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진사 배진강(裵振綱)이고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아들은 달천(達川) 배경가(裵褧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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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손처눌이 1614년 대구부사 김윤안과 팔공산을 유람하면서 서시립의 산거를 방문하고 지은 한시. 「배김통판이정 유팔공산 역방서입지 산거 공차계정운이증(陪金通判而靜 遊八公山 歷訪徐立之 山居 共次溪亭韻以贈)」를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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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대구 출신 학자인 손처눌이 이시발, 조홍립과 함께 대구의 화암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 「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陪李方伯養久 曺通判克遠 弘立 遊畫巖)」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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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4월에 대구에서 강학 활동에 힘쓴 학자 손처눌이 정인홍의 상소에 대항하여 유생들의 공의를 얻고자 지은 통문. 「부정척사통문(扶正斥邪通文)」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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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달성서씨 세거지. 서씨(徐氏)는 고조선 때 여수기(余守己)가 서씨 성을 하사받은 것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이후 신라 말 고려 초에 서신일(徐神逸)로 이어졌다. 대구에 정착한 것은 고려시대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 등을 역임한 서진(徐晉)이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고 달성 지역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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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구국 활동을 한 손처눌이 송사의 사정을 정구에게 알리기 위하여 보낸 편지. 「상한강선생(上寒岡先生)」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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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사우 정구에게 보낸 편지. 「상한강정선생(上寒岡鄭先生)」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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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초자(初字)는 자원(子元)·강중(剛中)이고, 호는 사가정(四佳亭) 또는 정정정(亭亭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익진(徐益進)이고, 할아버지는 호조전서 서의(徐義)이다. 아버지는 안주목사 서미성(徐彌性)이고, 어머니는 대사헌 권근(權近)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군사 김여회(金如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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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서계서원(西溪書院)은 오천(烏川) 이문화(李文和)·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를 제향하는 서원으로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의 대표 서원이다. 서계서원에는 조선 말 명필인 윤용구(尹用求)가 쓴 현판이 아직 남아 있다. 본래는 동재와 서재가 모두 있었으나 지금은 사우, 강당, 환성정(喚惺亭) 등으로 구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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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서계서원(西溪書院)은 오천(烏川) 이문화(李文和)·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를 제향하는 서원으로 인천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恭度公派)의 대표 서원이다. 서계서원에는 조선 말 명필인 윤용구(尹用求)가 쓴 현판이 아직 남아 있다. 본래는 동재와 서재가 모두 있었으나 지금은 사우, 강당, 환성정(喚惺亭) 등으로 구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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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사립 교육기관. 서당은 향촌 사회에 생활 근거를 둔 사족(士族)과 백성이 주체가 되어 마을 기본단위로 설립한 초중등 단계의 사설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사족이 사는 마을이면 대부분 서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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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하던 손처눌이 서원에서 소회를 읊은 한시. 「서당진예 신기서추 음시제학자(書堂塵穢 晨起鋤箒 吟示諸學者)」를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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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서사선은 예빈시 직장 서필(徐弼)의 증손으로, 조부는 서응기(徐應期)이고, 아버지는 남간(南澗) 서식(徐湜)[1530~1593]이다.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 박란(朴鸞)의 딸이다. 부인은 진산진씨(珍山陳氏) 진문효(陳文孝)의 딸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 종형 서사건(徐思建)의 아들로 가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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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재(樂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빈시직장 서필(徐弼)이고, 할아버지는 서응기(徐應期)이다. 아버지는 전교 서흡(徐洽)이고, 어머니는 이익조(李益祖)의 딸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큰아버지 서형(徐浻)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부인은 박배(朴培)의 딸 죽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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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대구 지역 유학자 낙재 서사원의 묘소.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은 1550년(명종 5) 6월 4일 출생하여 1615년(광해군 7) 4월 9일 66세로 사망하였다. 대구부사 김윤안(金允安)은 소렴(小殮)과 대렴(大殮) 때 두 차례 조문을 하였고, 관찰사 심돈(沈惇)은 부의(賻儀)를 보내 왔다. 9월 4일 대구 하빈현(河濱縣) 파산(巴山) 중턱 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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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재(樂齋). 증조할아버지는 예빈시 직장(禮賓寺直長)을 지낸 서필(徐弼)이고, 증조할머니는 숙부인(淑夫人) 대구 배씨(大邱裵氏)이다. 할아버지는 서응기(徐應基)이며, 할머니는 찰방(察訪)을 지낸 박사림(朴士林)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아버지는 전교(典敎)를 지낸 서흡(徐洽)이고,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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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결성하여 왜적에 맞서 싸운 임진왜란 의병장. 서사원은 임진왜란 때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 결성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또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모당 손처눌과 함께 지역의 유생을 모아 선사재와 연경서원에서 강학하여 대구의 문풍을 진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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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서성(徐渻)[1558~1631]은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현기(玄紀), 호는 약봉(藥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서팽소(徐彭召)이고, 할아버지는 예조참의 서고(徐固)이다. 아버지는 서해(徐嶰)이고, 어머니는 청풍군수 이고(李股)의 딸 고성이씨(固城李氏)이다. 부인은 송령(宋寧)의 딸 여산송씨(礪山宋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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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 도호부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입지(立之), 호는 전귀당(全歸堂). 증조할아버지는 교관(校官)을 지낸 서우(徐遇), 할아버지는 주부(主簿)를 지낸 서언겸(徐彦謙)이다.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서행원(徐行遠), 어머니는 신천 강씨(信川康氏)이다. 