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79 |
---|---|
한자 | 李寬民 |
영어공식명칭 | Lee Gwanmin |
이칭/별칭 | 연동장군(延東將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행묵 |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활동 사항]
이관민(李寬民)[?~?]은 1579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부여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조익(趙翊)이 지은 『공산일기(公山日記)』에 따르면, 이관민은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정유재란 당시 홍산(鴻山)[현 부여군 홍산면]에 머물고 있었다. 이관민은 왜군이 재침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수천 명의 의병을 모아 한양을 지키기 위하여 북상하였고, 왜군 80여 명의 목을 베어 공을 세웠으나 공신 명단에는 들지 못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겨서 이관민을 ‘연동장군(延東將軍)’이라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