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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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발생한 만세 시위. 3·8 서문시장 만세 시위는 대구에서 일어난 첫 만세 시위로, 대구를 비롯한 경상북도 지역으로 만세 시위가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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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대구에서 발생한 5·10선거 반대 시위. 1948년 3월 3일에 행정명령 제13호에 의하여 선거위원회의 권한을 부여받는 국회선거위원회가 조직되고, 3월 13일에 남녀평등의 보통선거제를 기본 골격으로 하는 선거공보 제1호가 공포되었다. 대구는 3개의 선거구로 편성되었고, 대구와 경북 선거를 총괄할 선거 사무국은 경찰청 내에 설치되었으며, 선거 사무국 국장은 도공보실장이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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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학봉(姜學奉)[1898~1931]은 1898년 11월 3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나 제화노동자로 일하였다. 1919년 3·8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강학봉(姜學鳳)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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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22일 대구에서 결성된 좌우익 연합의 건국 준비 정치단체.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建國準備慶北治安維持會)는 1945년 8월 22일 대구에서 결성된 좌우익(左右翼) 연합의 건국 준비 정치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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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상리동에 있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계성고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심신이 건강하고 행복한 자아실현, 학업 역량을 극대화하는 수월성 교육, 미래지향적이며 창의적 역량의 함양,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인의 바른 품성 함양’이다. 교훈은 ‘여호와를 경회함이 지식의 근본이니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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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상리동에 있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계성고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심신이 건강하고 행복한 자아실현, 학업 역량을 극대화하는 수월성 교육, 미래지향적이며 창의적 역량의 함양,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인의 바른 품성 함양’이다. 교훈은 ‘여호와를 경회함이 지식의 근본이니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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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대구에서 설립된 개신교 연합 청년운동 단체. 1921년 12월 2일 남성정예배당[현 대구제일교회 기독교역사관, 일명 구 대구제일교회]에서 대구 지역 소재 교회가 연합하여 ‘교남기독청년회(嶠南基督靑年會) 발회식’을 개최하였다.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목사 이만집, 남산교회 목사 박영조, 남산교회 장로 김태연·최종철 등 100여 명이 참여하였다. 조선기독청년회 회장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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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권성우(權聖佑)[1896~1980] 1896년 9월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학미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권중수(權重秀)·권중식(權重植)이라는 이름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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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영화(權永和)[1899~1935]는 1899년 4월 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아버지 권의윤(權義允)과 함께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권주섭(權周燮)이라는 이름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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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의윤(權義允)는 1868년 3월 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사로 재직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권종태(權鍾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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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권중윤(權重潤)[1900~1928]은 1900년 2월 3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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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조선 기독교인과 일본 기독교인이 연합하여 결성한 친일 협력 종교 단체. 기독교대구연합회(基督敎大邱聯合會)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전쟁 동원 정책이 추진되는 가운데 대구 지역의 조선 기독교인과 일본 기독교인이 친선 제휴를 명목으로 결성하여 황국신민으로서 보국((報國)을 실현하기 위한 친일 협력 종교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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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문진(金文軫)[1892~1926]은 1892년 5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김문진(金文珍)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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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봉안(金鳳安)[1895~1959]은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남산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다가 1919년 3·8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김봉안(金奉安)·김정수(金正秀)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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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삼도(金三道)[1900~1967]는 1900년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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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수천(金洙千)[?~?]은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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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영서(金永瑞)[1880~1975]는 1880년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감으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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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해(金湧海)[1897~1919]는 1897년 7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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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재범(金在範)[1900~1931]은 1900년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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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태련(金兌鍊)[1879~1943]은 남산교회 조사로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김주현(金周鉉)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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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나상기(羅相基)[1901~1981]는 1901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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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의 명망가들이 결성한 문화운동 단체. 대구구락부(大邱俱樂部)는 ‘대구청년회를 계승한 문화운동의 중추 실행 기관’을 전망하며 대구의 명망가들이 중심이 되어 출범한 문화운동 단체였다. 대구구락부는 1923년 무렵 대구의 대중운동에서 문화운동의 중심체였던 대구청년회가 침체되고 노농(勞農) 운동을 앞세운 대구노동공제회가 발흥하는 상황에서 실력 양성 노선을 견지하며 문화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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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대구남산교회는 민족과 함께 하는 교회, 사회와 함께 교회,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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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0일 대구에서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하여 실시된 최초의 근대 선거. 한반도의 완전한 독립, 통일 근대 국민 국가의 건설을 이루기 위한 국제적 절차로서 모스크바삼상회의에 따른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한반도 문제가 미국에 의하여 유엔[UN]으로 이관된 뒤 단독선거[단선]에 의한 단독정부[단정] 수립이 가시화되었다. 유엔은 1947년 11월 14일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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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설치된 조선인 교육 자문기관. 일제는 조선인 교육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1920년 7월 29일 「조선학교비령(朝鮮學校費令)」[제령 제14호]을 공포하였다. 「조선학교비령」은 토지 또는 가옥을 소유한 조선인들부터 부과금을 징수하여 보통학교[일제강점기 초등 교육기관]와 조선인 교육에 관한 학교비(學校費)를 충당하기 위하여 제정한 것이었다. 학교비는 부윤과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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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다양한 이념과 폭넓은 운동 노선의 독립운동이 펼쳐지는 배경이 된 1919년 대구의 3·1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전민족적 항일운동의 서막이 올랐다. 한국인의 의식에 농축된 자주와 독립에 대한 열망이 민족자결이 고조되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맞물려 폭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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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특색을 상업 도시로 각인되게 한 대구의 시장.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시장이 생겨나고, 시장을 배경으로 객주가 등장하였다. 더욱이 대구는 경상감영이 설치된 경상도의 수부였고, 낙동강 물길을 배경으로 바닷가의 해산물과 내륙의 곡물을 교환하는 방식의 어염미두(魚鹽米豆) 무역의 주요 지점이었다. 조선 후기 대구에는 10여 개소의 시장이 열렸으며, 지금도 그 명맥을 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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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대구에 파견된 미군정청의 특사. 미군정청은 1945년 11월 3일 서상일(徐相日)[1886~1962]과 최윤동(崔允東)[1897~1965] 두 사람을 대구에 특사로 파견하였다. 미군정청 특사는 1945년 11월 5일 경북군정청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사의 임무에 대하여 밝혔다. 그 내용은 군정 당국의 방침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경북 도민의 요구와 희망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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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몽포(朴夢圃)[?~?]는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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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문영(朴文瑛)[1871~1943]은 1871년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잡화상을 운영하던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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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장호(朴章鎬)[1886~1961]는 1886년 8월 29일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성경학교(聖經學校) 강습생으로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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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재헌(朴在憲)[1900~1986]은 1900년 1월 2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유곡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특파원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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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백기만(白基萬)[1902~1969]은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였다. 