서시립의 부인은 민충보(閔忠輔)의 딸 여흥 민씨(驪興閔氏)와 호군(護軍) 김희신(金希信)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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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효자. 서시립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입지(立之), 호는 전귀당(全歸堂)이다. 고려 때 판도판서를 지냈으며 달성군에 봉해진 서진(徐晉)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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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후에 선현에게 제사 드리고 학문을 강론하던 대구 지역의 사립 교육기관. 우리나라에 최초로 건립된 서원(書院)은 1543년(중종 38)에 경상도 순흥(順興)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주세붕은 백운동서원에 지역 출신 선현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지역 유생들에게 유학을 강학하였는데, 이후에 선현에 대한 제향(祭享)과 유생들의 학문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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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서재겸(徐再謙)[1557~1617]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화익(和益), 호는 죽계(竹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좌통례 서진손(徐震孫)이고, 할아버지는 서미수(徐眉壽)이다. 아버지는 습독(習讀)을 지낸 서진(徐津)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缶林洪氏)이다. 형은 서득겸(徐得謙)이고, 아들은 서유원(徐惟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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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구암서원에 배향된 학자. 서해(徐嶰)[1537~1559]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정지(挺之), 호는 함재(涵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언양현감 서거광(徐居廣)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서팽소(徐彭召)이다. 아버지는 예조참의 서고(徐固)이고, 어머니는 이인찰방 안사전(安嗣全)의 딸 순흥안씨(順興安氏)이다. 부인은 청풍군수 이고(李股)의 딸 고성이씨(固城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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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서형(徐浻)[1524~157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청원(淸源), 호는 연정(蓮亭)이다. 아버지는 서응기(徐應期)이고,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동생은 서흡(徐洽)·서함(徐涵)·서식(徐湜)·서호(徐灝)이다. 동생 서식의 아들 서사선(徐思選)을 양자로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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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서호(徐琥)[169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수옥(秀玉), 호는 행와(杏窩)이다.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서익명(徐翊明)이고, 형은 서규(徐珪)·서관(徐瓘)이다.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의 5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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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전개한 서사원이 선사정사를 만들고 정한 규칙. 「선사정사학규(仙査精舍學規)」를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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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대구 출신 학자 손처눌이 공자 사당을 훼손한 아전의 처벌을 촉구하기 위하여 지은 통문. 「성묘대량통문(聖廟大樑通文)」을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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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한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는 다양하지만, 조선시대에 주(州)·군(郡)·현(縣)으로 구별된 행정지역에 세거한 성씨는 향안(鄕案)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일정한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향교의 운영에 인원과 재정 등을 부담하고 있다. 또한 서원·사당·서당·정자 등 문중 단위의 유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읍지(邑誌)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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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에 있었던 조선 전기에 건립된 정자. 세심정(洗心亭)은 충청도사 전응창(全應昌)[1529~1586]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 금호강 기슭에 건립한 정자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선조 36)에 아들 전한(全僩)[1570~?]이 중건하였으나 영조 연간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세심정은 금호강을 건너 연경서원(硏經書院)으로 가는 길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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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손린(孫遴)[1566~1628]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계진(季進), 호는 문탄(聞灘)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손순무(孫荀茂)이고, 할아버지는 손세경(孫世經)이다. 아버지는 손덕운(孫德雲)이고, 어머니는 박세연(朴世椽)의 딸 춘천박씨(春川朴氏)이다. 부인은 유흥국(柳興國)의 딸 약목유씨(若木柳氏)이며, 아들은 손처각(孫處恪)·손처신(孫處愼)·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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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참봉 손세경(孫世經)이고, 할아버지는 현감 손치운(孫致雲)이다. 아버지는 선무랑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충의위 이탄(李坦)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광주이씨(廣州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하성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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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참봉 손세경(孫世經)이고, 할아버지는 현감 손치운(孫致雲)이다. 아버지는 선무랑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충의위 이탄(李坦)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광주이씨(廣州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하성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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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정호인이 지은 손처눌의 묘갈명. 「손처눌 묘갈명(孫處訥 墓碣銘)」의 저자 정호인(鄭好仁)[1597~1655]의 본관은 영일(迎日)이며, 자는 자견(子見), 호는 양계(暘溪)이다. 어린 시절 손처눌(孫處訥)[1553~1634]에게 수학하였고, 장현광(張顯光)[1554~1637]을 스승으로 모셨다. 병자호란(丙子胡亂)[1636] 때 의병을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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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의 대표적인 유학자 손처눌이 지은 전경창의 행장. 「손처눌 행장」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서사원(徐思遠)[155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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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 도호부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일직(一直).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 증조할어버지는 참봉(參奉) 손세경(孫世經), 할아버지는 현감 손치운(孫致雲)이다.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을 지낸 손수(孫邃),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처는 광주 이씨(廣州李氏) 이원경(李遠慶)의 딸과 창녕 조씨(昌寧曺氏)[하성 조씨(夏城曺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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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활약한 공산의진군 의병장. 손처눌의 본관은 일직(一直),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고려 공민왕 때 좌리공신을 지낸 손홍량(孫洪亮)의 11대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손세경(孫世經), 할아버지는 손치운(孫致雲), 아버지는 손수(孫遂),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로 이탄(李坦)의 딸이다. 