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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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儒生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내수 |
[정의]
한말과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개설]
유생(儒生)은 유교를 신봉하고 이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에서는 각 지역의 유생에 대하여 조사를 하였다. 이유는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의병 활동에 가담한 유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말과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은 ‘선비향 중 목천현이 제일’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유학자가 거주하고 있었다.
[간재의 문인]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천안시 풍세 지역에 왕래하면서 천안 지역에는 전우의 문인들이 많이 있었다. 전우는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간재학파를 형성할 정도의 대단한 학자였다. 천안에서 전우의 영향을 받은 유학자로는 경석(敬石) 임헌찬(任憲瓚)을 들 수 있다. 임헌찬은 풍천 임씨로 1876년에 출생하여 그의 나이 40을 전후하여 전우에게 사사를 받았다.
전우의 문인으로는 유몽(幼夢) 정인창(鄭寅昌)도 있다. 정인창은 천안 광덕면 금곡리 출신으로 성리학을 닦은 도학자이다. 정인창은 일제 강점 후 죄인을 자처하여 흰옷을 입고 흰 갓을 쓰고 지냈으며, 강사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리고 성암(誠庵) 이유흥(李裕興)도 전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렇듯 천안 지역에는 호남 지역의 거유(巨儒)인 전우와 교류하면서 많은 전우의 문인들을 배출하였다.
[화서의 문인]
천안 지역에는 전우의 문인들뿐만 아니라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학통을 이어받은 유학자도 있었다. 전우의 문인들은 일제의 침탈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보다는 학문에 집중하였다. 하지만 이항로의 문인인 화서학파 유생은 의병을 조직하여 일제에 항거하였다.
천안 지역에서 이러한 화서 학통을 이어받은 인물로는 과암(果庵) 신익균(申益均)이 있다. 신익균은 이항로의 학통을 이어받은 이근원(李根元)의 문인으로 최익현(崔益鉉)과 같은 학통이다. 이항로의 문인들은 유인석, 최익현 등과 같이 주로 의병전쟁을 전개하였다. 그렇지만 신익균은 화서학파의 학통을 이어받았으나 의병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기타]
천안 지역에는 전우의 문인과 이항로의 문인 외에도 안상열(安商說), 현채동(玄采東), 민영근(閔泳瑾), 최영헌(崔英憲), 이철순(李轍淳) 등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전통 유학의 맥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한 유학자들이었다.
[천안 지역 유생의 의의]
한말과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들은 의병 활동에는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일제에 대항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사실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여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였으며, 학문과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집중하였다. 이는 천안 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적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