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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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達海妻金寧金氏旌閭碑 |
이칭/별칭 | 김녕김씨 정려각,영덕 화개리 김녕김씨열녀비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개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903년 - 강달해 처 김녕김씨 정려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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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4년 - 강달해 처 김녕김씨 정려비문 찬술 |
현 소재지 | 강달해 처 김녕김씨 정려비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개리 222-2 |
원소재지 | 강달해 처 김녕김씨 정려비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개리 222-2 |
성격 | 정려비 |
양식 | 폭: 55㎝[가첨석]|33㎝[비신]|56×34㎝[비좌]|높이: 55㎝[가첨석]|98㎝[비신]|4.5㎝[비좌]|두께: 30㎝[가첨석]|13㎝[비신]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개리에 있는 개항기의 정려비.
[개설]
김녕김씨(金寧金氏)는 김득암(金得巖)의 딸이다. 진주강씨 강달해(姜達海)와 혼인하여 시부모를 효성스럽게 받들고 여러 친족들은 존경으로 대하였다. 혼인한 지 몇 년 후 남편 강달해가 병을 얻자 김녕김씨가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지만 얼마 후 사망하였다. 김녕김씨는 남편을 따라 25세의 나이로 자결하였다.
[건립경위]
강달해 처 김녕김씨 정려비(姜達海妻金寧金氏旌閭碑)는 1903년 건립되었다. 김녕김씨가 남편이 죽은 후 자결하자 향리에서 김녕김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정려를 요청하였고, 조정희(趙定熙)의 주청에 따라 정려를 받았다. 1904년 윤용선(尹容善)이 비문을 지어 김씨의 정열을 기렸다.
[위치]
강달해 처 김녕김씨 정려비는 영덕읍 화개리에 있다. 화개리를 관통하는 오십천과 화개리 서쪽에 자리 잡은 무지산 사이 좁은 길에 자리하고 있다. 영덕군민운동장, 대구지방검찰청 영덕지청,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 경상북도장애인종합복지관 영덕분관 등 지역 개발로 주변 경관이 크게 변화하였다.
[형태]
가첨석(加檐石)의 크기는 폭 55㎝, 높이 55㎝, 두께 30㎝이다. 비신은 폭 33㎝, 높이 98㎝, 두께 13㎝, 비좌는 폭 56×34㎝, 높이 4.5㎝, 자경(字徑) 5×5㎝이다.
[금석문]
정면은 '열녀사인강달해처유인김녕김씨지비(烈女士人姜達海妻孺人金寧金氏之碑)'라 비명이 음각되어 있다. 오른쪽 위에 건립 간지인 ‘갑진이월일(甲辰二月日)’이 각자되어 있다.
[현황]
비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주변 정비가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강달해 처 김녕김씨 정려비는 유교적 윤리를 지키기 위해 남편의 뒤를 따른 조선시대 여인의 윤리의식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