첫번째 부인은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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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에 있는 조선후기 숭정처사 대암 최동집[1586~1661] 선생의 유허비. 최동집[1586~1661]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진중(鎭仲), 호는 대암(臺巖)이다. 아버지는 현령 최계(崔誡)이며 한강(寒岡)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6년(광해군 8)에 병진 증광시(增廣試)에 진사 3등 51위로 합격하고, 참봉에 제수되어 대군의 스승이 되었다. 정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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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의병장 서사원이 1597년 순찰사에게 군량 조달을 부탁 받고 지은 군량미 요청 글. 「승차걸속문(承差乞粟文)」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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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구국 활동을 하던 서사원이 1597년 체찰사의 명을 받고 남하하는 도중 유생을 만나 지어 준 한시. 「승체찰사분부령병남하, 유유생수업자휴주출전, 인증근체(承體察使分付領兵南下, 有儒生受業者携酒出餞, 因贈近軆)」를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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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정사 학도들의 배움을 독려하기 위하여 지은 글. 「시정사학도(示精舍學徒)」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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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년에 조선 전기 학자이며 의병장인 이주가 손처눌, 유요신과 함께 대구의 화암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 「신묘맹추 여손기도 유성유 유화암(辛卯孟秋與孫幾道柳聖兪遊畫巖)」의 저자 이주(李輈)[1556~160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이주는 1556년(명종 11)에 대구부 수성현 파잠리(巴岑里)[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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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문성을 추모하는 재실. 심수재(心輸齋)는 인천이씨(仁川李氏)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의 아버지 소재(疎齋) 이문성(李文星)[1531~1571]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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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문성을 추모하는 재실. 심수재(心輸齋)는 인천이씨(仁川李氏)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인 태암(苔巖) 이주(李輈)의 아버지 소재(疎齋) 이문성(李文星)[1531~1571]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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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의 왕옥산 언덕에 있었던 정자인 압로정과 소유정 아래 금호강에서 이루어진 조선 후기의 선유 문화. 압로정(狎鷺亭)과 소유정(小有亭)은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1529~1584]이 금호강 강변에 있는 왕옥산 언덕에 지었던 정자이다. 왕옥산은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에 있는 금호강 강변의 낮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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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 양씨달성 지역 입향조.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백원(百源), 호는 남재(南齋). 증조할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양순달(楊順達)이고, 증조할머니는 판관(判官)을 지낸 조휘기(曺彙基)의 딸 숙부인 남평 조씨(南平曺氏)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양세광(楊世光)이며, 할머니는 유번(柳蕃)의 딸 의인(宜人) 진주 유씨(晉州柳氏)와 임대성(林大成)의 딸 의인 평택 임씨(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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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도성유의 시문집. 도성유(都聖兪)[1571~1649]는 성리학자로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정언(廷彦), 호는 양직당(養直堂)이다. 도여유와 함께 달성 십현(達城十賢)으로 꼽히고 있다. 할아버지는 경상좌상좌우후 도흠조(都欽祖)이며, 아버지는 한성부 윤 도원결(都元結)이다. 도성유는 어릴 때 권응인(權應仁)에게 배우고 정구(鄭逑)와 서사원(徐思遠)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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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의병장이며 학자인 서사원이 손처눌에게 보내는 편지. 「여손처눌(與孫處訥)」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를 중심으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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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년 대구 지역의 금호강에서 손처눌이 서사원, 장현광 등과 함께 뱃놀이를 하고 부강정에서 묵으며 지은 한시. 「여낙여양형급육칠관동범선사 박삼파진 투숙부강정」를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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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도성유에게 보낸 편지. 「여도정언(與都廷彦)」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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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서사원에게 보낸 편지. 「여서행보(與徐行甫)」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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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었던 연경서원의 건립 과정을 담은 기문 편액. 연경서원(硏經書院)은 1563년(명종 18)에 건립을 시작하여 1564년에 상량을 하고 1565년에 완공되었다. 2년 후 1567년(명종 22)에 이숙량(李叔樑)[1519~1592]이 건립의 전말을 기록한 「기문」을 지어 강당에 편액(扁額)하여 게시하였다. 이때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지은 「기문후기(記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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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었던 대구 최초의 서원. 연경서원은 1563년에 건립되었으며 1세대, 2세대, 3세대 유학자를 양성하여 대구를 교육과 문화, 학술의 고장으로 만든 대구교육의 원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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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5년 대구 출신 전경창의 신주를 연경서원에 봉안하면서 조선 후기 학자 서사선이 지은 축문. 「연경서원 봉안문(硏經書院 奉安文)」을 쓴 서사선(徐思選)[1579~1651]은 본관이 달성(達城)이며, 자는 정보(精甫)이고, 호는 동고(東皐)이다. 대구부(大邱府) 남산리(南山里)[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문하에서 수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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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지역에 있었던 연경서원을 1774~1775년에 이건할 때 기록된 임원록. 연경서원(硏經書院)은 1563년(명종 18) 가을에 건립을 시작하여 1564년 3월에 상량을 하고 1565년 10월에 완공된 대구 지역 최초의 서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1602년에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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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있었던 연경서원을 1774~1775년에 이건할 때 기록한 일기. 연경서원(硏經書院)은 1563년(명종 18) 가을에 건립을 시작하여 1564년 3월에 상량을 하고 1565년 10월에 완공된 대구 지역 최초의 서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1602년에 중건하였다. 서원을 중건한 172년 후 1774년(영조 50) 6월 21일에 폭우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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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조선 후기 학자 도성유가 참배하고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연원첨배후 경차노선생화암운(硏院瞻拜後 敬次老先生畵巖韻)」를 쓴 도성유(都聖兪)[1571~1649]는 본관이 성주(星州)이고, 자는 정언(廷彦)이며, 호는 양직자(養直子)이다.