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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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相喆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10월 25일 - 김상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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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김상철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참여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상철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김상철 출생지 - 충남 천안 병천면 가전리 463번지 |
활동지 | 천안 아우내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 운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상철(金相喆)[1897~ ]은 1897년 10월 25일 충청남도 천안군 병천면 가전리 463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은 원래 수신면(修身面)·성남면(城南面) 계와 동면(東面)의 조인원(趙仁元)·유관순(柳寬順) 계의 2개의 계열로 나누어 계획되었다. 김상철은 동면 계열로 참여하였다.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조인원이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마침 시장에 와 있던 김상철은 군중들에 섞여 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누볐다. 이때 출동한 헌병들이 총기를 난사하여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오후 4시경, 분노한 독립 만세 운동 참여자들이 주재소로 몰려가 헌병들이 빼앗아간 태극기를 다시 높이 들어 만세를 부르며, 유치장의 벽을 헐어 구멍을 내는 등 적극적인 항의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상철은 헌병 주재소의 유치장 벽에 발길질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 결국 이날의 활동으로 인하여 김상철은 1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김상철은 1921년 경성에 혁신단을 발기하여 통의부원, 혁신단 상무위원을 역임하였다. 또한 3년 후인 1924년에는 중국 체류 중 군자금 조달의 사명을 띠고 귀국 활동을 하던 가운데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