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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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正郞峰-悲話 |
이칭/별칭 | 망경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동욱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0년 6월 26일 -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이규석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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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6년 10월 5일 -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6월 30일 - 『천안의 민담과 설화』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2월 - 『한국 지명 유래집』-충청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망경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 |
채록지 | 백자 2리 마을 회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 |
성격 | 전설|지명 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조명|단종|세조 |
모티프 유형 | 절신의 연군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에 전해 내려오는 정랑봉의 지명 유래담.
[개설]
정랑봉(正郞峰)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와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경계에 위치한 산인데, 망경산, 망경대(望京臺)라고도 한다. 동으로는 동림산과 이어지고 북으로는 수신면의 기름진 들판이 펼쳐진다. 정랑봉은 계유정난(癸酉靖難)[1453] 이후 금산(錦山)으로 유배를 갔다가 목천으로 이배(移配)된 병조 정랑(兵曹正郞) 조명(趙銘)[?~1478]이 단종(端宗)[1441~1457]을 그리워하다가 죽은 곳이라는 데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정랑봉의 비화」는 단종을 그리워한 조명의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정랑봉의 비화」는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1990년 6월 26일 이규석[74세, 남,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에게 채록하였다. 1996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민병달·이원표 등이 조사하여 1998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천안의 민담과 설화』와 국토 해양부 국토 지리 정보원에서 2010년에 발간한 『한국 지명 유래집』-충청편에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단종이 등극한 후 곧이어 세조(世祖)[1417~1468]의 찬탈이 이어지자, 많은 신하들이 반대하여 죽거나 유배되었다. 당시 병조 정랑 조명은 아버지 조순생(趙順生)이 안평 대군과 함께 단종의 복위에 가담하였다 하여 금산으로 함께 유배되었다. 그 후 세조가 유배에서 풀어 주자 조명은 날마다 산에 올라 강원도 영월 쪽을 바라보며 단종을 그리워하다 죽었다.
이에 선비들이 조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조명이 날마다 오른 산봉우리를 조명의 벼슬을 따서 정랑봉이라 하였다. 또 조명이 단종이 있는 영월을 항상 바라보았다는 뜻에서 망경대 또는 망경산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삼천리강산이 모두 세조의 천지이나 정랑봉만은 단종의 땅이라며 정랑을 추도하였다.
정랑봉에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조명의 청절(淸節)을 닮아서 우물에 다른 물을 넣으면 물이 용솟음쳐서 밀어냈다고 한다. 이 우물물이 넘치면 풍년이 들고 우물물이 줄어들면 흉년이 든다고 전해 온다.
[모티프 분석]
「정랑봉의 비화」는 세조의 왕위 찬탈로 쫓겨난 단종을 그리워하며 끝까지 곧은 절개를 지킨 병조 정랑 조명의 청절을 기리기 위해 생겨난 지명 유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