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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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之禮 |
영어공식명칭 | Lee Jirye |
이칭/별칭 | 만혜(漫兮)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행묵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내곡리 동절사에 배향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무신.
[가계]
이지례(李之禮)[1545~1592]의 본관은 단양이며, 자(字)는 만혜(漫兮)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집의 이맹지(李孟智)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이겸(李謙)이다. 아버지는 이문호(李文虎)이고, 어머니는 태원 선우씨(太原 鮮于氏)이다.
[활동 사항]
이지례는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宣祖)를 평양까지 호종하였고, 이후 나주목사 이경록(李慶祿)의 조방장인 형 이지시(李之時)와 함께 호군으로서 용인(龍仁) 전투에 참전하였다. 전라도관찰사 이광(李洸), 경상도관찰사 김수(金睟), 충청도관찰사 윤선각(尹先覺) 휘하의 8만 명에 이르는 병력은 야음을 틈타 기습한 1,600여 명의 왜군에게 크게 패하였고, 이지례는 병사들을 독려하며 앞장서서 싸우다가 형 이지시와 함께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지례는 사망한 뒤 선무공신에 녹훈되고 병조참판으로 추증되었고, 1797년(정조 21)에는 병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이지례는 형 이지시와 함께 부여군 남면 내곡리 115-10의 동절사(同節祠)에 배향되어 있다. 동절사 앞에는 1864년(고종 1)에 건립된 이지례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