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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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木工勵會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토목공 노동 단체.
[개설]
토목공려회(土木工勵會)는 1922년 2월 26일 대구노동공제회 소속 토목공 150명이 조직한 노동단체이다.
철도 부설의 측면에서 대구 지역은 1901년 일본에서 경부철도주식회사가 성립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1903년 12월경 초량-구포-밀양 간 철도 구간이 준공되면서 철도 산업이 대구 지역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대구 지역이 경부선이 통과하는 여러 역 가운데 부산 다음으로 큰 도시인 까닭에 일본인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1904년 1월 대구 북문밖[현 대구역 부근]에 경부철도 남부공사건설사무소가 설치되었고, 공사 관계자, 토목 인부, 상인들이 대거 대구 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대구 지역 직업별 노동단체 설립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단체는 대구노동공제회이다. 대구노동공제회에서는 토목공려회, 신문배달부조합, 인쇄직공조합 등을 주도하였다.
[변천]
1922년 2월 26일 조선노동공제회 대구지회[대구노동공제회] 회원 가운데 토목공 150명이 토목공려회[대구토목공려회]를 조직하였다. 토목공려회는 창립 당일 대구부 내 요릿집 동아각에서 간친회를 열었다. 당시 참여한 회원은 약 70명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토목공려회는 1922년 5월 각희대회를 개최하였다. 각희대회는 경상북도 지역에서 열린 최초의 씨름대회이다.
[의의와 평가]
토목공려회는 1920년대 대구 지역 직업별 노동운동의 양상과 대구노동공제회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는 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