호(號)는 목우(牧牛)이고, 필명은 백웅(白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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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백남채(白南埰)[1888~1950]는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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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손석봉(孫石鳳)[1901~1965]은 1901년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황오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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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손치봉(孫致奉)[?~?]은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초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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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신태근(申泰根)[1870~?]은 1870년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칠곡 신동교회 남전도회장으로 있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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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신현욱(申鉉旭)[?~?]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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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심문태(沈文泰)[1895~1978]는 1895년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봉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1920년대 이후에는 경상남도 지역에서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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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경수(安敬秀)[1888~1952]는 1888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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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영두(安泳枓)[?~?]는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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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의중(安懿仲)[1881~?]은 1881년 5월 9일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에서 태어났다. 대구 나병원에서 소사[잔심부름꾼]로 일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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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0일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시행된 제헌국회의원를 선출하는 선거. 5.10총선거는 1947년 11월 14일 유엔에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한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해방 후 한반도에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절차는 1945년 12월에 열린 모스크바삼상회의의 결정에 따른 미소공동위원회였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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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남숙(李南淑)[1903~?]은 1903년 6월 1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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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이만집(李萬集)[1876~1944]은 대구 남성정교회 목사로 재임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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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석도(李碩道)[?~?]는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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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선희(李善希)[1896~1926]는 1896년 11월 1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2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선애(李善愛)·이선희(李先希)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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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성해(李聲海)[1903~?]는 1903년에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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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승욱(李陞旭)[1898~1962]은 1898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하대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운옥(李云玉)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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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이석(李利錫)[?~?]은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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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재인(李在寅)[1887~1968]은 188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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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춘(李載春)[1877~?]은 187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남산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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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임용한(林容漢)[1897~1977]은 1897년 10월 3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서 태어나 대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임석백(林碩佰)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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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봉수(張奉守)[1901~1927]는 1901년 8월 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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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장해동(張海東)[1901~1927]은 1901년 8월 4일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조사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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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광순(鄭光淳)[1880~1961]은 1880년 7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의료계에 종사하며 신정교회 장로로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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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교육운동가이자 정치인. 정운기(鄭雲騎)[?~?]는 일제강점기 교남학원(嶠南學院) 설립에 참여하고 교장을 맡아 교육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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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원조(鄭元祚)[1898~1942]는 1898년 3월 2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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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인엽(鄭寅曄)[?~?]은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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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종교인. 정재순(鄭在淳)[1877~1948]은 1877년 5월 2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신정교회 목사로 봉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일제에 협력하여 친일 행보를 보였다. 아들 정원조(鄭元祚)도 서문시장 만세 시위 때 체포되어 대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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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교육자이자 종교인. 최경학(崔敬學)[1890~1976]은 1880년 8월 1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신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일제에 협력하여 친일 행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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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신기동 출신 독립운동가. 최경학(崔敬學)[1890~1976]은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면 신기동[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신기동] 출신이다. 1919년 3월 8일 대구[현 대구광역시] 서문[현 서문시장] 장날을 이용하여 이만집(李萬集)·김태련(金兌鍊)·김영서(金永瑞)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당시 계성중학교(啓聖中學校) 교사였던 최경학은 3·1만세항쟁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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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영학(崔永學)[?~?]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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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하윤실(河允實)[?-?]은 대구에서 태어나 지금의 중구 수창동에서 거주하였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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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결성된 한국민주당의 지부. 한국민주당 대구지부(韓國民主黨 大邱支部)는 대구 지역의 우익 정치세력을 결집할 목적으로 결성된 정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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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방(許枋)[?~?]은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조사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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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범(許範)[?~?]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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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성덕(許聖德)[1902~1944]는 1902년 8월 28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과 3월 10일 대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한 뒤 항일 비밀결사 혜성단(慧星團)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신사참배 거부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허성도(許聖徒)·허도(許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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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던 사립 초등 교육기관. 1902년에 안의와(安義窩)[James Edward Adams, 1867~1929] 선교사가 남성정교회(南城町敎會)[현 대구제일교회] 내에 대남학교를 세웠다. 1907년에 부해리(傅海利) 선교사의 부인 부마태가 장인차(張仁車) 선교사의 부인 파커(Edith M. Parker)가 운영하였던 바느질반 소녀 14명을 인수하여 대구 선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