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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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지역에 있었던 관변 단체. 1922년 7월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조선의 경제정책 전반을 검토하기 위하여 산업조사위원회를 설치하였다. 경북산업자문회(慶北産業諮問會)는 산업조사위원회를 지방으로 확대할 때 구성된 것으로 경상북도의 산업 자문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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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대구상공회의소를 전시체제로 개편하는 정책을 강제하여 설립된 경제 단체. 조선총독부는 1944년 8월 18일 전국의 상공회의소를 전시체제로 개편하기 위하여 「조선상공경제령」을 공포하였다. 「조선상공경제령」에 따르면 도(道) 상공경제회는 “국민경제의 총력을 가장 유효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국책에 협력하고, 산업 경제의 원만한 연락을 도모하는 동시에 그 개선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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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부가 포함되어 경상북도에서 시행된 경상북도의 의결 기구. 경북도회(慶北道會)[1933]는 1933년 4월 1일 대구부가 포함되어 경상북도에서 시행된 경상북도의 의결 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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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던 사립학교. 교남학교는 3·1운동 이후 교육열이 높아지는 가운데 학생들의 입학난을 도울 목적으로 홍주일·정운기·김영서 등이 설립한 사립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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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경북 지역에 설치된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지부. 1939년 9월 1일에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제는 새로운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 부문에서 이루어진 총동원 관련 운동을 하나로 통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특히 1940년 6월에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서유럽을 제패하는 듯한 정세가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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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대구 지역 최초로 만들어진 골프장. 일제는 1920년대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각 지역에 오락 시설, 스포츠시설 등을 대규모로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를 시작으로 대구 지역에는 대구골프장을 비롯하여 대구공설운동장[대구운동장], 대구경마장, 대구수영장 등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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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조선인 자본가들로 결성된 친일 단체. 조선총독부는 민풍(民風)을 개량한다는 명목하에 친일 지주, 지역 유지, 금융 자본가, 부·도·군협의회 회원 등을 구성원으로 하여 교풍회(矯風會)를 설립하였다. 1911년 마산 교풍회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교풍회가 설립되기 시작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더 증가하였다. 대구 교풍회(大邱矯風會)는 19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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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의 명망가들이 결성한 문화운동 단체. 대구구락부(大邱俱樂部)는 ‘대구청년회를 계승한 문화운동의 중추 실행 기관’을 전망하며 대구의 명망가들이 중심이 되어 출범한 문화운동 단체였다. 대구구락부는 1923년 무렵 대구의 대중운동에서 문화운동의 중심체였던 대구청년회가 침체되고 노농(勞農) 운동을 앞세운 대구노동공제회가 발흥하는 상황에서 실력 양성 노선을 견지하며 문화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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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녹화운동을 위한 관변단체. 일제강점기 대구에서는 수원지(水源地) 확보와 혹열(酷熱) 완화책으로 녹화운동을 시작하였다. 대구 유지(有志)가 녹화 협회 설치를 계획하고,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에서는 1933년부터 식수비(植樹費) 확보를 계획하여 녹화운동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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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의 시가지 계획안을 조사 및 심의하기 위한 식민 통치 기구. 조선총독부는 1934년 6월 20일 「조선시가지계획령」을 공포한 이후 시가지 계획 위원회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935년 11월 4일 ‘조선총독부 시가지계획위원회 규정’에 따라 시가지 계획 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시가지 계획 위원회는 각 도시의 ‘시가지 계획 사업’으로 지정된 계획구역, 가로망,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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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말 대구부가 빈민 구제를 위하여 설립한 관변단체. 1910년대 말 대구부는 대구 지역의 빈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대구빈민구제회를 관민 합동으로 구성하고 기금을 모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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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출옥인 감시 목적의 친일 관변단체. 일제는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석방된 출옥인(出獄人)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1910년 인천구제원을 설립하였다. 표면적으로 면수 보호 기관(免囚保護機關)이었지만, 실제로는 사상범 감시의 기능이 더 컸다. 1911년 대구상성회(大邱常成會), 부산보성회(釜山輔成會), 공주관업원(公州慣業院) 등을 시작으로 매년 전국의 주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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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던 대구의 상공업 발전을 위한 경제 단체. 