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과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이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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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구광역시 출신 의병장 월곡 우배선의 우국충정과 선비 정신을 기리는 재실. 열락당(悅樂堂)은 임진왜란 당시, 화원과 달성 그리고 최정산(最頂山) 등지에서 왜구를 무찔러, 초유사 김성일(金誠一)[1538~1593]의 치하를 받았고, 망우당 곽재우(郭再祐)[1552~1617] 장군과 합세하여 적을 토벌하는 데 헌신한 우배선(禹拜善)[1569~1621]을 기리는 재실이다. 우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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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손처눌이 1600년 영모당을 새로 짓고 읊은 한시. 「영영모당신성(詠永慕堂新成)」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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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오선생예설분류』 뒤에 붙여 쓴 발문. 「오선생예설분류발(五先生禮說分類跋)」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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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이자 의병장 서사진을 추모하는 재실. 용담재(龍潭齋)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재(怡齋) 서사진(徐思進)[1568~1645]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650년(효종 1)에 건립되었다. 서사진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사촌 동생이며, 서사진의 아들인 성은(城隱) 서신(徐愼)은 연경서원에서 수학하였다.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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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상리동에 있는 채선수를 추모하는 재실. 용산재(龍山齋)는 채선수(蔡先修)[1568~1634]를 기리기 위하여 인천채씨(仁川蔡氏) 문중에서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채선수의 자는 경중(敬仲), 호는 달서재(達西齋)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팔공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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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 용호서원(龍湖書院)은 도성유(都聖兪)[1571~1649], 도여유(都汝兪)[?~?], 도신수(都信修)[1598~1650]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처음에는 도성유와 도여유만 배향하다가 1708년(숙종 34) 도신수를 추향하였다. 도성유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정언(廷彦), 호는 양직(養直)이다. 한강(寒岡) 정구(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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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의병장이자 무관. 우배선(禹拜善)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자는 사성(師聖), 호는 월곡(月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감 우계강(禹啓江)이고, 할아버지는 현감 우봉(禹鳳)이다. 아버지는 우성덕(禹成德)이고, 어머니는 장대신(蔣大臣)의 딸 아산장씨(牙山蔣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탕(李宕)의 딸 철성이씨(鐵城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한훤당(寒暄堂) 김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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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구국 활동을 한 손처눌이 우연히 드는 생각을 읊은 한시. 「우음(偶吟)」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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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유교와 그 특징. 대구 지역의 유학(儒敎)은 여말 선초에 시작되었으며 연경서원(硏經書院)을 중심으로 퇴계학을 중시하는 도학파가 주류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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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지역에서 공자의 사상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우리나라의 유교 도입은 1289년(충렬왕 15)에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1243~1306]이 충렬왕(忠烈王)[1236~1308]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주자(朱子)의 『사서 집주(四書集注)』를 가지고 와 태학(太學)에서 본격적으로 강론하면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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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한 손처눌이 최흥국 등 여러 벗들과 동학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 「유동학산 음증최강후제군(遊動鶴山吟贈崔康侯諸君)」은 손처눌이 최흥국 등 여러 벗들과 동학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이다. 「유동학산 음증최강후제군」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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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 문인 학자. 유사온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수보(粹甫), 호는 구정(龜亭)이다. 고려 말 때 삼중대광을 지낸 유익정(柳益貞)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저은(柳渚隱), 아버지는 유순간(柳純諫),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로 우희적(禹熙績)의 딸이다.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이정설(李正枻)의 딸이다. 자식은 4남 2녀를 두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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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문인 학자. 유시번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위중(衞仲), 호는 사월당(沙月堂)이다. 고려 말 때 삼중대광을 지낸 유익정(柳益貞)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연양(柳延陽), 아버지는 유요신(柳堯臣)이며, 어머니는 곡성신씨(谷城申氏)로, 탐(琛)의 딸이다.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이색(李穡)의 딸이며, 아들 3명을 두었는데 유종언(柳宗彦)·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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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한 문인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연경서원의 퇴계 이황 봉안문을 의작하여 지은 글. 「의연경서원퇴계선생봉안문(擬硏經書院退溪先生奉安文)」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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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 모여 회맹(會盟)할 때 나라를 위한 충성을 맹세하면서 지은 시 1592년 4월 21일 왜적이 대구성을 함락하자 대구부사 윤현이 4월 24에 관군을 이끌고 팔공산으로 피신했다. 결국 대구[지금 대구광역시]는 완전히 왜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대구지역 유림들은 1592년 7월 6일 임하(林下) 정사철(鄭師哲)[1530~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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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 이강서원(伊江書院)은 낙재(樂齋)서사원(徐思遠)[1550~1615]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서사원의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행보(行甫)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선조 때 학행으로 감역(監役), 찰방(察訪), 청안 현감(淸安縣監) 등을 지냈다. 1597년(선조 30) 옥과 현감(玉果縣監) 등 여러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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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당. 이락서당(伊洛書堂)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을 추모하고 그 학풍을 잇기 위하여 만든 서당이다. 서당 건립에는 모두 아홉 문중이 참여하였는데, 성주도씨, 광주이씨, 함안조씨, 밀양박씨, 전의이씨, 일직손씨, 순천박씨, 달성서씨, 광주이씨(廣州李氏)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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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조선 후기 칠곡 출신 유학자 이동급이 지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 이락서당의 기문. 