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부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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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감영에 소속된 교방. 경상감영 교방(慶尙監營敎坊)은 조선시대 경상감영에 소속된 기녀들에게 음악과 무용을 익혀 연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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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경상도 대구도호부와 현풍현 지역을 그린 지도. 대구 지역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세계 지도, 조선 전도, 도별도, 군현지도, 대축척 조선 전도 등의 고지도에 빠짐없이 묘사되고 있다. 특히 18세기부터 대구도호부와 현풍현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유형의 군현지도가 편찬되었고, 19세기에는 『청구도(靑邱圖)』·『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등 대축척 조선 전도와 읍지의 부도 형태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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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곽정응(郭井應)[1664~1705]의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자는 문욱(文郁)이다. 아버지는 곽태재(郭台齋)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연경서원(硏經書院)에서 유학을 강학한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의 5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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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열녀. 자미(者未)[?~?]는 구귀징(具龜徵)[1661~1687]의 노비였다. 스무 살 되던 해인 1687년(숙종 13)에 구귀징이 죽자 상복을 입은 뒤에 머리를 얹었다. 부모가 그 까닭을 묻자 “상전이 한 번 저를 돌아보았으니, 어찌 남이 알지 못한다고 하여 내 마음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고, 문밖을 나가지 않고 3년을 지냈다. 부모가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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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열녀. 김내정(金乃鼎)[?~?]의 처 서씨(徐氏)는 대구 출신이다. 조선 태종 때 낭장을 지낸 김해김씨(金海金氏) 문중의 김내정과 혼인하여 용덕리(龍德里)[현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 거주하였다. 스물네 살 되던 해에 남편이 사망하자 평생 절개를 지키며 수절하였다. 조정에서 서씨의 절개를 기려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였다. 『대구읍지(大丘邑志)』와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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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김한(金閑)은 고려 때 대구 해안[현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에 살았다는 기록만 있고, 가계와 후손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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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누각, 정자, 당, 재 등을 총칭하여 부르는 명칭.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이르는 말인데, 조선시대의 읍지(邑誌) 등을 살펴보면 누(樓), 당(堂), 정(亭), 재(齋) 등을 총칭하는 말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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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재래시장. 대구 동문시장(大邱東門市場)은 조선 후기와 개항기,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재래시장이다. 조선 후기 대구에는 서시(西市)와 동시(東市)라는 두 개의 큰 시장이 있었다. 동시는 동문시장의 줄임말로 4일과 9일에 열리는 5일장이었다. 『대구부읍지(大邱府邑誌)』에 따르면, 서문시장을 읍시(邑市)라 하고, 동문시장을 신시(新市)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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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구광역시 중심부에 외적의 침입을 대비하고 지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쌓았던 성곽. 대구 사람들에게 ‘시내에 나간다’는 말은 한 곳을 지칭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타원 형태의 도시에서 중심이 되는 곳을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는 동성로를 가리킨다. ‘동성로’라는 명칭은 성의 동쪽 길을 의미하므로 이름에서부터 성이 있던 옛 시절을 소환하는 셈이다. 또한 남성로, 서성로, 북성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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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간행된 경상북도 대구부의 읍지. 『대구읍지(大邱邑誌)』[국립중앙도서관]는 기존의 『대구부읍지』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새로 형성된 경상북도 대구부와 달성군의 변화 내용을 반영한 읍지이다. 1924년 대구부 소재 선일인쇄소에서 서석태(徐錫台)가 저작 겸 발행자로 발간하였고, 교열자는 이종희(李宗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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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대구 지역 여성 판소리 명창에 대한 이야기. 대구광역시는 오랫동안 판소리 불모지로 알려져 왔는데 과연 사실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임진왜란을 겪은 후 대구 지역이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되면서 1601년(선조 34)에 경상감영이 안동시에서 대구광역시로 옮겨 왔다. 이로부터 대구광역시는 경상도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고, 경상도의 문화와 예술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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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구부에 소속된 교방. 대구부 교방(大邱府敎坊)은 조선시대 대구부에 소속된 기녀들에게 음악과 무용을 익혀 연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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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간행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지.