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353
한자 蒼水事件
이칭/별칭 이겸호의 대한통의부 군자금 모집 활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4년 6월 5일연표보기 - 창수사건 발생
성격 독립운동
관련 인물/단체 이덕숙|이겸호|신형섭|권동호|대한통의부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서 벌어진 대한통의부 군자금 모집 사건.

[역사적 배경]

대한통의부는 1922년 만주 봉천성 환인현(桓仁縣)에서 결성되었다.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김동삼(金東三)이 총장, 채상덕(蔡相悳)이 부총장, 이웅해(李雄海)가 민사부장, 양규열(梁圭烈)이 군사부장을 맡았다. 대한통의부 산하 의용군은 친일 단체를 공격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무장투쟁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다. 군자금 모집 활동은 남만주 일원과 접경한 평안도는 물론 서울과 국내 전역에서 폭넓게 전개되었다.

[경과]

대한통의부 의용군 중대장 김명봉(金鳴鳳)은 군자금 모집을 위해 경상북도 울진 출신 이동건(李東建)과 안동 출신 류연덕(柳淵德), 의용군 소대장 이덕숙(李德淑)을 국내로 파견하였다. 세 사람은 권총과 실탄, 경고문, 영수증을 가지고 각각 국내에 들어와 연락 거점인 대구에서 신형섭(申亨燮)과 접촉하였다. 1923년 10월 이덕숙은 신형섭의 소개로 신흥무관학교의 동창생인 이겸호(李謙浩)[1895~1942]와 접촉하게 된다.

이겸호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출신으로,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의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서로군정서의 지시에 따라 국내에 들어왔다가 재차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이겸호는 군자금 모집 임무를 띠고 국내에 들어와 활동을 펼쳤으나, 1920년 11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적이 있었다. 이렇게 만난 이겸호와 이덕숙은 신형섭의 집에서 군자금 모집 문제를 협의하였다. 이겸호는 이덕숙·권동호(權東鎬)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의하고, 1924년 창수면의 부호 김상락(金相洛)을 찾아가 군자금을 요구하였다.

[결과]

1924년 9월 군자금 모집 활동이 드러나 이겸호가 체포되었다. 곧이어 이덕숙도 경기도에서 체포되었고, 권동호도 체포되었다. 이겸호는 1925년 3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언도받았으며, 이덕숙은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의의와 평가]

창수사건은 대한통의부가 독립전쟁의 수행에 필요한 군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창수사건장사사건과 더불어 당시 일제 경찰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