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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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壯東里土城 |
이칭/별칭 | 천배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장동리 406-41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고대 /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강원종 |
현 소재지 | 장동리 토성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장동리 40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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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토성 |
양식 | 테뫼식 산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325m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장동리 천배산에 있는 원삼국 시대~고려 시대 토성.
[개설]
장동리 토성(壯東里土城)은 부안군 줄포면 장동리 천배산(天培山)[42.8m]의 가장자리를 토루(土壘)의 형태로 두르고 있는 평면 원형의 토성이다.
[건립 경위]
장동리 토성에 대한 고문헌은 지금까지 확인된 바 없다. 다만 『고적 조사 자료』에서 “토축(土築)이며 주위는 약 150간, 원형으로 높이는 9척이다[土築 周圍 約150間 圓形으로 高 9尺]”라 하였고, 『문화 유적 총람』에는 “부안(扶安) 장동리 성지(壯東里城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김홍원(金弘遠)이 의병 1,000명을 모집하여 이곳에서 훈련하였으며, 채홍국(蔡弘國) 등과 합류하여 전공을 세우고 나주 목사가 되고 사방 10리의 토지를 하사받았다. 토축으로 지금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길이가 약 450m, 높이는 약 3m 정도가 된다. 성 내외(城址內)에는 김홍원의 묘 외에 4기의 묘가 있는데 김 공(金公)의 묘비는 이완용(李完用)이 쓴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위치]
장동리 토성은 부안군 줄포면 장동리 406-41번지에 있다. 줄포면 소재지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정읍 방면의 지방도 제710호선을 따라 340여 m 가면 천배 공원 입구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 입구로 들어가 245m 정도 가면 천배산 아래에 도착한다. 토성이 자리하고 있는 천배산은 부안군 줄포면 소재지의 북동쪽에 솟아 있는 낮은 산으로, 산의 남쪽에는 줄포초등학교가 있고 서쪽에는 원장동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형태]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325m이다. 토성의 형태는 평면 원형으로 산의 가장자리를 따라 토축하였고, 그 안쪽에 토루가 돌아가고 있다. 지금은 천배 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현황]
장동리 토성의 규모는 『고적 조사 자료』의 “토축이며 주위는 약 150간, 원형으로 높이는 9척이다”라는 말을 참고하면, 1간이 약 1.82m이므로 150간은 약 273m이다. 1960년대 조사 당시 토루의 둘레의 실측 결과는 325m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 1977년 발행된 『문화 유적 총람』에는 길이가 약 450m로 기록되어 있어서 추후 정밀한 측량 조사가 필요하다. 토루의 바깥 경사면의 길이는 약 7m, 안쪽 경사면의 길이는 약 4m이고, 토루의 상면 너비는 1.2m 내외이며, 안쪽에는 너비 8m~9m 내외의 회랑도가 둘러져 있다. 성의 내부는 완만하게 오르며, 정상부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해옹(海翁) 김홍원의 신도비와 대형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성문은 남쪽과 북쪽에서 확인되는데, 북문 터는 산 정상부의 서북쪽, 남문 터는 정남향에 해당한다. 북문 터의 너비는 약 8m, 남문 터의 너비는 약 9.2m이다. 유물은 삼국 시대 토기 편과 기와 편, 고려 시대 기와 편 등이 수습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장동리 토성은 지금의 줄포만과는 불과 2㎞ 정도 떨어져 있고, 동쪽으로 1㎞ 지점에는 서해안 고속 도로 건설 시 조사되었던 장동리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장동리 유적에서는 원삼국 시대 주거지 33기가 조사된 바 있어, 장동리 토성은 이들 집단과의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