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순조(純祖) 연간(年間)[재위 1800~1834]에 1책으로 간행된 대구도호부의 읍지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구부읍지』는 경상감영에서 편찬한 도지(道誌)인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수록된 「대구부읍지」와 거의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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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간행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지.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권문해(權文海) 외 121인이라고 기록된 읍선생과 1831년 신묘식을 기준으로 한 호구 등으로 볼 때, 1832년경 간행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대구부읍지」를 전사(轉寫)한 읍지로 추정된다. 한편, 책의 끝부분에 첨부된 읍지보궐(邑誌補闕)의 기록은 1898년이 하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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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간행된 경상북도 대구군의 읍지.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1899년(광무 3) 1책으로 간행된 대구군의 읍지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대구부읍지』에는 1895년 이후 지방제도 개편 내용과 1898년 무술식 호구가 실려 있고, 의정부의 ‘참사관실(參事官室)’ 도장이 찍혀 있어 1899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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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이후 간행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지.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1832년(순조 32) 5월에 이임된 관찰사 박기수(朴岐壽)가 기록된 영선생과 1831년 신묘식을 기준으로 한 호구 등으로 볼 때, 1832년경 간행된 『대구부읍지』를 등사 저본으로 하였으며, 1899년(광무 3)에 작성된 ‘읍지보궐초건책(邑誌補闕草件冊)’을 합하여 편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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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특색을 상업 도시로 각인되게 한 대구의 시장.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시장이 생겨나고, 시장을 배경으로 객주가 등장하였다. 더욱이 대구는 경상감영이 설치된 경상도의 수부였고, 낙동강 물길을 배경으로 바닷가의 해산물과 내륙의 곡물을 교환하는 방식의 어염미두(魚鹽米豆) 무역의 주요 지점이었다. 조선 후기 대구에는 10여 개소의 시장이 열렸으며, 지금도 그 명맥을 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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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에 있는 부인사에서 신라 제27대 왕인 선덕여왕을 기리기 위해 1986년부터 시작한 불교 행사. 신라 27대 왕인 선덕여왕을 기리는 불교 행사인 ‘선덕여왕 숭모재’는 매년 음력 3월 보름에 대구광역시 팔공산에 위치한 부인사의 숭모전에서 열린다. 대한불교조계종 부인사가 주최하고, 28회째부터 선덕회가 주관하며, 동화사와 대구광역시 동구청, 국악방송 등이 후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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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박신(朴愼)[1529~1593]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여흠(汝欽), 호는 무진재(無盡齋) 또는 만오당(晩悟堂)이다. 아버지는 박대성(朴大成)이다. 첫 번째 부인은 별좌 민후건(閔後騫)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참봉 손취(孫鷲)의 딸 밀양손씨(密陽孫氏)이다.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이 국담(菊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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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부인사(夫人寺)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팔공산에 있는 신라의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창건 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선덕묘(善德廟)라는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로 보기도 한다.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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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시장북로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자. 북후정(北堠亭)은 『대구읍지(大丘邑誌)』에는 읍북루(揖北樓)라고 하고 “부(府)의 서쪽 3리(里)[약 1.19㎞]에 있다”라고 하였다.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에서도 읍북루라 하고 ”부(府)의 서쪽 3리에 있다. 일명 북후정(北堠亭)이다”라고 하였다. 두 읍지의 기록을 따르면 북후정은 초기에 ‘읍북루’로 불리었던 것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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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무관. 서치(徐穉)[1640~?]의 본관은 대구(大丘)이며, 자는 공보(公宲)이다. 아버지는 서계종(徐繼宗)이다. 형은 서욱(徐稶)·서정(徐程)이고, 동생은 서릉(徐稜)·서질(徐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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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이 기록된 이후 이전의 문서에서 빠진 대구광역시의 성씨. 조선 초에 작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성씨(姓氏)를 토성(土姓), 속성(續姓), 내성(來姓)으로 분류하고 있다. 토성은 그 지역을 본관으로 하거나 그 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한 성씨이며, 속성은 이전의 문서에 빠진 것을 후에 다시 기록한 성씨이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속성은 문서, 즉 장적(帳籍) 등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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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문신. 양배선(楊拜善)[?~?]의 본관은 중화(中和)이고, 자는 사현(師賢), 호는 간와(艮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판서 양미(楊美)이고, 할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양맹순(楊孟淳)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양희지(楊熙止)이고, 어머니는 이종근(李宗根)의 딸 학성이씨(鶴城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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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 연경서원의 이건을 기록한 편액. 