「이락서당기(伊洛書堂記)」의 저자 이동급(李東汲)[1738~1811]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진여(進如)이고, 호는 만각재(晩覺齋)이다. 백불암(百弗菴) 최흥원(崔興遠)[1705~1786]의 사숙인(私淑人)을 자처하였다. 저서로는 1866년 후손들이 이동급의 시가와 산문을 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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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이시발(李時發)[1569~162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또는 후영어은(後潁漁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발(李渤)이고,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이다. 아버지는 이대건(李大建)이고, 어머니는 김도(金燾)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민경남(閔敬男)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고,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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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빈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학가(學可), 호는 낙포(洛浦). 고려 개국 공신 태사(太師) 이도(李棹)의 17세손으로 대대로 대관(大官)을 지냈다. 고조할아버지는 사복시 정 이세분(李世芬)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형조 정랑 이광원(李光元)이다. 할아버지는 예산 현감을 역임한 이필(李佖)이다. 이필에 이르러 하빈(河濱)에 거주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병절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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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공산의진군 하빈현 대장을 맡은 의병장. 이종문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학가(學可), 호는 낙포(洛浦)이다. 고려 개국공신인 태사(太師) 이도(李棹)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윤광(李允光), 할아버지는 이필(李佖), 아버지는 이경두(李慶斗),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윤황(尹滉)의 딸이다. 부인은 옥산전씨(玉山全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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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열녀. 이종택의 처 박씨(朴氏)[1574~1592]의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아버지는 총관(摠管) 박충후(朴忠後)이다. 이종택(李宗澤)은 하목정(霞鶩亭)을 건립한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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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공산의진에 참여한 의병장. 이주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태종 때 대제학과 좌참찬을 지낸 오천(烏川) 이문화(李文和)의 8대손으로, 아버지는 소재(疏齋) 이문성(李文星), 어머니는 황씨(黃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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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실(子實), 호는 수월당(水月堂). 증조할아버지는 이필(李佖)이고, 할아버지는 이경두(李慶斗)이다. 아버지는 전 현감 낙포 이종문(李宗文)이며, 어머니는 전경창(全慶昌)의 딸 옥산 전씨(玉山全氏)이다. 부인은 김치삼(金致三)의 딸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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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이실(而實), 호는 다포(茶圃)·부강거사(浮江居士). 고조할아버지는 형조 정랑 이광원(李光元), 증조할아버지는 예산 현감을 역임한 이필(李佖)이다. 이필에 이르러 하빈(河濱)에 거주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병절교위 이경두(李慶斗)로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한 공적으로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증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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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 속하는 법정리. 이천리(伊川里)는 마을을 흐르는 시내가 둘 있다 하여 이내 또는 이천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금호강(琴湖江) 안쪽의 마을이라 이내(伊內)라고 불렀다는 유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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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구 지역에서 쓰인 일기문학. 조선시대 대구 지역에서 쓰인 일기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낙재선생일기(樂齋先生日記)』, 『북곽실기(北郭實記)』, 「임재일기(臨齋日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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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망우당(忘憂堂) 공원 내 임진왜란 당시 영남에서 의병 창의한 315위를 제향하기 위해 1998년 세워진 제단. 1998년 4월 21일 영남지역 의병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충의단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이곳 망우당 공원에 ‘임란호국영남충의단’을 창건하였다. 임란호국영남충의단에는 곽재우, 김면, 서사원, 정세아, 정대임 등 영남의병 315위의 영령을 봉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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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 조선에 쳐들어온 일본과 싸운 전쟁 가운데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치뤄진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일본군[왜적(倭賊)]이 1592년(선조 25) 5월 23일에 대규모 병력으로 부산포(釜山浦)[지금 부산광역시]에 진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부산성과 동래성을 함락하고 북상하였다. 선조는 1592년 6월 9일에 한양[지금 서울특별시]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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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시작된 동아시아 3국의 7년 전쟁. 전국시대(戰國時代)라는 100년이 넘는 내전을 이기고 통일한 일본은 조선 건국 이후 200년 동안의 조선왕조 평화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든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켰다.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의 전력은 매우 막강하여 한 달도 되지 않아 서울을 함락하고 이어 함경도 일대뿐만 아니라 평양까지 함락하였다. 이렇게 되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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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1612년 용천사를 방문하고 지은 한시. 「입용천사 감구유음(入湧泉寺 感舊有吟)」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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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구국 활동을 한 손처눌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 지은 만시. 「자만(自輓)」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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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의 청호서원에 제향된 손처눌이 금호강을 따라 배를 타다가 해 질 녘에 부강정에 올라 지은 한시. 「자이천승혼등부강정(自伊川乘昏登浮江亭)」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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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연경서원에서 곽재겸을 기다리면서 지은 한시. 「재연원 사인요곽익보(在硏院 使人邀郭益甫)」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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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조선 전기 성리학자 전경창의 유적비. 전경창 유적비(全慶昌 遺蹟碑)[계동선생 옥산전공 유적비(溪東先生玉山全公遺蹟碑)]는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을 기리고자 2003년 12월 21일에 건립한 유적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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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전춘년(全春年)[1552~1592]의 본관은 옥산(玉山)이며, 자는 화서(和瑞), 호는 엄약재(儼若齋)이다. 