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8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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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穆淵 |
이칭/별칭 | 백춘(伯春),소소(笑笑),문정(文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경수 |
[정의]
조선 후기 천안에 우거한 문신.
[개설]
이목연(李穆淵)[1785~1854]은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 대군(廣平大君)의 후예이다. 서울과 광주에서 살아온 문중이지만, 목천이 십승지지(十勝之地)로 꼽히는 살기 좋은 고장이며 학문을 숭상하는 고장이라고 여겨 목천과 인연을 맺었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춘(伯春), 호는 소소(笑笑)이다. 할아버지는 이창중(李昌中)이고, 아버지는 이의상(李義常), 어머니는 유건(柳健)의 딸이다. 이일연의 아들 이인명(李寅命)을 입양하였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이 손자이다.
[활동 사항]
1821년(순조 21)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826년 국정 일체를 기록하는 전임 사관에 제수되었다. 이어 정언과 지평을 역임하였고, 1828년에는 『홍문록(弘文錄)』에 올라 학문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그 뒤 이조 참의·이조 참판·한성 판윤·형조 판서·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843년(헌종 9)에 동지 겸 사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대사헌·호조 판서를 거쳐 1847년에 광주 유수(廣州留守)로 있을 때, 이전에 대사헌으로서 조병현(趙秉鉉)의 탐학 행위와 권력 농단을 탄핵한 상소의 과격한 문구가 문제 되어 전라도 임자도(荏子島)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그 뒤 전라 감사·형조 판서 등을 역임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상훈과 추모]
1871년(고종 6) 문정공(文貞公)으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