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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67
한자 大邱 中洞 統一新羅 官衙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 356-7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박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9년 - 대구 중동 통일신라 관아지 역사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원소재지 대구 중동 통일신라 관아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 356-7 지도보기
성격 관아지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에 있는 통일신라 시기 수창군의 관아지로 추정되는 유적.

[위치]

신라 수창군(壽昌郡)은 본래 위화군(喟火郡)이었는데, 고려시대에는 수성군(壽城郡), 조선시대에는 대구도호부의 속현(屬縣)인 수성현(壽城縣)이 되었다. 치소(治所)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대구수성초등학교 인근으로 추정된다.

[현황]

2000~2001년 수성초등학교 바로 북쪽의 구 정화여자고등학교[현 정화우방팔래스] 자리에 대한 발굴 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유구와 함께 통일신라시대 온돌 주거지와 수혈유구,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온돌, 수혈 유구, 노지유구, 우물, 담장 및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또 2001~2002년 연접한 수성초등학교 북쪽 부분에 대한 조사에서도 같은 성격이 유구들이 확인되었다. 이것들이 대구 상동 유적이다.

2019년에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정화우방팔래스아파트에서 북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 356-7번지 일원에 대한 시굴 조사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남쪽 부분인 1구역에서 청동기시대 수혈 주거지, 돌덧널무덤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수혈 주거지 7기, 수혈유구 2기, 우물 2기, 그리고 기단 시설로 추정되는 석축유구가 확인되었다. 석축유구는 북변 12m, 남변 10m, 남북 길이 17m의 역사다리꼴 형태의 외곽 석렬과 그 내부의 길이 9m, 너비 8.7m의 방형 석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형 석축과 외곽 석렬 사이에는 기와 조각들이 편평하게 깔려 있었는데, 연화문 수막새·당초문 암막새·귀면와·치미 조각 등 고급 기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유구는 상부가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석축 기단이 있고 통일신라시대의 고급 기와들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관아 혹은 사찰의 중요한 건물이었을 것이며, 수창군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수창군의 관아 시설, 그중에서도 정청(政廳)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중동 통일신라 관아지의 추정 관아 건물은 주변의 통일신라시대 주거지와 함께 수창군의 중심 취락, 즉 읍을 형성하였을 것이고, 이것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대구 상동 유적대구 중동 통일신라 관아지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통일신라시대의 평지 군치(郡治) 유적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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