할아버지는 전린(全璘)이고, 아버지는 진사 전윤창(全胤昌)이다. 부인은 주부(主簿) 서덕겸(徐德謙)의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고, 동생은 전연년(全延年)이다. 아들 전이생(全以生)은 임진왜란 때 실종되었으며, 사위는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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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전한(全僩)[1570~?]의 본관은 옥산(玉山)이며, 자는 의보(毅甫), 호는 호암(湖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복견(全復堅)이고, 할아버지는 전순(全珣)이다. 아버지는 도사 전응창(全應昌)이고,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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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의 공산의진군에 참여하여 하빈현 남면장의 역할을 수행한 문인 학자. 정광천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회(子晦), 호는 낙애(洛涯)·송파(松坡)이다. 고려 때 좌복야를 지낸 정목(鄭穆)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적개공신으로 동평군(東平君)에 봉해진 정종(鄭種)이고, 할아버지는 정세검(鄭世儉), 아버지는 정사철(鄭師哲), 어머니는 성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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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에 이주하여 강학한 학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철산군수 정윤증(鄭胤曾)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정응상(鄭應祥)이다. 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 부사맹 정사중(鄭思中)이고, 어머니는 이환(李煥)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부인은 이수(李樹)의 딸 광산이씨(光山李氏)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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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정기(鄭錡)[1574~1642]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청보(淸甫), 호는 금재(琴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어모장군 정세검(鄭世儉)이고, 할아버지는 정사철(鄭師哲)이다. 아버지는 정광천(鄭光天)이고, 어머니는 참봉 이안인(李安仁)의 딸 벽진이씨(碧珍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허선술(許善述)의 딸 하양허씨(河陽許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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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정보(靖甫), 호는 금재(琴齋). 증조할아버지는 어모장군(御侮將軍)[정삼품] 정세검(鄭世儉)이고, 할아버지는 임하(林下) 정사철(鄭師哲)이고, 아버지는 낙애(洛涯) 정광천(鄭光天)[1553~159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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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만든 정사의 규범. 「정사약속(精舍約束)」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광역시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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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계명(季明), 호는 임하(林下). 증조할아버지는 적개공신(敵愾功臣)에 책봉된 동평군(東平君) 정종(鄭種)[1417∼1476]이다. 할아버지는 호군(護軍)을 지낸 정예운(鄭禮耘)이고, 할머니는 사직(司直)을 지낸 이지맹(李之孟)의 딸 옹진 이씨(瓮津李氏)이다. 아버지는 정세검(鄭世儉)이며, 어머니는 진가모(陳嘉謨)의 딸 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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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의 공산의진군 초대 의병장에 추대된 문인 학자. 정사철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계명(季明), 호는 임하(林下)이다. 고려 때 좌복야를 지낸 정목(鄭穆)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적개공신으로 동평군(東平君)에 봉해진 정종(鄭種)이고, 할아버지는 정예운(鄭禮耘), 아버지는 정세검(鄭世儉), 어머니는 진산진씨(珍山陳氏)로, 진가모(陳嘉謨)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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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정사호(鄭賜湖)[1553~1616]의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초명은 정만호(鄭萬戶)이고, 자(字)는 몽여(夢與), 호는 화곡(禾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순인(鄭純仁)이고, 할아버지는 정경(鄭褧)이다. 아버지는 장령 정이주(鄭以周)이며, 어머니는 부사과 정응서(鄭應瑞)의 딸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채무외(蔡無畏)의 딸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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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정수(鄭錘)[1573~1612]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평보(平甫), 호는 양졸재(養拙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세온(鄭世溫)이고, 할아버지는 정사주(鄭師周)이다. 아버지는 정여강(鄭汝康)이고, 어머니는 현감 류예원(柳禮源)의 손녀 서산류씨(瑞山柳氏)이다. 부인은 이승(李承)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형은 정용(鄭鏞)이고, 동생은 정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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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의병 활동과 강학 활동을 한 손처눌이 서거정의 「대구십영」을 읽고 감상을 적은 한시. 「제서사가 거정 달성십영후(題徐四佳 居正 達城十詠後)」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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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1617년 서사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 「제서행보 사원 문(祭徐行甫 思遠 文)」를 쓴 정구(鄭逑)[1543~1620]는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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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정구가 1616년 송원기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 「제송학무 원기 문(祭宋學懋 遠器 文)」을 쓴 정구(鄭逑)[1543~1620]는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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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조진규(趙鎭奎)[1748~?]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숙장(叔章), 호는 창돈(蒼墩)이다. 할아버지는 조헌익(趙憲益)이고, 아버지는 조춘경(趙春慶)이다. 형은 조택규(趙宅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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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조택규(趙宅奎)[1745~1820]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사정(士貞), 호는 근암(芹庵)이다. 할아버지는 조헌익(趙憲益)이고, 아버지는 조춘경(趙春慶)이다. 동생은 조진규(趙鎭奎)이다. 생육신 조려(趙旅)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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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인간은 출생·죽음·우연·미래와 같은 한계 상황에 직면하면 초월적 존재나 원리를 통하여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과하며, 더 나아가 그 힘을 빌려 그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초기에는 세계내(世界內) 존재에 정령을 부과하는 토테미즘(Totemism)이나 애니미즘(Animism)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후 세계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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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문신인 곽간의 시문집. 곽간(郭趕)[1529~1593]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원정(元靜), 호는 죽재(竹齋)이다. 아버지는 곽지견(郭之堅)이며, 어머니는 부사 김수돈(金守敦)의 딸 상산 김씨(商山金氏)이다. 1546년(명종 1)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한 후 1550년(명종 5) 형조 좌랑에 임명되었다. 