대구상업회의소는 조선총독부가 1915년 공포한 「조선상업회의소령」에 따라 설립된 대구의 경제 단체이다. 기존의 일본인상업회의소에 조선 경제인들을 참여시켜 대구 지역 상공업 발전을 추구하고자 하였으나 대구 일본인 경제인의 이익을 구현하는 매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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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있었던 양잠 재배 교육을 위한 교육기관. 경상도는 조선시대부터 잠업을 하고 있었으며, 대표적 지역은 함창·상주·문경이다. 경상도는 양잠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첫째, 양잠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서리·습기 피해가 거의 없었다. 둘째, 낙동강 연안 수백 리에 걸쳐 있는 황무지는 뽕나무를 키우기에 적합하였다. 마지막으로, 공기가 건조하여 누에똥을 제거하는 횟수가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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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시민들이 대흥전기주식회사를 상대로 전기료 인하를 위하여 만든 시민 단체. 1920년대 대구에 전기를 공급하는 대흥전기주식회사의 전기 요금이 다른 도시에 비해 높은 것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자 대흥전기주식회사도 전기 요금을 인하할 계획으로 당국에 인가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지역 사회에서는 대흥전기주식회사의 전기 요금 인하율보다 더 큰 폭의 인하를 위하여 기성동맹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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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설치된 조선인 교육 자문기관. 일제는 조선인 교육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1920년 7월 29일 「조선학교비령(朝鮮學校費令)」[제령 제14호]을 공포하였다. 「조선학교비령」은 토지 또는 가옥을 소유한 조선인들부터 부과금을 징수하여 보통학교[일제강점기 초등 교육기관]와 조선인 교육에 관한 학교비(學校費)를 충당하기 위하여 제정한 것이었다. 학교비는 부윤과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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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대구부윤의 행정 자문기관. 일제는 1914년 「부제」[제령 제7호]와「부제시행규칙」[부령 제3호]을 제정한 뒤 경성, 부산, 평양 등 12개 지역에 각 부(府)의 자문기관으로 부협의회를 설치하고, 의장은 부윤이 맡도록 하였다. 부협의회는 부윤 및 협의회 의원으로 조직하고, 부윤이 의장이 되어 부의 조례를 설정 또는 개폐, 세입과 세출의 예산편성 등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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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교남학교를 인수하여 설립한 교육 재단. 대붕교육재단(大鵬敎育財團)은 재단 부실을 이유로 폐교 처분을 당한 교남학교(嶠南學校)를 인수하여 교육활동을 펼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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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던 사립 교육기관. 3·1운동 이후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이 크게 대두되었다. 3·1운동 이후 각계 각층에서는 민중 교육과 민중 계몽을 목적으로 학교 설립을 대규모로 진행하였고, 대구 지역에서도 대구천주교회 해성청년단에서 해성여자야학을, 대구제일교회에서 대남유치원·배성여자야학을, 대구교남기독청년회에서 야학법률강습소를, 대구노동공제회에서 노동야학을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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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1949년 2월 대구에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경상북도 조직. 1948년 8월 5일 국회 제40차 본회의에서 김웅진 의원 등이 ‘반민족행위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 구성안을 긴급동의로 제안하여, 거수표결 끝에 재석 155, 찬성 105, 반대 16표로 가결되었다. 곧바로 28명의 기초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안 기초작업에 착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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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서병조(徐丙朝)[1886~1952]는 1886년 대구에서 서상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창씨명은 대봉병조(大峰丙朝)이다. 일제강점기 중추원 부의장을 지내고 지방 공로자로서 일제로부터 표창을 받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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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서상일(徐相日)[1886~1962]은 개항기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계몽운동, 비밀결사, 언론활동, 경제활동, 자치운동, 한국민주당 활동, 제헌국회 의원, 야당통합운동, 진보당과 사회대중당 및 혁신정당 활동 등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다양한 행적을 남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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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사상 통제 및 사상 전향자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조직한 친일 단체.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대구지부(時局對應全鮮思想報國聯盟大邱支部)는 전향하지 않은 사상범을 수용하던 대구보호관찰소의 외곽단체로 1938년 8월 28일 결성되었다.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대구지부는 민족운동 또는 좌익 운동에 관여하였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전향자 관리와 비전향자들의 전향 유도 및 일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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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추진된 여자고등보통학교 설치 운동. 1920년대 중반 대구에 고등여자보통학교가 없는 교육 현실을 비판하는 여론이 일기 시작하였다. 1924년 무렵 대구의 유지들이 총독부를 찾아 여자고등보통학교 설치를 진정하였다. 