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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910
한자 金相訓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4년 3월 27일연표보기 - 김상훈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25년 7월 28일연표보기 - 김상훈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김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김상훈 출생지 - 충남 천안군 수신면 다복리
활동지 천안 아우내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상훈은 1874년 3월 27일 충청남도 천안군 수신면 복다리에서 출생하였다. 그 외 가계나 학력 등은 알 수 없고 1919년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은 2개의 계열로 나누어 계획되었다. 2개의 계열 중 하나인 수신면성남면 계는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 이르러 여러 시장 입구를 각각 맡아서 장에 모여드는 장꾼들에게 시장에서 독립 시위운동을 미리 당부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동면계(東面系)가 오후 1시에 만세 운동을 시작하여 결국 이 두 계열이 합류하여 만세 운동을 진행하였다.

동면계(東面系)의 운동은 서울 이화학당(梨花學堂)에 재학 중인 16세 소녀 유관순이 3월 5일의 남대문 운동에 참가했다가 독립선언서를 몰래 가지고 내려와 동네 어른인 조인원[감리교 동면 속회장], 아버지 유중권, 숙부 유중무 등에게 보이고 서울의 정경을 자세히 보고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4월 1일 아우내 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하기로 합의한 것이었다. 밤에는 조인원이 속회장을 맡고, 유중무가 교사직을 맡고 있는 예배당에서 통지를 얻고 태극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3월 31일 밤 자정에는 아우내 장터 중심으로 천안 길목[목천넘어 고개]과 수신면 산마루, 진천 고갯마루에 내일의 거사를 알리는 횃불을 놓고 이튿날 아침 아우내 장터에 몰려갔다.

오후 1시경 태극기와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조인원이 군중 앞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김상훈을 비롯한 군중들은 이에 호응하여 소리 높여 만세를 불렀다. 태극기를 받아 손에 쥔 군중은 열을 지어 큰 깃발을 선두로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때 헌병들은 총기를 난사하여 유중권 등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였고, 군중은 잠시 후퇴했다. 그런데 이때 급히 출동한 일본 천안 헌병 분대원과 수비대원들도 합세하여 발포하고 총검을 휘둘러 이날 도합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적어도 30명 이상이 발생했다. 오후 4시경 유가족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헌병들을 향해 큰 소리를 치고, 유치장을 발로 차고 구멍을 내는 등의 적극적인 항의 활동을 벌였다.

이날의 만세 운동에서 체포된 이들의 재판은 동면계(東面系)는 복심에까지 법정 투쟁을 하고 수신(修身)·성남면계(城南面系)는 상고심에까지 이르렀는데, 김상훈은 1919년 9월 11일 고등 법원에서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25년 7월 2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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