1552년(명종 7) 대동찰방 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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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에서 의병 활동과 강학 활동을 한 손처눌이 조카 정호신에게 지어 준 한시. 「증정질호신(贈鄭姪好信)」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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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용호 서원에 배향된 학자 도신수의 시문집. 도신수(都愼修)[1598~1651]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영숙(永叔), 호는 지암(止巖)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학자로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도여유(都汝兪)이고, 어머니는 여흥 이씨로 증판결사 이우겸(李友謙)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7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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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1599년에 묵정밭을 바라보며 감회를 읊은 한시. 「진전음(陳田吟)」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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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인 전경창이 손처눌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3수. 「차 손수재 처눌운(次孫秀才處訥韻)」의 저자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이고,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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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손처눌이 지은 영모당을 읊은 서사원의 시에 손처눌이 차운하여 지은 한시. 「차낙옹기제영모당운(次樂翁寄題永慕堂韻)」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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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학문적 동지인 서사원에게 지어 준 차운시. 「차낙옹안자운(次樂翁顔字韻)」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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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학자인 손처눌이 문병 온 서사원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차미락재낙매운(次彌樂齋落梅韻)」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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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대구 출신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억울하게 구금된 상황에서 지은 한시. 「차신자(次臣字)」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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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이자 의병장 구회신을 추모하는 재실. 창포재(菖蒲齋)는 능성구씨(綾城具氏)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 구회신(具懷愼)[1564~1634]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구회신의 자는 경중(敬中)이고, 호는 계암(溪巖)이다. 아버지는 종사랑 구대성(具大成)이고, 어머니는 옥천황씨(玉泉黃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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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의진군 수성북면장을 지낸 문인 학자. 채몽연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정응(靜應), 호는 투암(投巖)이다. 고려 말에 호조전서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절의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한 채귀하(蔡貴河)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채면(蔡沔), 아버지는 채정국(蔡定國)이다. 부인은 죽산박씨(竹山朴氏)로, 박배(朴培)의 딸이고, 채무(蔡楙),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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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출신 문무 관인. 채무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자후(子後), 호는 백포(柏浦)이다. 부친은 투암(投巖) 채몽연(蔡夢硯), 모친은 죽산박씨(竹山朴氏)로, 박배(朴培)의 딸이다. 배우자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김경건(金慶建)의 딸이다. 5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채영걸(蔡瀛傑)·채영길(蔡瀛佶)·채영우(蔡瀛佑)·채영보(蔡瀛俌)·채영임(蔡瀛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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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서 활동하며 달성십현에 속한 유학자. 채선각의 자는 임중(任仲), 호는 동호(東湖),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아버지는 훈도(訓導) 채응구(蔡應龜)이다. 채선각의 이력은 3종손(從孫) 채원령(蔡元齡)이 지은 「행장」에 의거하여 하면, 1552년(임자)에 태어나 1598년 10월에 47세로 타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채선각 묘소가 대구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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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으로 공산의진군에 참여한 문인 학자. 채선길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길중(吉仲), 호는 금탄(琴灘)이다. 고려 중엽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蔡先茂)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채홍(蔡泓), 아버지는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신관(申寬)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연안김씨(延安金氏)로, 김희복(金希福)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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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배향된 문인 학자. 채응린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서(君瑞), 호는 송담(松潭)이다. 고려 중엽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蔡先茂)의 후손으로, 증조는 채희(蔡禧), 조부는 채윤주(蔡胤周), 부친은 채홍(蔡泓), 모친은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이형(李滎)의 딸이다. 부인은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신관(申寬)의 딸이다. 7남 2녀를 두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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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를 시조로 하고, 양득효를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양기(楊起)를 시조로 하는 청주양씨는 양득효(楊得孝)[1572~1645]가 대구광역시 달성군으로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달성군 다사읍 달천리 달래 마을과 하빈면 하산리 너울티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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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청호서원 중건에 대한 유도승의 기문. 「청호서당 중건기2(靑湖書堂 重建記2)」의 배경이 되는 청호서원은 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 모당(募堂) 손처눌(孫處訥), 사월(沙月) 유시번(柳時藩),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을 제향하고 있다. 손처눌 생전에 청호서당에서 강학 활동을 펼쳤다. 1694년 유림의 공의로 창건하여 손처눌의 6대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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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청호서원(靑湖書院)은 조선 후기 연경서원(硏經書院)과 영모당(永慕堂)에서 강학한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1553~1634]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손처눌은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과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755년(영조 31)에 문인인 사월당(沙月堂) 류시번(柳時藩)을, 1775년(영조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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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창건된 재실. 