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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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月城洞 遺蹟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조암로 59[월성동 1150-1] |
시대 | 선사/청동기,조선/조선 |
집필자 | 김병섭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4년 6월 25일~8월 13일 - 대구 월성동 유적3 세종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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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대구 월성동 유적3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1150-1 일원![]() |
원소재지 | 대구 월성동 유적3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1150-1 일원 |
성격 | 생활 유적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 및 조선시대 생활 유적.
대구 월성동 유적3은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 및 조선시대 생활 유적으로서, 조암중학교 신축과 관련하여 2014년 6월 25일부터 8월 13일까지 세종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돌널무덤[石築形石棺墓] 6기, 수혈 1기와 조선시대 수혈 12기, 기둥구멍 4개가 확인되었고, 유물은 민무늬토기[無文土器], 돌화살촉[石鏃], 백자, 큰항아리[大壺]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구 월성동 유적3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1150-1번지 일대에 있다. 진천천 하류부 북안에 넓게 펼쳐져 있는 월배 선상지의 선단부에 해당된다. 월배 선상지에는 상인동 지석묘, 상인동 입석, 월성동 지석묘군, 진천동 지석묘군, 진천동 입석[사적 제411호], 월암동 입석군 등이 알려져 있고, 청동기시대 마을과 무덤을 비롯하여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적이 발굴 조사되었다. 북쪽으로 인접하여 월성동 777-2유적, 월성동 1412유적, 동쪽으로 인접하여 월성동 지석묘Ⅰ, 월성동 498유적 등이 있다.
대구 월성동 유적3에서는 청동기시대 석축형돌널무덤 6기가 확인되었는데, 고인돌의 하부 구조일 가능성도 있지만, 주변에서 고인돌 상석이나 지석 등의 상부 구조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리를 이루는 돌널무덤으로 보인다. 돌널무덤은 길이 200㎝ 이상의 대형, 100㎝~200㎝의 중형, 100㎝ 이하의 소형으로 구분된다. 돌널의 축조 방식은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쌓아 올린 석축형돌널[石築形石棺], 깬돌과 널돌[板石]을 혼합하여 축조한 혼축형돌널[混築形石棺], 널돌만을 이용한 상자모양돌널[箱形石棺]로 분류된다. 무덤 바닥에는 납작한 깬돌을 깔거나 널돌을 깔아 시상(屍床)으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1호 돌널무덤에서 돌화살촉(石鏃) 9점이 출토되었고, 4호에서 인골이 확인되었다. 수혈은 부정형을 띠는데, 내부에서 화덕자리(爐址)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주거지로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수혈에서는 새김덧띠무늬토기[刻目突帶文土器] 조각과 민무늬토기 바리[無文土器鉢] 등이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수혈은 12기가 조사되었는데, 대부분 타원형과 원형이다. 규모는 길이 49~176㎝, 너비 3㎝~148㎝ 내외로 소형이다.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고, Ⅰ구역 4호에서 큰 항아리가 아가리 부분만 노출된 채 땅속에 묻힌 상태로 확인되어 저장용 수혈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유물은 옹기 조각과 백자종지와 백자 바리가 출토되었다.
대구 월성동 유적3은 발굴 조사 완료 후 조암중학교가 신축되었다. 주변 선상지 선단부 일대 대부분도 아파트, 도로, 근린생활시설 등이 조성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돌널무덤군은 월배 선상지 선단부에 있는 청동기시대 중기의 소규모 군집을 이루는 무덤군으로 파악된다. 수혈에서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로 편년되는 새김덧띠무늬토기가 확인되었는데, 이와 같은 유물은 월성동 566유적, 월성동 777-2유적, 대천동 511-2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유적의 분포가 월배 선상지 선단부를 중심으로 남서-북동향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청동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주거군은 월배 선상지 선단부를 중심으로 분포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