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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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蘇山 |
영어공식명칭 | Busosan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구아리|구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중환 |
전구간 | 부소산 - 충청남도 부여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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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부소산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구아리|구교리 |
성격 | 산 |
높이 | 106m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는 산.
[개설]
부소산(扶蘇山)은 부여읍의 북쪽에 해당하는 진산이며, 높이는 106m이다. 금강의 하류에 해당하는 백마강과 맞닿아 있다. 백제 시대에는 부소산을 중심으로 왕성이 설치되어 백제가 사비[현 부여]로 천도하였을 때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도 통일 신라, 조선까지 행정 치소의 역할을 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도 내선 일체에 활용되는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명칭 유래]
부여의 진산이라 ‘부소산’이라고 부른다고 전한다. 부소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현 북쪽 3리[1.17㎞]에 있는 진산이다. 동쪽 작은 봉에 비스듬히 올라간 곳을 영월대(迎月臺)라 부르고, 서쪽 봉을 송월대(送月臺)라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동쪽 봉우리에 영월대가 있고, 서쪽 봉우리에 송월대가 있다. 줄기가 공주 계룡산에서 뻗어 온다. 고을의 주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자연환경]
부소산의 북쪽과 서쪽으로 금강[백마강]이 흐른다. 남쪽과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지만 북쪽과 서쪽은 경사가 급하며, 절벽을 이룬 곳도 있다.
부소산은 지형상 부여군의 중앙부 저지에 속한다. 규암면·구룡면·홍산면·남면·장암면·옥산면으로 둘러싸인 금천 유역과 부소산이 있는 금강 연변의 부여읍 지역은 부여군 내에서 가장 넓은 저지대를 이루고 있다. 금강으로 지천·은산천·구룡천·금천 등의 하천이 유입되며, 금강과 하천이 만나는 지역에는 넓은 충적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부소산은 중생대 쥐라기의 화강암류 분포 지역으로 주로 흑운모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운모편암, 편마암층을 모두 관입하였다. 부산의 화강암류는 조립, 등립의 조직을 보이며, 정장석, 석영 및 흑운모로 구성되어 있고, 그 밖에 백운모, 녹니석 등을 포함하고 있다.
부소산이 있는 부여군은 온대림 지역에 속한다. 자연 상태의 온대림에서는 신갈나무·떡갈나무·상수리나무 등의 참나무류를 주임목(主林木)으로 하는 낙엽활엽수림이 우세하게 나타나며, 하층 식생으로 진달래·철쭉·싸리나무 등의 관목이 자란다. 그러나 부소산 일대는 소나무 군락, 상수리나무 군락, 졸참나무 군락 등 혼효림(混淆林)을 이루는데, 6·25 전쟁을 거치며 부여 지역을 포함한 충청 및 호남 지방의 삼림이 심하게 훼손되어 인위적으로 조성된 리기다소나무숲의 영향으로 보인다.
[현황]
부소산은 부여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의 주차장이나 부여 사비도성 가상체험관 옆의 부소로를 통하여 진입할 수 있는데,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하여야 한다. 1963년 부여 부소산성이 사적으로 등재되면서 부소산의 등산로가 정비되었다.
부소산 일대는 백제가 멸망한 뒤 통일 신라에서 조선에 걸쳐 행정 치소로서 계속 활용되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부소산 일대는 더욱 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일제는 부여를 일본과 조선의 내선 일체를 상징하는 성지이자 영지 또는 신도(神都)로서 이용하려 하였다. 부여고적보존회가 앞장서 고적 조사 활동과 관광화 사업을 벌여 부소산 일대의 유적들을 조사하였으며, 나아가 부여 신궁(扶餘 神宮) 건립을 추진하였으나 일제의 패망으로 중단되었다.
부소산에는 부여 부소산성이 조성되어 있는데, 부소산 남쪽 기슭 일대인 관북리 혹은 구아리에 백제 왕궁을 비롯한 주요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부소산 옆을 흐르는 백마강은 적으로부터 왕도를 지키는 방어 기능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부여 부소산성 내에는 서복사지(西覆寺址)·영월대지(迎月臺址)·영일루(迎日樓)·군창지(軍倉址)·송월대지(送月臺址)·사비루(泗沘樓)·낙화암(落花巖)·백화정(百花亭)·고란사(皐蘭寺)·삼충사(三忠祠)·궁녀사(宮女祠) 등 백제와 관련된 많은 사적지가 있다. 낙화암은 부소산 북쪽에 바위로 이루어진 절벽이며,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백제가 멸망할 때 백제의 삼천궁녀가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고사가 전하는 바위이다. 낙화암 아래 협곡에 자리 잡은 고란사에는 고란사 뒤편의 암벽에서 약수가 솟아나는 약수터가 있다. 약수터의 샘물은 백제 왕들의 어용수(御用水)로 사용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약수터 주변에는 고란초라는 고사릿과의 다년생 은화식물이 그늘진 바위틈에서 자생한다. ‘고란사’라는 절 이름도 고란초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낙화암 아래의 백마강 물굽이에는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용을 낚았다는 조룡대(釣龍臺)가 있고, 낙화암 위쪽에는 백제가 망할 때 백제의 여인들이 겪은 비극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백화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