체화당(棣華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義兵將)으로 전공을 세운 이재(怡齋) 서사진(徐思進)의 아들 삼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체화’는 『시경(詩經)』「상체(常棣)」에 출전을 둔 것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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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창건된 재실. 체화당(棣華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義兵將)으로 전공을 세운 이재(怡齋) 서사진(徐思進)의 아들 삼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체화’는 『시경(詩經)』「상체(常棣)」에 출전을 둔 것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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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임진왜란 때 지방 병사를 불러 모으기 위하여 지은 통문. 「초집향병통문(招集鄕兵通文)」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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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출신 문인. 최동률(崔東嵂)[1585~1622]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진백(鎭伯), 호는 다천(茶川)이다. 최동률은 어릴 때부터 효성과 우애가 있었고 성품은 단정하고 깨끗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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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에서 활동한 학자. 최동집(崔東㠍)[1586~1661]은 현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 마을 경주 최씨(慶州崔氏) 입향조이다. 이 마을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달성군에 편입된 지역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대구와 현풍, 성주, 영천 지역 인사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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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 문인 학자. 최동집은 한강 정구의 문인으로 전란으로 소실된 연경서원(硏經書院) 신축을 주도했으며, 효종이 대군으로서 심양(瀋陽)에 인질로 갈 때 사부(師傅)로 선발되었으나 함께하지 못하였고, 또 명나라가 멸망하자 대구 팔공산(八公山) 부인동(夫仁洞)에 은거하여 평생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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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손처눌이 금호강에서 이시발을 전송하며 지은 한시. 「추송벽오상공어금호주차 경정봉별(追送碧梧相公於琴湖舟次更呈奉別)」을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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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전 대구광역시에 살고 있었던 토착 성씨 또는 대구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조선 초에 대구부는 본부(本府)와 속현인 수성현(壽城縣)·하빈현(河濱縣)·해안현(解顔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는 대구부의 토성(土姓)으로 백(白)·하(夏)·배(裵)·서(徐)·이(李)를 들고 있다. 수성현에는 빈(賓)·라(羅)·조(曺)·혜(嵇), 하빈현에는 신(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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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통강의 재개를 알리기 위하여 1615년에 지은 안내문. 「통독회문(通讀回文)」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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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경창의 강학소 계동정사와 대구 유학. 대구유학(大邱儒學)은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계동정사(溪東精舍)에서 시작되었으며, 계동정사는 대구유학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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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결성되어 조선을 지킨 의병들. 1598년(선조 31)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죽으면서 1592년(선조 25)부터 시작된 7년 동안 한반도를 고통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매우 참혹하였다. 기근·전염병·포로 등으로 인구가 급속히 줄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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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던 조선 후기 정사. 하남정사(河南精舍)는 투암(投巖) 채몽연(蔡夢硯)[1561~1638]이 세운 정사이다. 채몽연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정응(靜應)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팔공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서사원(徐思遠)·손처눌(孫處訥)과 더불어 왜적을 물리쳤으며, 화왕산 전투에서 곽재우를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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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범에 관하여 쓴 글. 「학교모범(學校模範)」은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범에 대하여 쓴 글이다.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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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구국 활동을 한 손처눌이 정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한시. 「한강선생만사(寒岡先生輓詞)」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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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정구, 손처눌과 함께 금호강을 따라 하류로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 「한강선생 자낙강승주 풍우중향이천 여촉손기도작시 인차언(寒岡先生自洛江乘舟風雨中向伊川余屬孫幾道作詩因次焉)」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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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정구의 학맥을 계승한 사족 집단. 낙동강 중류 지역은 지금까지 퇴계학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안동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상류 지역과, 남명학의 온상이었던 낙동강 하류 지역의 ‘경계’나 ‘사이’에 있다. 낙동강 중류 지역의 유학자들은 이러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퇴계학과 남명학의 영향 속에서 이 둘을 융합 및 회통하려는 한편 다양한 학문을 수용하는 데에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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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산. 대구광역시 동구·북구, 경상북도 경산시·영천시·군위군·칠곡군 등 6개 지방자치단체에 걸쳐 분포하는 팔공산은 대구광역시·경상북도의 자연적 및 인문적 동질성을 확보해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산이다. 팔공산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자 신라 민애왕의 사리호[전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납석사리호(傳 大邱 桐華寺 毘盧庵 三層石塔 蠟石舍利壺)]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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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위치한 유교 유산.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편찬자로 알려진 추적(秋適)의 활동지이자, 동방 오현 중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배출한 곳으로 유교 전통이 깊은 곳이다. 이러한 까닭에 조선 초 현풍 향교(玄風鄕校)를 비롯하여 1479년(성종 10) 달성 태고정(達城太古亭), 1568년(선조 1) 달성 도동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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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1592년 의병을 모집하면서 만든 의병 규칙서. 「향병입약(鄕兵立約)」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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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인 도신여의 시문집. 도신여(都愼與)[1605~1675]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명숙(明叔), 호는 휘헌(撝軒)이다. 대구 하빈현 도촌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도여유(都汝兪)이며, 어머니는 여흥 이씨(驪興李氏) 이우겸(李友謙)의 딸이다. 아버지의 사촌 형제인 도성유(都聖兪)의 양자가 되었다. 정구(鄭逑), 서사원(徐思遠)의 문인이다. 163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