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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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龍爭珠之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문철영 |
[정의]
고려 왕건이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지형을 이른 말로 천안부 설치의 계기가 된 용어.
[개설]
후삼국통일 전쟁 중에 왕건은 풍수지리설을 통하여 각 지방의 호족이나 일반 백성의 인심을 자신에게 모으는데 이용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요충지를 확보하고 그에 따라 확대된 전선을 연결하는 데에도 풍수지리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오룡쟁주지세(五龍爭珠之勢)가 곧 대표적인 예이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에 전하기를, 술사(術師) 예방(倪方)이 고려 태조에게 아뢰기를 “천안도독부는 풍수지리적인 형국으로 볼 때 삼국의 중심에 해당하며 다섯 용이 구슬을 다투는 지세로 여기에 관부를 설치하면 후백제가 스스로 항복해올 것이다.”라고 하여 태조가 산에 올라 살펴보고 천안부를 설치하였다고 하였다. 이처럼 후백제를 공략하는 전략적인 요충지로서 충청남도 천안에 부를 설치하고 그곳이 풍수지리설에 있어서 이른바 오룡쟁주지지(五龍爭珠之地)라 하여 선전하였다. 이어 후백제를 멸망시킨 다음에는 연산에 개태사라는 비보사찰(裨補寺刹)을 세웠던 것이다.
[관련 사찰]
천안의 만일사와 성불사 또한 왕건의 이러한 오룡쟁주지지로서의 천안과 연결된 비보사찰의 성격을 띠고 있다.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63번지의 만일사(晩日寺)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로서 성거산(聖居山) 북쪽 중턱에 있다. 만일사는 921년(고려 태조 4) 도선 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나, 그 시기가 도선 국사가 입적한 후이므로 신빙성이 떨어진다. 다만 도선의 비보사찰설(裨補寺刹說)에 따라 창건되었다고 볼 수는 있다. 구전에 의하면 고려 초 도선이 이곳에 다다랐을 때 백학 한 쌍이 내려와 불상을 조성하였는데, 조성 중 사람의 기척이 나자 그만 중단하였다고 하며, 이것이 곧 성불사의 마애불이라 전한다. 그런데 다시 하늘에서 성거산을 굽어보니 현재의 만일사 자리가 적지로 생각되어 백학들이 내려와 불상을 조성하였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작업을 중단하였으므로 만일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천안은 삼국의 중심으로서 다섯 용이 구슬을 다투는 형세를 띤 지역이기 때문에 보루를 쌓고 군사를 훈련했으며, 이 산에 태조의 묘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태조가 논산 개태사(開泰寺)를 지어 삼국 통일의 염원을 담았듯이, 도선 국사의 비보사찰설에 따라 천안에도 만일사·성불사 등의 사찰을 세워 국가를 비보하는 곳으로 삼았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