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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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淸臣神道碑 |
이칭/별칭 | 유비 묘정비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매당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홍제연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257년 - 유청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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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329년 - 유청신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873년 - 유청신 신도비 건립 |
현 소재지 | 유청신 신도비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 |
성격 | 신도비 |
관련 인물 | 유청신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60㎝[높이]|62㎝[너비]|15㎝[두께]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에 있는 고려 역관 유청신의 개항기 제작 신도비.
[개설]
유청신(柳淸臣)[1257~1329]은 전라도 고흥에 대대로 세거했던 토착 가문의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화통하고 담력이 있었다고 하며, 몽고 말을 잘해 중앙 정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충렬왕의 각별한 총애를 받아 원 간섭기에 전문 외교관으로서 당시 대원 관계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유비(柳庇)’라는 본명이 유청신으로 바뀌게 된 것은 원나라 황제가 그의 공적을 높이 사 이름을 하사했기 때문이라 한다. 충선왕 대에도 요직을 두루 맡았는데 1321년(충숙왕 8) 충숙왕을 폐하고 대신 심양왕을 신왕으로 옹립하고자 한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1321년, 충숙왕 8] 고려에 귀국하지 못하고 결국 원에서 사망하였다.
[건립 경위]
유청신 신도비는 천안시 광덕면에 소재한다. 광덕면에는 광덕사가 있는데, 사료에 의하면 유청신은 1290년(충렬왕 16) 9월 원에 갔다가 임금을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의 어린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광덕사에 심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나왔다. 광덕사는 14세기 사경 유물이 전하며, 당시 대원 관계에서 유력한 인물과의 연고가 상정되는 사찰이다. 유청신이 종교적 이유로 호두나무를 광덕사에 심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되며, 그 후 광덕사 주변 지역에는 유청신의 후손이 조선 초기부터 대대로 거주하며 집성촌을 이루었다.
고흥 유씨의 족보에는 광덕면 매당리 당께울[堂下里] 충효산에 유청신이 살았고, 그의 부조 묘와 정문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매당리에는 유청신의 신도비와 정려 외에도 유연(柳淵), 유흥우(柳興雨), 유의신(柳義臣), 유언(柳堰) 등의 정려가 있다. 유청신이 실제로 이곳에 거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광덕사 인근에 유청신의 전장(田莊)이 분포했을 가능성도 있다.
신도비는 원래 무덤 가까운 곳에 세워야 하지만 유청신은 원나라에서 사망하였으므로 묘가 없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1873년(고종 10) 후손들이 입향조인 유청신을 기리기 위하여 대대로 거주한 매당리에 유청신 신도비(柳淸臣 神道碑)를 건립하게 되었다. 유청신 신도비는 ‘유비 묘정비(柳庇 廟庭碑)’로도 불린다.
[위치]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 3리 당하 마을 회관에서 남서쪽 80m 전방의 유사당골 입구에 있다.
[형태]
대좌에 비신(碑身)을 세운 후 옥개형 이수(螭首)[비석의 머리 등에 새긴 용의 모양]를 올린 형태로 전체 높이는 160㎝이고, 너비 62㎝, 두께 15㎝이다. 뒤편에는 후손들이 1965년 10월에 다시 세운 신도비가 있는데, 송정헌(宋廷憲)이 비문을 짓고 썼다.
[금석문]
신도비에는 ‘고려 선충동덕 좌리익조공신 시중 벽상 삼한삼중 대광 도첨의 정승 고흥부원군 증시영밀 신암 유공 묘정비(高麗宣忠同德佐理翊祚功臣 侍中壁上三韓三重大匡都僉議政丞 高興府院君 贈諡英密 信菴柳公 廟庭碑)’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은 고려 시대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은 것이고, 글씨는 조선 말기의 유학자 임헌회와 전우가 썼다.
[현황]
매당리는 유청신의 후손 고흥 유씨의 세거지로 오랜 세월 집성촌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신도비 주변에는 고흥 유씨 집안의 정려 등 유적이 산재해 있어 문화재에 대한 보존과 관리가 양호한 편이다. 2009년 6월 12일에는 ‘천안 삼거리 및 호두과자의 역사 문화적 의의’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되어 유청신과 호두나무, 또 호두과자를 천안의 브랜드화 하는 주제에 대하여 심도 있는 토론이 오가는 등 유청신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천안시 광덕면은 한국 호두나무의 시배지이자 집산지이다. 그리고 호두의 역사와 함께하는 천안의 호두과자는 80여 년의 역사를 이어 오면서 천안을 알리는 지역의 자산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호두를 역사상 처음으로 들여와 광덕면에 심은 사람이 유청신이다. 고향이 전라도 장흥이고 유청신이 원나라에서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후손들에 의해 신도비가 천안에 건립되었다는 점은 광덕사와 호두나무의 의미에 역사성을 부여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