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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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思溫 |
영어공식명칭 | Ryu Saon |
이칭/별칭 | 수보(粹甫),구정(龜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동권 |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 문인 학자.
유사온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수보(粹甫), 호는 구정(龜亭)이다. 고려 말 때 삼중대광을 지낸 유익정(柳益貞)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저은(柳渚隱), 아버지는 유순간(柳純諫),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로 우희적(禹熙績)의 딸이다.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이정설(李正枻)의 딸이다. 자식은 4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유여장, 유여재, 유여백, 유여량이며, 딸은 김정(金整)과 곽희안(郭希顔)에게 시집갔다.
유사온은 1573년(선조 6) 12월 1일에 대구 해안현(解顔縣)[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에서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응수(權應銖)의 휘하에 들어가 군량미를 조달하고 병기를 제공하여 왜적을 무찔렀으며, 그 공으로 군자감 봉사에 제수되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도 의병 수백 명을 규합하여 크게 활약하였고, 1599년(선조 32) 군자감정으로 승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를 호종하러 나섰다가 충주에 이르러 병이 들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만년에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산(龜巖山) 아래 ‘구암정(龜巖亭)’을 지었다. 1639년(인조 17) 12월 22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67세였다.
유사온은 9세 때 부친상을 당한 이후 더욱 학문에 뜻을 두었다. 『소학』, 『효경』 등의 서적에 매우 능통하였다. 13세 때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다. 또 선사서당(仙査書堂)에서 임하(林下) 정사철(鄭師哲)에게 수학하였다. 이때부터 심성을 닦는 공부에 더 매진하여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서적을 구해 심성이기(心性理氣)에 대해 깊이 탐구하였다. 이후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양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다. 마침내 사서 및 『심경』, 『근사록』, 『성리서』등 서적을 구해 깊이 탐구하며 부지런히 강론하였다. 문집으로 『구정일고(龜亭逸稿)』가 있다.
유사온의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유학산(留鶴山)에 있다.
유사온은 1656년(효종 7) 호조 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