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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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妙藏寺址 |
영어공식명칭 | Myojangsa Temple Site |
이칭/별칭 | 칠성사지,칠성리사지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627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박병선 |
건립 시기/일시 | 통일신라시대 - 묘장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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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9세기 말 - 묘장사 폐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1년 - 묘장사지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발굴 조사 |
소재지 | 묘장사지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627 |
성격 | 절터 |
관리자 | 영덕군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개설]
묘장사지(妙藏寺址)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묘장사(妙藏寺)의 절터이다. 묘장사는 19세기 말까지 사세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변천]
묘장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이라고는 하나 창건 및 폐사 시기를 알 수 있는 문헌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 초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기록이 없으나, 18세기 중엽과 말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와 『범우고(梵宇攷)』에는 “묘장사는 영해부 남쪽 20리[약 8㎞]에 있다”고 하였다. 또한 19세기 전반의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는 “묘장사는 영해부 남쪽 25리[약 10㎞] 화전(花田)에 있다”고 했으며, 19세기 말의 『영남읍지(嶺南邑誌)』에는 “묘장사는 영해부 남쪽 25리[약 10㎞]에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교남지(嶠南誌)』에는 폐사로 기록되어 있어, 적어도 19세기 말까지는 사세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묘장사지는 일명 '칠성사지' 혹은 ‘칠성리사지’라고도 한다. 묘장사지의 창건은 사지 지역에 조선시대에 건립된 대둔정사지(大遯精舍址)가 있었는데, 이 정사의 유허비 앞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재 1점이 발견되었던 것을 추정하여 창건 연대를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할 뿐이다.
[위치]
영덕읍에서 국도 제7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가다 화수교 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영축로를 따라가면 축산천을 가로지르는 화천교가 나온다. 화천교를 건넌 후 아삼교를 지나 가암리 방향으로 좌회전한 후 칠성1리 마을회관을 지나 좌측 길로 가면 칠성지가 나오는데,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묘장사지가 자리하고 있다.
묘장사지는 진밭마을 서쪽 골짜기에 있는데, 가파른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곡간지를 칠성천이 사행하면서 감싸고 흘러가 남동쪽으로 빠져나가는 곳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영덕군 축산면 일대 농업용수 마련을 위한 저수지 축조를 앞두고 1999년 이 일대에 대한 지표조사가 진행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2001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묘장사 일원을 발굴조사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 건축되어 조선 후기까지 유지된 묘장사의 흔적을 확인하였다.
[현황]
발굴 조사를 통해 ‘妙藏寺(묘장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암키와가 발굴되었다. 이로써 문헌상의 묘장사임을 알 수 있다. 묘장사지의 배치 형식은 남향의 건물지군과 동향의 건물지군으로 나뉘는데, 18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남향의 건물지군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거의 동일 위치에 중복 배치되는 양상을 띠며, 동향의 건물지군은 조선시대 건물 4동이 산지중정식(山地中庭式)으로 배치되어 있다. 조선시대 건물지에서는 기단석열과 내부에 벽체와 구들시설이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묘장사지는 현재 복토가 되었고 저수지의 확장으로 인해 일부 구역은 수몰된 상태이다. 따라서 현재 지표상에서 묘장사의 유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고찰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있는 현실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