연경서원 이건기문 편액(硏經書院移建記文篇額)은 조선 후기에 대구 지역의 유학 교육에서 중추적인 구실을 담당하였던 연경서원의 1775년 이건에 관하여 기록한 편액이다. 대구 지역 최초의 서원이었던 연경서원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563년(명종 18)에 건립을 시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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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거나 시부모에게 효도한 여성. 대구 지역의 열녀(烈女)에 대한 기록으로는 김내정(金乃鼎)의 처 서씨(徐氏)가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한다.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 편에 “낭장(郎將) 김내정의 처 서씨의 정문(旌門)이 부내(府內)의 용덕리(龍德里)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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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간행된 『영남읍지』에 수록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지. 『영남읍지(嶺南邑誌)』「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1871년(고종 8) 간행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영남읍지(嶺南邑誌)』 제6책에 수록되어 있다. 『영남읍지』는 1871년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경상도 각 읍에서 편찬하여 상송(上送)한 경상도의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대구부읍지」는 대구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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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간행된 『영남읍지』에 수록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지. 『영남읍지』「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1895년(고종 32) 간행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영남읍지(嶺南邑誌)』 제2책에 수록되어 있다. 『영남읍지』는 1895년 전국 읍지상송령에 의하여 경상도 각 읍에서 편찬하여 상송(上送)한 경상도의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읍지 대부분이 ‘의정부(議政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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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부사를 역임한 문신. 윤현(尹晛)[1536~1597]의 본관은 해평(海平)이며, 자는 백승(伯升), 호는 송만(松巒) 또는 홍제(弘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윤희림(尹希琳)이고, 할아버지는 윤변(尹忭)이다. 아버지는 윤담수(尹聃壽)이고, 어머니는 유항(柳沆)의 딸 전주유씨(全州柳氏)이다. 부인은 청주판관 김인서(金麟瑞)의 딸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슬하에 1남 2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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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물을 저장·조정·조절하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만든 수리 시설. 저수지(貯水池)는 둑을 축조하여 물의 저류·조정·조절 등을 하기 위한 인공적인 못이다. 개념적으로 댐은 유수를 저장 또는 취수할 목적으로 축조한 구조물이며, 저수지는 댐에 의하여 조성된 인공 호수를 말한다. 그러나 댐과 저수지 등은 혼용되고 있는데, 일반인들은 대규모 및 다목적인 경우는 댐으로, 소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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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구부사를 역임한 문관. 정경세(鄭經世)[1563~1633]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우복(愚伏)·하거(河渠)·송록(松麓)·승성자(乘成子)·석총도인(石潨道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계함(鄭繼咸)이고, 할아버지는 정은성(鄭銀成)이다. 아버지는 좌찬성을 지낸 정여관(鄭汝寬)이고, 어머니는 이가(李軻)의 딸 합천이씨(陜川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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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 대구 지역을 기록한 지리서. 대구 지역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의 전국 지리지에 빠짐없이 기록되고 있다. 특히 19세기부터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영남읍지(嶺南邑誌)』 등의 도지(道誌)에 대구도호부와 현풍현의 읍지가 수록되었고,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와 『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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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채순(蔡順)[?~?]은 수성현(壽城縣)[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에서 태어났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채순은 대구 수성 사람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나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에 무덤을 지킬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시묘(侍墓)를 하였고 어머니의 묘를 아버지 묘 곁으로 옮기고 조석(朝夕)으로 상식(上食)을 올리기를 6년 동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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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정구의 학맥을 계승한 사족 집단. 낙동강 중류 지역은 지금까지 퇴계학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안동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상류 지역과, 남명학의 온상이었던 낙동강 하류 지역의 ‘경계’나 ‘사이’에 있다. 낙동강 중류 지역의 유학자들은 이러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퇴계학과 남명학의 영향 속에서 이 둘을 융합 및 회통하려는 한편 다양한 학문을 수용하는 데에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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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부모를 극진하게 섬긴 사람 대구 지역 효자에 대한 기록은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하광신(夏光臣)과 조희삼(曺希參)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고려 명종(明宗)[재위 1171~1197] 때 사람인 하광신은 1327년(충숙왕 14)에 복호(復戶)와 정려(旌閭)를 받았으며 비석이 세워졌다. 하광신의 효자 정려는 현재 경상도 지역에 남아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