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흥사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392
한자 梵興寺址
영어공식명칭 Beomheungsa Temple Site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 1139-1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고려시대 - 범흥사 창건
폐지 시기/일시 19세기 초 - 범흥사 폐사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7년 - 범흥사지 삼성전자 영덕연수원에 편입
소재지 범흥사지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 1139-1 지도보기
성격 절터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개설]

범흥사(梵興寺)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전해지고 있으나, 일설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으나, 조선 후기인 19세기 초에 폐사되었다.

[변천]

범흥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창건에 관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1409년(태종 9)에 영해로 귀양 온 안노생(安魯生)의 「범흥사」라는 시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영해도호부 불우조에 “범흥사등운산(騰雲山)에 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전기까지는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8세기 중엽의 『여지도서(輿地圖書)』 영해도호부 사찰조에 “범흥사등운산에 있었는데 지금은 폐사되었다”고 하였으나, 18세기 말의 『범우고(梵宇攷)』 영해도호부 사찰조에 “범흥사등운산에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1832년의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와 19세기 말의 『영남읍지(嶺南邑誌)』에 범흥사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일제강점기의 『교남지(嶠南誌)』에 ”범흥사등운산 동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범흥사는 조선 전기 이후 폐사되었다가 18세기 말엽에 중건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9세기 초에 다시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칠보산의 지맥인 등운산 동쪽 계곡 사면에 자리한 범흥사지칠보산자연휴양림에서 남동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약 500m 들어간 자리에 있었으나, 현재는 삼성전자 영덕연수원이 건립되어 사지 확인이 불가능하다.

[현황]

범흥사지는 2017년 삼성전자 영덕연수원이 건립되면서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범흥사지 주변에서는 삼국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편과 고려시대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는 와편 등이 수습되기도 하였다. 최근까지 ‘영덕 영리 석탑’이 있었으나, 2004년 7월에 도난당하였다.

1942년에 발간된 조선총독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범흥사지는 밭과 대지로 변하여 위치가 불명확하며, 높이 120㎝, 기단부 지름 60㎝인 4층 석탑 1기가 유존한다."고 하였다. 이후 『문화유적총람』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나, 2003년 대구대학교 중앙박물관 지표조사에서는 "자연 바위 위에 탑재 일부만 중첩되어 있는데, 옥신석과 옥개석 각 1매와 기단석으로 보이는 원형 석재 2단과 중대석으로 보이는 석재 1매가 차례로 쌓여 있으며, 탑의 높이는 70㎝로 석재 주변에는 직경 5㎝ 미만의 성혈(性穴)이 여러 군데 모각되어 있다."고 하였다. 2004년 위덕대학교 박물관 지표조사에서는 영리 석탑이 분실되었으며, 2014년 대구대학교 중앙박물관 지표조사에서는 영리 석탑이 있던 바위 아래 수풀에서 3편의 탑재를 확인하였으나, 2016년 화랑문화재연구원 지표조사 당시에는 이미 연수원 공사가 진행되어 탑재의 흔적마저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2017년 연수원 건립 공사가 완공되면서 범흥사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의의와 평가]

범흥사지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천 년 고찰의 절터로 대기업의 대규모 현대식 건물에 매몰되어 이곳이 사지였다는 것을 전혀 알 길이 없다. 범흥사지라고 추정되는 곳에 표지석이라도 하나 세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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