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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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재실. 대구 노곡동 영모재(大邱魯谷洞永慕齋)는 묵와(默窩) 이후남(李厚楠)[1579~1631]을 추모하고자 조선 후기에 세워진 재실이다. 이후남은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9세손이며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한 입향조이다. 이후남은 노곡동에서 거주하면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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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 조선 후기 유학자의 장갈문을 국역하여 발행한 책. 『대구유현록(大邱儒賢錄)』은 조선 후기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의 장갈문(狀碣文)을 모아 번역하고 원문과 함께 수록한 책이다. 『대구유현록』의 장갈문은 문집과 실기에 수록되어 있는 행장(行狀), 행록(行錄), 묘갈명(墓碣銘), 묘표(墓表) 중에서 한 편을 선정하여 수록하였다. 『대구유현록』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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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대구 지역에 은거한 문관. 백인관(白仁寬)[1341~1421]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자는 사달(士達), 호는 선정(禪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부시랑 백원태(白元泰)이고, 할아버지는 평장사 백천뢰(白天賚)이다. 아버지는 상장군을 지낸 백존유(白存儒)이다. 부인은 옥산장씨((玉山張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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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경을 시조로 하고 백인관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수원백씨대동보(水原白氏大同譜)』에 따르면, 중국 황제(黃帝)의 후손 백우경(白宇經)이 소주(蘇州)에서 태어나 당나라 때 이부상서에 이르렀으나,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780년 신라로 건너와 자옥산(紫玉山)[현 경상북도 월성군 안강읍 옥산동] 밑에 정착한 것에 시원을 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백우경은 영월당(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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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현존하는 조선시대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온 문중의 큰집. 종가(宗家)의 사전적 의미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이지만, 종가는 전체 부계친족(父系親族) 집단의 맏이 집안을 가리키는 대종가(大宗家)와 대종가에서 갈라져 나와 새로운 종가를 이룬 소종가(小宗家)가 있다. 『예기(禮記)』「대전(大傳)」 편에서 유래한 종법(宗法)에 따르면 부계친족의 맏이는 대대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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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백인관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 화암서원(花巖書院)은 고려 말 고려에 절의를 지킨 선정(禪亭) 백인관(白仁寬)[1341~1421]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서원이다. 백인관은 자는 사달(士達), 호는 선정(禪亭),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수원백씨 대구 노곡동 입향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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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백인관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 화암서원(花巖書院)은 고려 말 고려에 절의를 지킨 선정(禪亭) 백인관(白仁寬)[1341~1421]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서원이다. 백인관은 자는 사달(士達), 호는 선정(禪亭),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수원백씨 대구 노곡동 입향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