1924년 7월 총독부가 남선(南鮮)에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설치할 계획이 알려지자 대구를 비롯하여 전주, 부산 등도 여자고등보통학교 설치를 위한 경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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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경상북도 지역에서 결성된 친일 유림단체. 영남명덕회(嶺南明德會)는 친일 유림 단체인 경북유도진흥회(慶北儒道振興會)[구 유도진흥회 경북지부]를 확대 개편하여 만든 단체로 경상북도 도민이면 회원이 될 수 있었다. 총재는 도지사가, 부회장 2명 중 1명은 도 참여관(參與官)이, 각 지부의 지부장은 부윤(府尹)·군수(郡守)·도사(島司)가 맡았다. 영남명덕회는 193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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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있는 옛 고려예식장 건물. 우종식·우종묵 형제는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서상돈의 아들 서병조의 고택을 헐어 1965년 고려예식장을 지었다. 초대 사장은 우종식이었고, 아들 우상택이 이었다. 우종식·우종묵저택은 ‘우상택 옛집’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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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자본가. 이영면(李永勉)[1878~1931]은 1878년 2월 27일 태어났다. 대구에서 경제인으로 활동하였고, 대구빈민구제회 설립 등의 사회활동에도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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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계몽운동가이자 일제강점기 친일 자본가. 이일우(李一雨)[1870~1936]는 1870년 10월 27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광학회(大邱廣學會) 설립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는 등 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자제단 설립에 참여하는 등 친일 행보를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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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계몽운동가이자 경제인. 이종면(李宗勉)[1870~1932]은 대구에서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고, 주식회사 대동사(大東社)를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호는 오정(悟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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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설치된 조선식산은행의 지점.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10월 조선총독부의 금융정책에 따라 대구 지역에 설립된 금융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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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말 대구에서 일제의 전쟁 동원 정책에 부응하기 위하여 결성된 친일 단체. 조선임전보국단은 중일전쟁이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던 시점인 1941년 전쟁에 협력하기 위하여 임전대책협의회와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를 통합하여 조직한 친일 단체였다. 조선임전보국단의 단장은 최린이었고 부단장은 고원훈, 고문은 박중양·윤치호·이진호·한상룡이었다. 조선임전보국단의 주요 사업은 국민 개조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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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전시 동원 체제 강화를 위하여 대구·경상북도 지역에 결성한 종교계 전쟁 협력 단체. 조선총독부는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5년 2월 종교계를 총망라하여 전쟁 협력 단체를 결성하였다. 종교와 종파를 막론하고 강력한 교화 활동을 펼쳐 전쟁에 매진하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1944년 12월 8일 각 종교 단체가 연합하여 조선전시종교보국회가 결성되었다. 조선전시종교보국회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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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및 경북 지역의 지주들이 결성한 조직. 지주조합(地主組合)은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의 지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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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관료 출신의 자본가. 최만달(崔萬達)[?~?]은 대구사범학교와 대구농공은행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대한협회(大韓協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최만순(崔萬淳)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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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후 민족 동화를 조선 통치의 최고 방침으로 설정하고, 민족 동화의 완성을 위하여 조선인 협력자, 곧 친일파를 양성하였다. 친일파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자발적 친일파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일제의 친일파 양성 정책과 자발적 친일파의 특성은 시기마다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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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 자본가. 한익동(韓翼東)[1888~?]은 1888년 4월 대구부 경정(京町)[현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1가·종로2가]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식민통치 자문기구와 관변단체에서 활동하며 일제에 협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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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허지(許智)[1893~?]는 1893년 6월 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경제인으로 활동하며 대구부회 의원을 역임하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하여 광복 후 친일 부역 혐의로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