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6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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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居山天興寺銘銅鍾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한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3년 9월 10일 -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국보 제280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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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국보 재지정 |
현 소장처 | 국립 중앙 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
원소재지 |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지 |
성격 | 동종 |
재질 | 청동 |
크기(높이, 길이, 너비) | 133㎝[높이]|96㎝[아래 지름]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국립 중앙 박물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보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지에서 발견된 고려 시대 동종.
[개설]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聖居山 天興寺銘 銅鍾)은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 시대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이다. 종의 높이가 133㎝, 종 입구 지름은 96㎝로서,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 다음으로 크다. 제작 기법이나 양식이 고려 범종을 대표하는 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종이 본래 고려 태조 대에 세워진 천흥사에 동종을 만들어 보관한 이유는 아마도 성거산과 태조의 신성성을 이어 받아 고려의 발전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러 천흥사가 폐사되고 난 후 여러 사찰로 옮겨져 사용되고 있다가 인조 때 남한산성이 축성되자 산성의 시각을 알리기 위해 성 내에 종각(鐘閣)을 마련하고 옮겨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은 1969년 7월 이전에는 옛 덕수궁 미술관에 소장되었으나, 2013년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3년 9월 10일 국보 제28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은 고려 범종 가운데 신라 범종의 양식을 가장 충실히 계승하였으나 부분적으로는 고려 종의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고 있다. 동종의 모습은 위에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龍鈕)가 있고 그 아래로 몸체가 있다.
종 위에는 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편평한 부분인 천판 가장자리에는 연꽃무늬를 돌렸다. 바로 아래 4곳에 사각형의 유곽을 만들고 그 안에 가운데가 도드라진 9개의 연꽃을 새겼다. 그런데 현재는 연꽃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연화좌와 유두가 9개인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구천(九天)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유곽 아래에는 종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원형(圓形)으로 2곳에 두었다. 그 테두리는 구슬무늬와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같은 당좌 형식은 신라 범종의 당좌에서 보이는 형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또한 당좌 사이에 2위의 비천상(飛天像)을 둔 것은 신라적 양식으로 볼 수 있으나, 비천상의 위치를 서로 대각선상에 배치한 것은 신라 범종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종신(鐘身)의 아래와 위에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한 너비 10㎝ 정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모란문(牡丹紋)과 인동문(忍冬紋)으로 안을 채워 넣었다.
[특징]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은 유곽 바로 아래에 위패형(位牌形)을 양각하여 구획을 설치하고, 그 속에 ‘성거산 천흥사 종명 통화 28년 경술 2월 일(聖居山天興寺 鐘銘 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 日)’이란 명문이 두 줄로 양각되어 있다. 명문의 내용을 통해서 이 동종이 1010년(고려 현종 원년)에 주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통화’는 요(遼)의 연호이며 성거산은 천안시 성거읍의 성거산으로 고려 태조와 인연이 깊은 천흥사의 동종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의 동종의 제작 기법이나 양식을 연구하는 데 기초적인 자료임과 동시에 천흥사의 연대를 밝혀주는 귀중한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